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한국을 탐미하다
샤넬 크루즈가 서울에 정박했다. 오방색과 단청, 조각보, 자개 등 한국의 전통 요소를 한 아름 싣고.
서울이다. 샤넬이 2015-2016년 크루즈 컬렉션을 위해 선택한 도시. 2000년부터 파리를 벗어나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마이애미, 베니스, 생트로페, 싱가포르, 카프당티브, 두바이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크루즈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는 샤넬이 올해의 크루즈 항해지로 일찌감치 서울을 점찍었다. 과거 중국과 일본에 가려 아시아 변방의 나라로 여긴 한국을 향한 세계인의 시선이 호기심과 관심의 눈빛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 중심에는 분명 문화 한류와 K-뷰티의 열풍이 자리한다. 하지만 여기에 샤넬의 러브콜이 더해진다면? 패션계에서도 그 영향력은 몇 배의 가속도가 붙게 될 것이다. 그 짐작은 이내 사실로 확인되었다. 지난 5월 4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성황리에 진행한 샤넬 2015-2016년 크루즈 패션쇼를 통해서. 쇼를 하루 앞둔 5월 3일, 호텔 신라 스위트룸에서 글로벌 크루즈 패션쇼를 위해 서울을 방문한 샤넬 패션 총괄 사장 브루노 파블로브스키(Bruno Pavlovsky)를 만났다. 그는 하이패션의 아이콘인 샤넬의 역사와 25년 동안 함께한, 오늘날 패션 왕국 샤넬을 이끌고 있는 핵심 인물. 전 세계 주요 매체가 요청한 빡빡한 인터뷰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시종일관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는 그에게 물었다. “왜 서울인가요?”
샤넬 패션 총괄 사장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 사진 김춘호
한복에서 영감을 얻은 요소를 샤넬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풀어냈다.
DDP에서 펼친 샤넬 2015-2016년 크루즈 컬렉션 쇼 피날레 장면
샤넬의 크루즈 컬렉션 쇼는 매해 전 세계 도시를 돌며 선보이는 만큼 해마다 개최 도시가 어디일지, 세계 프레스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귀추가 주목됩니다. 그래서 2015-2016년 크루즈 컬렉션 쇼 개최지로 서울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은 더욱 반가웠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 서울을 선택했습니다. 첫 번째는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때문입니다. ‘에너지와 창의정신이 넘치고 젊음이 샘솟는 나라.’ 이렇듯 긍정적 에너지가 먼저 떠오르는 한국의 이미지가 칼 라거펠트와 저희 샤넬 스튜디오팀에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두 번째로 점점 성장하고 있는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즉 한국의 서울은 샤넬에 무한한 영감을 주는 도시면서 동시에 매우 중요한 시장이죠. 또한 많은 한국 고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이번 쇼를 준비했습니다.
작년에 대규모 전시로 화제를 모은 <문화 샤넬(Culture Chanel)>전에 이어 또다시 DDP를 택했습니다. 2008년, 홍콩에서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건축물과 함께 <모바일 아트>라는 전시를 개최한 적이 있어요. 그때 이후로 자하 하디드와 칼 라거펠트는 두터운 친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가 <문화 샤넬>전과 이번 크루즈 쇼를 진행하는 장소로 선정한,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는 칼 라거펠트와 자하 하디드, 샤넬과 자하 하디드의 친밀감 또는 파트너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죠. 조립과 해체가 가능한 건축물인 모바일 아트의 건축적 요소를 DDP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점도 저희에겐 무척 흥미로웠고요. 작년에 진행한 <문화 샤넬>전 역시 한국 고객과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준비한 것으로, 이를 통해 샤넬이라는 브랜드 뒤에 숨어 있는 문화와 예술적 요소, 마드모아젤 샤넬의 예술성 등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런 기획 의도에 뜨거운 호응을 보내주셔서 무척 뜻깊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크루즈 컬렉션을 서울에서 소개하기로 결정했을 때도 주저하지 않고 DDP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서울시의 전폭적 지원도 든든한 힘이 되었고요. 샤넬의 창의력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일 패션쇼를 보면 간파하실 수 있을 텐데, <문화 샤넬>전과는 또 다른 감동을 DDP에서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이번에 서울에서 진행하는 크루즈 컬렉션 쇼를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6개월 전에 이미 개최 장소를 결정한 이번 쇼는 무엇보다 한국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준비했습니다. 한국이 우리에게 영감으로 불어넣은 에너지와 창조정신 그리고 젊음을 쇼에 잘 녹여내는 데 초점을 맞췄죠. 또 이미 한국 셀레브러티들과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한국에서 그들을 만나고, 한국의 고객에게도 직접 샤넬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매해 다른 나라의 생소한 도시를 순회하며 신규 컬렉션을 선보이는 것은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 열정을 담은 모험이자 혁신을 동반한 도전이라 할 수 있어요.
샤넬이기에 그렇듯 쉽지 않은 도전을 주저하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샤넬이 지닌 뛰어난 능력 중 하나는 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이전보다 잘해낸다는 거죠. 저희는 고객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2~3년 전부터 K-뷰티를 세계시장이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세계 패션계 역시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K-뷰티 열풍을 논할 때도 한국 특유의 독창적 창의력과 열정적 에너지를 빼놓을 수 없죠. 최근 K-뷰티를 통해 한국이 세계의 주목을 모으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앞서 말씀드린 한국이 우리에게 주는 영감을 대변할 수 있는 것도 K-뷰티가 아닐까요? 그 영감이 K-뷰티를 통해 전 세계에 전해지고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에 한국에서 쇼를 펼치면서 좀 더 가까이서 한국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4월 26일 막을 내린, 올해로 30회를 맞은 ‘이에르 국제 패션/사진 페스티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세요. 샤넬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후원을 하셨다고요. 한국 매체 중에서는 유일하게 <노블레스>가 초청되어 명예 게스트로서 샤넬의 활약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 더욱 흥미로웠는데요. 샤넬은 작년에 이 페스티벌의 파트너로서 인연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이 페스티벌이 샤넬에 의미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메티에 다르(장인정신)가 샤넬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샤넬이 이에르 페스티벌을 후원하는 이유도 그 점에서 기인하죠. 이에르 페스티벌의 패션 부문 후보들에게 샤넬의 메티에 다르 공방을 소개하고 우승자에게는 르사주나 르마리에와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젊은 크리에이터에게 전통적 장인정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이를 경험 삼아 그들이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거죠. 패션에서 장인정신이나 전통적 기술의 가치는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가브리엘 샤넬 여사에게 비즈니스적으로 영감을 받고 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드모아젤 샤넬에게 영감을 받지 않고 그녀의 열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샤넬에 몸담고 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대단한 것은 50년 전의 마드모아젤 샤넬의 창의력은 지금 봐도 모던하고, 전혀 시대착오적이거나 구태의연하지 않다는 거죠. 그녀가 시대를 앞서 과감하게 시도한 것은 무수합니다. 칼 라거펠트는 그런 마드모아젤 샤넬의 기질을 천재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죠.







Chanel’s Cruise in Seoul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 이곳에 전 세계 패션 피플의 발걸음과 이목이 집중되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지난 5월 4일 이곳에서 펼친 샤넬의 2015-2016년 크루즈 컬렉션 쇼에 초미의 관심이 쏠린 것. 패션계의 거장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첫 방한이라는 사실과 함께 과연 그가 한국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얻은 영감을 샤넬 크루즈 컬렉션에 어떤 식으로 녹여냈을지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은 부풀 대로 부풀었다. 먼저 알록달록 유쾌한 도트 문양의 쇼 초대장은 ‘색동’을 떠올리게 했는데, 이는 이내 ‘이번 크루즈 컬렉션에 한복에서 모티브를 얻은 요소가 가득할지도’라는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쇼장으로 들어서니, 곳곳의 원형 공간 안에 구성한 메리-고 라운드를 연상시키는 오방색의 캔디 바 모양 좌석 배정이 무언가 유쾌하고 생기 넘치는 신(scene)이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을 전했다. 실험적 팝아트 세계 또는 즐거운 놀이공원에 입장할 때 품게 되는 설레고 신선한 느낌이랄까. 통통 튀는 색상으로 연출한 런웨이의 구조적 실루엣은 우리나라의 전통적 매력과 샤넬의 미적 감각을 자연스럽게 결합해놓은 듯 보였고, 초현대적 건축물인 DDP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컬렉션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상승시킨 것은 물론이다. 이어서 이번 쇼에 특별히 초대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지젤 번천, 틸다 스윈턴을 비롯해 지드래곤, 정려원, 박신혜, 최시원 등을 포함한 셀레브러티가 쇼장에 나타나자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작동 소리가 더욱 요란해졌고, 쇼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칼 라거펠트. 매력적인 모델 수주, 귀여운 허드슨 크로닉과 함께 유쾌하게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쇼장의 흥분을 이어갈 애프터 파티 현장도 신경써 꾸몄다.
Korea in Chanel’s Cruise
“What I mean, What I mean~ Uhuuu~.” A.G. 쿡(Cook)의 경쾌하고 신나는 ‘What I Mean’ 사운드가 쇼장에 울려 퍼졌다. 드디어 샤넬 크루즈의 본격적인 한국 탐험이 시작된 것. 모델 수주의 캣워크를 필두로 칼 라거펠트는 한복을 연상시키는 실루엣에 다채로운 컬러, 고급스러움과 화려함으로 무장한 디테일의 현란한 변주를 펼쳐 보이며, 한국 고유의 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데 심취한 듯했다. 둥근 어깨선과 넓은 소매, 색동, 조각보, 누빔, 버선, 고무신 등 우리나라 전통 복식에서 모티브를 따온 디자인이 컬렉션 전반을 관통했다. 푸크시아 핑크와 코럴, 로열 블루, 민트 그린 등 눈이 시리도록 밝고 화사한 컬러 팔레트와 샤넬의 시그너처 우븐 트위드를 비롯해 리넨과 코튼, 모시를 연상시키는 오간자, 레이스 등 다양한 소재(일부 소재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한국에서 직접 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가 어우러져 그 화려함과 다채로움은 배가되었다. 그뿐 아니라 여기에 더한 자개와 나전칠기, 떨잠, 한글 그리고 단청 등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정교한 디테일은 공방 컬렉션을 능가하며 오트 쿠튀리에 샤넬의 진가를 실감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단, 전체 룩의 스타일링 요소로 대거 활용한 흑발 ‘가체’는 그 사용이 조금 과하지 않았나 싶은 ‘옥의 티’로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에서는 한복의 요소를 지나치게 차용했다는 평도 들린다. 하지만 자명한 것은 한국적 색감과 실루엣, 장식적 요소를 곳곳에 담은 이번 크루즈 컬렉션을 통해 샤넬과 칼 라거펠트가 선보인 한국 복식의 재해석은 세계 패션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한국 패션에 세계의 시선을 한층 집중시키는 데 막강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다. 칼 라거펠트의 ‘한복에 대한 오마주’를 색안경 끼고 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저는 한국의 뿌리를 좋아합니다.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샤넬 같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에서 한국의 전통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도록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한복의 아름다운 프로포션과 실루엣, 조각보 등은 제게 많은 영감을 주었죠. 그리고 큐비즘을 연상시키는 한글과 한국인이 검은 배경에 자개를 수놓는 방식은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쇼가 끝난 후 밝힌 칼 라거펠트의 소감처럼 샤넬과 칼 라거펠트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한국을 탐미했다. 혀를 내두를 만큼 정성 가득한 디테일로 구현한 차원이 다른 크리에이티비티,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도전정신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
한국으로의 여정에 동참한 샤넬 2015-2016년 크루즈 컬렉션 룩과 액세서리 디테일 컷. 한국 고유의 생활 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점이 단연 눈에 띈다.
한국으로의 여정에 동참한 샤넬 2015-2016년 크루즈 컬렉션 룩과 액세서리 디테일 컷. 한국 고유의 생활 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점이 단연 눈에 띈다.
한국으로의 여정에 동참한 샤넬 2015-2016년 크루즈 컬렉션 룩과 액세서리 디테일 컷. 한국 고유의 생활 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점이 단연 눈에 띈다.
한국으로의 여정에 동참한 샤넬 2015-2016년 크루즈 컬렉션 룩과 액세서리 디테일 컷. 한국 고유의 생활 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점이 단연 눈에 띈다.
에디터 유은정 (ejyoo@noblesse.com)
사진 제공 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