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래된 가게들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오래된 가게가 트렌드에 밀려 점점 사라지고 있는 지금, 그 나름의 철학으로 수백 년을 이끌어온 세계의 오래된 가게들을 소개한다. 앞으로 3개월 동안 이어질 이 칼럼의 포문을 스페인과 일본, 체코에 있는 식당과 찻집으로 연다.
총 지배인 안토니오 곤살레스 (가운데 푸른 넥타이)와 함께한 보틴 식구들
1 보틴의 대표 메뉴인 새끼 돼지 구이 요리 2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으로 인정받은 기네스북 인증서 3 오랜 전통이 느껴지는 보틴의 실내 4 1887년 당시의 보틴 식구들. 5 280여 년 전 개업 당시 만든 오븐이 여전히 조리에 사용된다.
기네스북 그 레스토랑_ 스페인 마드리드, 보틴(Botin)
보틴은 기네스북이 인정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이다. 1725년 프랑스인 장 보틴이 마드리드의 마요르 광장 외곽에 처음 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한 자리에서 300년 가까이 레스토랑을 운영했다는 얘기다. 1725년이면 조선에서 영조가 즉위해 똑똑한 신하들을 불러모으고 탕평책을 펼치던 해다. 메뉴까지 그대로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자리에서 300여 년을 이어온 끈기는 기네스북 기록을 10개 더 준다 해도 어딘가 부족하다. 이곳은 헤밍웨이가 자주 찾은 레스토랑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글을 쓰다 막힐 때마다 이곳에 와서 새끼 돼지 구이 요리와 함께 와인을 마셨다(실제로 헤밍웨이는 1926년 <해는 또다시 뜬다(The Sun also Rises)>에서 “우리는 보틴에서 밥을 먹었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레스토랑 중 하나다. 우리는 와인을 곁들여 새끼 돼지 구이를 먹었다”고 썼다). 그런가 하면 프란시스코 고야는 무명 시절 여기서 접시닦이를 했다. 그러니까 그가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를 구상하던 어떤 지점이 바로 이곳일지 모른다. 어찌 됐든 보틴의 주인 장 보틴은 18세기 말 가업을 물려줄 후손이 없어 부인의 조카에게 이곳을 넘겨줬다. 레스토랑 입구에 ‘Sobrino de Botin(보틴 씨네 조카)’이라는 간판이 붙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다 19세기 말 이곳의 주방장이던 스페인인 에밀리오 곤살레스에게 다시 넘어간다. 우리 같으면 가게를 인수하고 이름부터 갈겠지만, 그는 명민하게 이름과 요리법을 그대로 고수해 이곳을 세상에서 가장 역사가 긴 레스토랑으로 만들었다. 먹물을 가미한 오징어 요리나 달걀을 곁들인 마늘 수프,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건조한 하몽 등 스페인의 일반 가정에서 흔히 먹는 요리가 이곳의 주메뉴다. 물론 여길 찾는 많은 사람이 가장 열광하는 메뉴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익힌 새끼 돼지 구이와 양고기. 특히 새끼 돼지 구이는 어미 젖 외엔 어떤 것도 먹이지 않은, 태어난 지 한 달이 채 안 된 놈을 재료로 쓰는데 어미 돼지에게 어찌나 좋은 채소를 먹였는지 잡내 없는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한다. 보틴의 총지배인 안토니오 곤살레스는 가게의 장수 비결을 묻자 “손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담담히 답했다. 그는 손님이 레스토랑에 들어와 편안하게 전통을 느끼고, 뭔가를 마음에 담아가도록 하는 것이 그렇게 좋단다. 요리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레스토랑의 독특한 분위기와 오랜 전통에 대한 평가는 누구나 비슷할 거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선 280여 년 전 개업 당시 만든 오븐이 아직도 쉴 새 없이 새끼 돼지를 구워낸다. 또 새끼 돼지를 굽고 오븐을 데우는 데는 꼭 참나무만 사용한다. 이 역시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이다. 한편 실내는 오래된 레스토랑답게 곳곳에서 낡은 티가 흐른다. 레스토랑 곳곳의 손때 묻은 집기는 그대로 장식품으로 쓴다. 위층과 아래층을 잇는 계단은 수백 년 세월의 무게에 반질반질해져 이젠 아예 거울 같다. 하루에 약 500명, 마드리드 현지인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보틴을 찾는다. 점심시간은 1시~4시, 저녁시간은 8시~12시까지다. 이는 우리보다 2~3시간 늦게 밥을 먹는 스페인의 문화 때문이다. webwww.botin.es
1 수백 년 된 차 항아리들이 옛 모습 그대로 보관돼 있는 쓰엔의 차 저장소 2, 3 수백 년 된 차 항아리들이 옛 모습 그대로 보관돼 있는 쓰엔의 차 저장소 4 오랜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낡은 철제 차 주전자 5 호젓한 분위기를 풍기는 쓰엔의 외관 모습
국보급 찻집_ 일본 교토, 쓰엔(Tsuen)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찻집이다. 우지차(교토 우지 시에서 재배하는 최고급 녹차) 전문점으로 1160년에 창업했으니 벌써 854년이 지났다. 100~200년 된 가게가 수두룩한 교토에서도 단연 ‘큰형’뻘로 일본인의 장인정신을 말할 때 ‘모범 답안’으로 삼으면 좋은 집이다. 그 옛날 일본 간사이 지방의 교토와 나라를 왕래하기 위해선 우지 강에 놓인 우지교를 건너야 했다는데, 당시 행인들이 다리를 건너기 전 차를 마시며 쉬던 공간이 지금의 쓰엔이 됐다. 이곳은 창업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모든 메뉴에 우지의 명물 마차를 사용하고 있다. 우지 마차 특유의 대나무 향에 빠진 마니아들이 지난 수백 년간 이 집을 키웠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가 하면 우리에겐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일화로 친숙한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년)와 에도 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년)도 이곳에서 차를 마셨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곳의 11대 주인에게 자신의 찻자리에서 사용할 물을 떠오게 했다는 일화(히데요시의 찻물을 떠온다는 건 철저한 ‘신임’을 받았다는 의미로, 이곳의 주인은 강에 사람이 없는 새벽 4시에 물을 길었다)는 일본에서도 TV를 통해 여러 번 방송됐다. 당시 히데요시를 위해 특수 제작한 두레박(츠루베)은 현재까지도 이 집의 가보로 소중히 보존하고 있으며, 마차 ‘다이코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존칭 ‘다이코’에서 따온 것으로 지금껏 일본 내 어떤 찻집에서도 이렇게 강력한 이름은 쓰지 못했다. 현재 쓰엔의 주인 쓰엔 유스케는 창업자의 24대손으로, 아버지 쓰엔 료타로의 뒤를 이어 3년여 전부터 가업을 잇고 있다. 그는 수백 년간 쓰엔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로 ‘가게를 무리하게 확장하지 않은 것’을 꼽았고, 앞으로도 그쪽으론 흥미가 없다고 전했다. 쓰엔의 현재 건물은 1672년에 지은 것으로, 실내엔 800년 넘게 사용한 가마솥과 400년이 넘은 차 항아리 등 ‘국보급’ 유물이 아무렇지 않게 진열돼 있다. 물론 이 때문에 손님들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은 고작 5~6개밖에 되지 않는다. webwww.tsuentea.com
1 하루 1000잔 이상 팔린다는 우 메드비드쿠의 올드고트 흑맥주 2, 4 1466년 개점한 우 메드비드쿠의 외관 3, 5 별다른 인테리어 디자인 없이 오로지 마시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것이 맥주다_체코 프라하, 우 메드비드쿠(U Medvidku)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하우스 맥줏집이다. 548년 전인 1466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애초 양조장이던 건물을 카바레로, 다시 직접 맥주를 만들어 파는 맥줏집(지금은 소규모 호텔까지 겸하고 있다)으로 바꾼 다소 변덕스러운 이력을 지니고 있으며, 세계에서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이 가장 많은 국가의 맥줏집답게 실내 또한 운동장만 한 크기(350석 규모)를 자랑한다. 우 메드비드쿠가 유럽의 여느 오래된 맥줏집과 결정적으로 다른 한 가지는 100년 넘게 사용한 옛 오크통을 이용해 가게에서 직접 맥주를 만들고 보관하는 전통 방식을 따른다는 거다. 실제로 이 집은 1948년부터 1989년까지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수백 년간 유지해온 전통 맥주 양조 공법을 포기하고 대량생산 방식을 따르며 많은 팬을 잃었다. 하지만 1993년 현 사장인 얀 고에텔이 불현듯 오크통을 이용한 전통 맥주 생산 공법을 따르기로 하면서 옛 가게의 명성을 되찾았고, 지난 20여 년간 천고의 노력 끝에 지금은 프라하를 대표하는 하우스 맥줏집으로 재기해 유럽의 골수 맥주 팬을 가게로 끌어들이고 있다. 우 메드비드쿠에 간다면 가장 먼저 맛봐야 할 건 단연 올드고트(Oldgott)라 불리는 흑맥주다. 1819년 처음 생산해 200여 년간 사랑받아온 이 맥주는 지금도 하루 1000잔 이상 꾸준히 팔리며, 체코인에게 ‘액체로 만든 빵’이라 불린다. 거품이 매우 크리미해 휘핑한 생크림을 떠오르게 하는 올드고트는 가게의 인기 요리 콜레뇨(체코식 족발 요리. 우리나라에선 돼지 발을 사용하지만 체코에선 돼지 정강이로 만든다)에 곁들이면 더 환상적인 맛을 낸다. 우 메드비드쿠의 얀 고에텔 사장은 오랫동안 가게를 유지해올 수 있었던 이유로 “단순히 맥주를 파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체코 전통 맥주의 내일을 연다는 생각으로 맥주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강단 있게 말했다. 이는 우 메드비드쿠가 지난 500여 년간 귀중한 전통을 지키며 맥주로 사람들을 매혹시켜온 어떤 지점과 그리 멀지 않다. webwww.umedvidku.cz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