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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던 심청

ARTNOW

시대와 국경, 장르를 넘어 인류 보편의 희생정신과 목소리의 힘을 담은 판소리극 <심청>이 무대에 오른다. 이름 없이 사라져간 무수한 ‘심청’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요나 킴 독일 만하임 국립극장 상임 연출가로 함부르크 국립 오페라 , 슈투트가르트 국립오페라 등 유럽 유수의 극장에서 오페라 연출가이자 대본가로 활동했다. 30여 편의 오페라와 바그너 4부작 〈니벨룽겐의 반지〉 전편을 연출했으며, 6편의 현대 창작 오페라 대본을 집필했다. 독창적 해석과 강렬한 미장센으로 주목받아 세계적 오페라 전문지 〈오페른벨트(Opernwelt)〉가 선정한 ‘올해의 연출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8월 중순 열린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작을 시작으로, 국립창극단과 전주세계소리축제가 공동 제작한 판소리극 〈심청〉이 관객과 만난다. 전통 판소리의 깊이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시각 및 무대 언어로 재구성한 이 작품은 한국 음악극의 지평을 확장한 의미 있는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더욱이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해온 요나 킴이 연출과 극본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그는 2017년 오페라 전문지 〈오페른벨트〉가 선정한 ‘올해의 연출가’를 비롯해 2020년 독일 예술상 ‘파우스트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에 국립오페라단의 〈탄호이저〉를 성공적으로 연출하며 한국 무대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심청〉은 판소리극이라는 새로운 형식 안에서 사회적 약자를 향한 동시대적 시선을 드러낸다. 이채롭고 탄탄한 구성,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연출 언어로 한국 창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이 무대는 9월 3일부터 6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공연을 앞두고 있다. 공연에 앞서 연출가 요나 킴을 만나 작품에 담긴 고민과 질문, 그리고 새로운 해석의 여정을 들어보았다.

뺑덕 역을 맡은 이소연 배우. © Benjamin Luedtke.

지난해에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무대에 올려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죠. 그 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작품의 여운을 곱씹을 새도 없이 독일로 돌아가 다시 바쁘게 움직였어요. 배우를 비롯해 예술가들은 한 작품을 완성한 후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은데, 공간을 옮겨서인지 쉽게 새로운 작업에 임할 수 있었어요. 마주하는 도시의 공기, 질감이 달라서인지 공간을 옮기는 건 몰입했던 감정을 환기시키는 데 큰 도움이 돼요.
작품을 시작할 때 짐을 싸는 게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하겠네요. 맞아요. 트렁크를 꺼내 짐을 싸는 게 일종의 리추얼이에요.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진입로이자 막다른 퇴로처럼. 독일 친구들은 내가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면 농담처럼 “이번엔 또 어디에 다리를 놓으러 가니?”라고 묻곤 해요. 하나의 공연을 준비해 올리는 과정이 거대한 댐을 건설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창극’이라는 장르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마당’을 건설하는 느낌이었겠어요. 저는 그걸 창극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판소리극(Pansori Theater)이라고 명명했죠. 일부러 창극과 차이를 두려 한 건 아니에요. 다만 기존 창극과 달리, 제 방식으로 판소리의 언어와 형식을 무대 위 극으로 구현해보려 한 결과죠. 기존 창극과는 다를 수밖에 없어요. 판소리는 원래 1인 화자가 모든 인물과 내레이션을 끌고 가는 장르예요. 씨앗을 혼자 품고 있다가 그걸 피워내듯, 이야기 전체를 담고 있죠. 그런데 극으로 확장되면 그 씨앗이 다양한 인물과 장면으로 퍼져 꽃을 피우는 구조가 돼요. 이건 판소리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또 다른 감각으로 전개되는 작업이에요.

왼쪽 심봉사 역의 김준수 배우. © Benjamin Luedtke.
오른쪽 심청 역을 맡은 김율희 배우. © Benjamin Luedtke.

두 장르의 공통점도 발견하셨나요? 판소리와 오페라는 모두 인간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본질적 공통점이 있죠. 하지만 발성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텍스트의 뉘앙스도 전혀 달라요. 그래서 판소리 완창 영상도 많이 봤고, 각주가 달린 번역본도 공부하며 리서치를 아주 깊이 있게 했어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두려움은 없었나요? 두려움이 왜 없었겠어요. 저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도 오페라를 연출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20년 넘게 작업했으니 온몸에 그 감각이 각인돼 있죠. 그래서 더 두려움이 필요했어요. 관성을 깨고 새로운 차원에 도전해야 했으니까. 그걸 가능하게 한 게 판소리였어요. 그것도 내 언어, 내 고향, 내 정서로 돌아오는 작업이니까요. 작품을 통해 귀향하는 느낌도 들었죠.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박수와 칭찬은 공연하는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가다.” 그 공포와 불안이 없으면 창작은 의미가 없어요.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건 저희 팀 독일 스태프들의 반응이었어요. 연습 중 판소리를 들으며 감정이 격앙돼 눈물을 흘린 친구도 있죠.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약자의 목소리가 언어를 초월해 감각으로 전달되는 것 같았어요. 그들이 느낀 감정을 관객도 느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기존 오페라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연출로 정평이 난 터라 〈심청〉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했어요. 무엇보다 판소리극 제안이 흥미로웠고, 그다음 작품이 보였어요. 처음엔 저도 ‘왜 하필 효녀 심청일까?’ 싶었죠. ‘너무 진부하지 않나? 이 시대에 유교적 가치관에서 기인한 캐릭터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처음에는 ‘효’라는 키워드에 거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계속 읽고 또 읽다 보니, 그 안에 시대를 초월한 인간적 깊이가 있더라고요.
심청이라는 인물에서 발견한 동시대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전 세계적으로 문학작품의 주인공은 대부분 약자예요. 특히 유교 문화권에서는 ‘딸’을 가장 약한 존재로 그려왔습니다. 권리도, 이름도, 인격도 없는 존재였죠. 심청도 마찬가지예요.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도 딸이죠. 저는 언제나 이런 약자에게 분노 혹은 해원의 시선이 가요. 저는 〈심청〉을 효심 넘치는 딸을 넘어 사회적 약자 전반의 문제로 봤어요. 동시에 어떤 대의나 믿음을 위해 자기 자신을 기꺼이 내던지는 인물의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어요.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인류 보편의 캐릭터죠. 자신의 몸을 던졌지만 어떤 대가를 얻기는커녕,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간 사람이 얼마나 많나요. 외국인 노동자부터 사회적 재난에 가장 먼저 희생되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모두 오늘날의 심청일 수 있어요. 저는 그들을 위해 무대를 만들고 싶었어요. 심청이라는 이데아적 인물과의 관계 속 우리의 초상을 그리고자 했어요. 그렇다고 원작을 각색한 건 아닙니다. 대사 한 줄도 바꾸지 않았어요. 그저 다시 읽고 새로운 해석을 더했을 뿐이에요.

또 한 명의 심청으로 분할 김우정 배우. © Benjamin Luedtke.

사회 곳곳에 드러나지 않은 심청이 많죠. 그럼요. 심청은 효녀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도 익숙해 외면해온 희생, 죽음 이후 돌아오지 못한 존재들을 대변해요. 저만 해도 얼마나 많은 엄마, 할머니의 희생을 딛고 이 자리에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저 자신을 ‘심청의 무덤 위에 서 있는 여자’라고 말하곤 해요.
심청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주변 인물의 구도에도 영향을 줬겠어요. 당연하죠. 심청을 다르게 보면 심봉사도, 뺑덕어멈도 달라져요. 심청이라는 원자의 파동이 주변을 바꾸죠. 심봉사는 과연 딸의 희생을 몰랐을까? 왜 막지 않았을까? 무기력하게 무너진 아버지는 아니었을까? 뺑덕어멈은 단순히 욕심 많은 여인이었을까?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단순화한 도식에서 벗어나 각 인물의 입체적 면모를 탐구하고 싶었어요. 관객이 연민보다는 어떤 실존적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요.
이 작품을 통해 관객과 공유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저는 작품을 통해 단편적 메시지를 제시하고 싶지 않아요. 각자 보고 느끼면 그만이죠. 추상미술이나 음악을 감상할 때 단 하나의 정답을 찾으려 하진 않잖아요. 생각을 열어두고 다양한 감상을 나누죠. 반면 내러티브가 담긴 작품을 볼 때면 우리도 모르게 답을 찾으려 하는 것 같아요. 작품이 단번에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고, 불편해도 된다고 봐요. 모든 관객이 자신만의 작품 내러티브를 만들길 바랍니다. 그게 공연이니까요.
연출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공연’은 어떤 것인가요? 관객에게 ‘경험’을 남기는 것이죠. 타인의 삶을 함께 살아보는 간접경험이자, 그 속에서 관객이 자신의 감정, 이야기를 발견하고 생각과 대화를 낳는 장이겠죠.
〈심청〉을 시작으로 판소리 다섯 바탕에 모두 도전할 계획도 있다고 들었습니다.처음엔 그랬어요. 바이로이트에 〈반지〉가 있다면 한국에는 판소리 다섯 바탕이 있죠. 우리만의 거대한 서사 구조가 있고, 민족 정체성이 응축된 집합이에요. 그래서 언젠가는 꼭 다섯 바탕을 다 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막상 해보니 오페라보다 3배는 더 힘들더라고요. 음악도 직접 구성해야 하고, 즉흥적 요소도 많고, 회의도 하루에 스무 번은 하니까요. 몸도 마음도 많이 소진돼요. 그래서 우선은 이번 작품을 잘 올리고 잠시 숨을 고르려 해요. 하지만 언젠가 꼭 다시 이어가고 싶어요. 이건 분명 해야만 하는 작업이니까요.

 

유승현(프리랜서)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사진 김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