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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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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기타를 하나 사고 싶은데 어떤 걸 사야 하나요?” “중학생인 아이가 자꾸 일렉트릭 기타를 사달라고 하는데 어떡하죠?” 40년 동안 기타를 쳐온 나는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래서 나의 첫 기타 구매기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가 스스로 모은 돈으로 산 첫 기타.

지상의 낙원
중학교 시절 일렉트릭 기타는 모든 남학생에게 천국의 문을 여는 꿈같은 물건이었다. 앰프의 볼륨을 최고로 높여 유리창이 흔들릴 정도로 기타를 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해외 유명 록 밴드의 기타리스트 사진을 보며 언젠가 그들의 악기를 가지는 꿈을 꿨고, 그들의 헤어스타일과 가죽 재킷 등 반항적인 모든 것이 내게는 종교와도 같았다. 대부분의 록 기타리스트는 깁슨 레스 폴(Gibson Les Paul)이나 펜더 스트래토캐스터(Fender Stratocaster)를 마셜(Marshall) 앰프에 연결해 찌그러뜨린 소리를 가장 아름다운 록 사운드라고 여겼다. 그 소리에 악 쓰듯 찢어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최고의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당시 그런 음악을 듣는 것이 나에게는 최고의 행복이었다.
그와 더불어 종로에 있는 낙원상가는 내게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깁슨과 펜더 악기가 그곳에 있었고, 수많은 장발의 뮤지션이 일당을 벌기 위해 모였다. 그땐 잘 몰랐지만 그곳은 많은 동성애자에게 만남의 장소였으며,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예술적인 곳이었다. 빡빡머리에 땀내 나는 교복을 입은 중학생이 수도 없이 가게를 기웃거리며 가격을 물어보고 눈치 보며 펜더나 깁슨 기타를 쳐볼 수 있느냐고 물었고, 가게 주인들은 사지 못할 걸 직감적으로 알기에 귀찮아하면서도 마지못해 한번 쳐보게 해줬다.그렇게 눈물겹게 몇 번 악기를 만지고 돌아와서는 그 소리에 잠 못 이루고 친구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형용사를 구사하며 긴 한숨 섞인 담배 연기와 함께 황홀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상표가 없는 기타를 시작으로 그 후 갖게 된 유명 기타 중 하나, 1970년대 단종된 깁슨(Gibson) ES345 모델

나의 첫 번째 그녀
간절히 원하지만 도저히 내 능력으론 원하는 악기를 살 수 없음을 깨닫고 어느 날 결국 통장을 깨서 낙원상가로 향했다. 내가 살 수 있는 악기는 유명 악기의 짝퉁 모델. 일단 그거라도 가져야 했다. 짝퉁으로 실력을 연마해서 돈을 벌어 반드시 오리지널을 사겠다고 단단히 다짐한 빡빡머리 중학생은 만원버스를 타고 종로로 갔다. 한달음에 계단을 올라 자신있게 가게로 들어가 짝퉁 모델을 손에 쥔 나는 로고를 본 순간 다리에서 힘이 쭉 풀렸다. 확실하게 로고를 베낀 줄 알았는데 ‘Gibson’이 ‘Gibsun’, ‘Fender’가 ‘Fendar’인 식이었다. 그나마도 인쇄가 너무 조잡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가게 문 닫을 시간이 되자 포기하고 힘없는 걸음으로 어두워지는 낙원상가 계단을 내려왔다.

무지양품? 기타!
그때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류장 근처 잡다한 악기를 취급하는 상점에 걸린 기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상하게도 그 기타에는 상표가 붙어 있지 않았다. 가격도 내가 가진 전 재산을 약간 웃도는 정도였고, 문 닫을 시간이니 주인이 좋은 가격에 주겠다고 해서 직접 연주를 해봤다. 솔직히 어릴 때부터 나는 디자인만 좋으면 소리는 둘째 문제라고 생각했다.
기타가 좋건 나쁘건 간에 그날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이슈인 로고가 없었고 가격도 적당했으며, 색깔도 내가 좋아하는 색 중 하나인 검은색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검은색 가운데 노란색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가운데 들어간 노란 나무는 나사 없이 기타를 만드는 고급 공법이고, 그것은 OEM 수출을 하다 하자가 있어 상표를 못 붙이고 국내에 유통된 것같다. 그날 나는 시간에 쫓기며 머릿속에서 그 기타를 사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합리화를 했다. 미술 시간에 쓰던 조각도로 마음에 걸리는 노란색 부분을 파내고 검은색 칠을 한다, 로고가 없으니 내가 갖고 싶은 모든 기타의 로고를 붙여 보자 등 내 인생에서 그렇게 머리가 빨리 돌며 구매를 합리화한 적은 없었다(그때 생긴 이 증상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심하게). 나는 내 첫 번째 그녀를 그렇게 만났다.

35년 후
잡지에서 상표를 오려내 기타에 붙이고 다니면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 기억, 가운데 있던 노란색 나무 부분을 파내고 검은색을 칠하다 너무 힘들어 포기한 자국, 휴학을 한 1982년의 기억 등 오랫동안 케이스 속에서 잠자고 있던 기타를 꺼내 다시 만져보며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음악 활동을 하며 나는 지금까지 많은 악기와 인연을 맺었고, 그 악기들을 통해 나의 변화도 볼 수 있었다. 자신이 구매한 물건이 그 당시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기타 구매를 위한 조언
무모한 사랑이 최고의 사랑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음 끌리는 기타를 구입하라. 같이 살아보면 서로 의 장단점을 알게 되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 악기의 안 좋은 음을 발견 하면, 그 음은 치지 않으면 된다. 세상에 완벽한 악기는 없으니까.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이병우(기타리스트,작곡가) 사진 김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