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나눔
신년을 맞아 떡만둣국을 차린 다이아나 강 대표의 자택에 새해 인사를 나누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나누면 복이 온다. 사람도, 정도, 음식도, 이야기도.
한겨울의 작약. 화려한 얼굴을 지닌 이 아름다운 서양 꽃에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유승재 대표 작품.

조기상 작가의 목공예품. 왕벚나무, 느티나무 등 국산 나무를 소재로 했다. 유기를 이용한 커틀러리도 디자인했다.

테이블 매트 위에 세팅할 코르사주를 응용한 꽃 장식

선물을 주고받는 훈훈한 현장. 손끝에서 따뜻한 정성이 묻어난다.

이정미 작가가 후식으로 먹을 대추설기를 찌기 위해 직접 제작한 도자기 찜기
누구와 무엇을
두리반이라는 우리말이 있다. 여럿이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 먹는 크고 둥근 상이다. 다이아나 강 대표는 자신의 이름을 건 ‘테이블 토크’ 칼럼을 계획할 때 자택 거실에 있는 두리반이 생각났다고 했다. 바랜 듯한 베이지 컬러의 옻칠상. 3년 동안 적당한 거실용 탁자를 찾아 고르고 골랐는데 조은숙 아트 앤 라이프스타일 갤러리에서 옻칠 작가 허명욱이 디자인한 이 낮은 좌탁을 보자마자 바로 결정했다고. 거실 한가운데 모셔두는 작품 같은 가구가 아니라 하루 일과 중 많은 시간을 이 상과 함께한다.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가족이나 지인과 둘러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그래서 한 번쯤 만나고 싶었다 했다. 이러한 일상의 행복을 선물한 사람, 허명욱 작가를.
그렇게 이 자리를 마련했다. 허명욱 작가, 조은숙 아트 앤 라이프스타일 대표, 흙을 빚어 고운 백색의 생활 도자기를 굽는 이정미와 예올이 주목한 아우로이(Auroi)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기상(그에 대한 설명은 차차 하기로 한다), 차가운 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꽃으로 따뜻하게 표현해줄 헬레나 플라워의 유승재 대표. 장소는 다이아나 강 대표의 자택이었다. 손님이 오면 종종 그러하듯 거실 두리반에 동그랗게 둘러앉기로 했다. 그런데 사람이 모였으니 음식이 있어야겠다. 어떤 음식이 좋을까? 때가 때인 만큼 예부터 새해 음식으로 손꼽히는 떡국으로 하자. 식전주와 후식도 곁들여 격식을 갖추자. 미국 라디오 프로그램 중 <스플렌디드 테이블(Splendid Table)>이라는 푸드 쇼가 있다. 제임스 비어드 재단상을 두 차례 수상한 명작이다. 이 푸드 쇼의 진행자가 펴낸 동명의 요리책이 있는데, 단순한 레시피 북이 아니라 이 요리를 누구와 먹었고, 그때 기억이 어떠한지 등의 스토리가 함께 담겨 있다. 다이아나 강 대표의 지론은 음식은 어떻게 만드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 누구와 같이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 결론부터 말하면, 떡국 한 그릇이 이렇게 특별한 적은 없었다.
Diana’s Table…
2016년에 새롭게 시작한 이 칼럼은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한층 풍요롭게, 정감이 넘치고 대화와 감성의 교류가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취지를 담았다. ‘테이블’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사용 목적에 따른 여러 가지 의미에 비춰 (식사, 대화, 토론, 학습 등) 다채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줄 그녀의 테이블. 다이아나 강 대표가 만나고 싶은 사람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펼쳐질 공간으로 초대한다.

왼쪽부터_ 다이아나 강 대표, 허명욱 작가, 조기상 작가, 유승재 대표, 이정미 작가, 조은숙 대표
그날의 하루
오전 11시 30분, 조은숙 아트 앤 라이프스타일 갤러리 대표와 이정미 작가가 식기를 한 아름 안아 들고 입장. 오후 12시 30분, 허명욱 작가와 조기상 작가가 입장하며 식전주와 애피타이저 타임이 시작되었다. 메뉴는 오미자청과 토닉워터, 화요를 믹스하고 레몬을 띄운 한국식 칵테일과 샐러드 역할을 하는 구절판이다. 술이 한잔 들어가면 어색한 사이도 금세 편안해진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다 함께 합심해 떡만둣국을 차렸다. 배로 담근 달달한 동치미와 쫄깃한 족편, 말린 새우 가루로 감칠맛을 더한 호박전까지 반찬이 정갈하다. 음식 맛이 좋으니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후식 테이블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는 시간.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솔잎차와 갓 구운 설기떡, 한 입에 쏙 들어가는 정과. 완벽하게 한국식으로 마무리한다. 밖엔 어느새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웰컴 드링크로 준비한 화요 오미자 칵테일로 건배하는 모습. 작고 컬러풀한 유리잔은 일본 유리공예가 쓰지 가쓰미의 작품으로 조은숙 아트 앤 라이프스타일 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다.

칵테일을 담은 백자로 만든 피처는 이정미 작가의 작품. 금속 구절판은 조은숙 아트 앤 라이프스타일 갤러리에서 판매하는 박미경 작가의 작품이다. 앞접시는 허명욱 작가가 만들었다.

옻칠을 입힌 허명욱 작가의 테이블 매트 위에 이정미 작가의 한식기를 세팅해 상차림을 완성했다. 떡만둣국 그릇은 이번 모임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 ‘대접한다’는 의미를 담아 높은 굽으로 디자인했다.

후식상에 올린 솔잎차와 대추설기. 오디소스는 대추설기를 찍어 먹기 위해 준비했다. 충분히 발효해 알싸한 맛이 난다. 솔잎차를 담은, 손잡이 부분을 독특하게 각 쳐서 디자인한 컵은 이정미 작가의 작품이다.

맑고 깊은 맛의 육수를 자랑하는 다이아나 강 대표 스타일 떡만둣국. 고명은 간소하게 달걀지단만 올렸다. 반찬은 왼쪽부터 포기김치, 오크라장아찌, 가죽나물무침.
우리의 이야기
다이아나 강 오늘의 식사, 어땠나요? 호스트와 게스트가 확실한 역할 분담을 한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해 더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완벽한 컬래버레이션이죠. 조은숙 요즘 유행하는 킨포크라는 게 이런 거죠. 사실 우리의 두리반 문화가 더 오래됐어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두리반에서 중요한 건 음식이 아니라 사람이죠. 들고나면서 분위기도 바뀌고 대화도 바뀌고. 그렇게 친해지고 정을 쌓고. 다이아나 강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은 두리반 역할을 하는 허 작가님의 테이블이 있었기 때문이죠. 저는 이 테이블이 마음에 드는 이유가 또 하나 있어요. 상에 둘러앉아 가족끼리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아내거든요. 이런 기억은 아무 테이블에서나 느낄 수 없죠. 원래 사진작가라고 하던데, 이런 감동적인 옻칠 가구를 어떻게 만들게 되신 건가요? 허명욱 지금도 사진을 찍고 있어요. 30년째죠. 제 사진은 늘 주변의 사물을 소재로 삼아요. 빈티지 미니카, 트렁크, 문짝 같은 것인데 하나같이 손때 묻고 세월을 탄 모습이죠. 그 사진을 인화해 색을 입히고 다시 그걸 찍고 인화해서 덧칠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사진 작업에도 시간이 쌓이는 거죠. 저는 이런 시간의 가치를 오랫동안 추구해왔고, 옻칠 또한 같은 영역이에요. 사포로 문지르고 칠하고 베 입히고 다시 문지르고 칠하는 과정을 반복하니까요. 옻칠을 처음 접한 건 2011년 구마노 기요타카를 통해서였어요. 오래전부터 제 사진 작품의 팬이었는데, 어느 날 그가 합동 작품을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오사카 예술대학의 옻칠 교수거든요. 그길로 옻칠의 매력에 빠져들었죠. 사실 이 원형 탁자를 만든 건 필요에 의해서였어요. 식탁도 좋지만 편하게 앉아서 쓸 수 있는 ‘상’을 만들어보자 싶었죠. 저희 아이들은 여기서 숙제도 하고 간식도 먹고 그래요. 저는 사진과 옻칠 그리고 금속공예까지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매개체만 다를 뿐, 그 안에 담긴 본질은 하나예요. 시간성. 조은숙 전통적 옻칠을 현대화해서 가구와 그릇, 소품을 만드는 게 인상적이죠. 다이아나 강 맞아요. 한국의 전통 테이블을 모던하면서 세련되게 표현했구나 하는 느낌이죠. 무엇보다 색감이 참 따뜻하다고 느꼈는데, 빈티지를 좋아하는 감성이 담겼기 때문이네요. 허명욱 옻칠은 보통 적색과 검은색을 쓰는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색을 원했고, 그걸 구현했죠. 다이아나 강 조기상 작가는 이탈리아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요즘 한국적인 (공예) 프로젝트를 많이 하죠. 환경의 변화가 힘들진 않나요? 조기상 본래 자동차를 디자인했는데, 메가 요트 쪽으로 분야를 옮겨갔어요. 주문 제작 요트는 최고급 공예품이죠. 그런데 주문자 한 명만 만족시키는 디자인이라는 점에 곧 회의감이 들었어요. 한국에 돌아와 예올과 함께 공예 프로젝트를 하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는데, 이 분야에 점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대부분의 공예품은 기술은 좋은데 팔리지 않죠. 팔리지 않는 디자인을 만들기 때문이에요. 디자이너가 필요한 영역인 거죠. 지역색과 장인의 재능을 살리되 디자인적으로 호감을 줄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작업을 하려고 해요. 옹기, 자기, 목기, 주철 등 각 분야를 두루 아우르죠. ‘아우로이’라는 이름은 아울러 이롭게 한다는 의미랍니다. 다이아나 강 김수영 장인과 함께한 유기 프로젝트가 인상적이었어요. 유기는 굉장히 아름다운 전통 공예품인데 투박하고 무겁고,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에는 어울리지 않았죠. 하지만 조 작가님의 유기 커틀러리만 봐도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어요. 허 작가님이나 조 작가님, 그리고 이정미 작가님까지 전통을 모던하게 변형해 우리 삶을 더 아름답게, 풍요롭게 만들어주시는 분이에요. 공예가 일상의 예술이 되는 데 이바지하고 있죠. 이정미 작가님의 백자 그릇에도 얼마나 감탄했는데요. 모던하면서 단아한 품위가 느껴지잖아요. 조은숙 맨질맨질하게 빚는 것도 있지만 각을 치는 데도 일가견이 있죠. 독특하지만 아름다워요. 이정미 대학 다닐 땐 오브제 작업에 집중했는데, 결혼해 살림을 시작한 후로 실질적인 생활 자기로 작품 스타일을 바꿨어요. 한식에는 은은한 백자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주부와 엄마의 입장에서 작품을 바라보니 저만의 개성을 보여주면서도 실용적인 디자인을 찾게 되었죠. 각을 치는 건 제사상에 올리는 밤을 깎는 방식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그런데 시대가 변했다고 느껴지는 게, 각 친 날개가 달린 이 찻잔의 경우 9년 전 처음 선보였을 땐 사람들이 일반적 형태가 아니라고 거부한 아이템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가치를 알아봐주죠. 공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아니 달라졌다는 걸 느끼는 부분입니다. 다이아나 강 공예 작가들이 내가 원하는 것, 내게 필요한 것, 그렇지만 내 머릿속에서 그리던 작품을 만들어 내놓을 때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나아가 예술적 감성을 일깨우고 오래된 기억을 건드려주기도 하죠. 이것이 공예의 진정한 가치 아닐까요? 나를 즐겁게, 기분 좋게 하는 것. 허명욱 저는 요즘 아톰을 만들어요. 유리섬유 위에 옻칠을 하는데, 아톰의 팬티와 장화에 제가 좋아하는 빈티지 색감을 입히죠. 아톰을 만나러 작업실에 가는 길이 늘 즐겁답니다. 차에서 나는 옻 냄새도 좋아졌어요. 다이아나 강 저도 언제부턴가 옻 냄새가 좋더라고요. 빈 도시락통을 열었을 때 나던 그 냄새. 이 또한 추억의 냄새잖아요. 아톰 시리즈, 기대할게요. 다른 분들도 좋은 작품으로 새해에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후식을 즐기며 새해 덕담을 주고받는 시간. 6개 칸으로 나뉜 합에 담긴 한식 디저트는 동병상련에서 마련했다. 위부터 잣솔, 곶감쌈, 율란, 대추징조, 호두튀김, 강란이다. 아카시아나무로 만든 조기상 작가의 트레이에는 수제 육포를 올렸다.

다이아나 강 대표가 준비한 손님을 위한 선물. 대추와 잣, 계피, 꿀을 섞어 만든 스프레드로, 뜨거운 물을 부어 차로 우려 마셔도 좋다.

헬레나 플라워 유승재 대표의 꽃 선물. 한겨울에 만난 붉은 작약이 탐스럽고 아름답다.

다이아나 강 대표를 위해 3명의 작가와 조은숙 대표도 선물을 준비했다. 허명욱 작가는 금속공예로 만든 볼, 이정미 작가는 동그란 합, 조은숙 대표는 악귀를 쫓는다는 의미 있는 해태로 장식한 이단합, 조기상 작가는 안동 하회탈 장인과 협업한 윷 세트다. 서로 닮은 듯 다른 포장에서도 작가들의 감성을 엿볼 수 있다.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사진 김황직 코디네이션 이경주 컨트리뷰팅 에디터 다이아나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