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펼쳐진 에르메스 2025 여름 남성복 컬렉션
한강 위에서 시작된 이른 여름. 에르메스는 그 어느 때보다 감각적이고 유연한 방식으로 새로운 계절의 문을 열었다.

한강에서 펼쳐진 에르메스 2025 여름 남성복 컬렉션.

서울에서 선보인 익스클루시브 룩.
지평선 너머로 해가 지는 4월 어느 저녁, 한강이라는 도시의 수평선 위에 에르메스 2025 여름 남성복 컬렉션이 우아하게 상륙했다. 파리에서 먼저 선보인 컬렉션에 아홉 가지 익스클루시브 룩을 더한 이번 쇼는 메종의 미학적 탐구와 도시에 대한 감각적 해석을 동시에 담아냈다. 보드워크를 따라 펼쳐진 런웨이는 여름날 산책로처럼 자연스럽고 여유로워 보였다. 베로니크 니샤니앙은 이번 시즌에도 특유의 절제된 유머와 섬세한 시선을 통해 ‘움직임’을 위한 옷을 재정의했다. 컬렉션은 바다에서 영감받은 색감으로 채워졌다. 터킨 블루, 오션, 네이비 색감 위로 말차와 리치 컬러가 부드럽게 스며들어 여름 무드를 완성한 것. 무대 뒤로는 천장에서 자연광이 쏟아져 들어와 자수의 섬세한 결을 비추며 스카프 칼라 셔츠의 유려한 실루엣을 더욱 강조했다. 램스킨 소재 스웨트셔츠 위를 가로지르는 승마 드로잉은 에르메스만의 상징적 내러티브를 시적으로 풀어냈고, 체인 디테일은 실크와 피부 위를 흘러가듯 미끄러지며 긴장감을 더했다. 이번 컬렉션은 단순히 장소를 옮겨 선보이는 데 그치지 않았다. 배우, 운동선수, 감독, 뮤지션 등 서울을 대표하는 인사가 모델들과 함께 런웨이를 걷는 장면을 통해 하우스가 지향하는 남성복의 미학과 방향성을 드러냈다. 해가 저물고 도시는 밤으로 접어들었다. 수면 위로 닻사슬이 내려앉고, 애프터 파티가 시작됐다. 반짝이는 은빛 천장 아래 음악과 퍼포먼스가 이어졌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리듬에 몸을 맡겼다. 감각과 구조, 빛과 물결, 사람과 옷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낸 이 출렁임은 단순한 쇼를 넘어 하나의 여정으로 기억될 것이다.

에르메스 맨즈 유니버스 아티스틱 디렉터 베로니크 니샤니앙. © brigtte lacombe
Interview with Véronique Nichanian
한강에서 펼쳐진 특별한 컬렉션을 위해 서울을 찾은 에르메스 맨즈 유니버스 아티스틱 디렉터 베로니크 니샤니앙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1988년부터 에르메스 남성복을 이끌어온 그녀는 여전히 타임리스한 스타일의 본질에 집중하고 있었다.
1988년부터 에르메스 남성복을 이끌고 있는데,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호기심과 창의성, 그리고 디자인에서 오는 순수한 즐거움이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남성복을 시작으로 지금은 가죽, 실크, 슈즈 등 다양한 메티에(metiers)를 총괄하는데, 그만큼 더 많은 탐구가 요구되죠. 다만 에르메스에서는 언제나 진정한 창작의 자유를 느낄 수 있기에 시간이 금세 흘러간 듯한 기분입니다.
에르메스 남성복은 트렌드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습니다. 디자인의 중심에 두는 가치가 있다면요? 매 시즌을 지난 컬렉션의 연장선으로 생각합니다. 하나의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며, 책 한 권처럼 새로운 챕터를 더한다고 볼 수 있죠. 에르메스 남성복 스타일은 세련되면서도 자연스러운 ‘스포츠 시크’입니다. 이 스타일을 지켜온 지도 벌써 36년째네요. 그리고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재입니다. 좋은 원단과 가죽, 정확한 재단은 옷의 본질을 결정하죠. 저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앞으로도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곤 합니다. 유행을 따르지 않되, 시간이 지나도 계속 입고 싶은 옷을 만들고 싶습니다.
2019년 이후 6년 만에 서울에서 남성 쇼가 열렸습니다. 다시 서울을 찾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서울에 다시 한번 오고 싶었습니다. 6년 전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모습이 인상 깊었고, 창작자로서 큰 자극이 되기도 했죠. 도시의 변화, 새로운 건축물,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잠실 한강공원을 쇼장으로 선택한 이유도 그 연장선입니다. 이번 컬렉션은 바닷가, 여름, 휴가 같은 테마에서 출발했기에 자연과 물, 일몰이 함께하는 한강의 풍경이 무대에 잘 어울렸어요.
이번 쇼에 한국 인사들도 런웨이에 함께 섰어요. 배우, 뮤지션, 운동선수 등 열 명이 런웨이에 섰습니다. 저는 이런 구성이 참 좋아요. 전문 모델은 아니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에르메스의 옷이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옷이라는 점을 더 잘 전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국적, 체형, 연령에 상관없이 다양성은 지금 시대에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에르메스는 어떤 의미인가요? 에르메스는 창의성과 정확성, 그리고 따스함이 공존하는 집과도 같습니다. 장인정신과 혁신, 유머와 세심함까지. 오랜 역사를 이어온 브랜드지만, 언제나 현재를 이야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 움직이는 곳이에요. 에르메스는 제게 시적인 감성과 실용적 철학이 만나는 매우 특별한 공간입니다.
에디터 이주이(jylee@noblesse.com)
사진 에르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