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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의 세계

ARTNOW

많은 상징이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여기 소개하는 둘은 문자의 상징성을 이용해 작업한다. 우국원 작가는 아이의 낙서 같은 그림에 영문 필기체를 더해 상징적 작품을 만들고, 김경선 교수는 좀 더 효과적인 의미 전달을 위해 타이포그래피로 문자와 상징의 관계를 고찰한다. 추상적인 사물이나 개념을 구체적 형상으로 나타내는 것을 상징이라 할 때, 이 둘의 대화는 굉장히 상징적이기도 하고 전혀 상징적이지 않기도 하다.

김경선 교수와 우국원 작가

회화와 디자인에서 문자가 갖는 상징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김경선
그래픽 디자이너 겸 교수. 제일기획과 홍디자인에서 디자이너로 일했고,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에서 학생들에게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치고 있다. 오는 11월 열리는 ‘타이포잔치 2015’의 총감독을 맡고 있다.

우국원
한국에서 회화를 일본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감각적인 경험이나 상상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그려내는 것이 특징으로, 그간 살롱드에이치(2012년), 이유진갤러리(2014년), 갤러리기체(2014년)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김경선, Hangul, Blossom, 2006 한글 자음 ‘ㄴ’에 대한 인체조형석 해석이 인상적이다.

김경선, The House of Parliament, London, 2000 런던의 빅벤 타워를 타이포그래피로 해석했다.

김경선 최근 연 개인전은 어땠어요?
우국원 (제 작품을) 유독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번에도 몇 점 사가셨어요. 판매는 생각도 안 하고 그린 그림이라 대부분 사이즈도 큰데 말이죠.
김경선 요새 경기도 안 좋은데 젊은 작가가 팬이라니, 대단한 것 같네요.
우국원 그렇죠. 심지어 몇몇 분은 작품이 있는 그 자리에서 꼭 피드백도 해주세요. 작가에게 피드백은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렇게 ‘응답’을 들어야 뭔가 숨 쉬는 맛도 나고요.
김경선 이번에 소개한 작품들에도 영문 필기체가 들어갔죠?
우국원 그랬죠.
김경선 언젠가 작품에 글자를 안 넣으면 허전하다고 했잖아요. 글자가 안 들어간 작품은 한 점도 없나요?
우국원 초기의 몇 점은 없는 것도 있어요. 근데 그게 계산을 해서 어떤 건 넣고 어떤 건 빼고 그런 건 아니에요. 어쨌든 사각 프레임 안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여기고, 뭔가 밸런스를 생각하면 넣는 게 맞지 않나 싶었던 것 같아요.
김경선 밸런스요? 그건 사실 좀 전형적인 패턴이잖아요. 사각 캔버스에 유화, 이미지, 글자. 마치 만화나 포스터 같은 응용미술에 들어가는 조형 요소로서요. 근데 그림에 글씨 넣는 것. 그거 혹시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니에요? 아버지가 문인화가시잖아요.
우국원 영향이 아주 없다곤 할 수 없죠. 하지만 큰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소소한 영향을 받아 지금은 여러 과정 중 하나로 천천히 발전해나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전 사실 어릴 때 아버지 같은 예술가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땐 왠지 모르게 작가가 ‘구린’ 직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대신 ‘디자이너’는 하고 싶었죠. 그래서 일본으로 디자인 유학도 떠난 거고요.
김경선 맞아요. 근데 한국에 돌아와선 왜 디자인이 아닌 그림을 그렸어요? 거기서 디자인을 해보니 ‘아, 난 디자인은 안 되겠구나!’라고 느꼈어요?(웃음)
우국원 그랬는지도 모르죠. 결국 지금은 그림을 그리니까요.
김경선 그런데 우 작가 그림에 들어간 글자는 왜 늘 영문이에요?
우국원 어려서부터 외국을 동경했고, 외국 제품을 쓰며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런 정서가 그림에 나타나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왜 영어로만 글씨를 쓰게 된 건지 잘 모르겠어요. 물론 히라가나나 한글을 그림에 넣으려 한 적도 있긴 해요. 근데 별로 좋아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게 참 신기해요. 왜 한글에선 영어 같은 어떤 ‘느낌적인 느낌’이 안 나오는지. 근데 이런 질문은 교수님도 학생들에게 자주 받죠?
김경선 많이 받죠. 그럼 난 이렇게 답해요. 한글이 역사가 짧아 그렇다고. 로만 알파벳이 3000년, 한자가 4000년, 히라가나가 1200년 됐는데, 한글은 고작 600년밖에 안 됐으니 아직 내공과 상징성이 부족해 그렇다고. 아무래도 영어가 한글보다 오래 쓰였으니 그만큼 어디에 붙여도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거겠죠.
우국원 그런데 교수님은 요새도 ‘간판’ 보러 다니세요? 예전에 한창 디자인 공부하실 땐 여기저기 간판만 좇아 다녔잖아요. 런던에 유학 간 것도 타이포그래피 때문이라고 했죠?
김경선 간판은 지금도 많이 봐요. 올해는 특히 ‘타이포잔치 2015’의 총감독까지 맡아 더 유심히 보고 있고요. 난 어려서부터 도시 곳곳에 있는 간판과 거기에 쓰인 글자에 관심이 많았어요. 간판은 어느 도시에서건 거리의 언어고, 그곳의 욕망과 관련이 깊죠.
우국원 욕망요? 간판에 쓰인 글자에서 욕망이 분출돼요?
김경선 그 말도 틀리진 않죠.
우국원 서울의 간판에서도요?
김경선 서울은 다른 도시보다 유독 심해요. 밤에 대형 상가 건물을 보면 마치 ‘여드름’ 같잖아요. 피부 속에서 세포가 자라면서 열이 밖으로 분출돼 생기는 여드름처럼 모두 크고 화려한 간판을 달고 손님을 끌죠. 다른 가게보다 한 명이라도 더 손님을 받아야 하니까요. 곳곳에 나도는 지라시, 밤에만 튀어나오는 입간판이 모두 그런 욕망의 표현인 셈이죠.
우국원 간판에서 그런 걸 읽어내시다니, 디자이너의 눈은 역시 다른데요?
김경선 가만히 관찰해보면 누구나 읽어낼 수 있어요. 한 마리 가격에 두 마리를 준다고 광고하는 치킨집, 그 위층의 보습학원, 또 그 위층의 불법 안마방, 맨 꼭대기 층의 교회. 한 건물 안에서 놀고, 마시고, 공부하고, 죄짓고, 회개하는 게 가능한 진귀한 광경이 펼쳐지죠.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우리 동네’ 얘길 하는 거예요. 올해 타이포잔치 2015에선 이런 도시와 문자, 문화, 욕망에 대해 얘기해보려 해요.
우국원 도시의 간판을 타이포그래피로 푼다는 게 흥미롭네요.
김경선 간판에선 타이포그래피가 전부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간판도 ‘서체’ 중심이기 때문에 그 크기와 색, 재료를 고려해 공간을 짜죠. 이때 서체는 간판에서 기본적 기능만 수행해요. 하지만 타이포그래피(디자인한 서체)를 활용한 간판은 일반 간판과 달리 미적 요소가 있어요. 일례로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의 재료인 쌀은 생활필수품인데 품질의 폭은 상당히 넓잖아요. 정부미나 급식을 먹어도 배는 부르죠. 하지만 맛은 그냥 그래요. 근데 좋은 쌀로 밥을 지으면 맛이 좋아지죠. 다시 말해 타이포그래피는 거리(간판) 문화를 형성하는 ‘씨앗’ 같은 존재예요. 공공질서를 지키는 것과 같은 기본적 규율이죠.

우국원, Conversation got Boring, Oil on canvas, 160×160cm, 2013

우국원, Emotional Trip, Oil on canvas, 162.2×130.3cm, 2014

우국원 글자로 그런 담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게 참 흥미로워요. 요즘 대학에선 전공을 막론하고 타이포그래피로 디자인의 기초를 배운다면서요?
김경선 점점 그렇게 되는 추세예요. 타이포그래피는 건물을 지을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주춧돌 역할을 하니까요. 가령 티셔츠에 알파벳이 쓰여 있으면 그 자체로 상징성이 느껴지잖아요. 하지만 한글은 그런 면에선 아직 힘이 부족하죠. 그런 상징성을 만들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거예요.
우국원 요 몇 년 타이포그래피와 관련한 행사가 많이 열리더라고요. 거기에 참여하는 젊은 디자이너도 많고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지금 젊은 작가들은 어떤 것 같아요?
김경선 요새 젊은 친구들은 뭐든 잘해요. 서체 디자인을 음악이나 패션 등 다른 분야와 엮어 협업하는 친구들도 있고, 결과물도 훌륭하죠. 또 한글 타이포그래피도 젊은 작가들을 통해 점점 디자인 형태를 찾아가고 있어요. 서체 디자인을 하며 사회인으로서 생활하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닌데 말이에요.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으나 지켜볼 만하죠.
우국원 교수님은 타이포그래피로 글자를 다루면서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여기세요?
김경선 조화로움이죠. 거기에 그걸 넣었을 때 잘 어울리느냐, 아니냐. 근데 그건 작가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특히 우 작가도 매번 그림에 어울리는 영문 필기체를 넣잖아요. 그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든, 그냥 회화적 공간의 장식적 드로잉이든 말이에요. 개인적으로 우 작가 작품의 글자는 디자인적 요소가 강한 것 같더라고요. 쓰인 글자의 뜻을 몰라도 그림의 상황은 이해할 수 있는 게 많으니까.
우국원 제 그림에서 글자의 상징성은 다양한 역할을 해요. 복잡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알파벳 몇십 개의 디자인성만으로 표현하게 해주니까요.
또 우주적이든 일반적이든 개인적이든 간에 이런 상징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니 좀 더 다양한 함축성을 지니게 되기도 하고요. 물론 그만큼 피드백도 다양하죠. 그런데 이 얘긴 이 이상 하면 지루해지고 끝도 잘 안 나요.
김경선 작가가 자신의 그림을 그렇게 두루뭉실하게 말하니 참 재미있네요. 근데 우 작가는 혹시 지금 같은 그림을 그리는 데 영향을 준 작가가 있어요?
우국원 미국의 사이 톰블리(Cy Twombly)를 좋아해요. 작품이 추상적이고 색도 제 취향대로 뭉개져 있어 느낌이 좋더라고요. 그리고 이분 작품 중엔 저처럼 텍스트가 디자인으로 존재하는 것도 있어요.
김경선 아무래도 좋아하는 작가가 있으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죠?
우국원 아무래도요. 사실 그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어려서부터 아버지께 ‘예술은 세상에 없는 걸 만들어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란 얘길 들으며 자란 탓에 더 그렇죠. 저도 모르게 제 작품이 누구의 것과 비슷하게 나와 누가 표절이라 하면 ‘오마주라고 해야 하나?’ 하고 즉각 고민하는 거죠.
김경선 별걱정을 다 하네요.(웃음) 크리에이터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이잖아요. 사실 지난주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한 초등학생의 어머니를 만났는데, 내가 다음 주에 이런저런 일로 우 작가를 만난다고 하니까 그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우 작가의 작품을 검색해보곤 “이야, 방향을 참 잘 잡았네” 하는 거예요. 그분은 미술 전공자도 아니고 그냥 ‘애 엄마’였거든요. 물론 누구나 그런 말을 할 순 있죠. 미술평론가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아주머니가 보기에도 우 작가의 작품엔 특유의 호소력과 소통의 힘이 있다는 말이죠. 솔직히 말해 그 소통이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요.(웃음)
우국원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김경선 150호짜리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려요?
우국원 3개월 걸릴 때도 있고, 5일 걸릴 때도 있어요. 작품이 유화라 말리는 시간이 좀 필요해요. 근데 5일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시간이긴 하죠.
김경선 이걸 지금 왜 물어보는지 알죠? 우 작가 별명이 ‘젖은 그림’이라면서요?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그림이 팔린다고요. 그런데 그렇게 그림이 느리게 나와 팬들이 좋아하겠어요?
우국원 앞으로 부지런히 그려야죠. 전 앞으로 형태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라면 장르 구분 없이 해보려 해요.
김경선 나도 팬으로서 응원할게요.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이영학(인물) 장소 협조 서울대학교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