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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태도를 깎아 다듬는 조각가

ARTNOW

팔로마 파르가 바이스가 들려주는 섬세한 이야기.

팔로마 파르가 바이스는 런던과 독일, 스위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자신만의 강력한 ‘조각하기’ 방식을 통해 형상이 뚜렷한 모티브를 다뤄왔다. 또 조각으로서 가장 솔직하고 고유하게 작동할 수 있는 목각(woodcarving)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편견을 비워내는 것에 집중해왔다. 그녀의 손을 거친 작업은 현대 조각이라 부르고 해석하는 일이 무색할 정도로 인간의 수고가 깃든 공예적 방식과 태도를 통해 그녀의 기억과 트라우마, 꿈, 고립에 관해 이야기한다.

1Women of the Forest, Llimewood, Fabric, Tree Trunks, 310×145×260cm, 2001, Installation View Bonnefantenmuseum Maastricht, 2019
2Wonder Valleys, Film Installation, 2019, Installation View Bonnefantenmuseum Maastricht, 2019

안녕하세요. 유럽 전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쉬워요. 우선, 목조각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일찍이 목각사로 기술을 익혔습니다. 당시 형상을 깎는 일을 하다 작은 미술 아카데미에서 캐스팅, 모델링, 드로잉 등 목조각의 밀도 있는 기술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담당 교수를 통해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등 14~15세기 르네상스·중세 회화를 접하고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형상들을 어떻게 조각으로 화이트 큐브라는 공간에 가져올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2014년 5월 <프리즈(Frieze)>의 기사에서 본 “조각을 하는 것은 나무로 된 사과를 깎는 것과 같이 매우 고된 작업”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그런데도 목각이라는 전통 공예의 가치를 좇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블록 깎기, 점토 주조(모델링), 석고 변환, 그리고 나무 변환 등 조각에는 여러 방식이 있죠. 그중 나무를 깎아서 조각하는 것은 무엇을 남기고 버려야 할지에 대해 풍부한 상상력이 동반돼야 하고, 이를 구현할 기술을 확실히 터득해야 하며, 또 단번에 해낼 수 있어야 하죠. 정말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는 일입니다.

당신의 조각은 공예적 특성이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재료 본연의 성질과 공예 기술이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재료와 도구는 스트레스처럼 갇힌 기운을 분출하는 매개체라고 생각해요. 목각할 때 저는 주로 라임나무를 사용합니다. 색감이 부드럽고 다소 창백한 느낌이라 무언가를 표현하기에 아주 좋은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손을 사용해 즉각적으로 무언가를 엮고 깎는 등 노동 집약적인 태도에 집중하고 있어요. 제 조각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죠.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기이한 형상의 인간과 동물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런 형상과 모티브는 어디서 가져오나요? ‘서 있는 사슴(Reindeer, Standing)’이 첫 번째 조각이었어요. 사슴이 두 발로 서도록 훈련하는 어떤 남자에 대한 신문 기사를 모티브로 한 작업이었죠. 순간적으로 묘하고 강렬한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것이 제 작업에 결정적 전환점이 된 것 같습니다.

때로는 작업의 모티브를 환상, 잔혹 동화에서 가져온 것 같기도 하고 우화에서 비롯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주로 내가 일상에서 본 것, 신문에 실린 특정 이미지에서 형태를 가져오기 때문에 제 작업은 사실 동화나 우화, 신화, 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전시 중인 ‘Bumpman’는 현실에서 내가 본 림프 환자의 신체를 참고해 재현한 것입니다.

3Bumpkin, Polychormed Limewood, Woodtrunk, 70×26×45cm(Figurine), Collection of the Artist, 2002
4Bumped Body, Limewood, Silver Plated, Sammlung Droege, 2007

하이브리드 형태의 작업에서 모호한 부분이 자주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어떤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해요. 예컨대 ‘Foreign Body’ (2019)에서 여성의 몸을 관통하는 조각은 남성의 성기 혹은 뼈, 나뭇가지, 고통 그리고 증식을 의미할 수 있어요. 이처럼 여러 레이어를 통해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당신의 조각에서 두드러지는 형상을 발전시키나요? 일종의 여행을 하는 것과 같아요. 특히 규모가 큰 설치 작품은 미리 스케치하고 확정한 다음 작업하기보다, 만들어나가면서 이것저것 덧붙이는 편입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중요한 요소가 되죠.

보네판텐 미술관 전시는 초기부터 현재까지 작품 세계 전반을 소개하는데, 가장 최근작으로 유일한 영상 작품이기도 한 ‘원더 밸리(Wonder Valleys)’(2019)는 새로운 시도 같아요. 그 작품은 기존 작업과는 다른 범주에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부합하는 결과물인 것 같아요. 제 아버지는 한껏 차려입는 것을 매우 좋아하셨는데, 어릴 때 아버지의 독특한 의상을 입고 역할극을 하면서 놀았어요. 지금 내 아들들도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고요. 작년에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작업을 하러 사막에 갈 때 아들에게 함께 작업해보면 어떨까 제안했어요. 두 아들은 의상을 바리바리 들고 갔고, 그 옷을 돌려 입으며 미국 사막 여행을 촬영하기 시작했죠.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작업한 것이 아니라 중간에 길을 잃기도 했지만, 등장하는 여러 요소와 분위기, 색감에서 결국 기존의 조각과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번 전시에서 아버지의 젊은 두상 ‘Father, Young’(2011)과 늙은 두상 ‘Father, Old’(2011)가 서로 마주 보고 벽에 걸려 있어요. 독일 현대 조각 거장인 토마스 쉬테(Thomas Schutte)의 영향을 받은 듯한 두상 조각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두상 조각은 쉬테 조각의 마스크와 세라믹 소재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완전히 다른 작품입니다. 우선 그의 조각 창작 동기는 좀 더 냉소적인 데 있으며 표현의 퀄리티와 지점도 다르죠. 제 조각은 보다 멜랑콜리하고 내면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네판텐 미술관에서 2월 2일까지 열렸던 전시 < Bumped Body >는 동명의 2007년 작품 제목을 차용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책 제목이기도 한데, 토르소처럼 보이는 몸은 정작 림프는 제거하고 배 부분만 매끄럽게 볼록해 임신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는 등 추상적 형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임신은 여성에게 가장 극적이면서 자연스러운 경험이기도 하죠. 몸의 변화를 육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변환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기에 좋은 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bumped’란 단어는 물리적으로나 정신적 측면에서 제 작업 전반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5Cabinet, Wood, Glass Mixed Media, 2018, Collection of the Artist
6Glory Hole, Limewood, Fabric, Metal, Engine, Wooden Chair, Taxidermies, 750×450×470cm, 2015
7Gallow Field, Limewood, Wood, Fabric, 1400×520cm, 2003, Collection Bonnefantenmuseum Maastricht, Installation View Bonnefantenmuseum Maastricht, 2019

2016년 토리노의 카스텔로 디 리볼리 현대미술관(Castello di Rivoli Museo d’Arte Contemporanea)에서 전시한, 역사적 건축 공간에서 조각을 보여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그 미술관은 벽지와 문 등 많은 것이 낡고 바랜 건축물이었습니다. 거기서 조각을 보여주는 것은 화이트 큐브에서 전시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대화를 하는 것 같았어요. 대체로 화이트 큐브에서는 하얀 벽과 조명 같은 요소가 작품과 교류하거나 대화하지 않는 것 같아 지루하지요.

당신의 대표작 중 ‘Bois Dormant’를 포함한 ‘Cabinet’ 시리즈는 자전적이면서 고고학적 태도를 보여주는 조각 오브제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서랍장이라는 사물을 하나의 보물 상자로 다룬 이유가 있나요? 그 캐비닛은 마치 실제 공간을 축소한 것 같죠. 각 서랍장의 레이어에 주변의 여러 목소리를 가져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게 했습니다. 너무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요. 서랍장 속에 들어간 다양한 형태의 목조각은 자전적 기억의 집합입니다.

서울에서 당신의 작품을 보여줄 기회가 있다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요? 저는 미술과 공예의 관계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선 한국의 전통 공예에 대해 찾아보고 싶어요. 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고궁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본 공예품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의 전통 의상 한복을 입고 다녔는데, 그 풍경은 마치 촬영을 위한 세트장처럼 보이기도 했죠. 잠시나마 강하게 와 닿은 그 이미지를 다시 들여다보고 제가 지금껏 다룬 공예 기술과 한국의 공예적 기예를 엮은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현대 조각이라고 불리는 것들 사이에서 당신의 작품은 서사적 태도와 공예적 기술의 접점이 돋보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오늘의 조각’은 무엇인가요? 저는 과거에 바바리아의 작은 학교에서 전통 조각을 배웠고,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서는 지금껏 습득한 전통 조각에 대한 고정관념을 떨쳐버리라고 가르쳤습니다. 얼마 전 다음 순회전을 위해 헨리 무어 인스티튜트의 전시 공간을 훑어보는데 그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더라고요. 내가 어디서 왔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말이죠. 문득 제 조각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헨리 무어(Henry Moore)처럼 인간의 신체를 조각의 형상으로 전환하는 태도의 계보를 따라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오늘의 조각이 무엇이라고 정의하지는 않아요. 그저 내 일을 진득하게 하는 거죠. 오늘의 조각은 토마스 쉬테, 로제마리 트로켈(Rosemarie Trockel), 제프 쿤스(Jeff Koons), 폴 메카시(Paul McCarthy) 등의 작품처럼 범위가 훨씬 넓고, 미술사와 별개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패션처럼 유행을 따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복잡한 과정까지 가지 않는 경우도 가끔 볼 수 있죠.

 

팔로마 파르가 바이스
1966년에 태어난 팔로마 파르가 바이스는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서 토니 크래그(Tony Cragg)와 게하르트 메르츠(Gerhard Merz)의 지도 아래 조각을 공부했다. 네덜란드 보네판텐 미술관, 토마스 쉬테 재단, 이탈리아 카스텔로 디 리볼리 현대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 헤이워드 갤러리, 프로이트 박물관, 뒤셀도르프 K20, 뉴욕 현대미술관, 베니스 비엔날레, 베를린 비엔날레 등의 그룹전에도 이름을 올렸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추성아(독립 큐레이터)   사진 아틀리에 팔로마 파르가 바이스, 보네판텐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