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는 필요 없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셰프의 지위를 위협할 날이 머지않았다.

내년 하반기에 출시될 요리 로봇 ‘로보셰프’. 인간 셰프가 요리하는 모습을 로봇 팔이 3D로 재현한다. 2000가지 요리를 할 수 있다.
바야흐로 셰프의 전성시대다. ‘먹방’의 꾸준한 인기 속에 TV 채널 곳곳에서 스타 셰프들의 화려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방송 트렌드의 변화 같은 이유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셰프들을 위협하고 있다. 바로 ‘요리사 로봇’이 출현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 피자 굽는 로봇이 주요 매체에 소개되며 눈길을 끌었다. 미국의 신생 피자 회사 ‘줌 피자(Zume Pizza)’가 피자를 만드는 데 활용한 로봇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맡은 역할에 따라 밀가루 반죽부터 둥그런 피자 도를 만들고 토마토소스를 고루 바르고 오븐에 피자를 옮기는 작업 등을 빈틈없이 해냈다. 비록 팔다리가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아니지만 속도가 생명인 피자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로봇의 속도와 정확성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요리는 피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카페에서는 샌드위치 만드는 로봇을 설치했다. 미국의 스타트업 ‘비스트로봇(Bistrobot)’이 개발한 모델이다. 고객이 태블릿 PC로 샌드위치에 들어갈 속재료를 선택하면 로봇은 빵 위에 각 재료를 쌓아 올리고 거기에 빵 하나를 더 얹어 금세 샌드위치를 만들어낸다. 샌드위치 제조를 자동화했다는 점에서 ‘샌드위치 만드는 기계’라는 이름이 정확하겠지만 로봇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1 로봇 ‘쿠키(Cooki)’는 프라이팬이나 냄비 하나로 할 수 있는 요리는 뭐든 뚝딱 만들어낸다. 한쪽 칸에 여러 식자재를 담고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음식을 선택하면 어떤 조리도 가능하다. 2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빅 데이터를 통해 재료의 궁합과 최적의 조합 그리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을 내려면 어떤 재료를 써야 하는지 등을 분석한다. 홈페이지(http://ibmchefwatson.com)에 접속해보면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이처럼 요리와 관련된 로봇을 지난 4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행사에서 대거 소개했다. 로봇 개발자와 로봇 기업은 해마다 각자 개발한 로봇을 출품해 교류하는 행사 ‘로봇 블록 파티(Robot Block Party)’를 여는데, 올해는 특히 요리 로봇이 주목을 받았다.
‘서레너티 키친(Sereneti Kitchen)’이라는 기업이 선보인 로봇 ‘쿠키(Cooki)’는 프라이팬이나 냄비 하나로 할 수 있는 요리라면 뭐든 뚝딱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 쿠키의 한쪽 칸에 다양한 식자재를 담고 다른 쪽에 팬을 올린 뒤,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음식을 선택하면 끝이다. 로봇이 스스로 재료를 투하하고 열을 가해 카레든 스튜든 한 그릇 음식을 뚝딱 만들어낸다. 서레너티 키친 측은 전 세계 음식의 60%가 팬 하나로 조리가 가능하다며 식자재 공급업체와 제휴해 간단 요리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야심찬 전략을 발표했다.
영국 기업 ‘몰리 로보틱스(Moley Robotics)’는 내년 하반기에 요리 로봇 ‘로보셰프(Robochef)’를 출시할 계획이다. 인간 셰프가 요리하는 모습을 로봇 팔이 3D로 재현하는 방식인데, 무려 2000가지 요리를 할 수 있다. 1만5000달러(약 1650만 원)의 고가지만 출시 전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가까운 중국에선 이미 요리 로봇의 활약상이 대단하다. 상하이에서는 일본식 라면을 끓이는 로봇이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고 있다. 이 로봇은 그릇에 잘 익은 면을 담고 국물을 투하한 뒤 고명을 올리는 작업을 단 2분 만에 끝낸다. 싱가포르에선 빵을 구워주는 가정용 로봇을 개발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지난 2012년 카이스트 연구진이 개발한 요리 로봇 ‘씨로스’. 최근 버전은 냉장고에서 식자재를 찾아 조리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국내에서도 지난 2012년 카이스트 연구진이 개발한 요리 로봇 ‘씨로스(Ciros)’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 버전의 씨로스는 냉장고에서 식자재를 찾아 꺼낸 뒤 칼로 썰고 소스를 뿌리는 등의 요리를 할 수 있으며 식기를 씻는 설거지 동작까지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음식을 잘 흉내 내어 만드는 데 그친다면 진정한 셰프라 할 수 없다. 진정한 셰프라면 자신만의 요리를 개발할 줄 알아야 한다. 아직 하드웨어 성격이 강한 요리 로봇이 진정한 셰프가 되려면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요소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과학자들은 인공지능에서 그 해법을 찾았다.
5년 전 미국의 유명 퀴즈 쇼에서 우승한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의료와 금융 부문 자문에 이어 셰프의 영역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셰프 왓슨(Chef Watson)’은 맛과 향에 대한 다양한 레시피를 꾸준히 학습하고 있는 데다, 수십 년간 출판된 요리 잡지의 빅 데이터를 통해 재료의 궁합과 최적의 조합 그리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을 내려면 어떤 재료를 써야 하는지 등을 분석한다. IBM은 셰프 왓슨을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http://ibmchefwatson.com)까지 개설해 공개하고 있다. 원하는 주재료를 선택하면 셰프 왓슨이 잘 어울리는 부재료와 양념을 추천해주는 방식이다. 급기야 셰프 왓슨이 개발한 레시피대로 음식을 만들어 파는 식당까지 등장했다.
그뿐 아니라 식품과 정보통신 기술을 융합해 등장한 푸드테크(Food Tech)도 요리사 로봇이 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의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맞춤형 재료와 식단을 제공하는 방향 등으로 말이다. 결국 요리사 로봇은 인공지능을 통해 각 개인에게 적합한 레시피를 개발해 직접 요리하는 모습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이때쯤이면 셰프의 운명뿐 아니라 ‘요리는 손맛’이라는 단어의 운명도 정해질 것이다. 물론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음식에 대한 동경이 남아 있는 한 그 미래가 너무 암울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에디터 이기원(lkw@noblesse.com)
글 이재웅(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