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탄생한 산마르코 아트 센터
세계적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레노베이션한 16세기의 역사적 건물에 들어선 놀라운 미술관, 산마르코 아트 센터에 대하여.

위쪽 베니스의 상징적 장소인 산마르코 광장의 유서 깊은 건물 프로쿠라티에 2층에 자리한 SMAC. Courtesy of SMAC San Marco Art Centre, Photo by Mike Merkenschlager
아래쪽 SMAC의 오프닝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정영선 작가 전시. Courtesy of MMCA, Photo by Kim Yongkwan
13세기 마르코 폴로 시대에 아시아와 유럽의 교차로 역할을 한 베니스는 수 세기 동안 쌓아온 예술 유산과 경이로운 건축물을 품은, 문화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도시다. 다양한 예술 형식과 시각 문화를 도시 깊숙이 받아들여 유리·직물·예술품 등의 작업으로 재해석하며 오랜 시간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 ‘베니스 비엔날레’로 이어져 현대미술, 건축, 무용, 영화 등을 아우르는 글로벌 예술 수도로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지난 5월에 문을 연 산마르코 아트 센터(SMAC) 공동 설립자 안나 뷔르소, 데이비드 그라마지오, 다비드 흐란코빅은 문화 예술적으로 특별한 도시 베니스에 뭔가 ‘빠진 것’이 있다고 느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시급한 질문과 실험을 적극적으로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그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뮤지엄 전시를 해외 순회하는 컨설팅 회사 더 뮤지엄 박스와 베니스 전시 컨설팅 회사 DH 오피스의 대표들이 힘을 모았다. 그 결과물이 산마르코 광장에 새롭게 오픈한 SMAC다. 연구, 대화, 실험이라는 세 가지 프로그램 축을 통해 예술가, 건축가, 사상가, 대중이 모여 관습에 도전하고 기존 범주에 쉽게 들어맞지 않는 아이디어를 탐구할 수 있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설립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그라마지오는 베니스가 비엔날레 기간 외에도 동시대적 전시와 실험, 도시의 지역적 상황 등에 대해 지속적인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창립자 다비드 흐란코빅은 “우리는 예상치 못한 것을 조명하고 관습에 도전하며 엄격한 질문을 제기하는 콘텐츠에 중점을 둔다. SMAC는 예술 기관과 전시 제작의 전통적 모델을 시험하는 자발적이고 실험적인 조직이며, 협업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시각예술은 물론 건축, 패션, 기술, 영화까지 아우르는 역동적 콘텐츠가 SMAC의 특징이다. 전시 프로그램은 세계적 미술관 및 큐레이터들과 협업해 점차 구현해나갈 예정이다.
산마르코 광장의 프로쿠라티에 2층에 자리한 SMAC는 그 비전에 부합하는 흥미로운 맥락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1538년 재건된 건물을 이탈리아 최대 기업 제네랄리가 1832년부터 글로벌 본사로 사용하다가 1989년에 밀라노로 사옥을 이전하며 세계적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에게 복원을 의뢰해 5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에게 개방하면서, 사회적 포용과 문화의 허브로 재탄생시켰다. 치퍼필드의 세심한 복원 작업에는 도시의 건축 역사를 반영하는 정교한 디테일을 되살리는 동시에 건물에 현대적 비전을 심는 것 또한 포함되었다. 벽은 부순 대리석으로 만든 밝은 회색의 베니스 마모리노로 덮었고, 바닥은 흰색 테라초로 마감했으며, 일부는 르네상스 시대 들보를 그대로 사용했다.

왼쪽 나폴레옹 시대 프레스코화 배경의 이벤트 룸에 모인 SMAC 공동 설립자들. 왼쪽부터 데이비드 그라마지오, 안나 뷔르소, 다비드 흐란코빅. Courtesy of SMAC San Marco Art Centre, Photo by Pierfrancesco Celada
오른쪽 창 너머로 산마르코 광장 및 500년이 넘은 건물이 병치되어 더욱 돋보였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디자인. Courtesy of MMCA, Photo by Kim Yongkwan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 맞춰 오픈한 SMAC의 첫 번째 전시에서는 선구자 두 사람을 소개했다. 시드니 대학교의 차우 착 윙 박물관이 기획한 이주 모더니즘을 주제로 한 해리 사이들러의 전시는 호주에서 영향력이 높지만 해외에서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작가의 삶과 커리어를 의미 있는 오브제와 시각적 요소로 풍성하게 꾸몄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정영선 작가의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은 낯선 한국 작가가 펼쳐낸 감동적 조경 건축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SMAC의 등장은 베니스를 넘어 전 세계에서 화제를 불러 모았다. 특히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큐레이션의 명료함이 어떤 것인지 상기시키는 즐거운 발견”이라며 호평했다. 건축 커뮤니티 또한 이 흥미진진한 예술 공간의 등장에 환호했다. 컬럼비아 건축 대학원(GSAPP)과 <핀업> 매거진이 주최한 ‘미드나잇 서밋’에 참석하기 위해 벽에 나폴레옹 시대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SMAC의 이벤트 룸에 자정이 다 되어 수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150명이 넘는 건축가, 큐레이터들이 새벽 1시 30분까지 오늘날 건축이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에 대해 열띤 논의를 펼쳤다. 이후 다음 날 아침에는 오전 9시도 안 된 이른 시간부터 뉴욕 현대미술관(MoMA), 런던 디자인 뮤지엄이 주최한 ‘월드 어라운드’와 SMAC의 토론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200여 명의 건축가가 오디토리엄을 찾았다.
SMAC의 다음 전시는 전통적 미술관의 범주를 넘어서는 이 공간의 야심 찬 계획을 보여줄 예정이다. 8월 27일 베니스 영화제와 함께 오픈하는 <양자 효과(Quantum Effect)>로, 세계적 큐레이터 대니얼 번바움과 영화 프로듀서 재키 데이비스가 기획했다. 과학, 예술, 영화, 건축, 철학을 연결해 양자 과학과 창의적 표현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동시에 양자 이론이 예술을 어떻게 형성하고 영향을 미치는지 소개한다. 공상과학소설에서 영감받아 양자 과학의 시공간적 역설을 탐구하는 한편 뮤직비디오, 비디오게임, 패션이 대중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마르셀 뒤샹, 제프 쿤스, 토마스 사라세노, 마크 레키 등의 작품과 함께 조명할 예정이다. 이제 막 시작을 알린 SMAC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글 피오나 배
사진 산마르코 아트 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