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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라는 무대에서

LIFESTYLE

프랭클린 애덤은 “해보지 않고는 당신이 무엇을
해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원하는 바가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도전해보라는 의미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진부한 문구를 열정의
도전기이자 성공 스토리로 바꿔놓은 이들을 만났다.
꿈의 크기가 인생의 가치를 높인다.
풍요롭고 흥미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원대한 꿈을 꾸어라.
<노블레스>는 언제나 세계를 향해 꿈을 펼치는 이에게
열렬한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코오롱 인더스트리 FnC 부문 상무한경
요즘 하이패션업계는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한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하지만 코오롱 FnC는 한발 앞선 시점인 2012년에 버려진 옷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옷과 소품을 제작하는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RE;CODE)를 런칭했습니다. 래코드 런칭을 진두지휘한 당신에게 런칭 스토리를 듣고 싶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환경문제가 크게 대두될 거라고 생각지 못했습니다. 재고의 소각으로 인한 환경 이슈나 그에 따른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이 래코드 런칭의 출발이었죠. SPA 브랜드, 일명 패스트 패션이 주는 공급 과잉 문제나 빠르게 돌아가는 패션 사이클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는데, 재고 처리가 최대 난관이었어요. 당시엔 업사이클링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기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패션 회사로서 모범이 되는, 또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이디어를 냈어요.
작년 말 래코드가 갤러리아 명품관에 팝업 스토어를 오픈했을 때 인기가 상당했어요. 사실 처음 래코드 런칭 초기에는 내심 디자인의 한계에 부딪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무너뜨린 감각적인 디자인과 고객의 뜨거운 반응에 놀랐습니다. 고객을 사로잡은 래코드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재고를 활용해 다시 제품을 디자인한다는 건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래코드의 옷이 또다시 재고가 되면 안 되니까요. 래코드의 옷은 디자인에도 신경 쓰지만, 래코드만의 문화(무브먼트)를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래코드에서 꾸준히 진행하는 ‘리테이블’이라는 워크숍을 예로 들어볼게요. 킨포크 테이블처럼 친구나 가족이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는 것과 같은 모습인데, 버려지는 것으로 자신만의 뭔가를 만들며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해 래코드의 가치를 이해하고 즐기는 자리죠. 래코드의 행보 중 또 다른 의미 있는 활동을 꼽는다면, 굿윌스토어라는 사회적 기업의 생산 활동을 발달 장애우와 함께한 것입니다. 래코드 옷을 만드는 과정 중 중요한 부분인 ‘해체’를 담당했는데, 다양한 사회 구성원에게 손을 내밀어보자는 취지였어요. 7년이 지난 지금은 한 부모 가정, 새터민 등도 포함시켜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패션을 주제로 한 교육과 전시 등 플랫폼 비즈니스 활동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래코드는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2년 전 프랑스의 유명 편집숍 ‘메르시’에서 팝업 스토어를 운영한 것이 대표적이죠. 관광객, 특히 패션 관계자가 파리에 가면 메르시에 꼭 들르는데 한국 브랜드인 래코드가 입점한 걸 보고 컨셉과 제품에 많은 관심을 표했습니다. 올해 래코드는 6월 프랑스에서 열린 안티패션에 참가해 한국을 대표하는 지속 가능 브랜드로서 강연을 했고, 환경을 생각하는 프랑스 부아뷔셰 디자인 건축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9월에 파리 레클레어 편집숍과 베를린 더스토어에서 또 한번 래코드 상품의 가치를 알릴 계획입니다.
나를 세 단어로 표현한다면? 아이디어 부자, 열정의 소유자, 실행력. 패션 그룹을 이끄는 리더로서 한국의 패션 산업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과거 우리는 많은 해외 브랜드를 받아들이고 소개하는 환경에 익숙했지만, 이젠 우리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K-패션’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함께할 사람을 찾는 역할을 리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추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패션 그 이상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에피그램이나 래코드 같은 브랜드처럼. 저는 가끔 글로벌 대표 브랜드가 래코드와 협업하자며 러브 콜을 보내는 상상을 합니다. 그런데 그 꿈이 곧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브랜드에도, 제게도 큰 기쁨이고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기회가 되겠죠.

오보이스트 함경
2009년 독일 만하임 리하르트 라우슈만 국제 오보에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 1위, 16세로 최연소 수상. 10년 전, 이 젊은 연주자의 수상 소식은 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관악기, 그중 오보에는 한국인을 넘어 아시아계 음악가 자체가 적은 분야이기 때문. 이후 2010년 독일 전국 음악대학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2위 입상, 심사위원 특별상,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콘서바토리 국제 콩쿠르 오보에 부문 1위를 비롯해 2013년 제1회 스위스 무리 국제 바순 오보에 콩쿠르 우승과 하인츠 홀리거상 수상 등 매해 클래식계에 새로운 뉴스를 안겼다. 보수적인 유럽 음악계에서 빨리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반가운 일이다. 오보이스트 함경은 서울예고 재학 중 유학을 떠났다. 15세 때 독일 트로싱엔 국립음대에 입학했고 이후 베를린, 하노버 그리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거쳐 현재 핀란드 헬싱키에서 머물고 있다. 그는 2018년부터 핀란드 방송교향악단 오보에 수석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휘자 이반 피셰르(Ivan Fischer)가 이끄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수석, 영국 BBC 심포니, 버밍엄 심포니에서 객원 수석을 겸하고 있다. 올 초부터는 헬싱키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함경이 생각하기에 인생의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는 독일 최고 권위의 2017년 뮌헨 ARD 국제 콩쿠르 수상이다. “1위 없는 2위지만 오보이스트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상이죠. 그간 참가한 콩쿠르가 준비 과정이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스승인 니컬러스 대니얼(Nicholas Daniel)과 도미니크 볼렌베버(Dominik Wollenweber)가 모두 수상한 대회라 더욱 뜻깊습니다.” 그는 연주자에게 열정이 있다면 실력은 절로 따라온다고 믿는다. 지금처럼 세계를 돌아다니며 활동하려면 영어와 독어, 네덜란드어 등 다국어를 연마하는 것 외에 연주에서 항상 기대 이상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클래식은 서양음악이에요. 당연히 유럽인보다 훨씬 더 준비해야 하고,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가장 큰 경쟁은 자신과의 싸움이죠.” 그리고 항상 소프라노 바브라 해니건(Barbara Hannigan)의 말을 되새긴다. “음악가는 음악을 대할 때 성별, 나이, 위치가 다 없어지고 오로지 색깔, 이미지, 형체가 되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음악 앞에선 내 색깔을 찾는 것도, 작곡가의 의도를 이해하려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죠. 저와 작품 사이의 밸런스를 잡는 것이 제겐 가장 큰 도전입니다.” 함경은 올 연말에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함께 첫 데뷔 앨범을 낼 예정이다. 또 자신처럼 해외에서 활약 중인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플루티스트 조성현과 함께 2012년부터 목관 앙상블 ‘파이츠 퀸텟’으로 설 새로운 무대도 찾고 있다. 1960년대 말 ‘정트리오’를 시작으로 한국 클래식 연주자들이 해외로 진출한 지 50여 년.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성과가 적지 않지만, 적어도 관악기 부문에선 함경을 시작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지표가 보인다. 음악을 즐기는 청년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지금, 오보이스트 함경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유니스텔라 대표 박은경
행운도 준비된 자에게 찾아가는 법이다. 유니스텔라 박은경 대표는 전 세계 셀레브러티, 인플루언서가 사랑하는 네일업계의 스타다. 2013년 9월에 런칭한 유니스텔라 인스타그램(@nail_unistella) 팔로어는 31만 명이 넘는다. “모델 아이린에게 깨진 유리 조각을 모티브로 한 글라스 네일을 해줬는데, 그녀가 2015년 S/S 뉴욕 컬렉션을 누비면서 글라스 네일이 주목받게 됐어요. 해외 매체의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고, 1년 뒤 네일 아티스트로는 국내 최초로 뉴욕 패션 위크에 진출했습니다.” 그녀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네일 디자인을 개발했다. 다이아몬드 파편 네일, 철사를 구부려 붙인 금줄 와이어 네일, 아트 펜으로 낙서하듯 그린 그라피티 네일이 대표적. 많은 종류의 패턴을 가장 작은 캔버스인 손톱에 표현하는 재능, 과감하고 진취적인 그녀의 성격은 네일 주얼리까지 탄생시켰다. “휘발성을 지닌 네일 아트를 어떻게 하면 영원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제작했어요. 현재 공식 온라인 몰에서만 판매하는데, 고객의 배송지를 살펴보면 미국, 영국, 중국, 홍콩 등 지역이 다채로워요. 최근엔 이스라엘 고객도 있었죠. 네일 아트가 모든 여성에게 사랑받는 분야라는 데 자부심을 느꼈고, 전 세계 도시를 돌며 팝업 스토어를 열고 싶다는 원대한 목표도 세웠어요. 몇 달 전 홍콩의 유명 셀레브러티인 힐러리 추이(Hilary Tsui)가 오픈한 편집숍 ‘Her’에서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었죠. 일주일 동안 예약제로 진행했는데,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어요. 다른 나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분이 있을 정도로요.” 그녀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 나이키와 협업하기를 바란다며, 나이키 로고로 만든 주얼리도 있다고 귀띔했다. “넷플릭스와도 컬래버레이션을 해보고 싶어요. 네일 아트를 받는 2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오프라인 이벤트를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농담처럼 말하지만, 쉽지 않은 목표를 세울수록 에너지가 샘솟는 그녀에겐 결코 불가능한 미션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그녀가 꿈처럼 말한 프로젝트를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블 스튜디오 비주얼 디렉터 앤디 박
비주얼, 그중에서도 특히 영화 속 캐릭터를 시각화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릴 때 만화책을 정말 좋아했어요. 언젠가 만화 그리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죠. UCLA 시절 샌디에이고 코믹콘에 참가해 처음 포트폴리오를 소개했는데, <데드풀> 원작자 롭 리펠드(Rob Liefeld)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이후 비디오게임 ‘갓 오브 워’ 컨셉 아트 작업에 참여하면서 10년 가까이 만화와 거리가 멀어졌다가, 마블 스튜디오에서 어벤저스를 위한 아티스트 그룹을 만들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죠. 그렇게 2010년 마블 스튜디오에 입사해 올해 벌써 23번째 영화의 비주얼 작업을 마쳤습니다. 각 캐릭터의 스토리와 아이덴티티를 비주얼로 구현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을 텐데요. 캐릭터를 시각화할 때 가장 중시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첫 번째로는 일러스트요. 모든 것의 기초이기 때문이죠. 완성한 이미지에 확신이 들면 디자인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캐릭터를 완벽히 파악하는 일이에요. 원작 만화를 비주얼 모티브로 하는데, 캐릭터를 깊이 이해할수록 한층 다양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어요. 여기에 수십 가지 디자인 요소를 탐구하는 과정을 거쳐 포인트를 선별하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힘들지만 늘 흥미로운 작업이죠. 해외에서 활동하는 동양인이자 한국인으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요? 사실 전 대다수의 한국인, 동양인이 흔히 직면하는 문제를 겪어보지 못했어요. 예술 분야에서는 인종, 나이 같은 조건에 상관없이 오직 결과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존중받거든요. 여전히 저는 제 작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제가 만든 캐릭터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이를 만날 때마다 힘을 얻어요. 캐릭터란 영화 속 가상 인물임에도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거나 가족 간 공감과 화합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매개체죠. 훗날 마블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싶다는 학생이 많은데, 끊임없이 조언을 해주려 해요. 저도 한때 그들과 같은 꿈을 꿨으니까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성희
에디터 초창기에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성희를 개인적으로 뉴욕에서 만난 적이 있다. 2010년경이니 그녀가 뉴욕에 진출하기 위해 막 맨해튼에 발을 디딘 시기였을 것이다. 당시 그녀는 이미 업계 톱으로 꼽히는 ‘실장님’이었지만, 그럼에도 설렘과 함께 묘한 긴장감이 엿보였다. 한국에서 충분히 인정받는 커리어를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임한 만큼 만감이 교차하지 않았을까. 30대 후반에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지낼 결심을 했으니 보통의 의지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에서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그녀가 왜 어려운 도전을 택한 걸까. “1990년대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길에 들어설 때부터 늘 외국 매거진 화보를 보며 크리에이터의 세계를 동경했어요. ‘나도 그들처럼 멋진 작업을 하고 싶다’라고 막연히 꿈꾸곤 했죠. 메이크업 스쿨에 다닐 때도 언젠가 크리스찬 디올 백스테이지에서 메이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수업을 같이 듣던 동료들은 그런 제 꿈을 비웃었지만요.” 세계적 쇼의 백스테이지 작업을 어린 동료들은 ‘불가능’이라 여겼을지 모르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5년에 걸쳐 해외 진출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뉴욕 땅을 밟은 지 햇수로 10여 년이 흘렀다. 지레 포기하거나 조용히 잊혀질 거라 생각한 이도 있겠지만, 그녀는 낯선 땅에서 혼자 묵묵히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세계적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래스와 사진가 스티븐 마이젤, 패션 스타일리스트 칼 템플러 등과 작업할 때는 감격에 겨워 화장실에서 혼자 울고 웃기도 했다고. 2016년에는 세계적 헤어 스타일리스트 귀도 팔라우, 메이크업 아티스트 다이앤 켄들 등이 소속된 아티스트 에이전시 줄리언 왓슨(Julian Watson)에 소속되어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성과를 얻었다. 그녀의 존재감 역시 세계 유수의 매거진 화보와 DKNY, 스포트막스, 데시구엘 등 캠페인 비주얼을 통해 패션 월드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젠 뉴욕에서도 입지를 다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신진 아티스트 같은 설렘 속에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또 다른 꿈을 꾼다. 뉴욕 진출 초창기와 달라진 한국에 대한 관심은 그녀에게 에너지를 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약 5년 전부터 한류 스타의 인기와 함께 K-뷰티에 대한 관심도가 피부로 느껴질 만큼 높아졌어요. 모델에게 제가 한국에서 온 메이크업 아티스트라고 하면 K-뷰티 제품에 대해 많이 물어봐요. 이와 함께 새로운 제 꿈도 점점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한국 화장품 발전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또 한번 새로운 꿈을 꾸는 아티스트 박성희. 그녀가 만들어갈 앞으로의 10년이 자못 기대되는 이유다.

라엘 공동 CEO 백양희
한국인이 만든 생리대가 미국 아마존에서 판매 1위라는 뉴스를 접했을 때 매우 신선했다. 빠르게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2016년 LA에서 창업해 2017년 6월 첫 제품을 아마존에서 선보였는데, 6개월 만에 20만 개를 판매하며 1위에 올랐다. 아마존 이용자들이 브랜드 인지도보다 구매 후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 덕분이다. 아마존은 구매 고객의 만족도를 바탕으로 가장 우수한 제품에 ‘아마존 초이스’ 상을 수여하는데, 라엘은 이 배지도 달았다. 지난 4월에는 미국의 대형 유통 체인 ‘타깃’에 입점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50개 주 전역 1850개 지점에서 라엘을 만나게 된 것이다. 놀라운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라엘을 공동 창업한 세 사람의 이력이 화려하다. 라엘을 함께 키워보자고 처음 제안한 건 아네스 안이다. 그녀는 한국에서 오랜 기간 기자 생활을 하며 쌓은 통찰력으로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탁월했다. 자기 계발 분야에서 5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이기도 하다. 아네스 안과 출판 작업을 함께 하던 원빈나가 최고 제품 책임자로 뜻을 맞춘 뒤 내가 글로벌 세일즈 마케팅 담당으로 합류했다. 한국은 2017년 생리대 파동 이후 소비자의 기준이 까다로워진 데다 유기농 생리대 브랜드도 많아졌다. 치열한 경쟁을 예상했을 텐데, 한국에 런칭한 계기는 무엇인가. 생리대 파동 이슈가 터지자 아마존을 통해 직구하는 한국인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한국 마켓에 이름이 서서히 알려졌다. 요즘 소비자는 워낙 스마트하기에 많은 유기농 브랜드 속에서도 옥석을 가려낼 거라 믿었다. 라엘은 피부가 닿는 생리대의 톱 시트를 텍사스의 좋은 토양에서 재배한 유기농 순면으로 만든다. 기존 생리대의 유해 물질을 배제한 것은 물론이다. 미국 FDA, OCS 국제 유기농 인증, 스위스 SGS, 한국식약처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의 인증도 받았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내년 초엔 한국 소비자의 요청으로 제작하는 건강한 탐폰과 호르몬 불균형에 따른 피부 트러블을 완화하는 스킨케어를 선보일 계획이다. 무엇보다 여성의 건강한 삶을 디자인하는 기업으로 키우고, 사회 공헌 활동에도 최선을 다하려 한다.

배우 크리스틴 리
넷플릭스의 좀비 드라마 <블랙 썸머>에는 대담한 모습을 보여주는 주인공 ‘우경선’이 있다. 바로 이 역할을 한국계 캐나다 배우 크리스틴 리(이수형)가 맡았다. 할리우드 평단은 지금껏 해외 영화와 드라마에서 사실상 주류가 되지 못한 아시아계와 의존적 여성 캐릭터를 벗어던진 그녀를 눈여겨보고 있다. 크리스틴은 극중 배역의 이름을 실제 엄마의 이름에서 따왔고, 한국어 대사를 직접 쓰고 있다. ‘미드’인데도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 자랑스러운 주연에게 우리는 영어로 질문했고, 한국어로 답변을 받았다.

어떻게 연기를 하게 됐나요? 캐나다와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다 열네 살 무렵 방과 후 교실에서 연기를 배웠습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연극에서 조연을 맡았는데, 난생처음 내가 잘하는 게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후 매년 오디션에 참가했고, 연기를 위해 뉴욕에 갔습니다.
<블랙 썸머>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요? 인정받은 비결도 궁금해요. 10대 때부터 영어를 공부해서인지 에세이를 작성할 때나 토론할 땐 영어가 더 편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배우로서 감정을 표현할 때는 한국어가 더 편합니다. 어른이 되기 전, 인식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던 시절에 한국어를 썼기 때문일까요. 지금 캐나다에 살면서 넷플릭스 <블랙 썸머>에서 한국어로 연기하는 것이 특권 같습니다. 이 역할이 처음엔 한국인이 아니었어요. 제작사는 비영어권 주연을 찾기 위해 오디션을 치렀고, 제가 역할을 맡은 뒤 한국인이 되었습니다. 지금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이 작품을 주목하는 건, 한국인을 떠나 경선의 인간성에 공감하는 것 같아요. 아시아계, 여성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대담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에요. 배우로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오늘의 크리스틴 리는 어떻게 살고 있나요? 배우라는 흔히 가지 않는 길을 걷는다는 게 외롭고 무서울 때가 있어요. 하지만 남에게 인정받기보다는 꿋꿋이 계속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끔 힘들 때는 다른 예술가의 인터뷰나 작품을 보면서 위로받곤 합니다. 그렇게 훌륭한 작품과 연기자가 있기에 나 또한 배우의 길을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현실의 크리스틴은 두려워도 무조건 뛰어드는 ‘깡 센 여자’ 경선 같아요. 뻔뻔함의 미(美)를 아는 여자랄까요.(웃음)
한국인을 벗어나 글로벌 시민으로서 꼭 필요한 자격은 무엇일까요? 공감과 이해죠. 글로벌 시대를 즐기려면 남을 비판하기보다는 문화적 차이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비판의 시각을 버리면 스스로 더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주어야 새로운 것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제 삶의 모토예요. 나의 사랑과 예술 활동을 아낌없이 보여줄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과 나누는 행복한 마음이 꼭 필요하죠.
앞으로 계획은? 영어권 시청자를 위한 한국 시대극을 만들고 싶어요. 프랑스 < 레 미제라블 >이나 러시아 < 마지막 황제 >를 보면 한국의 시대극도 영어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드라마틱한 명성황후의 삶을 그려도 좋겠죠. <블랙 썸머>를 비롯해 많은 스태프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봐주시고, 계속 발전하는 한국계 아티스트의 활동을 응원해주세요!

모델 황준영
2019년 F/W 시즌에 데뷔하자마자 프라다, 발렌티노, 벨루티 등 빅 브랜드의 무대에 오른 모델 황준영. 이를 증명하듯 패션 위크가 끝나자 모델스닷컴(models.com) 쇼 런웨이 랭킹 아시아 남자 모델 순위 가장 상위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올해 스무 살이 된 앳된 얼굴의 그가 세계적 패션 하우스를 사로잡은 매력은 무엇일까. “랭킹에 올랐을 때 정말 감개무량했어요. 꿈만 같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죠. 프라다 쇼에 선다는 메일을 받았을 땐 너무 행복해서 새벽에 밀라노 거리를 뛰어다녔어요.” 첫 시즌의 영광을 맘껏 누리지도 못했는데, 2020년 S/S 시즌이 되자 그는 다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가장 기억에 남은 건 루이 비통 쇼에 오른 일이에요. 데뷔할 때부터 루이 비통 런웨이에 서는 순간을 꿈꿨는데, 그 바람이 이뤄진 거죠!” 이렇듯 모델 황준영은 조용하지만 넘치는 존재감으로 많은 러브 콜을 받고 있다. “제 매력은 잘 웃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캐스팅 디렉터들이 말하길,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고요.” 벨루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스 반 아쉐는 황준영이 현대적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극찬하며, 그를 쇼 오프닝 모델로 기용했다. 순수한 열정을 지닌 신인 황준영은 9월부터 뉴욕에 머물며 해외 활동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을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에서 모델스닷컴 전체 ‘Top 50 Men’ 순위에 오를 날도 머지않음을 알 수 있다.

발레리나 홍지민
1748년 창립한 덴마크 왕립 발레단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극장 중 하나다. 한국인의 입단은 홍지민이 최초이며, 지금도 유일한 아시아 여성 단원이다. 상위 15%에만 허락되는 솔로이스트로서 종신 계약도 체결했다. 오늘의 타이틀은 화려하지만, 그녀는 10대에 홀로 떠난 캐나다 발레학교 유학 중 졸업을 앞두고 다리 부상으로 춤추기를 멈춘 4년의 힘든 시간이 있었다. 그녀는 그 기간을 자신의 내면을 바로 보게 해준 고마운 시간이라 말한다. 어쩌면 홍지민 특유의 풍부한 감정 연기를 만든 비결이 아닐까 싶다. 지난 시즌 그녀는 유명 안무가 웨인 맥그레거(Wayne McGregor)의 <봄의 제전(Afte Rite)> 유럽 초연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자식 중 누구를 살릴지 골라야 하는 고통스러운 역할. 동료들도 홍지민의 연기를 보고 눈물을 쏟았다. “무대는 너무 정직해서 저를 거짓으로 보일 수 없는 곳이에요.” 그녀는 한국인임이 자랑스럽고, 한국인이기에 표현할 수 있는 정서가 있다고 믿는다. 또 발레를 잘하고 싶기에 현실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 한다. 그래서 최근 비영리단체 왓 댄스 캔 두 프로젝트(What Dance Can Do Project), 아노스 아프리카(Anno’s Africa)와 함께 케냐로 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아이들에게 발레를 가르치고 함께 공연하며, 예술가로서 다잡은 믿음과 바람을 확인했다. “파블로 피카소는 ‘예술이 영혼에 묻은 일상의 먼지를 닦아준다’고 했어요. 제가 그만한 자격이 되는 예술가로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현대무용가 정훈목
정훈목은 2002년 한국현대무용협회 신인상을 거머쥔 이래 한국에서 주목받은 현대무용가다. 그가 세계로 활동 무대를 옮긴 건,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한 신진 안무가 자격으로 같은 해 오스트리아 비엔나 페스티벌에 참여했을 때다. 우연히 세계적 창작 그룹 벨기에 피핑톰 컴퍼니의 오디션 소식을 듣고 닷새간 엄중한 테스트에 임했고, 입단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당시 심사위원이 ‘당신 완전히 미쳤어!(You were just incredibly crazy)!’라며 환영해준 것이 기억에 남아요.” 겪어보니 더 미쳐야 가능한 세계였다. 이곳은 연출자 외에 위계를 두지 않고 단원들이 공동 창작자로 임한다. 흡사 연극이나 영화처럼 캐릭터를 스스로 개발해야 하고, 매회 즉흥적으로 끌어내야 하기에 재능과 노력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 정훈목은 지난 10년간 5개 작품으로 40개국 124개 도시를 누볐다. 그가 말하는 글로벌 무대에 서기 위한 필수 조건은 자신만의 특별함을 찾는 것이다. “언어의 한계를 넘어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강력한 칼자루를 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인간관계의 융합을 신경 써야죠. 아티스트 스스로 아집을 깨야 할 때가 많습니다.” 미래에는 자신만의 창작단을 만들어 작품을 펼치고 싶다는 정훈목.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을 가진 그는 글로벌 유목민 그 자체가 아닐는지.

페이스트리 셰프 김지호
미슐랭 2스타를 받은 뉴욕의 미식 스폿 더 모던(The Modern) 레스토랑. 이곳의 헤드이자 세계적 스타 셰프 어브램 비셀(Abram Bissell)이 선택한 디저트 책임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주인공은 바로 김지호 셰프. 16년 전 보스턴 공장에서 쿠키를 굽던 그는 현재 뉴욕에서 각광받는 페이스트리 셰프로 성장했다.

미국행을 결정한 계기가 궁금하다. 한국 특급 호텔에 입사해 일반 셰프로 일을 시작했지만, 업무가 맞지 않아 디저트 분야로 전향했다. 페이스트리 셰프로 일한 지 9년 차에 접어드니 스스로 나태해지더라. < The Pastry Chef(페이스트리 셰프) >라는 책이 내게 영감을 주었다. 최신 디저트 트렌드와 요리법을 현지에서 배우고 싶었다..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런 내게 셰프로 일할 기회를 준 사람이 보스턴에 위치한 레스팔리어(L’Espalier) 총괄 셰프 프랭크 맥셀랜드(Frank McCelland)다. 그는 내가 미국에서 페이스트리 셰프로 자리 잡기까지 필요한 장비와 식자재를 아낌없이 지원해줬다. 유명한 레스토랑을 방문해보라며 출장을 보내줄 정도였다.
‘더 모던’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2013년 ‘고든 램지 앳 더 런던’ 페이스트리 총괄 셰프로 일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 자리를 옮긴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이직 제의가 들어온 곳이 ‘더 모던’이다. 최종 면접인 디저트 테이스팅에서 일곱 코스 중 하나로 헤이즐넛 초콜릿을 만들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대표가 헤이즐넛을 싫어한다더라.(웃음) 그는 내 디저트를 맛본 뒤 “당신은 내가 헤이즐넛을 좋아하게 만든 첫 번째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최고 찬사였다.
자신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독특한 창의성과 예민한 미각. 이를 위해 늘 새로운 요리책을 사서 공부하고 부지런히 여행을 다닌다. 동료의 피드백을 잘 수용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당신의 시그너처 디저트를 소개해달라. 최근 페이스트리업계의 트렌드는 ‘세이버리(savory)’다. 트러플, 셀러리, 토마토, 우엉 등 향미가 진한 식자재를 디저트에 사용하는 것이다. 카프레제 샐러드를 재해석해 만든 디저트도 그중 하나다. 그린 토마토 소르베와 바질에 모차렐라 크림을 얹어 신선한 맛과 향을 극대화했다.
한국에서 활동할 계획은 없나? 지난봄 레스케이프 호텔과 협업을 진행했는데 젊은 셰프들의 열정과 창의력이 대단하더라. 내가 외국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을 고국에 돌려줄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

바리스타 전주연
지난 6월, 전 세계 60여 개국이 참여하는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orld Barista Championship, 이하 WBC) 경기가 끝나고 영예의 수상자가 단상에 올랐다. 키 큰 서양인 사이에서 트로피를 높이 든 작은 동양인. 챔피언십 역대 두 번째 여성 우승자이자 최초의 한국인, 전주연 바리스타다. 그녀는 칠전팔기의 아이콘이다. WBC 출전권을 얻기 위해 2010년부터 올해까지 쉼 없이 국내 대회에 도전했다. 작년에는 첫 우승을 거머쥐며 꿈에 그리던 WBC에 진출했지만, 14위라는 아쉬운 성적으로 무대를 내려와야 했다. “슬럼프에 빠진 적은 없어요. 목표가 뚜렷한 만큼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올해 긴장보다는 즐기는 마음으로 도전한 국내 대회에서 그녀는 우승을 차지했고 다시 한번 WBC 무대에 올랐다. 심사위원을 테이블 위에 앉히는 당돌한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커피 파우더에서 추출한 다당류를 넣은 커피로 창작 음료 부문에서 만점을 받은 그녀는 3000명의 후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10여 년이 걸린 만큼 정말 행복했습니다. 경기장 스크린에 제 이름과 함께 적힌 ‘South Korea’를 보니 가슴이 벅차오르더군요.” 대회는 끝났지만 그녀의 도전은 현재진행 중이다. 브라질, 콜롬비아 등 남미의 커피 농장을 여행하며 한국에 소개할 원두를 선별하고 있다고.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국내 스페셜티 커피 시장의 가능성을 알리고 싶은 것도 그녀의 꿈이다.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길에 더 큰 의미가 있으니 그 과정도 함께 즐기고요.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반드시 목표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산업 디자이너 유영규
20년 전, 삼성전자가 애니콜 미니폴더 SCH-A100을 출시했다. 일명 ‘깍두기폰’이라 불린 이 휴대폰은 알루미늄 소재의 미니멀 디자인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당시 삼성전자에 근무하던 유영규 디자이너의 작품이었다. 간결한 디자인 미학을 펼친 그를 알아본 기업은 나이키, LG전자, 아이리버, 마이크로소프트 등 굵직한 글로벌 브랜드. 특히 2012년, 그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한 MS에서는 자사의 디자인 미래를 이끌 차세대 디자이너 4명 중 한 명으로 유영규를 소개했다. MS에서 작업한 홀로렌즈는 제품 특성상 부품이 많고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단순한 기능미를 살려 눈길을 끌었다. 나이키 퓨얼 밴드에는 그가 참여해 개발한 인비저블 LED 디스플레이를 적용했다. 어느 기업에서나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그의 손길을 거친 제품을 보면 간결함, 소박함, 고급스러움이 균형을 이루어 놀랍기만 하다. “매력적인 심플함,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 이 두 가지는 디자이너가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지만 가장 지키기 어려운 과제죠. 과도한 형태와 불필요한 장식으로 생기는 시각적 과부하를 지양하려 노력해요. 다행히 여러 기업에서 절제된 디자인에 숨은 디테일을 미니멀로 여기는 제 정서를 좋아하고 이해해줬어요.” 현재 그는 디자인 스튜디오 클라우드앤코를 이끌며 오프닝 세레모니, 코카콜라, 핀란드 슈퍼셀 등 세계적 브랜드와 협업하며 자신만의 디자인 언어를 전파하고 있다. 나아가 자신처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디자이너를 양성하기 위한 일대일 멘토링 시스템을 진행한다. “후배들을 애플, 구글, MS 등으로 진출하게 했어요. 제가 그들에게 일깨워준 가장 중요한 진리는 즐겁고 행복해지기 위해 디자인을 하라는 것입니다.”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김희원
밀라노 도무스 아카데미에서 인테리어 & 리빙 디자인을 공부하고 알레산드로 멘디니 스튜디오에서 일을 시작했다. 커틀러리, 조명, 가구, 건축물 외관 등 디자인에 참여했다. 이곳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짧게는 1년 반에서 길게는 3년까지 소요된다. 하나의 작업을 완성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수정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지금 작업도 비슷한 프로세스를 적용한다. 그 후 파리로 넘어가 개인 작업을 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었나? 나만의 디자인 언어로 디오라마(축소된 풍경)를 만들고 싶었다. 파리의 빈집을 구해 공간에 필요한 요소를 디자인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다. 누군가의 창문, 문, 체어, 미러, 캔들 등 작업으로 발전시켰다. 대표작 ‘누군가의 창문’ 시리즈는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나? 1~3년 이상 같은 공간을 방문하며 나만의 시선으로 공간을 재해석해 담은 사진 작업이다. 창문 사진을 벽에 붙임으로써 막힌 공간에 창문이 있는 것 같은 착시 효과와 공간의 확장성을 불러일으킨다. 2012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관에 사진 설치 작가로 초청받으며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창문’ 시리즈 중 하나인 밀라노 현대미술관의 창문 작품을 본 미국의 큐레이터에 의해 발탁되었다. 그 후 밀라노 로사나 오를란디 갤러리를 통해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 참가했다. 작품을 설치했을 때 다른 공간에 있는 느낌, 누군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 시간성과 새로운 기술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작업할 때 지키는 원칙이 있다면? 삶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을 일기, 사진, 영상으로 담으며 시간을 두고 다듬고 수정해 본질과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나와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순간, 새로운 작업에 그대로 표현되는 듯하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나? 나만의 언어로 표현한 ‘누군가의’ 시리즈로 디오라마를 만들어가고 싶다.

 

에디터 < 노블레스 > 편집부
디자인 마혜리  캘리그래피 김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