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기원을 향한 시간 여행자
최인은 한국 클래식 기타의 유망주다. 연주뿐 아니라 작곡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 세계를 펼쳐 보이기 바쁘다. “음악은 인간의 내면을 향한다”고 말하는 그를 만났다.
기타는 세상 모든 남자에게 로망의 악기다. 기타야말로 사춘기의 질풍노도를 달래주는 속 깊은 친구이자, 또래 이성 친구를 사로잡는 아주 훌륭한 무기가 아니던가. 클래식 기타리스트 최인도 그렇게 기타와 만났다. 생각이 많고 혼자 있길 좋아하던 아이는 중학생 시절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며 기타에 푹 빠지게 됐다. 통기타에서 시작된 관심은 자연스럽게 전자기타로 옮겨갔다. 친구들과 가스펠을 록으로 편곡해 불렀을 정도. 하지만 세상의 많은 부모가 그렇듯 그의 부모도 록을 하고 싶어 하는 아들을 말렸고, 고심 끝에 ‘이왕이면 클래식 기타를 하라’는 타협점을 제시했다. 사실 최인과 클래식 기타는 운명처럼 얽혀 있었다. 이 땅의 클래식 기타 문화의 토양을 다진 기타리스트 문풍인이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인 것. 그는 한국인 최초로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 음악원에서 정식으로 기타 과정을 마친 인물로, 특히 대학에 클래식 기타학과가 정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문풍인 선생이 직접 만든 기타가 최인의 집에 소장돼 있을 만큼 그는 최인의 아버지와 각별한 사이였다. 각고의 노력 끝에 최인은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을 물리치고 서울대학교 기악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렇게 또 한 명의 평범한 클래식 기타리스트가 탄생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대학생 시절 그의 음악 인생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마스터클래스 수업을 위해 ‘현대 기타계의 거장’으로 꼽히는 카를로 도메니코니가 방문한 것. “저에게 음악의 본질을 가르쳐준 스승이에요. 기인 같은 연주자입니다. ‘일루미나타’라는 곡을 꼭 들어보세요. 정말 도를 닦는 것 같다니까요.” ‘손기술’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던 최인은 카를로에게 어떻게하면 ‘예쁜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열심히 물었다. 그는 여느 학생들처럼 콩쿠르에 나가 상을 받고 싶었다. “바흐 소나타 1번이 당시 레슨곡이었는데 카를로가 ‘솔’과 ‘레’에서 네 영혼을 열어라, 이러는 거예요. 황당했죠.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요. 네 마음을 다해 연주해라. 네 귀가 듣고 있다. 거짓말하지마라. 그렇게 네 마음이 원하는 대로 다가가면 청중도 알게 될 것이다.” 기타 몸통의 울림처럼 마음 한구석에 묘한 동요를 느낀 그는 졸업 후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벨기에의 레멘스 인스티튜트, 독일의 로스토크 국립 음대에서 콘체르트에크자멘(konzertexamen) 과정을 착실히 밟으며 음악을 공부했다. 노력의 결과는 달콤했다. 최고 점수로 학교를 마쳤다. 이후 스티브 라이히 프로젝트, 본 박물관 콘서트 시리즈, 발터 아렌(Walter Ahren) 현대음악제 등 독일을 중심으로 다양한 실내악과 독주 활동을 펼쳤다. 최인은 클래식 기타의 본토인 그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동양의 음악, 미술, 건축 등에 흠뻑 취하게 됐다고 한다. 현존하는 악기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히는 기타가 동서양의 직간접적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모양새를 완성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음악 자체가 동과 서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애초에 모호하게 만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음악을 통해 동서양이 하나로 연결되더군요. 음악의 본질이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인간의 내면. 저는 음악이 그 내면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제가 이렇게 말하면 무슨 도 닦는 사람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제 사부처럼요.(웃음)” 기자가 만난 그는 반쯤은 도인처럼 보였다. 올해 서른여섯 살을 맞은 그의 외모가 도사풍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사람은 다른 세계에 사는 게 아닐까’라는 잡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소리의 기원을 향해 여기도 거기도 아닌 곳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다면 그와 같은 모습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퍼포먼스는 내면에 있는 무엇인가를 투사하고 그것을 좇는 일이죠. 음악은 모든 것이 과정입니다. 과정과 결과가 동시에 드러나요. 그래서 음악은 장인이 도를 닦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 시작된 음악 이야기는 12세기 중세 음악에서 인도, 중국, 중동 음악으로 종횡무진하고, 산스크리트어와 알파벳의 유사성, 이슬람 경전 읽기와 아시아의 제사 문화, 서예를 할 때의 호흡과 집중력, 나전칠기 장인 오왕택의 작업, 건축가 이타미 준이 제주에 설계한 건물, 한국 현대미술가 최정화의 오브제 작품 등으로 머뭇거림 없이 가볍게 점프했다. 그가 무대에서 기타를 품에 안고 공연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리듬감 있는 말투와 몸짓을 구사하면서. “음악은 제게 하나의 풍경과 같아요. 연극의 무대이자, 영화와 같은 마음의 스크린이죠.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가는 문일 때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생각의 산물이잖아요. 그 가치를 느끼면서 살아가기! 그런 저만의 생각과 판타지, 그리고 좋은 가슴이 있어야 좋은 연주가 나옵니다. 음악은 연주자의 좋은 해석으로 완성됩니다. 철학자 아도르노도 음악의 반은 연주자 몫이라고 말했잖아요.” 2014년 여름 한 성당에서 열린 그의 독주회는 젊은 클래식 기타리스트의 음악을 향한 진‘ 심’을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바로크, 고전 낭만주의부터 자작곡 ‘마운틴’, ‘런어웨이’까지 이어지는 개성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스승 카를로 도메니코니가 작곡한 토‘ 카타 인 블루’를 한국에서 초연하기도 했다. 게다가 전시 리플릿은 접어놓으면 미니어처 건축물처럼 보이도록 제작했다. 그의 행보를 관찰하면 언뜻 장르의 경계를 파괴하고 크‘ 로스’를 외치는 몇몇 연주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연주자인 동시에 작곡가이기도 한 최인은 클래식 음악의 안티 테제를 주장하며 ‘파격’만을 추구하는 음악은 시도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연주뿐 아니라 작곡에서도 특이하고 복잡한 화성보다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곡에 녹이는 데 주력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화려한 겉치레보다 내면의 본질적 깨달음이 듣는 이에게 중요하게 다가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최인의 이러한 음악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공연이 올봄부터 차례로 열린다. 3월 1일,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플루티스트 이은미와의 합주를 시작으로, 5월 17일에는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독주회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꽃망울을 터뜨린 봄꽃의 향처럼 무대를 가득 채울 그의 기타 선율을 음미해보자.
클래식 기타리스트 최인의 추천곡
카를로 도메니코니(Carlo Domeniconi) ‘Illuminata’
메레디스 몽크(Meredith Monk) ‘Gotham Lullaby’
솔로듀오(Soloduo) ‘La Suave Melodia’
샤를 트레네(Charles Tr´neet) ‘La Mer’
안티고니 고니(Antigoni Goni) ‘Suite Compostelana(use): I. Coral’
필립 헤레베헤(Philippe Herreweghe) &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Collegium Vocale Gent) ‘Dona Nobis Pacem from H-moll Messe’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