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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에 다가가는 사람들

LIFESTYLE

경계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들은 질문을 던졌다. 발동하는 호기심을 그냥 넘기지 않았기에 신선한 도전이 가능했다. 문화 예술계 각 분야에 활력을 부여하는 젊은 크리에이티브 리더 4명을 만나 그들이 상상과 자유에 다가가는 법을 들었다.

환상 크리에이터, 영상 디자이너 정재진

최근 공연 예술에서 그 위상이 확연히 높아진 분야를 꼽자면 단연 영상이다. 특히 뮤지컬 무대에서는 부분적 효과를 주는데 그치지 않고 작품 전체의 톤을 바꿀 정도로 영상의 역할이 커졌다. 영상 디자이너 정재진이 처음 이 일을 시작한 8~9년 전에만 해도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기술의 발달로 표현의 폭이 넓어지고 관객의 인식도 높아졌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영상 디자이너가 어떤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가상 공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의 특성 때문이다. “무대에서 조명과 세트의 역할 이상으로 상상을 시각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영상이죠.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에서 가장 유연한 표현력을 지닌 매체라고 생각해요.”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예술공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밟은 그녀가 영상 매체를 선택한 이유도 환상성에 이끌려서다. 학부 시절부터 부전공으로 영화 예술을 공부하고 연기를 위해 한국무용을 배우는 등 관심이 생기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두루 섭렵하며 자신만의 전공을 만들어가는 그녀를 주변에선 이상한 시선으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은 다른 차원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했다. 점차 전체를 디렉팅하는 것에 관심이 생겨 연출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 것. “예술공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예술을 하기 때문에 장르가 한정되어 있지 않아요. 순수예술을 공부한 배경이 있기에 더 폭넓게 다가갈 수 있었고, 테크놀로지의 감성적 측면을 알게 됐어요.” 무대 위에 환상을 펼쳐놓는 영상 작업의 첫 번째 과정은 대본을 분석하고 이미지를 준비하는 것. 이 과정에서 주로 어떻게 영감을 얻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미디어 아티스트는 현대판 샤머니스트라고 생각해요. 물질 세계와 이미지 세계의 중간자 역할을 하면서 양쪽을 넘나들고 시공간을 제어할 수 있으니까요. 전 꿈에서 영감을 얻어요.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남은 꿈을 꿈 다이어리에 기록해두고 작품에 응용하죠.” 비현실의 영역에서 영감을 얻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건 스케치부터 3D 작업까지 지극히 현실적인 수작업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상을 무대에서 잘 구현하는 것이므로 현장 감각으로 무장한 채 건축적인 부분을 계산하고 변수에 대비한다.
영상 디자인의 인프라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시점부터 그녀는 조금씩 장르를 개척해왔고, 커리어를 쌓았다. 2012년 그녀가 영상 디자인을 맡은 뮤지컬 <서편제>는 영상이 무대미술의 전면에 등장하며 공연계에서 영상 사용의 흐름을 바꾼 작품이다. 2013년 뮤지컬 <그날들>도 과감한 영상 사용으로 극적 효과를 이끌어내 호평을 받은 작품. 올 7월 선보이는 뮤지컬 <신과 함께>는 처음으로 바닥 전체에 LED를 사용해 세트를 만든다. “매 작품이 실험”이라는 그녀의 말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영상으로 연출한 모노톤의 세련되고 모던한 지옥이 또 한 번 신선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할 듯하다. 물론 실험은 뮤지컬에 국한되지 않는다. 9월 조수미 콘서트의 영상 연출을 맡았고, 프랑스의 현대 회화 작가 장 피에르 브리고디오와 협업으로 한불 수교 기념 전시도 준비 중이다. 미디어 콘텐츠를 중심에 둔 그녀의 창작 활동이 이제 만개했나 싶다가도 계획된 프로젝트를 들으면 또다시 새로운 싹을 틔우는 것 같다. 도전을 거듭할수록 생동하는 것, 영상 디자이너 정재진의 작업이다.

한국 영화계의 젊은 구원, 영화감독 나영길

나영길은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 단편 부문에서 황금곰상을 받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작품으로 제작한 25분짜리 영화로 세상의 난다 긴다 하는 괴물 감독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최고상 중 하나를 받은 것이다. 그의 영화 <호산나>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치유력을 지닌 소년과 그에게 의지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살풍경한 한 마을에서 인간 군상이 사는 이야기를 통해 대체 ‘구원’이 무어냐고 질문한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호산나’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말로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그의 작품은 종교 영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기독교 신을 찬양하는 온순한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잔인하고 신에 반(反)하는 내용으로 가득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도 관객의 항의가 잇따랐다. 그런데 거기엔 한 가지 흥미로운 얘기가 숨어 있다. 신에 반하는 영화를 만 든 그가 실은 신학대학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의 부모는 현 재 모두 목회자다. “종교와 구원에 대한 담론은 어려서부터 꾸준히 관심이 있던 주제였어요. 전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종교의 그릇된 모습과 부모님의 세계와 싸우며 자랐죠. 그러다 신학대학에 들어가 기도 했고요. 신학대학에 입학한 건 제가 싫어하거나 관심이 있는 그 대상에 대해 충분히 알아야 한다는 이유가 컸어요. 결국 쫓겨나다시피 학교를 나오긴 했지만요.(웃음) 하지만 거길 나오면서도 우린 왜 구원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건 무엇을 위한 구원인가에 대해 꾸준히 생각했어요.”
좋아하는 걸 충분히 좋아하기 위해, 싫어하는 것을 집어내 그것에 정확히 등 돌리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온 그의 탐구정신은 사실 하루아침에 잉태된 건 아닐 것이다. 그는 꽂힌 영화를 발견하면 수백번이고 돌려보는 스타일인데, 이미 중학교 2학년 때 컬트 영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이레이저 헤드>(1977년)를 테이프가 닳고 닳을 때까지 돌려봤고, 고등학교 1학년 땐 어렵사리 카메라를 구해 친구들과 직접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물론 당시 만든 것도 ‘착하지만은 않은’ 종교 영화였다. “부모님이랑은 그간 적지 않게 다퉈왔어요. ‘넌 머리에 뭐가 들었느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전 제 얘기를 꼭 영화로 풀고 싶었어요. 신학대학에서 나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입학 시험을 치를 때도 여기가 아니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임했죠. 그런 일련의 노력 덕분인지 최근엔 부모님도 제 영화를 ‘작품’으로 봐주세요.”
나영길 감독의 작품에 등장하는 폭력성과 반종교적 성향은 사실 그 자체로 삶의 일부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자 사유다. 그의 영화 특유의 헝클어진 내러티브를 만날 때 다소 보기 괴로울 수도 있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소통하는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생채기 속에서 발화하는 진심에 닿게 된다. 그는 올해 안에 장편 한 편을 끝낼 계획이다. 잘 풀리면 올해 안이고, 그게 아니면 수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후속작은 제주도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예술 상호작용을 이끄는 아티스트, 패션 디자이너 하가희

젊은 한국인 디자이너가 뉴욕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런칭했고, 어느덧 세 번째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 하가희는 한국에서 성공해 해외로 진출한 경우도 아니고 해외에서 쭉 살아온 교포도 아니니, 신진 디자이너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다. 더 인상적 인 것은 그녀의 컬렉션이 젊은 한국인 아티스트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탄생했다는 것. 하가희는 첫 번째 브랜드 ‘H+OKO’에 이어 올해 런칭한 브랜드 ‘Hagahi’의 정체성을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 브랜드’로 정의했다. “평소 입을 수 있는 옷이면서 작가들의 작품을 사용해 디테일을 살린 옷을 만들려고 해요. 그들이 오랫동안 고민해 내놓은 작품이니 제 디자인에 적용할 때도 최대한 존중하려고 하죠.” 경계를 넘나드는 협업이 점차 많은 아티스트에게 일반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지만 하가희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기 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했다. 4년간 파인 아트를 전공한 경험은 자연스레 디자인에 녹아들었고, ‘Hagahi’에서 처음 선보인 2015년 S/S 컬렉션은 문성식 작가와 차영석 작가의 드로잉 작품을 차용했다. 뒤이어 F/W 컬렉션에서 함께한 이는 유재연 작가. 작품의 이미지를 재 에 섬세한 자수 스티치로 표현했다. 지금은 장우석 작가와 내년 S/S 컬렉션을 작업하고 있다. 하가희는 자신의 브랜드에 협업 이상으로 좀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제 브랜드의 목표는 10%의 수익금을 참여 작가에게 주는 거예요. 젊은 작가들은 고정 수입이 없다는 걸 잘 아니까 그들이 온전히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요.”
현재 2015년 F/W 컬렉션이 성공적이라 할 만큼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다. 어찌 보면 순수미술에서 패션 디자인으로 방향을 전환해 다져온 길을 이제야 조금씩 달리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은 하고 싶은 일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굳건히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자기 확신 덕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Hagahi’가 추구하는 건 어떤 스타일일까? “아티스트들의 작품으로 옷을 만들면 특별해 보일 수는 있지만 손이 잘 가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매일 입을 수 있지만 타인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과하지 않은 특별함’을 갖춘 옷을 만들려고 합니다.” 앞으로는 음악, 무용, 영상 등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며 자신의 세계를 묵묵히 걸어온 아티스트들과 작업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브랜드가 확고히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건 없다고 봐요. 오히려 많이 경험하고 다른 이들과 교류하면서 얻은 것을 조화롭게 적용할 수 있다면, 그게 진정한 창의성이 아닐까 싶어요.” 하가희는 누군가 자신의 작업에서 영감을 얻어 어디선가 또 다른 예술 활동이 이뤄질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쩌면 컬래버레이션의 최종 목표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다원 예술의 중심축, 페스티벌 예술감독 이승효

연극, 무용, 미술, 영화, 퍼포먼스 등 현대 예술의 전 장르를 아우르며 국내 예술제 중 가장 실험적이라는 평을 듣는 ‘페스티벌 봄’. 이 축제를 이끄는 이승효 예술감독의 이력은 독특하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후 불현듯 일본으로 떠나 도쿄 예술대학 대학원에 진학, 공대생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예술 환경 창조’라는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는가 하면, 그곳에 몇 년 진득이 눌러앉아 각종 축제의 기획을 맡으며 예술계에 점점 빠져들었다.
공학도인 그가 예술계에 발을 들이게 된 이유는 사실 단순했다. 컴퓨터공학과를 나오면 으레 가는 기술자의 길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했기 때문. 그는 2009년부터 일본에 머물며 ‘페스티벌/도쿄’의 예술감독이자 스승인 이치무라 사치오 교수와 함께 ‘페스티벌/도쿄’의 아시아 프로젝트 부문 기획을 맡았다. 또 요코하마의 소극장 ‘이자요이 요시다마치 스튜디오’에서 극 비평 연구가 등으로 일하기도 했다. 짧다면 짧은 경력이지만, 2000년대 들어 아시아 축제의 중심으로 부상한 ‘다원 예술’이라는 새로운 예술 경향의 흐름에선 나름 알짜배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셈이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처음엔 음악을 바탕으로 아시아 문화의 풍경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으로 유학을 결심했어요. 그런데 일이 이렇게 커져버렸죠.(웃음)”
2007년 스프링웨이브 그리고 이듬해 페스티벌 봄이란 이름으로 다시 시작해 6회에 이르기까지 김성희 예술감독이 거의 1인 체제로 이끈 페스티벌 봄을 지난해부터 총감독하고 있는 그는 페스티벌 봄의 가장 큰 특징을 ‘탈경계’와 ‘새로움’으로 설명한다. 말하자면 페스티벌 봄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그게 미술인지, 연극인지, 무용인지 혹은 영화인지 그 장르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없다(실제로 구분할 수도 없다). 일례로 2013년 페스티벌 봄에서 선보인 한 프로그램을 살펴보자. 프랑스의 대표 안무가 제롬 벨(Jerome Bel)이 연출한 <장애 극장>은 음악에 맞춰 추는 댄서의 정교한 움직임이 없는 공연. 하지만 그런데도 훌륭한 무용 작품으로 인정받아 아비뇽 페스티벌, 쿤스텐 페스티벌 데자르 그리고 5년마다 열리는 가장 큰 미술 페스티벌인 카셀 도큐멘타 등에 초대되었다. 다시 말해 페스티벌 봄이 지향하는 작품은 기존의 형식적 틀에 포획되지 않은 ‘현대 예술’인 것. 그리고 그 현대성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그리고 미래의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에서 시작한다.
이승효 예술감독은 현재 페스티벌 봄을 통해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실험적 작품을 국내 관객에게 소개하고 있다. 또 창작자와 협업을 통해 작품을 직접 제작하기도 하며, 한국과 세상을 연결하는 국제 문화 교류의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매년 3월부터 4월까지 페스티벌 봄을 운영하고, 쉬는 동안엔 세계를 여행하며 훌륭한 전시와 공연을 관람하고 그곳의 사람들을 만난다. 지난 5월엔 베를린 연극 페스티벌에 초청돼 독일 연극의 저력을 느끼고 돌아왔고, 이후 런던 테이트 모던으로 넘어가 세계적 안무가 보리스 샤르마츠(Boris Charmatz)에 의해 테이트 모던이 댄스 뮤지엄으로 바뀐 화제의 현장을 목격했다. 장르와 형식에 상관없이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섞이고 협업하는 지속 가능한 축제를 만들기 위해 그는 이렇게 거의 매달 세계 유수의 예술 현장을 찾는다. “요샌 유럽과 일본의 축제 기획자들도 여러 장르를 융합한 새로운 예술 공연을 선보이고 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들이 그렇게 여러 장르를 묶은 공연 장르를 우리와 똑같이 한국어로 ‘다원’이라 부른다는 거죠. 이 얘긴 그간 페스티벌 봄이 그만큼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트렌드를 주도해왔다는 얘기이기도 해요.”
올해 페스티벌 봄은 3월 27일부터 4월 16일까지 ‘상호 참조(crossreference)’를 주제로 총 30개 작품을 선보였다. 노르웨이, 독일, 말레이시아, 불가리아, 영국, 일본, 프랑스 등 12개국에서 50여 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해 관객을 만났다. 과거의 예술 방식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예술적 노력과 성취를 보여주는 예술 축제인 페스티벌 봄. 그간 아시아 예술계에선 ‘현대적’이라는 기준이 서양 예술에 맞춰져 있었지만, 앞으론 페스티벌 봄이 주축이 될지 모른다. 그리고 그 중심엔 이승효가 있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스타일 에디터 김지수(kjs@noblesse.com)  사진 안지섭  헤어 & 메이크업 정샘물 인스피레이션  의상 협찬 이스트 하버 서플러스 by 샌프란시스코 마켓, 타타미제 by 오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