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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가 된 X

MEN

넥타이를 맨 X, 그러나 여전히 힘이 세다.

2년 전, 본 조비 공연에 갔다. 방한 소식을 들었을 때 몸은 반사적으로 티켓을 예매하고 있었다. 그건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에서 중학교를 다닌 남자들에겐 일종의 숙명이었다. 이들의 베스트 앨범 <크로스 로드(Cross Road)> 흑백 포스터는 내 방에 꽤 오래 붙어 있었다. 코드도 꽂지 않은 일렉트로닉 기타로 ‘You Give Love a Bad Name’ 리프를 더듬고 변성기에 목을 혹사시키며 ‘Always’를 부른 록 키드들은 순식간에 표를 매진시켰다. 예상대로 화요일 저녁 잠실종합운동장은 예비군 훈련장처럼 남탕이었다. 존의 짱짱한 목소리와 갈기 머리는 호르몬에 미쳐 있던 남자애들에겐 어떤 이정표였으니까. 그런데 기묘했다. 가죽 재킷을 걸친 장발의 펑크족이나 30인치 통바지의 힙합 청년 대신 머리숱이 성긴 넥타이 부대로 가득했다. 그게 우리 세대의 보편적 모습이었다. 한곳에 모여 서로를 적나라하게 확인한 우린 당황했다. 모두 ‘아니, 얘가 언제 이렇게 늙었지’라는 표정이었다. 어쨌든 로큰롤. 공연이 시작되자 그들(우리)은 재킷을 가방에 걸고 셔츠 소매를 걷은 채 열심히 놀았다. 그러곤 대망의 앙코르곡 ‘Always’가 나올 땐 군가 부르듯 도열해 고래고래 떼창을 했다. 즐거운 기억이다. ‘It’s My Life’부터 ‘Keep the Faith’까지 히트곡으로 꾸린 세트리스트는 반가웠고 본 조비도 애초 계획보다 공연을 1시간 연장할 만큼 열정적이었다. 그런데 왠지 씁쓸했다. 정신을 차린 뒤 썩은 도끼 자루를 발견한 것 같은 안타까움이랄까. 존은 몇 곡을 키를 낮춰 불렀다. 음은 종종 먼 곳으로 이탈했다. 티코 토러스의 드럼도 전처럼 화려하거나 심벌을 깨버릴 듯 강렬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도 어느덧 마흔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거기엔 브레이크가 없었다. 기성세대가 된 것이다. 우린 더 이상 압구정 안전지대나 이대 앞 보세 숍에서 옷을 사지 않는다. 백화점 신사복 코너나 테일러 숍에 간다. 이제는 사라진 타워 레코드에서 보물 같은 앨범을 찾는 대신 음원 사이트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한다. 독특한 것보단 편리한 것을 찾는다. 영원할 것 같은 젊음의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는 느낌이었다.

X의 탄생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났다. 베이비부머 주니어의 끝자락, 국민학교를 졸업한 마지막 세대. 이 밖에 우린 여러 애칭을 갖고 살았다. 최초의 명칭은 X세대였다(윗세대에게 부여된 이름이지만 1990년대 문화를 향유한 우리에겐 낯설지 않다). 현진영이 마대자루 같은 펑퍼짐한 티셔츠를 입고 간질 환자처럼 뛰어다닐 때(실제 이런 평가가 있었다), 서태지가 2명의 아이들과 빠른 말로 아는 체를 할 때 거기에 열광한 우리의 이름이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자기중심적 가치관을 형성한 럭비공 같은 세대’라는 고상한 각주가 붙었지만 X는 기성세대가 우리에게 느낀 난감함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었다. 알 길이 없고 표현할 언어가 없어 X라 부른 당혹감. 요새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할까? 근래 동기들과 만나 나누는 주된 주제는 후배다. 일명 ‘요새 것들’이 우리의 새로운 스트레스로 떠올랐다. “요새 애들은 개념 장착이 안 됐어. 근태부터 우리 때와 달라. 부장보다 먼저 출근하는 걸 볼 수가 없어. 회식에선 또 어떻고. 온갖 죽을 상을 하고 앉아 있어. 앞자리 선배 잔이 비어도 본체만체한다니까.” 대기업 마케팅팀에서 근무하는 8년 차 A과장은 부서 신입 사원의 행실이 못마땅하다. 인사, 업무 처리, 조직 문화 등을 이유로 열거하지만 사안마다 공통점은 ‘나 때와는 달라’다. 딱딱한 조직에서만 이런 세대 차이(?)가 발생하는 건 아니다. 패션 브랜드에서 근무 중인 40대 초반 디자이너 B는 후배들에게 서운하다고 한다. 그래서 거리를 둔다. “꼰대 짓 하려는 건 아니지만 아쉬울 때가 많죠. 딱 자기 일만 마치고 퇴근한다거나 야근 중 말없이 식사하고 오는 것 같은 사소한 일들이죠. 치졸해 보일까 별말 안 해요. 가깝게 지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꼰대의 지질한 투정처럼 들리겠지만 우린 비슷한 고민을 하나쯤 안고 살아간다. 전 세대를 아울러 가장 파격적이었던 X세대가 언제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그들의 말처럼 물질적·문화적으로 풍요로웠다. 건국 이후 최초로 평균 신장 170cm를 돌파했고 MTV를 보며 자랐다. PC 통신으로 검열되지 않은 날것의 문화를 접했고 밀레니엄을 겪었다. 그리고 장벽이 무너지는 걸 지켜봤다. 우린 먹고사는 것 이상을 원했다. 기존의 가치와 관습을 거부했다. 때론 싸웠다. 혁명의 아이들은 자라 사회로 편입됐다. 그간 누군가는 결혼했고 자동차를 샀으며 아파트를 구매했다. 어딘가 편입되지 않았어도 사회에 나와 이리저리 치이며 적당한 타협을 겪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몇 번의 합리화도 거쳤으리라. 인정하건 안 하건 우리는 변했다. 세월과 삶에, 먹고사는 고단함에 담금질한 상태인 것이다. 이 과정은 우리 앞 세대와 다르고, 또 아래 세대와도 다르다. 우리가 겪은 것만큼 그들의 삶을 유심히 보지 못한다. 조지 오웰의 말처럼 ‘모든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똑똑하고 다음 세대보다 현명하다고 생각한다’는 세대 간 오류는 여기서 발생한다. 앞뒤로 끼인 세대가 되어버린 X는 다른 세대와 관습과 태도, 정치적 사고는 물론 문화까지 교류가 쉽지 않다. 가끔 서로의 영역을 밟지만 오래 머무르지 않는 여행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요새 노래는 금방 휘발돼. 들을 땐 좋은데 다시 손이 가지 않아.” 음악 취향이 비슷한 포토그래퍼 C는 여전히 1990년대 음악을 듣는다. 반나절 만에 차트가 몇 번이고 뒤집히는 요새 음악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그의 스튜디오를 찾으면 R.A.T.M부터 스매싱펌프킨스, 메탈리카, 비스티보이스 같은 1990년대 팝부터 이소라와 김현철, 015B나 토이, 윤상의 곡이 나온다. 나 역시 그때 감성이 좋다. 그래서 윤종신의 ‘좋니’가 반가웠다. 몇 주나 차트 1위를 지키고 있는 것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쉰 살이 된 김건모의 여전한 장난이 고마웠다. 윤상과 유희열, 이적이 여행길에서 나눈 대화는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대개 주류 문화는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이끈다. 관습에 매이지 않고 겁 없는 아이들이 세상을 바꾼다. 그렇다면 X는 이제 주류 문화의 소비자에서 비껴난 것일까? 대중문화 평론가 차우진은 “X는 여전히 한국 대중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주역”이라고 말한다. “197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그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세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동시에 경험했고 문화적으로 ‘오리지널리티’를 처음 경험했다. 카피가 아닌 로컬 문화를 탄생시키고 육성한 주인공이다. 그래서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문화 권력은 이러한 경험에서 나온다.”

문화 포식자 X
X는 여전히 힘이 세다. 문화 포식자로 1990년대부터 장기 집권 중이다. 그 이유는 뭘까? 가장 큰 동력은 많은 머릿수다. 2017년 8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인구(5175만3820명) 중 40대는 16.8%(871만5262명)로 전체 인구 중 1위, 30대는 14.4%(744만3134명)로 3위다. 이는 10~20대에 비해 400만이나 많은 숫자다. 무엇보다 30~40대는 소비력이 막강하다. 경제 활동의 주체로 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우리는 현재와 나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 우린 학창 시절부터 나이키와 아디다스, 리바이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닉스 등 브랜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내가 먹고, 입고, 듣고, 보는 모든 것이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란 걸 일찌감치 깨달은 세대다. 마켓은 수요에 의해 형성된다. 소비 여력과 의사가 있는 다수를 중심으로 시장이 움직이는 건 당연하다. 몇 년 전부터 대한민국 문화의 주요 키워드는 ’90s다. 2012년부터 이어진 <응답하라> 시리즈로 폭발한 1990년대 추억 더듬기는 TV와 영화, 음악, 패션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TV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이나 <히든싱어>, <슈가맨을 찾아서>, <복면가왕>, <라디오스타>는 모두 잊힌 1990년대 스타를 재소환해 추억을 이야기하는 포맷이다. 이 과정을 통해 대박을 터뜨린 사례도 있다. 1990년대 대표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는 <무한도전>과 <라디오스타>를 통해 대중 앞에 다시 섰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 여세를 몰아 16년 만에 재결합했다. 이후 개최한 콘서트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됐고, 20년 전 노래가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기현상을 낳기도 했다. 또한 문화를 생산하는 기획자들이 X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학번인 그들은 우리와 같은 문화를 향유했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와 <응답하라>의 신원호 PD는 모두 94학번이다. 1990년대 키드들이 21세기 문화 생산의 중심에 선 것이다. 마지막으로 21세기는 여전히 1990년대의 그늘에 있다. 문화 황금기인 1990년대 르네상스를 밀어낼 만큼 임팩트가 강하지 않다. 1990년대는 대한민국 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 시대를 열었고, 청춘 스타가 대거 탄생했다. 음반 시장도 아티스트와 아이돌, 댄스와 트로트, 힙합, 포크가 공존하는 전성기였다. 파격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배양기였던 셈이다. 무엇보다 21세기에는 서태지로 대변되는 문화 아이콘이 부재한다. 마치 스냅챗처럼 금세 사라지고 잊힌다. 이처럼 한국 문화의 중심엔 여전히 X가 있다. 그러니 눈치 보지 말고 현재를 마음껏 즐기자. 꼰대라 불릴지언정 우리가 공감하고 향유할 문화는 앞으로도 쏟아질 것이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일러스트 최신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