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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토리 버치

LIFESTYLE

브랜드 ‘토리 버치’의 그 토리 버치가 서울에 왔다. 한국의 고객과 기업인을 꿈꾸는 젊은 여성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방한 성격에 맞게 ‘패션이 없는’ 인터뷰로 그녀를 마주했다.

토리 버치(Tory Burch)는 2004년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하기 전부터 뉴욕 사교계의 여왕이었다. <하퍼스 바자>의 패션 에디터를 거쳐 랄프 로렌,베라 왕,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등에서 일했으며 배우 뺨치는 얼굴에 화려한 언변, 지적이고 세련된 매너까지 갖춰 늘 이슈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고급스럽지만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여성 의류 브랜드가 적다는 것에 주목했다.
이후 동경하던 1960~1970년대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클래식하면서도 보헤미안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브랜드 ‘토리 버치’를 내놓았다. 결과는 대성공. 그녀는 뉴욕 패셔니스타로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런칭한 인물이라는 수식과 더불어 각종 사교 모임에 자신이 만든 옷을 입고 나와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렸다. 물론 이런 성공엔 부유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그녀의 배경도 한몫했다. 하지만 그녀가 늘 물 흐르듯 성공만 한 건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그녀는 CEO와 디자이너를 겸하며 피나는 노력을 했다. 실제로도 해외 매체들은 그녀를 ‘자수성가’한 부호라 칭한다. 현재 브랜드 토리 버치는 북미와 유럽, 중동, 남미,아시아 등 세계 3000여 개 백화점과 편집매장에서 만날 수 있다. 한편 2009년 그녀가 설립한 토리버치 재단(Tory Burch Foundation)은 여성 기업인에게 자금과 교육, 디지털 기술 등에 접근할 수 있도록 여러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 재단은 여성 중에서도 특히 기업인을 돕는 걸까? 사실 에디터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재단의 설립자인 그녀를 만났다.

토리 버치를 설립한 이유 중엔 멋진 여성 의류 브랜드가 적었다는 것도 있지만, 여성 사업가를 돕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실제로 그런가? 그렇다. 여성 사업가를 돕는 재단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러기 위해선 탄탄한 회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2004년에 브랜드를 설립했고, 몇 년 더 준비해 2009년에 토리 버치 재단을 만들었다. 현재 재단은 여성 기업인들이 토리 버치를 비롯한 업계에서 잘나가는 기업의 투자를 받을 수 있게 하는 펠로 프로그램과 자금 대출, 교육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고 있다.

패션 브랜드와 연관된 재단이라면 브랜드의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하는 게 보통인데 참 대단하다. 정말 여성들을 돕고 싶었다. 현재 토리 버치 재단이 벌이는 일들이 내 심정을 대변한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토리 버치 재단이 운영하는 ‘토리 버치 캐피털’ 프로그램을 통해 벌써 1000명이 넘는 여성 사업가가 2500만 달러(약 260억 원)의 대출을 받았다. 또 약 150명의 여성이 골드만삭스와 토리 버치 재단이 진행하는 중소기업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런데 왜 하필 토리 버치 재단은 여성 중에서도 기업가를 돕나? 그들보다 도움이 절실한 이들이 많을 텐데.‘동기부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성 기업인을 돕는 건 그저 그런 자선 활동이 아니다. 재단이 그들을 도우면 그들에겐 스스로 도울 수(또는 지킬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재단이 여성 기업인을 도와 그들이 성공하면 결국 그것은 가족에 대한 투자로 이어진다. 또 넓게는 사회적 투자로까지 이어진다.

미국에서도 ‘유리 천장’이란 말이 쓰이는지 궁금하다. 여성이 넘어야 할 장벽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글로벌하게’ 존재한다. 선진국, 후진국이 따로 없다.

작은 부티크에서 시작해 세계적으로 성장한 기업을 이끌고 있으니 잘 알 것 같다. 이제 막기업을 꾸리려는 여성에게 가장 절실한 건 무엇일까? 자본이다. 돈을 지원받는 게 가장 힘들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면 자신감이다.

토리 버치 재단의 지원을 받아 사업이 성공한 케이스로 어떤 것이 있나? 지난해에 토리버치 재단의 펠로 프로그램에서 상금 10만 달러(약 1억7000만 원)를 받은 어느 종양학자는 ‘닥터 브라이트(Dr. Brite)’라는 이름의 천연 성분 치약을 개발해 큰 성공을 거뒀다. 또 작은 식품 회사를 운영하던 한 여성은 상금 10만 달러로 건강한 초콜릿을 만드는 연구를 시작, 회사 직원을 2배까지 늘렸다. 그 초콜릿의 이름은 ‘빅스비 바(Bixby Bar)’다. 사실 그녀가 초콜릿을 개발한 건 암에 걸린 어머니에게 건강한 간식을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짧지만 감동적인 사연이다. 나 역시 그렇게 느꼈다.

미국에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유교의 잔재가 남아 있는 아시아 나라에선 여전히 많은 여성이 자신의 열망을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아마 사회적·문화적 영향 탓이 큰 것 같다. 그들이 그걸 스스로 자각하고 드러내는 데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이 질문과 같은 경험을 실제로 한 적이 있다. 오래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였다. 당시 기자는 나를 ‘야심적’이라 표현했고, 나는 그 말이 아주 불쾌했다. 하지만 금세 깨달았다. 그것이 아주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오랫동안 난 여성이 야망을 갖는 건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고, 그래선 안 된다는 잘못된 사회적 평판을 믿고 산 것이다. 사회의 이런 이중 잣대는 여성이 동등성을 성취하기 위해 꼭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또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려면 여성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토리 버치는 이 대답을 끝내기 무섭게 스마트폰을 꺼내 한 영상을 보여줬다. 지난해에 토리 버치 재단이 만든 캠페인(#EmbraceAmbition)의 일부였다. 귀네스 팰트로와 줄리앤 무어, 리즈 위더스푼, 케리 워싱턴 등 수십 명의 명사가 나와 여성의 야망을 막는 ‘문화적 관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조금 외람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질문에 답하는 내용과 달리 당신의 목소리나 제스처등은 상당히 부드러운 것 같다. ‘현모양처’ 같은 건가?

그 단어를 아나? 그렇다. 혹시 당신의 여자친구나 어머니, 여동생 등도 현모양처 타입인가? 혹은 여성이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꼭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단, 여성 중엔 스스로 그것을 꿈꾸는 이도 많은 것 같다. 사실 현모양처 그 자체는 긍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어떤 사람이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지위를 갖는다면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내 생각도 비슷하다. 꼭 사회에서 CEO가 되어 성공해야만 여성이 자아를 실현하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현모양처가 되고자 하는 것도 좋은 야망이다.

내일 서울의 한 여대에서 강의한다. 이제껏 다양한 나라의 여대에서 사업가로서 경험이나 브랜드의 성장 과정, 토리 버치 재단과 여성의 권리 등에 대해 강의한 것으로 안다. 혹시 각 나라 여성마다 눈에 띄는 특징은 없었나? 여러 나라에서 강의했지만 대체로 학생들이 느끼는 건 비슷했다. 그들 상당수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받는 월급이 낮을 것이라고 인식했다. 정말 슬픈 일이다. 여성의 인생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딸에게 힘을 실어주고 격려해줬으면 좋겠다.

왜 아버지인가?오빠 셋과 함께 자랐다. 그리고 아버지는 늘 내게 오빠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똑같이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셨다. 내가 성공을 이룬 데엔 아버지의 영향이 상당했을 거다.

참 좋은 부모를 뒀다.(웃음)

브랜드 토리 버치의 제품 디자인부터 여러 기관을 통한 자선 활동 등 업무량이 많을 것 같다. 일과 삶의 균형은 어떻게 맞추고 있나?사실 굉장히 힘든 도전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좋은 CEO나 좋은 기업을 운영하는 것보다 가정에서 좋은 엄마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들이 셋이나 있는 걸로 안다. 집안에서 그들이 어머니의 일을 잘 이해하고 돕나? 쌍둥이 아들이 스무 살이고, 막내가 열일곱인데 지원을 많이 해준다. 외부 일로 바빠 집안에 신경을 못 쓸 때도 있는데 내가 집에 있는 게 좋겠느냐고 물으면 다들 아니라고 말한다.(웃음)

‘좋은 어머니상’이란 게 있나? 내가 하지 못한 걸 아이들에게 시키지 않는 것.

지금 답한 대로 이제껏 살아왔나? 물론이다.

회사에서 CEO와 디자이너 활동을 겸하는 것의 장점은 무엇인가?감성과 이성을 동시에, 다시 말해 좌뇌와 우뇌를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좋다. 종종 비즈니스와 디자인이 충돌하는 브랜드를 보는데, 나는 둘 다 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개인적 목표는 무엇인가?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곧 좋은 남자와 재혼한다. 그 사람도 나와 똑같이 10대 아들이 셋이나 된다. 아들만 여섯이 되는 거다.

만약 당신이 한국인이라면 남편이 당장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을 거다.앞으로 사회에서 그런 편견을 없애고 싶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왜 브랜드 토리 버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나?결코 품질만으로 고객이 토리 버치를 택한다고 보지 않는다. 합리적인 가격과 수년이 지나도 다시 꺼내 입을 수 있는 디자인과 감성 때문일 것이다. 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Noa Griff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