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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서의 예술

ARTNOW

한국화가, 사진작가, 시인, 에세이스트,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 가수, 배우까지. 이 모든 게 김영호를 수식하는 말이지만, 그는 그저 ‘살아갈 뿐’이라고 말한다.

김영호는 장군이나 왕 같은 선 굵은 역할은 물론 영화 <밤과 낮>에서처럼 섬세한 감정 표현도 가능한 팔색조 같은 매력을 지닌 배우다. 하지만 ‘배우’라는 단어만으로는 그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연기 외에도 하는 일이 워낙 많은 탓이다. 우선 그는 전업 가수 못지않게 노래를 잘한다. 틈틈이 시와 에세이를 쓰고,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때로는 한 획 한 획 집중해 한국화를 그린다. 동시에 그는 도예 작업하듯 정성스레 빵을 굽기도 한다.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취미이자 특기를 가진 남자가 바로 김영호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가 이렇게 예술에 빠져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람들과 잘 어울릴 것같이 생겼지만, 남들과 부대끼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보통은 가볍게 술 한잔하며 사는 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풀잖아요. 근데 저는 그런 성격이 못 돼요. 대신 주변의 진지하고 순수한 것에 주목하죠. 이를테면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계절이 바뀌는 모습 같은 거요. 자연을 보며 삶에 대해 생각하는 걸 즐기다 보니, 그게 시나 사진 작업 같은 창작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본래 소문난 미술 애호가였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미술에 관심을 가진 건 2008년 영화 <미인도>를 준비하면서다. 조선의 천재 화가 김홍도 역을 위해 한국화를 배우며 그 매력에 빠진 것, 미술 실력을 갈고닦아 2010년 부산 롯데갤러리에서 열린 <아티스타> 특별전에 한국화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지금도 한국화를 즐겨 그리지만, 전시에 출품하진 않는다. “한국화는 알면 알수록 어려워요. 선 하나만 잘못 그려도 전체를 망치게 되니까요.” 해외에 나갈 일이 있으면 그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부터 들르고,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도 빼놓지 않고 챙겨 본다. 특히 이이남의 미디어 아트 작품, 권현진의 추상회화, 이태경의 인물화를 좋아한다고.
그런가 하면 지난 몇 년간 사진작가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2012년 산토리니 서울과 대구 동원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서울오픈아트페어(SOAF)와 2015 평창비엔날레 등에서 꾸준히 사진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사진을 한지에 프린트해 낙관까지 찍은 한국적 작품은 독특한 매력으로 인기가 많다. “사진을 찍은 지는 오래됐어요. 주로 풍경 사진을 찍고요. 어디에 내보이려고 한 작업은 아닌데, 우연히 제 사진을 본 몇몇 분이 전시를 권했어요. 구도나 기법에 구애받지 않고 촬영하는데, 오히려 그게 전문가들에겐 신선하게 느껴졌나 봐요. 운 좋게 처음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죠.”
당시의 사진 작품 중 몇 점을 자신의 책에 싣기도 했다. 2012년 에세이 시집 <그대가 저 멀리 간 뒤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2013년 산문집 <그대, 살다, 잊다>를 출간하기도 한 그다. 책에 실린 글 역시 그가 매일 써온 것 중 일부를 추린 것이다. 그는 시나 짧은 에세이를 하루에도 몇 편씩 쓴다. 대중에게 각인된 남성적 이미지와 달리, 그의 글은 섬세하고 날카롭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롭다. “글은 제가 잘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써요. 사진 작업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게 아니죠. 그래서 산문이나 시로 구분되는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도 글에 손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했어요. 누가 수정하면 더는 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김영호만의 감성이 살아 있는 글은 그의 SNS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그는 시나리오 작업에도 열중한다. 사실 그는 2014년 단편영화 <천사의 노래>를 연출해 광주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시나리오 작업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인데, 이미 완성한 것도 있고 시놉시스만 구상한 것도 있다. “나중에 영화로 만들면 좋겠지만, 다 그렇게 되진 않겠죠. 반드시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부담감은 없어요. 때가 되면 운명처럼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김영호는 대학 시절 일찌감치 충북 청주에서 가수로 활동한 이력도 있다. 당시 그는 록 밴드 ‘지풍우’를 결성해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에도 참가했다. 2013년엔 미니 앨범 <색>과 <남자라서>를 발표하고, 이후에도 TV 가요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 실력을 뽐냈다. 얼마 전엔 군산시립합창단 정기 연주회에서 선보인 가곡 ‘내 가슴엔 바다가 있다’의 작사를 담당하기도 했다. 음악은 김영호의 삶을 관통하는, 그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 셈. “저는 화도 잘 안 내고, 감정 기복이 거의 없는 편이에요. 감정을 표현하지 않다 보니, 마음 한편이 답답할 때도 있죠. 하지만 그걸 노래로 토해냅니다. 평소 말하지 못한 것을 노래에 담는 거죠.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술 마시는 것과 비슷해요. 답답할 때 찾고, 거기에 취하니까요.”
영화부터 한국화, 사진, 시, 노래까지, 이렇게 다양한 예술 장르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는 김영호. 한데 이런 다양한 작업을 통해 그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이루려는 걸까? “무언가를 할 때는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끝나면 그대로 흘려보냅니다. 그리고 다른 일을 시작하면 새롭게 느껴져요. 여러 활동을 한다고 해서 피곤하진 않아요. 오히려 힘을 얻죠.” 이쯤에서 예술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만약 예술이 없다면 전 죽었을지도 몰라요.(웃음) 예술은 제가 안식을 찾고, 몸담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다행히 많은 분이 제가 하는 여러 활동을 예술로 봐주세요. 이쯤 되면 제게 예술은 ‘삶’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술을 가까운 친구처럼 늘 곁에 두고, 자유롭게 그것과 함께하는 김영호를 보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가 떠오른다.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사진 JK  취재 협조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