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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미술이 만난 공간

ARTNOW

현재 가장 주목받는 중국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리칭이 한국에 ‘작가의 집’을 꾸몄다. 그의 개인적 삶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은 미술관 속 또 하나의 독창적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 직접 꾸민 작업실에 선 리칭

여기까지 방이고 여기부터는 거실, 혹은 여기까지 전시실이고 여기부터는 정원이라는 공간의 구분과 그 역할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뮤지엄을 예로 들면 입구에서 전시실 안쪽까지 분리되거나 연결된 각 공간은 작가나 관람객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지난 10월 초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진행한 전시 프로젝트 ‘뮤지엄 인 뮤지엄’은 공간에 대한 고민이 담긴 작업이었다. 아라리오 그룹의 김창일 회장은 미술관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에 남는 공간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옛 공간사옥인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라면 공간에 대한 의미가 더욱 커진다. 아라리오뮤지엄이 남다른 공간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이번 프로젝트는 그 결과물 중 하나다. 건물 안에 작가의 프라이빗한 공간을 작품으로 들여놓는다는 의미에서 ‘뮤지엄 인 뮤지엄’이라 이름 붙였고, 현재 중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 리칭(Li Qing)이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자로 미술관에 머물며 자신의 집을 꾸미는 작업을 선보였다. 현재 상하이와 항저우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리칭은 2000년대 중반 ‘틀린 그림 찾기(Finding Differences)’ 시리즈와 ‘부분적으로 결합했다가 취소한 이미지(Images of Mutual Undoing and Unity)’ 시리즈 등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그는 전통적 아카데미 방식을 탐구하면서도 작업을 통해 그 법칙을 깨뜨려 ‘지적 회화’라 불리는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현재 중국 미술계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다른 1980년대생 작가와 마찬가지로 점차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실험적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이번에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 마련한 ‘8개의 방’을 계기로 앞으로 더욱 설치의 비중이 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예고했다. 오래 지속된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마침내 작품이 완성된 어느 가을날, 그의 새집에 초대받았다. 리칭의 소개에 따라 8개의 방을 둘러보고, 한국에서의 특별한 작업과 그가 뮤지엄에 영구 전시될 이 공간에 담고 싶어 한 것에 대해 들어보았다.

Neighbour’s Window·St. Petersburg Style #3, 나무, 플렉시글라스, 메탈, 유채, 150×107×11cm, 2014

리칭의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살롱 공간의 작업 전후 모습

리칭의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살롱 공간의 작업 전후 모습

중국 가요가 흐르는 리칭 작가의 가라오케 룸

뮤지엄 안에 자신의 취향이 묻어나는 공간을 꾸민 소감이 궁금해요. 완성한 공간에서 첫 손님을 맞이한 기분이 어떤가요?
서울에 만든 진짜 내 방이라는 느낌으로 첫 방문객을 맞았어요. 이제 프로젝트를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지만 서울에 있는 제 방에 다시 들를 생각입니다.

8개의 방을 꾸미는 데 실질적으로는 열흘 정도 걸렸지만 준비 기간을 더하면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 프로젝트라고 들었습니다.
이번 작업을 위해 사전에 두 번 뮤지엄을 방문했어요. 처음 온 건 2014년 10월이었죠. 첫인상은 매우 특색 있는 공간이란 것이었고, 외부와 내부를 둘러보며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밖에서 보기엔 거대한 역사적 건물 같은데 내부는 여러 개의 작은 공간이 이어지면서 작가별로 작품을 전시한 구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술관 안에 독립적 공간이 존재하는 개성 있는 건물이라 ‘뮤지엄 인 뮤지엄’ 프로젝트를 실행하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느꼈어요. 그리고 지난 5월 다시 방문해 최종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장소를 결정했습니다. 가장 작은 방에 축소한 공간을 만들기로 했죠.

본래 건축에도 관심이 많았나 봐요.
회화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설치 작업을 이용하고, 회화와 건축의 컬래버레이션에도 관심이 많아요. 이번 작업도 그런 셈이죠.

이런 작업이 처음은 아니죠? 2014년 상하이 9m2 미술관에서 선보인 전도 비슷한 작업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와 비교해 변화를 시도한 부분이 있나요?
여러모로 스케일이 커졌죠. 상하이 전시는 미술관 이름대로 딱 9m2의 공간만 사용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만든 것이 공공 화장실 하나였죠. 이번에는 방이 8개라 작업도 훨씬 복잡했고 더욱 다양한 일상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이슈도 당연히 더 복합적이라 작가로서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두 작업의 공통점으로 ‘가상의 창문’을 꼽을 수 있는데, 미술 잡지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바탕으로 창문을 그렸어요.

창문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좁은 복도로 이어지는 살롱, 스터디 룸, 작업실, 베드룸, 다이닝룸, 가라오케 룸, 샤워실, 화장실 등 8개의 공간 중 4개에는 뮤지엄 밖이 내다보이는 실제 창문이 있고 나머지 4개의 방에는 그려 넣은 가상의 창문이 있더군요. 베드룸 같은 경우엔 뉴욕의 타임스스퀘어 풍경을 묘사하는 등 공간과 창의 그림이 대조적이기도 했어요. ‘윈도’ 시리즈라 불리는 이 작업의 이미지는 어떻게 선별한 건가요?
제가 그린 4개의 창문 작품은 모두 다른 풍경이지만 동시대 미술계의 풍경이라는 점에서 하나로 아우를 수 있어요. 가상의 창문은 한국의 특정 미술 잡지에서 선별한 이미지를 확대해 그린 거예요. 그런데 그 이미지는 중국의 잡지와도 흡사해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중요하게 보거나 흥미를 느끼는 것은 세계적으로 일맥상통하고 비슷하게 표출되죠. 재현한 풍경과 일상의 공간을 매치할 때는 방과 연관된 이미지를 배치하기도 하고 일부러 서로 반대되는 이미지를 놓기도 하면서 세계와 저 자신의 관계를 담아냈어요.

작업 도구를 모아 꾸민 작업실 한편

뮤지엄의 실제 창밖 풍경을 살린 다이닝룸

Rural Church, 나무, 플렉시글라스에 유채, 메탈, 600×560×500cm, 2014-2015
ⓒ Li Qing

동시대 작가의 서재 모습을 담은 스터디 룸

뉴욕 타임스스퀘어 풍경을 묘사한 가상의 윈도 작품이 있는 베드룸

특히 8개의 방 중에 가라오케 룸이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어요. 아주 현실적이게도 조명과 소파, 마이크, 그리고 노래가 흘러나오는 기계가 있더군요.
중국 작가들은 전시 오프닝을 하고 나면 꼭 가라오케에 가서 뒤풀이를 하죠.(웃음) 가라오케를 떠올리면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며 초현실적 이미지를 자아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가라오케 룸에 건 작품은 건축물과 다른 이미지가 충돌하는 서도호 작가의 작품을 그렸습니다. 충돌을 표현한 그 작품도 초현실적인 인상을 준다고 느꼈어요.

그 작품은 이번 전시를 위해 그린 건가요?
8개의 방에 걸린 회화 작품은 모두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작업한 거예요. 복도에 걸린 ‘뮤지엄 셀피’ 시리즈 사진 작품은 일상에서 촬영한 작품을 전시를 위해 인화했죠. 공간에 대한 구상이 끝난 뒤 5개월간 작품 활동에 매진했어요. 작품 외에 가구와 물건은 모두 한국에서 구한 것을 사용했습니다.

회화로 잘 알려졌지만 이젠 설치, 영상 등으로 작업 영역이 한층 넓어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오직 회화만이 지닌 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지 궁금해요.
붓질은 작가에게 가장 일상적인 노동이라고 생각해요. 미술에서는 회화가 가장 오래되고 기본적인 영역이기도 하죠. 다른 작업보다 훨씬 개인적인 작업이고, 캔버스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마주하며 나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로 삼는 것 같아요.

작가로서 생각하는 현대사회의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요?
‘자유’라고 생각해요. 현대사회는 여러 가지 압박으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작가는 작업을 하며 자신만의 자유를 느끼는 방식에 대해 탐구하는 거라고 봐요. 국적, 성별, 나이를 떠나 통합적 부분에서 자유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작업을 하면서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작업은 작가인 제가 하는 것이지만, 거기엔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일반인의 사회적 경험이 반영되어 있어요. 제 의도와 상관없이 작품을 보며 관람객이 느끼고 경험하는 거죠. 물론 모든 작품에 제가 담고자 한 주제가 있고, 그것이 관람객에게 조금은 통하길 바라요. 저는 공존과 대비, 허구와 실재 등을 주로 다루는데 관람객이 이 상반된 요소를 작품을 통해 경험하고 그 맥락을 이해했으면 합니다.

2016년 상하이에서, 그리고 2017년에는 제주 아라리오뮤지엄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이렇게 개인적 정체성이 드러난 공간을 둘러보고 나니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될지 궁금하네요.
한동안 이번 프로젝트에 몰두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당분간 지금 진행하고 있는 ‘윈도’ 시리즈를 계속 선보일 생각이에요. 또 건축 관련 설치 작업을 계속할 생각인데, 다음에 한국에 소개할 전시도 공간과 관련된 프로젝트일 것 같아요. 분명한 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어떻게 변화해갈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업을 계속할 거라는 사실이죠.

 

리칭
1981년 중국 저장 성 출생, 상하이와 항주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틀린 그림 찾기’ 시리즈와 ‘부분적으로 결합했다가 취소한 이미지’ 시리즈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실험적 작업을 통해 관람자와 회화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하고, 동시대 사회의 일상과 집단적 행위에 대한 시각적 경험에 관심을 기울인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사진 김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