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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으로 빚은 불가리의 예술

ARTNOW

지금 도쿄로 향한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전시가 있다. 일본 최대 규모의 주얼리 전시이자 불가리가 10년 만에 선보이는 대규모 프로젝트, 〈불가리 칼레이도스: 색, 문화 그리고 공예〉가 12월 15일까지 도쿄 국립 신미술관에서 열린다.

변화하는 색의 향연을 선보이며 전시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원 오브 어 카인드 소투아르’.

물, 소리, 미네랄, 빛이 서로 반응하는 장면을 연출한 나카야마 아키코의 설치 작품 ‘Echo’.

언제나 색을 디자인의 중심 언어로 삼아온 로마의 하이 주얼러 불가리. 1884년, 창립자 소티리오 불가리가 로마에 첫 부티크를 연 이래 불가리는 단순한 보석을 넘어 색을 통해 예술과 문화를 이야기해 왔다. 1950년대, 대부분의 하이 주얼리 하우스가 플래티넘과 다이아몬드 조합을 고수하던 시기에도 불가리는 과감하게 옐로 골드에 사파이어, 루비, 에메랄드를 더해 강렬한 시선을 끌었다. 여기에 당시 준보석으로 여겨지던 애미시스트, 시트린, 튀르쿠아즈 등 생동감 넘치는 컬러 스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시그너처인 카보숑 컷을 통해 색의 깊이와 밀도를 극대화하며 컬러 젬스톤의 대가라는 명성을 굳혔다.
이러한 불가리가 140여 년에 걸친 색의 여정을 대대적으로 조명하는 전시, 〈불가리 칼레이도스: 색, 문화 그리고 공예(Bvlgari Kaleidos: Colors, Cultures and Crafts)〉를 선보인다. ‘칼레이도스(kaleidos)’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만화경(kaleidoscope)’의 어원이기도 하다. 그 이름처럼 이번 전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색과 형태가 만들어내는 조화와 균형의 미학을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그곳에서 불가리 부회장 라우라 부르데제(Laura Burdese)를 만나 불가리의 철학이 담긴 이번 전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불가리의 1990년대 메타모포시스 광고캠페인.

불가리 라우라 부르데제 부회장.

세 명의 여성 아티스트, 색의 대화를 잇다
〈불가리 칼레이도스: 색, 문화 그리고 공예〉전은 세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구성했으며, 관람객은 감각적인 공간을 따라 마치 색의 세계를 여행하듯 탐험하게 된다. 전시에서는 불가리 헤리티지 컬렉션과 세계 각지의 프라이빗 소장품 약 350점을 공개한다. 주얼리뿐 아니라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와 현대 예술 작품이 한데 어우러져 불가리의 창조적 세계를 완성한다. 특히 현대 여성 예술가의 작품은 전시의 상징적 의미를 한층 깊이 확장하며, 전체 전시에 감각적인 리듬과 여운을 더한다. 영상과 인터랙티브 공간, 그리고 예술적 대화를 통해 관람객은 불가리의 색채 세계를 더욱 생생하게 체험하게 된다. “불가리의 유산은 박물관에 머무는 역사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현대 예술과의 협업을 통해 전시에 생동감을 더하고자 했습니다.” 라우라 부르데제 부회장의 말처럼 라라 파바레토(Lara Favaretto), 모리 마리코(Mariko Mori), 나카야마 아키코(Akiko Nakayama) 세 작가는 색과 빛, 시간, 존재를 각자의 언어로 해석하며 불가리의 세계에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었다. 서로 다른 시선으로 완성한 이들의 작품은 색의 인식과 변형의 가능성을 확장하며, 전시에 한층 깊은 여운을 더한다.

위쪽 은행잎에서 영감을 얻은 공간에 설치한 라라 파바레토의 작품 ‘Level Five’.
아래쪽모리 마리코의 조각 ‘Onogoro Stone III’.

과학으로 풀어낸 색의 움직임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챕터는 ‘색채의 과학(The Science of Colors)’이다. 이 섹션은 색의 대비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긴장을 통해 색의 본질을 탐구한다. 이곳에서는 라라 파바레토의 설치 작품 ‘Level Five’가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다. 다채로운 자동차 세차 브러시가 회전하는 구조로, 움직임과 리듬, 색의 에너지가 어우러진 장면을 통해 전시 주제인 ‘색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챕터는 불가리의 대표 아카이브 주얼리도 함께 전시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1940년대에 제작한 ‘시트린 브레이슬릿’은 골드와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세팅을 통해 로마의 황금빛 석양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오렌지 스펙트럼을 구현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외 지역에서 처음 공개하는 희귀한 아카이브로도 의미가 있다. 이어 1954년 제작한 ‘플래티넘 뱅글’은 카보숑 사파이어, 루비, 다이아몬드 세팅으로 불가리의 시그너처인 붉은색과 파란색의 대비를 극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에메랄드, 애미시스트, 튀르쿠아즈, 다이아몬드를 대담하게 조합한 네크리스와 이어링 세트는 불가리의 색채 감각과 젬스톤 매치의 창의성을 잘 보여준다.

카보숑 컷 사파이어와 루비, 다이아몬드를 대담하게 세팅한 뱅글.

7개의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네크리스 ‘세븐 원더스’.

에메랄드와 애미시스트, 튀르쿠아즈, 다이아몬드를 컬러풀하게 세팅한 이어링.

색이 말하는 감정의 언어
두 번째 챕터 ‘색채의 상징성(Color Symbolism)’은 색에 내재된 문화적 의미와 감정의 표현에 초점을 맞춘다. 라우라 부르데제 부회장은 색은 객관적 개념이 아니라, 사람과 문화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는 주관적 언어에서 비롯한다고 설명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흰색이 순수와 긍정을, 또 다른 나라에서는 슬픔을 상징하듯, 색은 문화적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이야말로 불가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본질이며, ‘불가리 칼레이도스’는 바로 그 색의 시선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와 공예를 하나로 잇는 전시를 펼쳐낸다. 이 섹션의 중심에는 모리 마리코의 조각 ‘Onogoro Stone III’가 있다. 모리는 베니스 비엔날레와 런던 로열 아카데미 등 세계 무대에서 인간과 기술, 의식의 경계를 탐구해온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신들이 신성한 창으로 바다를 휘저어 생명을 만들었다는 일본 신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미래적 소재와 단정한 형태가 어우러져 고요한 균형을 이루며, 색과 형태의 상징적 힘을 통해 ‘탄생의 순간’을 표현한다. 이 챕터에서는 전설적 플래티넘 네크리스 ‘세븐 원더스’를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소개한다. 7개의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로 구성한 이 작품은 모니카 비티와 지나 롤로브리지다 등 시대의 아이콘이 착용하며 불가리의 미학을 상징하는 대표적 주얼리로 자리매김했다. 10년 만에 다시 공개하는 이 작품은 현재 불가리 헤리티지 컬렉션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나카야마 아키코의 설치 작품 ‘Echo’와 주얼리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전시장. 

색으로 연결된 두 문화의 대화
“일본은 불가리가 오랜 시간 깊은 존경과 애정을 품어온 나라입니다. 일본과 우리는 장인정신, 완벽을 향한 집념, 그리고 세밀한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고 있지요. 특히 올해는 오사카 엑스포가 열리는 해이기에 더욱 뜻깊습니다. 서로의 문화를 향한 존중과 예술적 가치가 맞닿은 순간이라 생각합니다.” 라우라 부르데제 부회장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단순히 주얼리를 감상하는 자리를 넘어 로마의 예술성과 도쿄의 감성이 교차하는 ‘문화적 교류의 장’이 된다. 불가리의 미학과 일본 문화는 서로의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며, 두 나라가 공유하는 가치와 미적 감각을 섬세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이를 상징하듯 전시 공간은 일본 건축 스튜디오 SANAA의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 그리고 이탈리아 디자인 듀오 포르마판타스마가 협업해 설계했다.
고대 로마 카라칼라욕탕의 모자이크와 도쿄의 은행잎에서 영감을 얻은 공간은 부드러운 곡선이 층층이 이어지며, 로마에 뿌리를 둔 메종의 정체성과 일본의 절제된 미학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라우라 부르데제 부회장은 대화를 마무리하며 “세상이 변해도 불가리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만큼 불가리는 확고한 정체성을 지닌 브랜드다. 하지만 불가리는 과거의 유산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오늘과 내일의 언어로 새롭게 해석하는 데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색과 감정, 장인정신이 어우러진 〈불가리 칼레이도스: 색, 문화 그리고 공예〉는 그 여정 속에서 불가리가 써 내려갈 새로운 이야기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에디터 서혜원(h.seo@noblesse.com)
사진 불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