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6가지 상징적인 모티브 이야기
샤넬 헤리티지 부티크에서 열린 ‘레 시그니처 드 샤넬’ 하이 주얼리 전시는 혜성, 까멜리아, N°5, 사자, 리본 그리고 깃털이라는 여섯 가지 상징물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그 이야기는 1932년, 샤넬의 첫 하이 주얼리 컬렉션 '비쥬 드 디아망’에서 시작된다.
대공황 속 1932년, 파리 포부르 생토노레 29번지
대공황기의 한복판이던 1932년 11월, 가브리엘 샤넬의 사저에 약 50점의 하이 주얼리가 전시되었다. 런던 다이아몬드 코퍼레이션이 침체된 시장을 살리기 위해 패션 디자이너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조건은 단 한 가지, ‘다이아몬드만 사용할 것’. 그러나 가브리엘 샤넬에게 이 제약은 오히려 기회로 작용했다. “다이아몬드는 최소의 양으로 최고 가치를 나타낼 수 있다.” 그녀의 말에는 다이아몬드 고유의 자유가 담겨 있었다. 다이아몬드는 어떤 드레스에도, 어떤 시간과 장소에도 잘 어울린다. 여성이 보석에 맞춰 옷을 고르는 게 아니라 보석이 여성의 선택을 따라간다. 가브리엘은 주얼리를 벨벳 위에서 들어 올려 마네킹에 걸고, ‘변형 가능한(transformable)’ 스타일로 만들었다. 다이아몬드가 여자의 몸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고 네크리스는 브로치로, 티아라는 브레이슬릿으로 변신했다. 드레스가 바뀌기 때문에 주얼리도 변형 가능해야 한다는 그녀의 선언은 주얼리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대공황 시기, 하나를 여러 용도로 변경 가능하다는 발상은 설득력을 발휘했다. 가브리엘은 이 실용성을 모던한 디자인으로 승화해 여성이 직접 손쉽게 주얼리를 바꿀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주얼리업계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애초에 쿠튀리에가 하이 주얼리를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금기였다. 방돔 광장의 주얼러들은 가브리엘을 법정으로 끌고 가 주얼리를 해체하고 다이아몬드를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이 분쟁은 일명 ‘샤넬 사건(Chanel Affair)’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전시 첫날부터 작품은 불티나게 팔렸고, 파리 사교계는 가브리엘의 주얼리를 선택했다. 방돔 광장 주얼러들의 우려는 빗나갔다.
Camélia
동백꽃은 향기를 품지 않는다. 향기는 향수에 맡기고, 꽃은 형태로만 존재하면 된다는 것이 가브리엘의 철학이었다. 그녀는 남성복 라펠에 꽂던 동백꽃을 여성 주얼리로 옮겼다. 1913년 첫 부티크 개점 이후 112년간 동백꽃은 샤넬의 가장 강력한 상징으로 진화해왔다. 눈앞의 까멜리아 디아망 에바네쌍(Diamant Evanescent) 네크리스를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59.5cm 길이의 롱 네크리스로, 중앙의 동백꽃이 분리되는 구조다. 꽃을 핀으로 고정하면 짧은 네크리스가 되고, 완전히 떼어내면 브로치로 바뀌며, 펜던트로 추가하면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나로 네 가지를 만들 수 있다는 설명만으로는 아쉬워 직접 목에 걸어봤다. 걸을 때마다 가슴까지 흘러내린 다이아몬드 라인이 발걸음에 맞춰 리듬을 탔다. 움직일 때마다 반사각이 달라지며 반짝였다. 꽃잎을 들여다보면 다섯 장이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자연의 동백이 비틀리고 제각각이라면 여기선 완벽한 기하학이다. 중앙의 오벌 컷 다이아몬드는 실제 꽃술보다 절제되어 있고, 파베 세팅한 342개의 라운드 컷 다이아몬드가 명암 대비를 만든다. 옆에 있는 까멜리아 워치로 시선을 돌렸다. 꽃잎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닫았다. 다이얼 위를 덮은 동백꽃 커버를 닫으면 완전한 다이아몬드 브레이슬릿이 된다. 시계이기 전에 주얼리다. 시간을 확인하고 싶을 때만 꽃잎을 여는 방식. 시간조차 섬세한 경험으로 만드는 철학이 여기에 담겨 있다.
N°5
방돔 광장에 자리한 메종들은 컬렉션명을 주로 자연, 은유, 추상에서 가져온다. 아라비아숫자를 컬렉션명으로 쓴 적은 없었다. 하지만 샤넬에 5는 특별한 숫자였다. 1921년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Ernest Beaux)가 가져온 다섯 번째 샘플이 바로 N°5였다. 가브리엘이 선택한 향수는 N°5라는 이름을 얻었고, 세기를 통틀어 샤넬의 가장 강력한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N°5는 향수로만 존재했고, 정확히 100년 동안 주얼리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향수로서 독립적 정체성을 지키는 것, 방돔 광장의 금기를 깨는 것 모두 신중을 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1년, N°5 향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샤넬 주얼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 디렉터 패트리스 레게로는 “하우스의 DNA, 향수, 숫자, 시각언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격적 창작”을 선언했다. 123점으로 구성한 N°5 하이 주얼리 컬렉션이 탄생한 것이다. 컬렉션의 정점은 55.55캐럿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한 네크리스였다. 이번 전시에서 N°5는 가장 관심을 끄는 컬렉션이었다. N°5 드롭 네크리스를 정면에서 보면 숫자 5가 선명하게 나타나고, 고개를 숙이면 사라진다. 페어 컷 다이아몬드가 5의 곡선을 따라 아래로 흐르는 구조로, 빛의 각도에 따라 숫자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처음엔 착시인 줄 알았지만, 고개를 몇 번 움직이고 나서야 의도된 디자인임을 눈치챘다. 숫자 5의 곡선을 다이아몬드로 구현하는 것은 고난도 작업이다. 곡선 위에 다이아몬드를 파베 세팅하려면 금속 틀 자체가 정교한 곡률을 유지해야 하고, 조금만 각도가 틀어져도 숫자가 왜곡된다. 클로즈드 파베와 인비저블 세팅을 교차하며 빛과 형태를 완성한 점이 돋보인다. 샤넬은 향의 흐름,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다이아몬드로 만들었다. 방돔 광장에서 아라비아숫자를 컬렉션명으로 쓴 메종은 지금도 샤넬이 유일하다.
Ruban
가브리엘 샤넬의 패션 컬렉션에서 리본은 핵심 요소였다. 꾸뛰르 드레스의 허리를 묶던 우아함을 주얼리로 옮긴 것이다. 1932년 비쥬 드 디아망 컬렉션에서 리본 브로치와 네크리스가 처음 등장했고, 지금도 샤넬 하이 주얼리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리본 모티브는 정중앙이 아닌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긴장감을 자아낸다. 다이아몬드 519개를 세팅한 루반 네크리스를 착용해보면 쇄골 위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비대칭의 미학을 확인할 수 있다. 짧은 버전 네크리스는 3D로 정교하게 만든 매듭이 목을 감싸며 연결 부위마다 관절처럼 움직인다. 브로치로 분리해 헤어 주얼리로도 활용 가능하다. 네크리스에서 브로치로, 브로치에서 헤어 액세서리로. 1932년 가브리엘이 제안한 변형 가능한 주얼리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Comète
“여성을 별자리로 뒤덮고 싶다. 온갖 크기의 별로 뒤덮고 싶다.” 가브리엘 샤넬이 남긴 이 말은 1932년 비쥬 드 디아망 컬렉션에서 현실이 되었다. 그녀는 별과 혜성에 매료되었고, 행운의 숫자 5를 신봉해 다섯 갈래로 뻗어나가는 형태를 선호했다. 전통 하이 주얼리가 고정된 정적인 형태를 추구했다면, 혜성은 움직임 그 자체를 포착했다. 가브리엘에게 혜성은 자유로운 여성의 은유이자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혜성처럼 여성도 스스로 빛나며 자기 길을 가야 한다는 믿음의 표현이었다. 꼬메뜨 꾸뛰르(Comete Couture) 네크리스는 잠금장치가 없다. 오픈형인데 한쪽엔 별 모티브가, 다른 한쪽엔 빛의 궤적이 흐른다. 혜성이 날아가는 순간을 목에 두르는 구조다. 실제 착용했을 땐 예상보다 무게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고개를 천천히 돌릴 때마다 다이아몬드가 빛의 각도를 달리하며 혜성의 흐름을 그렸다. 파베 세팅한 별 가장자리의 미세한 다이아몬드들이 중앙의 라운드 컷 다이아몬드를 향해 빛을 모으고 다시 궤적을 따라 흩어졌다.
Lion
1883년 8월 19일에 태어난 가브리엘 샤넬의 별자리는 사자자리다. 별자리를 신봉했던 그녀에게 사자는 곧 자신과도 같았다. 깡봉가 31번지의 아파트에 있는 조각상에서부터 트위드 슈트 버튼까지 사자는 그녀의 공간과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주얼리에 사자가 등장한 것은 2012년, 가브리엘이 세상을 떠난 지 41년 만이었다. 금동과 대리석 조각으로만 존재하던 사자가 마침내 다이아몬드로 부활한 것이다. 리옹 솔레르 드 샤넬 네크리스는 중앙의 페어 컷 다이아몬드에서 빛이 사방으로 퍼지고, 바로크풍 기하학 체인이 목을 따라 흐른다. 사자 얼굴의 갈기를 광선 형태로 표현해 강렬한 태양 이미지를 만들었다. 오픈형 투아 에 무아 반지는 한쪽은 사자 얼굴, 다른 한쪽은 페어 컷 다이아몬드를 품은 갈기 형태로 되어 있다. 2개가 서로를 향하되, 닿지 않는 구조다. 비대칭 이어링도 눈길을 끈다. 한쪽엔 사자가, 다른 한쪽엔 기하학적 다이아몬드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펜던트 부분을 떼어내면 스터드 이어링으로 변신한다. 샤넬은 현대적 미니멀리즘으로 사자를 재해석했다. 첫눈에 사자로 인식되지 않을 만큼 절제되고 간결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굴 디테일이 사실적이다. 리옹 솔레르 드 샤넬 링의 갈기 끝에는 작은 사각형 받침돌이 붙어 있다. 다이아몬드를 빼곡히 심은 면과 매끈한 금속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빛과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좁고 경사진 금속 면에 광택을 내는 작업은 매우 까다로운데, 특히 사자 얼굴의 미간·광대·인중 부위는 난도가 높다. 장인이 몇 시간에 걸쳐 표면을 다듬지만,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빛 반사가 무너진다.
Plume
1910년 파리 깡봉가, 꼬메디아 일러스트레(Comoedia Illustre)에 실린 가브리엘의 첫 사진을 보면 모자에 하얀 깃털 하나가 꽂혀 있다. 당시 파리 사교계 여성들은 타조·공작·극락조 깃털을 겹겹이 쌓아 올렸고, 심지어 새 한 마리를 통째로 머리에 이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하얀 깃털 하나만 꽂고 등장했다. 과장된 장식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었다. 그녀가 모자에 즐겨 꽂던 깃털은 가볍고 유연했다. 그녀는 “날개 없이 태어났다면, 날개를 자라게 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1932년, 그 깃털은 다이아몬드 주얼리로 탄생했다. 90여 년이 흐른 지금, 플륌 드 샤넬(Plume de Chanel) 네크리스 하나를 만드는 데 500시간이 걸린다. 가볍게 흔들려야 할 깃털을 금속으로 만드는 만큼 무거운 재료로 깃털의 가벼움을 표현하는 작업에 대부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깃털 끝부분 하나하나를 관절처럼 연결하고, 다이아몬드를 세팅하며, 흔들리는 구조 위에 수백 개의 다이아몬드를 심는다. 내부는 속을 비워 가볍게 만들고,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설계한다. 플륌 네크리스를 착용하고 고개를 돌리자 깃털이 피부를 스치듯 흔들린다.
1932년, 그리고 지금
전시장을 나오며 쇼케이스를 다시 둘러봤다. 까멜리아, N°5, 별, 리본, 깃털, 사자. ‘레 시그니처 드 샤넬’, 샤넬 하이 주얼리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가 1932년과 진정으로 맞닿는 지점은 따로 있다. 6개의 모티브 아래 깔린 두 가지 선택, 다이아몬드와 트랜스포머블 디자인이다. 6개의 모티브는 저마다 가브리엘의 삶에 뿌리를 두고 한 세기를 이어왔다. 지금 하이 주얼리가 열광하는 트랜스포머블 디자인을 가브리엘은 이미 1932년부터 실천했다. 가브리엘이 말한 “가장 작은 부피에 가장 큰 가치”는 물리적 밀도만을 뜻하지 않는다. 스타일의 자유였다. 여성이 직접 선택하고 변형하는 능동적 주얼리. 샤넬은 남성에게 선물로 받던 주얼리의 질서를 뒤집으며 6개의 모티브를 다시금 정의했다.
에디터 한지혜(hjh@noblesse.com)
사진 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