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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건축 읽기

LIFESTYLE

건축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 건축 이야기. 도심 속 건축의 진정한 의미 찾기, 그리고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어떤 건축이 필요한지 생각해보는 시간이다.

 

서울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건축이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인구밀도에 버금가는 건축밀도가 아닐까. 가끔 그 많은 건축 중 무엇이 가장 근사하고 또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호기심 삼아 할 만한 질문이지만 답변은 어렵다. 건축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좋은 건축과 나쁜 건축은 그 가치가 서로 뒤바뀐다. 또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작고 소박한 건축이 보석 같은 공간으로 사랑받는가 하면, 디자인이 화려한 엄청난 규모의 건축이 도시의 골칫거리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강남대로 신논현역 사거리에 가면 빌딩 두 채가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서 있다. 붉은색 교보타워와 하얀색 어반하이브.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교보타워가 먼저 등장했고, 훨씬 작은 규모의 어반하이브를 지은 건 한참 후의 일이다. 하지만 현재 이 거리를 점유한 존재감으론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오히려 3800개의 구멍이 난 외벽을 통해 도시에 신선한 경관을 부여한 어반하이브를 좀 더 의미 있는 작품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교보타워는 큰 덩치와 자극적 색감에도 불구하고, 폐쇄적이며 주변을 압도하는 인상이 강한 탓에 대중적으로 또 전문가 집단의 평가에서도 작품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 분위기다. 두 건물을 비교해보면 도시의 건축이 갖는 의미, 지향할 바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건축의 본질은 클라이언트의 자본에 종속되어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 그렇지만 그 자본적 가치를 넘어선 무형의 의미를 획득해야 도시에서 사랑받는 (건축) 작품이 되지 않을까? 물론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아름다운 건축, 서울의 시간을 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 연작 ‘한양진경’ 중 ‘선유봉’(영조 18년, 1742년)이라는 그림이 있다. 조선시대 선유도는 섬이 아닌, 그림처럼 해발고도 40m의 작은 봉우리가 솟아 있는 육지로 30여 가구가 경작하며 사는 마을이었다. 그런데 1925년 대홍수가 난 이후 일제의 한강 개수 사업에 의해 주민을 이주시키고 채석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한강 개발로 봉우리가 잘려나간 이 땅은 작은 섬으로 바뀌게 되고, 1978년 수도정수장을 지어 22년간 운영하다 2000년 폐쇄했다. 그 이후 정수장 터를 재활용하는 친환경 공원 조성 계획을 수립했고, 그것이 지금의 선유도공원이 되었다. 선유도공원은 서울의 ‘시간성’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역사를 음미하며 산책하기 좋은 생태 공원이다. 정수장의 골조를 남겨 생태 식물의 터전으로 삼음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한 공간에 결합해놓았다. 도시가 지나쳐온 시공간적 유산을 미래로 이어나가는 장소랄까. 지금의 역할, 현재성에 머물지 않고 과거의 모습과 용도를 이해하게 되면 공간의 의미와 가치는 더 확장된다. 이런 시공간을 초월한 장소적 체험은 유서 깊은 도시 서울에 반드시 필요한 공간의 키워드다.
선유도공원이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수백 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면 능동 어린이대공원의 ‘꿈마루’는 서울이 현대화된 196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시간을 담은 건축이다. 건축가 나상진이 설계한 이 건물은 1970년 준공 당시 서울에 하나밖에 없는 골프장 서울컨트리클럽의 클럽하우스였다. 하지만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지시로 골프장을 어린이대공원으로 용도 변경하면서 1973년부터 대공원 관리사무소 겸 교양관으로 사용했다. 2009년 서울시는 본래의 용도와 전혀 상관없는 기능으로 수십 년을 버텨온 이 건물을 철거하고 신축할 것을 결정했다. 그런데 논의 과정 중 건축적 유산으로 존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이를 받아들여 리모델링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공원과 어울리지 않게 버려진 채 외로이 서 있던 건물이 2011년 어느 화창한 봄날, 공원 관리사무소 겸 북 카페와 예쁜 정원을 갖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시민 공모를 통해 ‘꿈마루’라는 이름도 지었다. 컨트리클럽 클럽하우스로 위세를 누려야 할 공간인데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오랜 세월 죄인처럼 숨어 있다 이제야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대중 앞에 당당하게 나서게 된 것이다. 꿈마루를 거닐다 보면 건축의 예술적 가치는 외형이 아닌 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문득 겉과 속이 너무 달라 놀라게 되는 건물 하나가 떠오른다.

왼쪽부터_ 선유도공원, 꿈마루

걸작과 망작의 경계에 서서
지하철 1호선 남영역 근처에 자리한 깔끔한 검은 벽돌 건물. 정확한 주소는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71길 37. 1970~1980년대 주변에선 그저 평범한 회사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어마무시한 치안본부 대공분실이었고 현재는 경찰청인권보호센터로 쓰이고 있다. 애초에 대간첩 수사를 목적으로 지었고, 이후 민주화 운동 인사를 잡아다 고문한 곳으로 유명하다. 대공분실 건물은 사람의 편리와 행복이 아닌 불편과 고통을 야기하는 공간이다. 건축은 본래 사람에게 편리와 행복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하므로 그런 의미에서 이곳을 과연 건축이라 부를 수 있을지 판단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검은 벽돌로 마감한 외부만 놓고 보면 그 ‘건축미’에 마음이 끌린다. 전체적 비례와 기능성, 미관을 고려한 창호 배열, 매스의 균형감 등에서 꽤 실력 있는 전문가의 솜씨가 느껴진다. 이 문제적 건물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김수근이다. 뛰어난 실력으로 1960~1970년대를 풍미했지만 그의 몇몇 작품은 아직도 걸작과 망작의 경계를 오간다. 또 다른 예가 세운상가다. 일제강점기에 미군의 폭격에 대비해 사람을 몰아내고 소개 공지(화염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워놓은 군사 용지)로 남겨놓은 땅. 한국전쟁 때에는 피란민의 판자촌으로, 이후에는 종삼으로 불린 사창가로 유명했던 지역. 1967년 서울시장 김현욱은 서른다섯의 패기만만한 건축가 김수근과 의기투합해 종로와 퇴계로에 이르는 넓고 긴 이 땅에 서울을 세계적 도시로 만들어줄 야심작을 짓기로 한다. 르코르뷔지에가 주창한 현대건축의 이상론과 당시의 실험적 이론을 집약한 획기적 건축이 바로 세운상가다. 지상 1층은 자동차를 위해 비우고 그 위에 쾌적한 인공 대지를 구축해 보행자 통로를 만든 다음 아파트와 상가, 학교, 심지어 파출소와 소방서까지 갖춘 작은 도시 같은 건축을 구상했다. 하지만 시행자의 입맛에 따라 중간에 많은 계획이 틀어지고 변경, 수정된 결과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위압적 크기에 우울한 기운이 감도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때마침 한강변과 강남을 중심으로 아파트 열풍이 불었고, 용산전자상가를 개발하면서 건물 전체는 빠르게 슬럼화되어 이내 흉물로 전락해버렸다. 짧은 영광의 순간을 지나 오랜 시간 골칫거리 취급을 받은 세운상가. 최근 대대적 재개발 계획이 백지화되고 소규모 분할 방식으로 기존 건물을 고쳐 쓰기로 결정했다. 세운상가는 시대의 끝자락에 종의 멸망을 지켜보며 홀로 살아남은 거대한 공룡 같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을 어떻게 보듬느냐에 따라 삭막한 콘크리트 시대의 유산은 얼마든지 아름다운 도시 건축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그 방법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때다.

왼쪽부터_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윤동주문학관

현대건축에서 한국 전통을 찾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콘크리트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건축과 기와, 토담, 우아한 지붕선으로 설명하는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을 결합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이다. 1960년대 이후 전통과 현대건축을 접목한 무수한 시도가 대부분 범작에 그치고, 어색한 짜깁기나 조악한 모방으로 비판받은 이유는 바로 이 프랑스 대사관의 위용을 따라갈 수 없었던 탓이 크다. 최초의 시도가 최고가 되어버린 케이스라고 해야 할까. 서른여덟의 젊은 나이에 당시 프랑스의 쟁쟁한 건축가를 제치고 대사관 설계권을 따낸 김중업은 이 집을 통해 1965년 프랑스 정부에서 국가공로훈장과 기사 작위를 받았다. 한국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에 대해 우리는 종종 지붕의 거대한 부피감에도 집 전체가 무거워 보이지 않고 가볍게 하늘을 향해 떠 있는 듯한 미학적 측면에 감탄하곤 한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조형미 역시 이 원칙을 따랐다. 콘크리트를 이용해 무게감을 부여했지만 날아갈 듯 가뿐한 전통 건축의 특징을 오묘하게 재현해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경우 외형의 양식으로 전통성을 발현한다면 최근 완공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건물의 배치와 주변 지역과의 조화 등 공간성에서 전통성을 찾아볼 수 있다. 미술관은 정면이 따로 없다. 모든 방향이 정면일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벽으로 구획되는 건축의 물리적 크기나 볼륨에 집착하지 않고 외부 공간을 끌어들여 미술관의 중심이 되게 했다. 미술관이 도시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미술관의 일부가 된다는 컨셉이다. 본래 이 땅은 조선 왕실 사무를 총괄하는 종친부가 있던 자리다. 일제강점기에는 군사시설이 있었고 해방 후에는 국군통합병원을 세웠다. 1970년대에는 보안사령부와 기무사령부가 들어섰는데 이후 고립된 섬처럼 높은 담을 두르고 지역 분위기를 위압적으로 조성했다. 설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땅의 기운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큰 단독 건물을 세워 존재감을 과시하는 대신 기무사령부의 벽돌 건물과 뒤편 종친부의 전통 건축을 그대로 남기고 지하 공간을 활용하면서 지상에는 마당과 건물 몇 채만 드문드문 서 있는 여유로운 풍경을 만들었다. 옛 궁궐과 한옥이 모여 있는 지역적 특성을 감안해 자연스러운 보행자의 흐름을 유도한 것이다. 미술관이기 이전에 역사와 지역성을 고려한 공공장소로서의 책임감을 먼저 고민한 결과다. 지역 주민과 방문자들이 미술관을 건축이 아닌 장소로 인식하게 하는 것. 이와 같은 계획은 현대 예술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 대중의 참여와 친밀감이란 측면에서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사색과 힐링, 건축적 분위기
부암동 언덕에 위치한 작은 집에서도 건축적 의미 이전에 장소에 대한 의미 있는 사색이 가능하다. 윤동주문학관은 시인이 파놓은 깊은 우물 같은 곳으로, 좋은 시를 읽을 때 느끼는 충만감을 건물을 통해서도 경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준다. 작고 초라한 동네 수도 가압장이 한 편의 시와 같은 공간으로 변신했다는 탄생 스토리부터 시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건물 안의 더럽고 낡은 것들이 그렇게 더럽고 낡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곳이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길 위의 집이라는 이미지를 띠기 때문. 실제로 집 안에 들어서면 시인의 대표작 ‘자화상’ 속의 ‘우물’ 안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윤동주는 후쿠오카의 감옥과 벗어나고 싶은 자의식의 세계를 우물로 표현했다. 덩치는 작지만 그 안에 넓고 깊은 공간이 담겨 있다. 특히 눈 오는 날 이곳을 찾으면 완벽한 적막으로 둘러싸인 사색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주변의 소음이 일시에 멈추고 공간과 내가 일대일로 대면하고 있는 듯한 묘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절대적 침묵의 공간으로서 종묘가 갖는 건축적 의미도 각별하다. 종묘는 산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위해 만든 공간이다. 조선의 600년 역사 속에서 왕의 신주가 점점 늘어나며 수평으로 조금씩 확장돼 지금에 이르렀다. 일반적 집의 비례와는 전혀 맞지 않는 기형적 형태이나, 그 안에 삶과 죽음이 모두 담겨 있으며 지금도 시간이 흐른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이보다 명확한 건축은 없는 것 같다. 눈발이 가볍게 흩날리거나 보슬비가 내리는 날 혼자 종묘 정전을 마주하면 현실을 벗어난 영계의 공간을 체험하는 기분마저 든다. 지척에 혼잡한 도심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게 하는 무거운 침묵이 이곳의 특별한 내력을 스스로 말하고 있는 듯하다. 어쨌든 도시의 번잡함과 소란스러움을 피해 휴식을 취하고 싶은 도시에서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힐링 공간이다. 안내사의 다소 요란한 설명 없이 조용히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토요일 오전 산책을 강추한다. 종묘에서 출발해 앞서 소개한 것 중 몇몇 마음에 드는 건축을 탐사하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주말 나들이가 되지 않을까. 글 최준석(건축가, 건축사사무소 NAAU 대표)

 

서울의 랜드마크를 말하다

건축사사무소 노드의 김원기 대표, 건축사사무소 NAAU의 최준석·서종원 대표. 3인의 건축가가 ‘서울의 랜드마크와 좋은 건축’에 대해 나눈 담론. 이 대화는 “현재 서울의 랜드마크는 무엇인가?”라는 최초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왼쪽부터_ 서종원, 최준석, 김원기 건축가

서종원 먼저 랜드마크의 정의를 생각해보죠.
최준석 랜드마크의 사전적 의미는 경계표죠. 멀리서 잘 보이고, 내가 어디쯤 있는지 알려주는 것. 파리의 에펠탑이나 바르셀로나의 성가족 성당 같은, 서울로 치면 N서울타워.
김원기 건축가라면 랜드마크에 대한 미시적 접근도 필요해요. 크기(높이)뿐 아니라 힘과 권력 또는 역사적 시간이 담긴 공간. 도시의 트렌드를 반영한 건축도 하나의 랜드마크로 볼 수 있죠.
서종원 또 어떤 건물이 랜드마크가 되기 위해선 대중의 보편적 공감을 얻어야 해요. 어디에 가면 뭐가 있고, 그 건물은 이런 기능(역할)을 한다는. 물론 높고 큰 것, 형태가 독특한 것이 시선을 끌긴 하겠지만 절대적 기준이 되는 건 아니에요.
에디터 최근 국내외의 화제 속에 오픈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그 밖에 서울시청 신청사와 세빛둥둥섬 등 이른바 문제적 건축을 랜드마크라 말할 수 있을까요?
서종원 건축계에서도 많은 논란이 이는 것으로 보아 보편적 공감을 얻는 데는 이미 실패한 듯 보이네요.
최준석 너무 보이는 것에 치중한 건축이에요. 건축이 진정한 생명력과 가치를 지니려면 그 속의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해요. 겉으로 요란하지 않아도 일단 안에 들어가면, 실체를 경험하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것이 진짜죠. 랜드마크에는 센스마크, 타임마크도 속해 있는데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어요.
서종원 더 큰 문제는 국민의 세금으로 지었다는 것이죠. 일종의 공공 건축인 셈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이 건축에 상징성, 공익성, 공공의 요구가 반영되었는지도 따져봐야 해요.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죠.
에디터 파리의 에펠탑도 처음에는 흉물스럽다 여겼지만 지금은 세계적 랜드마크가 되었죠. 건축 자체의 가치와 의미를 기대해볼 순 없나요?
최준석 에펠탑은 건축이 아닙니다. 1889년 파리 엑스포를 기념해 설립한 일종의 오브제예요. 귀스타브 에펠은 건축가가 아닌 철골 교량 기술자였잖아요. 반면 DDP 등은 명확한 용도가 있는 건축이에요. 하지만 사용성 면에서 프로그램이 너무 허술하죠.
서종원 DDP의 경우 건축적으로 아주 뛰어나긴 해요. 자하 하디드가 본인의 역량을 100% 이상 발휘했어요. 사용의 문제를 조형미가 완벽히 커버해주죠.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청 신청사는 더욱 안타까운데, 일제강점기에 지은 구청사의 시간성과 연결되는 건축의 당위성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어요.
김원기 사실 지금 시점에서 그 건축을 랜드마크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예요. 시간이 좀 더 흘러 DDP나 세빛둥둥섬에 적당한 프로그램(내부 시설)이 들어간 후 그 공간들이 인간의 행태와 사회적·문화적 관계를 맺으며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어요. 너무 비판적으로 보지 말고 새로운 건축에 기대를 가져보면 어떨까요? DDP의 건축적 맥락을 묻는, 실은 건축적 맥락이 없다고 지적하는 수많은 질문에 자하 하디드는 “Why not?”이라고 되물었어요. 우문현답이죠. 우리가 기대하고 생각하는 맥락과 다르다고 가치를 폄하할 순 없어요.
서종원 어떤 건물을 짓고, 그 건물이 사람의 일상에 들어와 하나의 기억이자 공동의 지표가 되며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나 시간이 필요해요. 하지만 위의 문제적 건물은 ‘이건 랜드마크로 지었으니까 랜드마크로 해’ 하는 강제성이 느껴져 기분이 씁쓸합니다. 최근 부암동에 위치한 윤동주문학관을 방문했어요. 건축양식만 보면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은데, 윤동주 시인의 시와 사상이 절묘하게 녹아나 참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감동을 저만 느끼는 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어요. 이런 게 진정한 랜드마크 아닐까요?
최준석 맞아요. 부암동에 카페와 레스토랑도 있고 다른 미술관도 많지만 근처에 가면 무엇보다 먼저 생각나는 곳이죠. 한 시인과 그의 시간 그리고 장소.
서종원 시각적 랜드마크보다 자극적인 건 정서적 랜드마크입니다. 가로수길에는 사전적 의미의 근사한 랜드마크 건물은 없어요. 하지만 트렌드세터의 상징적 랜드마크로 불리죠.
김원기 멋진 남자와 여자가 테라스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 그 옆에 개 두 마리가 함께하는 여유로운 삶의 풍경이 그곳의 랜드마크 아니던가요?
에디터 건축적 외관에만 신경 쓰지 말고 정서적인 가치로 랜드마크를 찾아라. 흥미롭네요.
최준석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등장한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이야기를 덧붙일게요. 지하로 검게 파 내려간 메모리홀 같은 느낌의 공간인데, 요즘 여기가 핫 스페이스가 되었어요. 대단한 기획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물을 채우고 검은 대리석 벽면에 테러 희생자의 이름을 새기는 정도로 디테일을 처리했는데 그 포스가 아주 대단합니다.
김원기 낮게 깔리거나, 땅속으로 파고들어 없어지는 랜드마크. 신선하지요? 경건한 사유적 분위기가 더욱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최준석 볼륨이나 형태로 건축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흔한 방식이고, 그걸로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없어요. 앞으로는 윤동주문학관이나 종묘 정전처럼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소와 건축이 랜드마크의 기능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사진 김흥수(인물), 송봉희(건물)  일러스트레이션 김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