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 컬렉터 이상의 컬렉터
냉장고와 컴퓨터 등 전자 기기를 제외한 가구, 조명, 의자, 그릇 등을 모두 1920~1970년대 독일과 유럽의 빈티지 제품으로 갖춰놓은 사보를 그저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다.
사보 한국에서 성악을 전공하다 불현듯 독일로 떠나 슈투트가르트 미술대학에서 디자인을, 같은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했다. 미술학원엔 한 번도 다닌 적이 없지만, 독일에서 전시회도 여러 번 열고 일러스트 화보집도 내며 다양한 활동을 했고, 이후 워싱턴과 뉴욕에서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로 몇 년 지내다 한국에 돌아왔다. 이 짧은 이력에서도 드러나듯 그는 단순한 디자이너나 특정 단어론 설명이 안 되는 사람이다. 빈티지 컬렉터인가 했는데 누군가는 디자이너라 부르고, 또 어떤 이는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칭한다. ‘사보’는 독일 유학 시절 친구들이 그의 이름인 ‘임상봉’의 발음이 어렵다며 붙여준 이름이다. 그는 이 이름을 계속 애칭으로 쓰고 있다
1995년 한국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사보(임상봉)는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성악 대신 미술에서 재능을 발견했고 이내 진로를 바꿨다. 슈투트가르트 국립 미술대학에 합격했고, 대부분 시간을 학교 인근의 바이센호프에서 보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었다. 동양인이 많지 않은 바이센호프 주택단지에 주말마다 일본인이 몰린 것이다. 깃발 아래 모인 일본인은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낡은 주택 앞에서 사진을 찍었고, 그런 풍경은 매주 이어졌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사보는 얼마 후 수소문 끝에 일본인이 몰리는 주택단지의 정체를 알아냈다. 바로 1920년대에 형성된 바우하우스 예술가의 이주촌이었다. 일본인? 그들은 바우하우스 양식을 계승한 빈티지 소품을 수집하는 컬렉터였다.
그날 이후 사보는 바우하우스 시절 가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볼 수 없던 독특한 디자인과 실용성, 내구성에 매료된 것이다. 그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독일 전역의 벼룩시장을 누비며 컬렉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바우하우스 시절 가구는 물론이고 1900년대 초·중반 유럽의 생활용품과 유럽 빈티지 가구를 집중적으로 모았다. 그가 독일에서 공부한 10여 년간 벼룩시장에서 구한 것, 폐업할 때 산 것, 때때로 주운 가구와 소품의 수를 합치면 9000여 점이나 된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기 위해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어요. 직접 그린 그림을 팔러 다닌 건 기본이고, 중장비 면허를 따 지게차도 몰았죠. 돈이 생기면 모두 가구 사는 데 썼어요. 또 주변 친구나 이웃도 제가 옛날 가구 모으는 걸 아니까 창고 깊숙한 곳에 있던 물건을 꺼내주었고요.”
바우하우스 시대 디자이너 빌헬름 바겐펠트의 유리 화병부터 미하일 토네트, 한스 베그너, 아르네 야콥센, 프리츠 한센, 임스 부부 같은 거장이 디자인한 가구 그리고 1960년대 독일 사무실 미팅 룸에서 사용한 소파, 평범한 독일 가정에서 사용한 찬장과 부티크 장식장, 1950년대에 생산한 지멘스의 세탁기와 보쉬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 도이치포스트의 기계식 전화기, 1960년대에 생산한 알리베르트의 회전식 화장 거울, 이탈리아 란치에르에서 나온 곡선형 스탠드 ‘보겐람페’….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이 이름이 전부 그가 수집한 가구와 소품이다. 그는 어딘가를 장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이 쓰기 위해 가구와 소품을 모았다. 실제로 사용할 수 없는 건 실용성을 강조한 바우하우스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조명이나 가전제품 등 작동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직접 고쳐서 사용했다. 그 때문에 그가 가진 물건들은 1900년대 초 · 중반에 만든 것임에도 여전히 번쩍번쩍하다.
“운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가구 수집에 나선 시절엔 독일에서 빈티지에 관심을 둔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벼룩시장에서도 그리 비싸지 않은 값에 빈티지 가구를 구할 수 있었죠. 아, 그리고 1990년대에만 해도 독일엔 ‘슈페어물탁’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평소에 가구를 버리려면 수거비를 내야 하지만, 1년에 두 번 있는 그날만큼은 무료였죠. 사람들은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가구를 내다 버렸는데, 그것만 주워도 트럭 몇 대 분량이 됐죠. 지금은 수백만 원 하는 임스 체어와 판톤 체어 같은 것도 당시엔 그냥 버려지곤 했어요.”
1 사보의 사랑방 한 켠에 모여 있는 독일, 이탈리아, 미국, 일본 등에서 구입한 인형들
2 일러스트레이터 사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보 천사’
3 슈투트가르트의 가구숍에서 어렵게 구한 덴마크 출신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솔머 베델의 1950년대 의자
물론 그도 가구를 모으며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었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늘 가구 공부를 하던 그였지만, 이따금 벼룩시장에서 ‘빈티지처럼 보이는’ 이케아의 테이블을 ‘득템’했다고 낑낑거리며 집에 들였고, 나날이 느는 가구의 보관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임시방편’으로 살고 있던 아파트의 주인 할머니에게 그림 몇 점을 그려주고 사용하지 않는 지하 와인 창고를 빌렸다. “가구를 사들이기 시작한 지 5년 정도 지났을 때였어요. 이미 할머니의 와인 창고는 제 가구를 임시방편으로 보관하는 수준을 넘어선 상태였죠. 어느 날 ‘끼약’ 하는 비명이 들려 급히 지하로 뛰어내려갔는데, 할머니가 창고 문 앞에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서 있더라고요. 할머니는 대체 그 많은 물건을 어디서 다 가져왔느냐며 며칠 동안이나 제게 묻곤 했어요.”
사보는 가구 수집 외에 공간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다. 아니, 공간 디자인이란 그가 십수 년간 가구를 모으며 자연스레 터득한 어떤 단단한 개념이다. 그래서 그는 조화롭지 않은 데커레이션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를테면 가구는 수천만 원이나 하는데 전등은 형광등인 경우가 그렇다. “우리나라에선 가구 배치가 끝난 뒤에야 조명을 생각해요. 사실은 그 반대가 맞는데. 그래야 불을 켰을 때 어떤 느낌이 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사실 우리가 땅의 풍수를 보듯 가구에도 풍수가 있어요. 공간 디자인은 일종의 가구 풍수라고 보면 돼요. 하지만 그럼에도 통하는 건 하나예요. 바로 사랑으로 꾸미는 거죠.”
사보와 1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눈 서울 한남동의 ‘사랑방’(그는 사람들과의 미팅 장소, 독일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게스트 하우스로 쓰는 이 공간을 그렇게 불렀다). 이곳은 용도에 맞게 서재와 주방을 비롯해 각각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원래 가정집으로 쓰던 곳이라 기둥을 제외한 모든 방의 문을 뜯어 경계를 없앤 대신 사랑방이라는 컨셉에 맞게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해 공간을 구분했다. 물론 이 공간을 꾸민 가구는 그가 가진 것의 10분의 1 정도도 되지 않는다. 그의 가구와 소품은 아직도 대여섯 개의 컨테이너로 나뉘어 각각 독일과 일산에 보관 중이다.
빈티지 컬렉션에 10여 년의 시간을 투자한 사보. 그는 결코 오래되고 비싼 것만 고집하지 않았다. 가구를 더 가치 있게 만드는 진정한 수집가의 면모다. 그는 가구 자체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삶의 질적 아름다움도 덩달아 높아지길 바란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에게 가구는 ‘일상’에 가깝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이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