사물을 봅니다
계절의 변화는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여기 세 권의 책을 읽노라면 ‘사물 보기’의 희로애락이 벚꽃 향기처럼 번지는 기분이다.
마감이 돌아오기 전 주말, 봄맞이 대청소를 했다. 집 앞에 나왔다가 노란 꽃송이가 다발로 매달린 화분을 하나 샀다. 꽃집 주인이 알려준 이름을 금방 까먹고 말았다. 특별한 향은 없었다. 화분을 집에 가져와 창가 선반에 올려두었다. 그러곤 꽃을 관찰했다. 불쑥, ‘무슨 꽃이 이렇게 징그럽게 생겼어’라는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럼 꽃은 아름답기만 해야 해?’라는 질문도 툭 튀어나왔다. 꽃을 관찰하는 행위는 어쩌면 자기모순과 싸우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꽃에서 무엇을 보려 한 것일까?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물을 아주 쉽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왜?’라는 질문을 던질 용기도 없이. 사물을 다르게 보는 것은 잘 만들어진 세계에 저항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시인, 큐레이터, 작가, 디자이너는 선각자다. 이름 모를 노란 꽃 옆에 앉아 봄 들판의 연둣빛 새싹 같은 이현승의 시집 <친애하는 사물들>을 펼쳤다. 시집에 등장하는 각종 사물에 형광 표시를 해본다. 동명의 시가 눈에 밟혔다. “아버지의 구두를 신으면 아버지가 된 것 같고/ 집 어귀며 책상이며 손 닿던 곳은 아버지의 손 같고/ 구두며 옷가지며 몸에 지니던 것들은 아버지 같고/ 내 눈물마저도 아버지의 것인 것 같다.” 아마도 화자의 아버지는 몹시 아팠나 보다. 약, 주삿바늘, 소변 주머니, 피, 살, 몸 등의 ‘사물’이 문장의 앞에 등장한다. 구두, 책상, 옷가지 따위의 사물에서 느끼는 아버지의 존재에 뭉클해진다.
시인이 언어로 사물을 매만진다면, 큐레이터는 사물을 재분류하고 재정의한다. 이현승의 시집은 물컹하지만, 런던 디자인 뮤지엄 관장 데얀 수직이 쓴 <바이디자인>은 딱딱하다. 사전처럼 A부터 Z까지 39개 단어를 선정해 알파벳순으로 사물과 디자인, 건축을 둘러싼 전후 맥락을 살핀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익명적 디자인 사물을 향한 애정이 돋보인다. 녹색 피시테일 파카의 지퍼 꼭지에 달린 기다란 녹색 꽈배기 끈에서 시작해 클립, 지퍼, 포크, 쪽가위 등의 사물에 찬사를 보내며 글을 맺는다. 그에 따르면 사물을 만드는 행위인 디자인은 ‘작은 기적’이다. 그 기적을 우리는 얼마만큼 체감하며 사는 걸까? 누군가 ‘이 물건은 왜 그렇게 생겼나요?’라는 질문을 당신에게 던졌을 때, 넌지시 이 책을 건네보자.
독립 큐레이터 현시원은 <사물 유람>에서 사물과 사물이 만든 이미지에 상당히 주관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녀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사물은 너무 일상적인 것이라 때론 쓸쓸하고 때론 눈부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이현승의 시집과 닮았다. 붕어빵에서 초현실주의 화가의 데칼코마니 기법을, 거리 상점의 삼색 셔터에서 중국의 병풍을, 한강에 떠 있는 오리배에서 프로이트가 말한 ‘언캐니’를, 공원의 운동 기구에서 고문 기구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사물에 담긴 ‘흥겨움과 미심쩍음’을 동시에 포착하는 그녀의 흥미로운 시각은 책을 집필하기 위해 사물을 오랫동안 다시 관찰하면서 얻을 수 있었다. 인간과 사물 사이에 오가는 비밀스러운 신호를 포착한 것이다. 문득 고개를 들어 내 옆의 노란 꽃을 한참 바라봤다. 어쩐지 예뻐 보인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사진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