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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에서 마주한 로로피아나

FASHION

로로피아나가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여섯 세대에 걸쳐 이어온 하우스의 놀라운 기록이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첫 번째 전시에 오롯이 담겼다.

로로피아나 창립 100주년을 기념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사실, 로로피아나의 우수성에 대한 열정(If You Know, You Know. Loro Piana’s Quest for Excellence)’ 전시 전경.

창립 100주년을 맞은 로로피아나가 행사를 앞두고 보낸 특별한 초대장은 ‘섬유의 장인’이라는 제목의 아트 북이었다. 작가 니콜라스 폴크스가 집필한 책에는 과거 빈티지 광고캠페인부터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컬렉션에 이르기까지 메종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지난 3월 20일, 이 특별한 초대장을 받은 이들이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푸둥 미술관에 모였다. 로로피아나의 첫 번째 전시가 열리는 장소이자 로로피아나 하우스 창립 10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하는 자리였다. 로로피아나는 6대째 이어온 메종의 역사와 유산, 귀중한 원재료부터 완성품에 이르기까지 장인정신에 경의를 표하고자 했다. 동시에 캐시미어로 절정에 이른 소재의 우수성을 향한 여정이 시작된 중국과의 깊은 유대 관계를 기리기 위해 패션 하우스로는 처음으로 상하이 푸둥 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푸둥 미술관 입구에 들어선 순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단순한 전시 관람이 아니라 100여 년의 역사가 응축된 시간 여행에 초대받았다는 것을. 1000m²가 넘는 공간, 15개 방으로 나뉜 거대한 전시장에서 하우스의 DNA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로로피아나의 세계가 펼쳐졌다. 전시 타이틀 ‘If You Know, You Know. Loro Piana’s Quest for Excellence(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아는 사실, 로로피아나의 우수성에 대한 열정)’은 쾌활함과 진지함의 균형을 담아내며, 메종의 서사와 최고급 소재를 공급하는 지역에 대한 영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이번 전시는 실제적 접근 방식을 선호하는 전시 기획자 주디스 클라크가 큐레이팅을 맡았다. 그녀는 1924년 회사 설립 이전부터 피에몬테의 발세시아에서 물려받은 로로피아나 가문의 유산에 깊이 뿌리를 둔 긴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피에몬테 지역에 위치한 작은 도시 바랄로에서 방대한 아카이브를 탐구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1926년 아카이브에 보존된 최초의 패브릭부터 오래된 사진, 초기 문서, 샘플 북, 직조 매뉴얼, 관리 기록 등을 바탕으로 섬유 혁신과 장인정신, 디테일에 대한 집중력을 통해 선구적인 한 가족의 이야기를 연대순으로 기록하고, 이탈리아의 작은 섬유 회사에서 오늘날 메종으로 성장한 로로피아나의 발전사를 추적했다. 그녀가 큐레이팅한 전시는 메종과 관람객 사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최고 퀄리티를 추구하는 엄격한 노력과 함께 섬유의 미묘한 부드러움을 통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정서적 연결을 제공했다. 몰입감 넘치는 전시 여정은 감각적이고 촉각적인 렌즈를 통해 풍경으로 구체화되었다. 세르지오와 피에르 루이지 로로피아나 형제의 컬렉션 및 피나코테카 디 바랄로의 작품을 포함한 예술 작품, 가보로 전해 내려오는 섬유와 패브릭, 그리고 소재와 완성품, 지역과 섬유 간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특별 제작한 33개의 수공예 작품 등 메종의 장인정신을 새로운 수준의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역량으로 끌어올렸다.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푸동 미술관.

로로피아나 창립 100주년을 기념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사실, 로로피아나의 우수성에 대한 열정(If You Know, You Know. Loro Piana’s Quest for Excellence)’ 전시 전경.

로로피아나 창립 100주년을 기념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사실, 로로피아나의 우수성에 대한 열정(If You Know, You Know. Loro Piana’s Quest for Excellence)’ 전시 전경.

로로피아나 창립 100주년을 기념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사실, 로로피아나의 우수성에 대한 열정(If You Know, You Know. Loro Piana’s Quest for Excellence)’ 전시 전경.

로로피아나 창립 100주년을 기념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사실, 로로피아나의 우수성에 대한 열정(If You Know, You Know. Loro Piana’s Quest for Excellence)’ 전시 전경.

The Story of Loro Piana
공예와 문화 교류에 대한 메종의 헌신을 강조하는 주요 예술 작품을 통해 본격적인 전시의 서막을 열었다. 이탈리아 출신 예술가 루초 폰타나, 알베르토 부리, 엔리코 카스텔라니, 에밀리오 베도바의 걸작과 함께 세르지오와 피에르 루이지 로로피아나 형제가 수집한 20세기 중반의 아트 컬렉션을 통해 로로피아나 가문의 예술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미술계와의 깊은 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장 바닥은 이탈리아 전통의 산피에트리니 돌로 장식해 수많은 예술 작품을 보유한 피에몬테 지역의 피나코테카 디 바랄로 미술관의 자갈길 안뜰을 연상시켰다. 아트 섹션을 지나자 바랄로에 위치한 메종의 역사 기록 보관소에서 발췌한 아카이브를 통해 로로피아나 가문의 사업 기원을 조명하는 공간이 펼쳐졌다. 은은한 조명의 캐비닛 속에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사진과 문서를 정갈하게 전시해 하이엔드 패션 산업의 핵심에 자리 잡은 메종의 뿌리와 여정을 드러냈다. 이어지는 공간은 메종의 아이콘을 조명하는 ‘Into Fashion’ 섹션이었다. 트래블러(Traveller), 로드스터(Roadster), 스파냐(Spagna), 홀시(Horsey), 아이서(Icer), 윈터 보야저(Winter Voyager), 디펜더 재킷(Defender Jackets), 오픈워크 슈즈(Open Walk shoes), 안드레 셔츠(Andre´ Shirt) 등 하우스의 대표적 컬렉션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또 흰색 타일로 꾸민 연구실 공간에서는 거대한 현미경 아래 놓인 베이비 캐시미어 더미를 통해 로로피아나 특유의 섬세하고 정교한 품질관리 과정을 체험할 수 있었다. 현미경으로 촬영한 섬유 이미지는 무려 3만5000배 확대되어 4개의 원형 스크린에 투사되었고, 캐비닛 유리에는 현미경 눈금을 정교하게 새겨 발세시아 공방과 베이징 연구소를 그대로 재현했다.

총 3개의 갤러리에 15개의 전시실로 구성된 로로피아나 창립 100주년 기념 전시 전경.

총 3개의 갤러리에 15개의 전시실로 구성된 로로피아나 창립 100주년 기념 전시 전경.

총 3개의 갤러리에 15개의 전시실로 구성된 로로피아나 창립 100주년 기념 전시 전경.

‘캐시미어 오브 더 이어 어워드’ 시상식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은 내몽골 출신 장인들.

Cashfur Corridor & The Thistle
두 번째 섹션에서는 메종 고유의 섬유가 생산되는 지역을 다양한 규모와 높이로 확대하고 축소해 구현한 공간이 펼쳐졌다. 텍스타일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는 중국·안데스·일본·뉴질랜드·프랑스 미니어처가 배치되었고, 각 나라는 캐시미어·비쿠냐·데님·메리노울·리넨 등 희귀한 섬유와 패브릭을 상징했다. 섬유를 얻기 위해 빗질하는 동물이 서식하는 지역의 고도와 습도 정보는 작은 명판에 세심하게 기록되었고, 부드러운 촉감을 극대화한 벽과 푹신한 카펫으로 마감한 바닥은 관람객이 직접 소재를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전시 공간을 가로지르는 긴 복도에는 아티스트 실라 힉스가 리넨 소재로 제작한 설치 작품을 비치했고, 이를 바라보는 마네킹은 가공되지 않은 리넨으로 만든 볼륨감 있는 니트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또 다른 섹션에서는 아드리아나 뫼니에의 예술 작품 앞에 선 마네킹 8개가 캐시퍼와 캐시미어, 블랭킷을 두른 룩을 입고 예술과 섬유가 어우러진 장면을 연출했다. 부드러움이라는 개념은 코쿠닝 룸에서 정점을 찍었다. 한쪽 벽은 캐시미어, 다른 한쪽은 재킷 안감 소재로 이루어져 관람객이 손으로 직접 감촉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한 것. 이어지는 공간은 메종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도구이자 상징으로 자리 잡은 엉겅퀴에 헌정하는 전시로 구성되었다. 공간 벽면은 엉겅퀴꽃의 스티칭 패턴을 살린 매트한 퀼팅 패딩 실크와 자카드 직물로 덮여 있고, 이탈리아에서 공수한 오리지널 엉겅퀴 기계는 전시장 한가운데에 설치되어 섬유 전통을 상징하는 시각적 요소가 되었다. 런던 기반의 조각가 짐 패트릭은 캐비닛을 장식하는 엉겅퀴 모티브의 타일과 벽돌을 제작했고, 발세시아 지역의 풍부한 소재를 형상화한 돔 형태 드레스를 선보였다. 웅장한 후프 스커트에서도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수가 놓인 코튼과 실크 시네로 제작한 룩은 섬세한 엉겅퀴 모티브로 장식되었으며, 장인 여덟 명이 1000시간에 걸쳐 유리 비즈 12만4000개와 스팽글 5만9000개로 수작업한 결과물이었다.

오프닝 행사에 참석한 배우 이민호, 중국 배우 나란(Naran)과 가오예(Gao Ye).

오프닝 행사에 참석한 배우 이민호, 중국 배우 나란(Naran)과 가오예(Gao Ye).

오프닝 행사에 참석한 배우 이민호, 중국 배우 나란(Naran)과 가오예(Gao Ye).

Restaging Valsesia
전시의 마지막은 관람객을 발세시아 지역으로 초대하는 몰입형 시네마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이 공간에서는 메종의 오랜 장인정신과 자연에 대한 헌신이 예술적 방식으로 소개됐다. 영상을 투사하는 스크린은 로로피아나의 텍스타일로 제작했으며, 중앙에만 씨실이 엮여 있고 상하단에는 날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메종의 텍스타일 구조를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스크린 앞에 선 마네킹은 실크 새틴 앙상블을 착용했는데, 이 룩은 무려 1850시간이 소요된 섬세한 뤼네빌 자수 장식이 특징이다. 유리 비즈, 스팽글, 텍스타일 요소로 완성된 자수는 발세시아의 만개한 풍경을 표현했다. 전시의 피날레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치니 보에리가 가구 브랜드 알플렉스를 위해 디자인한 대형 캐시미어 소파가 장식했다. 이 소파는 메종의 인테리어 전통과 캐시미어 활용의 정수를 보여주는 동시에 중국 작가 추즈제의 6m 길이에 달하는 ‘마파 문디’ 시리즈를 관람객이 직접 앉아볼 수 있도록 배치했다. 사운드 스케이프 형식으로 제작한 전시 음악은 예술감독 궈원징을 중심으로 작곡가 류하오, 대나무 플루티스트 탕쥔차오, 피아니스트 팀 장이 협업해 완성했다. 텍스타일 제작과 전시의 리듬, 그리고 방목되는 동물들이 걸어가는 구불구불한 길을 떠올리게 하는 이 음악은 두 문화의 교류를 청각적으로 체험하게 했다.

이번 전시의 개막을 기념해 상하이 푸둥 미술관에서 열린 오프닝 행사에는 배우 이민호를 비롯해 제러미 스트롱, 영화감독 천커신 등 세계 각국의 유명인사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같은 자리에서 ‘캐시미어 오브 더 이어 어워드(Cashmere of the Year Award)’ 시상식이 함께 열려, 세계에서 가장 섬세한 캐시미어를 생산한 내몽골 출신의 목동 부부들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탁월한 소재, 혁신적 장인정신, 그리고 창의적 작업을 브랜드의 핵심 가치로 삼아온 로로피아나의 철학을 오감으로 경험하고 메종의 유산을 고요히 마주할 수 있는 전시는 5월 5일까지 이어진다.

 

에디터 한지혜(hjh@noblesse.com)
사진 로로피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