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가능성에 대한 메모
<올라퍼 엘리아슨: 세상의 모든 가능성>이 지난 2월 26일 막을 내렸다. 장장 5개월 간의 장정이었다.
총 22점의 작품이 주는 감정의 무게와 감동을 미리 알았더라면 이번 겨울이 그토록 춥고 외롭진 않았으리라.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며 사그라지는 아름다움이 눈물 겹게 아쉬워진다.

덴마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아이슬란드에서 보내고 지금은 독일 베를린에 차린 스튜디오에서 90여 명의 동료와 함께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올라푸르 엘리아손은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빛과 그림자, 색채와 움직임 등 비물질적 요소를 활용한 그의 작품 세계는 기존의 예술 언어로 정의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관람객에게 직접적이고 다채로우며 경이로운 순간을 선사하는데, 만물의 근원을 건드리는 시각적 실험은 다원성·불확실성·모호성 등 현대사회의 특성을 뒤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기계의 힘을 빌어 자연 현상을 새로운 감성으로 표현하는 시도는 정말 놀랍다.

1 베르사이유 궁전 Waterfall 2016 ⓒ Anders Sune Berg
2 녹색강 프로젝트 Green river-1998-Moss-Norway-1998
3 뉴욕시 폭포 The New York City Waterfalls 2008 ⓒ Julienne Schaer
1998년부터 아이슬란드, 도쿄, 스톡홀름 등지에서 실행한 ‘녹색 강 프로젝트’는 환경에 무해한 녹색 염료를 상류에 풀어 하룻밤 만에 강물을 온통 녹색으로 물들이며 도시에서 늘 함께한 자연에 대한 재인식과 더불어 많은 토론을 이끌어낸 수작이다. 또한 200개의 전구와 알루미늄포일로 태양을 본뜬 유사 발광체를 테이트 모던의 터빈 홀에 설치한 2003년 ‘날씨 프로젝트’는 자연의 경의와 신비함을 온전하게 전달하며 6개월간 200만 명의 관람객을 몽롱하게 만든 그의 대표작이다. 2008년 올라푸르 엘리아손은 뉴욕 퍼블릭 아트 펀드와 협업해 브루클린과 맨해튼 지역을 지나는 뉴욕 이스트 강을 따라 4개의 거대한 인공 폭포를 설치해 화제를 모았고(‘뉴욕시 폭포’), 이후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과 베르사유 궁전에서 개인전을 잇따라 개최하며 다른 작가는 감히 꿈꾸지 못하는 그만의 예술 세계에 대한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그런 그가 이번 삼성미술관 리움(이하 리움)에 들고 온 작품은 어떤 것일까.

테이트모던 날씨 프로젝트_The weather project 2003 ⓒ Andrew Dunkley & Marcus Leith

루이비통 미술관_Inside the Horizon 2014 ⓒOlafur Eliasson&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일단 알아두어야 할 점은 이번 리움 전시가 오랜 시간 작가와 미술관이 합심해 준비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유명 작가의 전시는 보통 그의 약력에 들어가지 않는 순회전인 경우가 많지만 이번 <세상의 모든 가능성>은 이미 페이스북 등 공식 SNS 계정을 통해 전 세계 팔로워에게 홍보했을 만큼 작가의 커리어에 묵직한 발자취를 남긴다. 구작부터 신작까지 모든 전시 작품을 리움이라는 공간에 맞춰 설치한 것은 물론이다. 즉 우리는 그가 의도한 대로 작품을 체험하고 반응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작품을 보는 정전이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다. 관람객이 작품을 마주할 때 발생하는 다양한 의미와 경험이 예술 작품을 존재케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는 엘리아손에게 이번 전시의 핵심은 자율성이다. 그의 확고한 생각은 전시 제목에도 나타나 있다. ‘세상의 모든 가능성’이라 번역한 전시 제목의 원문은 ‘The Parliament of Possibilities’로, 직역하면 ‘가능성들의 의회’다. “문화기관은 의회주의가 자랄 수 있는 토대다. 문화는 포용적이기 때문이다. 한 공간에 서로 의견은 다르지만 함께 있지 않나. 전시를 가능성의 의회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런 엘리아손의 말을 들어보면 그 의도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결국 관람객은 자신이 느낀 대로 반응하고 그 반응은 작품의 일부가 되어 다른 이에게 영향을 미치며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말 그대로 가능성의 세계가 펼치지는 셈이다.


이끼 벽, 1994
그의 1990년대 작품부터 2000년대 작품 그리고 근작이 함께 어우러진 전시장을 마음껏 돌아다녀보자. 작품을 마주하는 매 순간 새로움이 넘실대고 아름다움에 매혹됐다가 갑자기 스쳐가는 어떤 생각에 혼자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명상에 잠길 수도 있다. 이 모든 행위는 관람객의 자유이자, 작품에 의미와 풍경을 더하는 요소가 된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은 완성되지 않고 언제나 현재진행형으로 ‘살아 있다’. 1994년 작 ‘이끼 벽’을 보자. 철망에 엮은 순록이끼를 전시장 긴 벽에 가득 설치한 이 작품은 추운 북유럽 지역에서 자라는 이끼의 특성을 그대로 살렸다. 건조할수록 형상이 수축되면서 색이 바래고 마치 모형처럼 멈추어버리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수분을 더하면 이내 다시 팽창하고 색이 푸르게 변하면서 특유의 향을 발하며 살아난다. 1998년 작 ‘뒤집힌 폭포’는 또 어떤가. 물을 얕게 채운 큰 수조 안에 공사용 임시 가설물인 비계를 4층 규모로 설치했다. 비계 한 층에 하나씩 총 4개의 직사각형 물통을 품고 있는데, 펌프와 호스로 이루어진 기계장치는 중력의 흐름을 거스르며 아래 물통에서 위 물통으로 차례차례 물을 품어 옮긴다. 주변 공기에 미세한 수분을 공급하며 우리의 촉각과 후각까지 자극하는 이 작품은 ‘뉴욕 시 폭포’와 베르사유 궁전 한복판에 설치한 폭포 작품과 겹쳐지며 사람들의 감각과 생각을 자극하는 그의 아이디어가 굉장히 오래된 것임을 상기시킨다.

무제(돌바닥), 2004
2000년대 작품은 어떨까. 색채 스펙트럼과 함께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은 바로 2004년 작 ‘무제(돌바닥)’다. 각기 다른 네 종류의 화산암을 기하학적 모양으로 가공해 서로 맞물린 바닥재로 활용했는데, 육각형과 평행사변형 모양으로 이루어진 타일의 패턴은 3차원의 어떤 입체도형이 반복되는 듯한 환영을 관람객에게 보여준다. 마치 네덜란드의 판화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스허르의 작품에 드러나는 영원한 반복과 환상을 기본 도형으로 구현한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런 착시 현상은 거울을 이용한 다른 작품에서 훨씬 분명하게 나타난다.

자아가 사라지는 벽, 2015
2015년 작 ‘자아가 사라지는 벽’은 이런 환영과 착시 기법을 활용해 작품 세계를 더욱 다채롭게 만든 예다. 마름모꼴 거울과 반대편이 보이는 열린 부분을 기반으로 그 내부에 따로 거울을 덧댄 이 작품은 단순히 거울의 반사 효과를 이용하는 칼레이도스코프(만화경)가 아니다. 반듯한 입면 거울에는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열린 부분에선 반대쪽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잘린 채 그대로 동공에 들어온다. 그 자리에서 조금씩 움직이면 내 모습은 입면 거울과 열린 공간에 의해 조각나고 분산되며, 만화경 속 반사 효과가 더해져 혼란스럽게 부숴진다. 공간에서 자신의 모습이 수백 개의 단면으로 조각나는 현상을 ‘자아가 사라진다’고 말한 시적인 표현도 재미있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묘미는 듀얼리티에 있다. 검은 벽을 반사하는 내부 공간뿐 아니라 바깥으로 치부되는 전시장 통로에서도 느낄 수 있는 거울과 열린 공간, 만화경의 효과는 유리 벽을 중심으로 수없이 변화하는 풍경을 그대로 옮긴다는 점에서 굳이 유사 자연의 기법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영원히 죽지 않고 박제되지 않는 살아 있는 작품의 예를 잘 보여준다.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여정, 2016
자아의 분산이 아닌 자아의 복사라는 점에서 ‘자아가 사라지는 벽’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은 2016년 작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여정’이다. 검은 벽 위에 고리를 박은 후 그 위에 다양한 크기와 색상의 유리구슬을 얹은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마치 은하계의 일부를 잘라 만질 수 있는 구체로 재형상화한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어떤 구슬을 보더라도 거꾸로 뒤집힌 자신의 모습이 알알이 박혀 있다. 한 번에 세지 못할 정도로 무수히 복사된 우리 모습은 마치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 가능성의 변수를 모두 이미지로 구현한 SF 영화 속 우주여행의 순간을 보는 듯하다. 이렇듯 우리는 일체이면서 수없이 조각나고, 하나이면서 수없이 복사된다. 예측할 수 없는 두려움보다 우리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한 이런 작업 양상은 상상력을 자극하며 작품에 더 집중하고 참여하게 되는 단초를 제시한다.

무지개 집합, 2016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리움 블랙 박스에 설치한 신작 ‘무지개 집합’이다. 깜깜한 블랙 박스에서 여러 개의 스포트라이트가 지름 13m의 원형 공간에 구현한 물안개 장막을 비춘다. 겉에서 보기에는 단지 습기를 생성하는 기묘한 장치 같지만 우산을 쓰고(혹은 쓰지 않더라도) 공간 안으로 침입하면 황홀한 아름다움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섬세한 물안개가 스포트라이트에 조응해 오색 빛깔 무지개를 곳곳에 만들어내는 현장은 마치 따뜻한 봄비가 그 모든 ‘다양성’으로 겨울의 차가움을 녹이듯 동심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워프 스테이션 같다. “사람의 눈과 빛 그리고 물방울의 각도가 45도가 될 때 무지개는 가장 선명해진다. 즉 관람객이 움직이는 위치와 방향에 따라 무지개도 무수히 달라지는 것이다. 관람객이 바로 예술가가 되는 순간이다.” 엘리아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만큼 이 무지개 작업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일렁거리는 무지개의 부드러운 물결이 공기 중에 나타나는 장면에 조응해 제 시선을 계속 바꾸며 작품을 ‘살아 있게’ 하는 관람객의 참여는 엘리아손의 신작이 전파하는 메시지를 강화한다. 더 이상 구경꾼은 존재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우리가 바로 세상의 주인공이며, 세상의 모든 가능성이 모인 이 장소야말로 실은 우리의 무수한 가능성과 상상력을 대변하는 곳이라는 아주 단순하고 명확한 진리를 말이다.
에디터 전종현(harry.ju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