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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만든 특별함

ARTNOW

평범한 재료도 질 바르비에의 손을 거치면 독특하고 유쾌한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머릿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만화적 상상력과 가짜도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탁월한 표현 능력 덕분이리라. 늘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태도는 그의 작품을 더욱 특별하고 사실적으로 보이게 한다.

우리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는 설치 작품.
Still Woman, Resin, Oil Painting, Plastic Plants and Various Elements, 164×265×160cm, 2013
Photo by A.Mole, Courtesy of Galerie GP & N Vallois

Gilles Barbier
질 바르비에

만화적 상상력과 기상천외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작품을 선보여온 질 바르비에. 그의 성장 환경은 다소 특별하다. 어릴 때부터 18세가 되기까지 3개의 공용어와 80여 개의 사투리를 사용하는 남태평양 바누아투 군도에서 성장한 것. 어릴 때부터 만화가 뫼비우스(Moebius), 에디카(Edika) 등의 영향을 받아 예술가를 꿈꾼 그에게 원주민 고유의 생활 방식을 이어가는 열대우림의 나라는 새로운 재료에 대한 호기심을 기르기에 탁월한 장소였다. 자연과 지나온 다른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Still Man’과 20m 높이의 탑 위에서 두 발을 묶은 채 떨어지는 바누아투의 성년식에서 영감을 받은 ’The Falling of the Dice Man’ 등이 그런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탄생한 작품. 1990년대부터 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질 바르비에는 라루스a(Lrousse) 사전을 모사한 작품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그는 드로잉, 조소, 수채화 등 일반적 기법을 사용하지만 여전히 작업실에서 새로운 재료를 발굴하고 실험하는 시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에코 시스템: 질 바르비에>전을 열어 한국 관람객을 처음 만났다. 허공에 매달린 붉은 고깃덩어리, 그 자신을 형상화한 두상에 박힌 바나나, 사람의 내장 같은 신체 기관을 그린 드로잉까지 다소 충격적이고 독특한 비주얼의 작품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에게 재료가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선보일 작품에 대해 물었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작품을 구현하는 데 적합한 재료를 잘 알고 있는 현명한 아티스트였다.

고기 안에 거주하는 것을 상상한 조형물.
Habiter la Viande(Le Village), Resin, Oil, Metal, Three Elements, Variable Dimensions, 2015
Photo by A. Mole, Courtesy of Galerie GP & N Vallois

당신은 작품에 석고, 실리콘, 밀랍, 천연수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다. 그중에서도 조각 작품의 재료 로 천연수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 재료에 관심을 가졌나?
천연수지를 처음 사용한 건 2007~2008년경이다. 그 당시 나는 전시가 끝날 때마다 왁스를 사용해 만든 조각품을 복원하는 데 지쳐 있었다. 그런 번거로움을 없앨 방법을 백방으로 찾은 끝에 천연수지야말로 확실한 해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연수지는 굳는 속도가 느린 것과 빠른 것, 색이 투명한 것과 불투명한 것 등 다양한 종류가 있어서 선택의 폭이 넓고 내구성과 강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또 반질반질한 윤기가 돌아 생명감을 표현하거나 염색을 할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천연수지를 사용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
전혀. 물론 성질이 예민한 재료라 잘 다루려면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나와 있는 사용 설명서만 꼼꼼히 읽는다면 특별히 어려울 것은 없다. 이제껏 내가 원하는 대로 잘 표현돼 만족스럽다.
당신이 교황, 게이샤, 슈퍼맨 등으로 변신한 ‘Pawn’ 시리즈는 실제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감쪽같다. 평범한 재료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오는지 신기하다.
몇 년 전 광대를 만들다 컬러에 관심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얼굴에 색을 칠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궁극적으로 내가 바라는 건 단순히 보통 유럽 남자의 피부를 재현하는 기본적 단계에서 나아가 염색을 통해 검은색, 붉은색 등 다양한 컬러가 어우러진 사람으로 변신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소 기괴해 보이는 파푸아인, 광대, 인디언, 악마까지 개발한 것이고 다음엔 타투를 새긴 얼굴도 생각 중이다.

2015년 프랑스 마르세유의 프리시 라 벨 드 메에서 선보인 전시 전경.
Photo by J.-C. Lett, Courtesy of Galerie GP & N Vallois

Banana Riders, Polyurethane Resin, Epoxy, Methacrylate, Oil Painting, Metal, 80×350×150cm, France, 2009
Photo by G. Grasset, Courtesy of Private Collection

‘Head Clubbing I’은 만화 속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생동감 넘치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연성을 유지할 수있는 재료를 발견했다고 들었다.
점토의 일종인 플라스틸린(Plastiline)인데 70℃에서도 결코 마르거나 녹는 법이 없고 40℃에서 가장 유연한 상태가 된다. 오븐과 냉장고에 번갈아 넣어 온도를 맞추고 원하는 형태를 만들었다.
‘Pawn’ 외에 다소 엉뚱하고 예기치 못한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이 더 있을 것 같은데 하나만 소개해달라.
‘The Rink’라는 작품인데, 아이스링크처럼 보이는 타원형 표면은 반투명 유리 제품인 하얀 메타크릴레이트로 만들었다. 그 표면엔 버터, 바나나, 익은 콩, 녹은 치즈가 어지러이 널려 있다. 스케이터가 아이스스케이트를 벗고 유리판의 물건들을 뭉개며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쇼를 벌이는 장면을 상상하며 만들었다. 이렇게 간단한 법칙만 바꿔도 전혀 생각지 못한 재미있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1 2003년 프랑스 카레 현대 미술관에서 선보인 전시 전경 2In the Soup, A Cheddar Fondue and Three Nightmares, Speech Bubbles(Tenant & Owner), Isolated Segments(The Infinite Assassin) and Bananas, Mixed Media, 180×100×90cm, 2010

‘Inhabiting the Meat’, ‘Still Man’ 등의 작품은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진짜 고기와 식물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내 의도가 적중한 것 같다. 물론 실제 고기나 이끼, 버섯 등을 쓰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 관람객이 내 작품을 볼 때 가짜라는 사실보다는 작품에 집중해 내가 표현하고자 한 것을 함께 느껴주길 바랐다. 고기에 거주하는 느낌은 어떨지 상상 해보고, 각자 자연과 시간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돌아보기를 말이다.
앞으로 작품을 만들 때 사용해보고 싶은 재료가 있나?
지금 준비 중인 프로젝트에서 다문화 전통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재료를 이용할 계획이다. 바누아투에는 람바란 형상(Rambaran Figure)이라는 훌륭한 전통이 있다. 옛 바누아투인들은 소중한 사람이 죽었을 때 두개골만 남겨서 흙과 짚으로 이목구비를 다시 만든 후 전통적 컬러로 색칠을 했다. 다음 전시에선 미키마우스, 슈퍼맨, 헐크 같은 대중적 캐릭터의 람바란 형상을 만어들 선보이려 한다. 지금 작품에 쓸 적당한 두개골을 찾고 있는 중이다.

1Old Lady with Tattoos, Wax, Make up, Oil, Sofa and Accessories, 105×185×85cm, 2002 2 2014년 프랑스 르 플레시스 포르티아에서 직접 구상한 레시피로 만든 작품을 선보인 전시 전경.

적당한 두개골이란 무엇을 의미하나? 실제 사람 머리를 말하는 건가?
물론 그게 가장 사실적이겠지만 사람 두개골은 다루기 어렵고 관습적으로도 사용하기 힘들다. 하지만 미키마우스의 경우 쥐의 두개골을, 도널드 덕과 구피의 경우 실제 오리와 개의 두개골을 사용할 생각이다.
작품을 만들 때 어디에서 주로 영감을 받나?
어린 시절 경험이 지금 내 작품 활동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남태평양 바누아투 군도에서 호주인, 영국인, 베트남인 등 다양한 출신과 배경을 지닌 친구들과 가깝게 지냈다. 어떤 것에도 속박되지 않고 나만의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살찌우고 펼치는 걸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 같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Sand Drawings’, ‘The Falling of the Dice Man’을 만들었다.
앞으로 전시에서 무엇을 선보일지 궁금하다.
‘Artist’s Impression’이라는 신작 드로잉과 조각품 세트를 준비 중이다. 미리 살짝 소개하자면 아티스트가 만든 물건이나 장면등을 재현할 생각인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아직 고민 중이다. 이미지나 사운드 혹은 영상 매체가 될 수도 있고,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만화적 상상력과 기상천외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프랑스 조형 예술가 질 바르비에
Courtesy of PBOX/HOP

질 바르비에
1965년 남태평양 바누아투 군도에서 태어난 질 바르비에는 20세에 프랑스로 건너가 미술학교 마르세유 보자르를 졸업한 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에 라루스 사전을 모사한 작품으로 주목받은 그는 조각, 설치, 회화, 드로잉 등을 통해 특유의 상상력을 작품 속에 펼쳐내고 있다. 지난 4~7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었으며, 내년 3월 프랑스 파리 지피엔엔 발루아 갤러리(Galerie GP & N Vallois)에서 솔로전을 계획 중이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사진 제공 지피엔엔 발루아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