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의 사회
설문조사 공화국이 된 대한민국, 그 유용성과 방식에 대해 2명의 전문가에게 물었다.

“대한민국은 설문조사 공화국이다.” 한 정치 평론가의 말이다. 과장이 아니다. 한국은 매일 아침 보도되는 숫자에 울고 웃는다. ±1%에 세상이 뒤바뀐 듯 언론들이 받아쓴다. 포털에 매일 업데이트되는 관련 기사만 수십 페이지. 분 단위로 올라가고 클릭이 쌓인다. 폴생폴사(Poll生Poll死)란 말이 나온 이유다. 이제 대중은 설문조사를 신뢰한다. 숫자에 담긴 문맥을 읽는다. 최초의 설문조사는 세금 징수와 징집을 위한 통계조사(census)였다. 국가 재정과 전쟁의 수단이었던 것이 21세기엔 가장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불확실한 시대에 지뢰를 예측하는 방향타가 된 것이다. 정치인들은 여론조사 결과에 목을 맨다. 캠프에 설문조사 전문가 한 명씩 배치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숫자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찾는다. 피아를 구분한다. 말의 강도를 정한다. 20대 총선과 19대 대선을 거치며 대중은 준전문가가 됐다. 확장이 무엇인지, 박스에 갇힌 지지율이 무엇인지 안다. 정부나 공공 기관의 주요 정책도 설문조사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지역을 개발할지, 어디에 병원을 지을지 설문조사를 통해 수요와 정책 호응 예측을 한다. 정치와 정책, 이 두 가지가 대중에게 가장 알려진 설문조사의 활용 예지만 큰손은 따로 있다. 기업 마케팅이다. 기업에 설문조사 결과는 전시 지도다. 적의 진지와 지형적 유불리를 솎아내는 과정이다. 21세기 기업들은 상시 자신의 이미지와 인지도를 조사한다. 대중에게 원하는 것을 묻는다. 그들이 싫어하는 것을 파악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제품을 출시한다. 도박이 확률의 게임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현재 국내 설문조사 마켓은 6000억 원 수준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단단하게 성장했다. 국내 설문조사업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대 대선과 각종 기업 마케팅에서의 성과가 이를 증명한다. 설문조사는 진화한다. 당신의 생각보다 과학적이다. 체계적이다. 이미 우리 생활의 범위에 들어왔다. 그 유용성과 미래에 대해 2명의 전문가에게 물었다.
한국갤럽 연구3본부_ 허진재 이사
업계에 몸담은 지 얼마나 됐나? 1992년에 시작했다. 그동안 여섯 번 정권이 바뀌고 총선도 그만치 치렀다.
설문조사 마켓이 많이 넓어졌다. 25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범위도 넓어졌고 빈도도 많아졌다. 1990년대에 설문조사란 특별한 것이었다. 이젠 대중의 영역에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업체도 많이 늘었고. 코라(KORA)라고 한국여론조사협회가 있다. 회원 업체가 대략 40개 정도다.
19대 대선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신문에 보도되면 종합편성채널에서 온종일 받아 보도했다. 저녁 뉴스까지 이어지고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도 종일 숫자 이야기였다. 뉴스를 다루는 매체가 늘었다. 종합편성채널의 힘이 컸다. 낮 시간 논객들에게 좋은 소재가 된 것 같다. 이전엔 특정 이슈로 언론사가 의뢰하면 거기에서만 결과를 보도했다. 노출이 적었다고 할까. 그런데 이젠 설문조사업체들이 자체 조사를 한다. 의뢰가 없어도 대중이 궁금해할 법한 이야기를 파고든다. 갤럽도 2012년부터 자체 기획으로 매주 조사를 하고 있다. 특정 이슈를 정하고 1000명의 표본으로 설문을 진행한다.
물론 업체와 언론의 노력이 중요했겠지만 그것만으론 설명이 안 된다. 지금 대중은 설문조사의 영향력을 인지하고 신뢰를 보낸다. 그리고 숫자에 숨은 맥락을 읽어내려고 하는 것 같다. 한국 국민의 수준이 굉장히 높다. 이전까지 숫자만 봤다면 지금은 거기에 담긴 의미를 해석한다. 나름의 분석을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교류한다. 우리는 모든 게시물과 포스팅을 참고한다. 그런 것이 많은 도움을 준다. 대중이 가장 쉽게 접하는 부분은 역시 정치다. 그러나 이젠 범위가 훨씬 넓어진 것 같다. 정치는 사회 여론 조사에 속한다. 물론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는 제일 높지만 전체 파이에선 작은 부분에 속한다. 큰손은 여전히 기업 마케팅이다. 기업들은 브랜드 관리와 제품 출시를 위해 상시적으로 설문조사를 한다. 자체 데이터라 노출은 쉽지 않지만 거기에 재미있는 것이 많다.
기업이 설문조사를 활용해 성공한 케이스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기업이 설문조사를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인가? 특정 기업이나 브랜드를 말하긴 어렵지만 여러 전례가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봉지 커피의 절취선은 사선 형태였다. 그 때문에 내용물이 쏟아지거나 뜯기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그 브랜드는 설문조사를 통해 가로로 절취하면 편할 것 같다는 의견을 수렴했고, 현재 거의 모든 봉지 커피가 가로 절취선을 사용하고 있다. 설문조사는 기업의 시간과 비용, 실패를 줄여준다.
리얼미터_ 이택수 대표
여론조사를 시작한 건 언제인가? 계기가 있다면? 학부 전공이 신문방송학이었다. 자연스레 해당 분야의 시청률, 신문 발행 부수 등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원을 마치고 연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리얼미터는 창업한 지 12년 됐다.
리얼미터는 최근 몇 년 새 가장 대중적인 여론조사 기관이 됐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리얼미터는 국내 최초로 2005년 주간 단위 정치 여론 조사를 시작했다. 2009년부터는 역시 최초로 일간 단위 정치 여론 조사를 했다. 대중의 실시간 반응, 그것이 리얼미터의 강점이다. 언론에 인용되는 빈도가 제일 높고 정확도도 인정받은 것 같다. 이번 대선의 경우 득표율 예측 기관 중 유일하게 1~5위 순위와 오차 범위 내 득표율까지 맞혔다.
리얼미터는 SNS나 뉴미디어(팟캐스트)에도 꾸준히 자사의 콘텐츠를 노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20~30대 젊은 층에게 특히 선호도가 높은 것 같다. 또한 진보적 설문조사 기관이라는 평도 있다. 이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독자와 소통하고 설명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이건 조사의 정확도 향상, 신뢰도 제고, 무엇보다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콘텐츠를 노출하는 이유는 조사 결과가 우리 사회와 정치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투명해야 한다. 그래서 성향이나 연령층을 고려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유권자를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19대 대선은 유독 여론조사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뜨거웠다.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전과 다르게 느낀 대중의 반응이 있다면?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갑작스레 치렀고 오랜만에 맞는 다자 구도였다.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단일화나 연대 등의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더 뜨거웠다고 생각한다. 유권자들은 여러 가능성을 고려해야 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더욱 열을 올린 이유라고 생각한다.
민감하게 반응한 건 대중만이 아니다. 정당과 정치인들도 조사 결과에 예민했다. 리얼미터도 몇 차례 소송이 있었다. 이런 것은 정치적 이유 때문인가? 특정 당에서 제기한 소송은 최근 무혐의로 결론 났다. 흔히 여론조사 결과가 밴드왜건(선두에게 지지가 몰리는 현상) 효과를 일으킨다고 하는데 대처 방법이 잘못됐다. 고소나 폄훼는 지지층은 물론 중도층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직 성숙기에 접어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신뢰를 받지 못하는 설문조사업체도 있다. 주로 조사 방식이나 설문 대상 선정이 공정하지 않다는 평을 받는 곳이다. 최근 서울대학교 폴랩 한규섭 교수팀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기관 편향성을 보면 기관별로 특정 정치인에게 유리한 결과가 도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데, 이는 쉽게 지나쳐선 안 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선거 이후 조사 결과를 분석하는 학자들이 늘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은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는 정치뿐 아니라 다양한 범위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넓어진 분야 중 이색적인 곳이 있다면? 일반적 면접 조사 방식이 아니라 고객을 가장한 조사가 공공 기관이나 기업 마케팅을 위해 이뤄진다. 이동통신사들의 단말기 지원금 여부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조사원들이 고객으로 가장해 ‘미스터리 쇼핑’을 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이를 위해 방송통신위원회는 주 6일에 걸쳐 하루 최대 30여 명의 조사원을 현장에 투입하는데, 그들의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지역별로 한 명씩 순환 배치하는 방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은 증권사나 보험사, 은행 등 금융 분야에서도 시도하고 있다.
설문조사는 사회에 어떤 이익을 주고 있나? 혹은 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정치와 기업의 경우에도 설명을 부탁한다. 정치인과 정부, 기업에 민의를 전달할 수 있는 사회적 방법이다. 이번 조기 대선도 여론조사가 없었다면 치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치와 사회의 경우 민주주의에 크게 활용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설문조사는 줄곧 진화해왔다. 앞으로 어떤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측하나? 지난 대선에서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팀과 신경정치학이란 새로운 방법론으로 부동층의 심리를 분석해 예측에 활용했다. 이는 유권자 자신도 모르는 내면의 심리를 다양한 실험, 즉 눈동자의 움직임을 1/1000초까지 관찰하는 등 자극에 대한 반응을 통해 알아보는 조사였는데, 상당히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했다. 아울러 최근 데이터가 방대해지고 익명화된 정보를 분석하는 빅데이터 분야로 시장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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