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집념과 열정, 아트 컬렉터의 자세
세계 미술계를 쥐락펴락하는 슈퍼 컬렉터인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로널드 로더, 피터 브랜트의 투자 방법을 눈 동그랗게 뜨고 살펴보자. 이들을 따라 하는 것은 당신의 컬렉션을 위한 최고의 안전장치일지 모른다.
1 세계적인 현대미술 컬렉터로 잘 알려진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
2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200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3364만 달러에 낙찰받은 루치안 프로이트의 ‘잠자고 있는 감독관’.
경매장에서 낙찰가를 호가하는 순간, 작품 가격이 책정되고 그 가치는 미술사에 길이 남는 기록이 된다. 현대사회에서 미술품은 미술품 자체의 순수 가치를 뛰어넘어 미술 시장에서 거래가 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19세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르누아르도 “미술 작품의 가치를 정해주는 지표는 단 하나, 작품이 판매되는 현장이다”라고 말했다. 음악이나 공연 같은 예술 분야와 달리 온전히 ‘나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는 예술은 오직 ‘미술품’뿐이다. 그래서 미술품을 수집하는 컬렉터의 소유욕은 지독하다 싶을 만큼 열정적이고 집요하다.
미술품을 사는 목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순수하게 미술 애호가로서 그림을 소장하고 싶은 소유욕, 투자수익에 대한 기대, 그리고 상류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방편 등 각기 다른 목적으로 미술품을 구매하기 시작하고, 점차 그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10대 컬렉터 따라 하기
고가의 미술품을 구매하는 컬렉터는 어떤 사람들일까? 미국의 미술 전문지 <아트뉴스>는 2010년 ‘세계 10대 컬렉터’를 발표했다. 컬렉터 순위 1위를 차지한 영국 축구 프리미어 리그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Roman Abramovich). 미술계 인사들은 그가 어떤 작품을 구매하고 어떤 작가에게 관심을 두는지 늘 주시한다. 2009년 6월 스위스 아트 바젤 프리오픈에서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조각 작품을 프리오픈에서 구매했다는 소식이 헤드라인 기사로 전 세계에 타전될 만큼 미술계에서 그의 구매 활동은 딜러, 컬렉터, 경매사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공개적 거래는 해당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영향을 끼칠 정도다.
그는 2008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루치안 프로이트(Lucian Freud)의 작품을 3364만 달러(약 380억 원)에 낙찰받으면서 생존 작가 작품 중 최고가를 경신, 프로이트 작품의 가치를 전 세계에 증명했다. 프로이트는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가로 1년에 5점 정도의 작품이 나온다고 알려져 있어 희소가치가 매우 높다. 더욱이 2011년 작고한 이후 그의 작품이 시장에 나올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었다. 메가 바이어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컬렉팅을 어드바이스해주는 딜러도 관심의 대상이다. 클라이언트가 미술 시장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메가 바이어라면, 딜러 역시 슈퍼 딜러가 된다. 미술 시장에서 누가 어떤 작품을 구매하고, 그 거래를 성사시킨 딜러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래 흐름 자체가 작품의 가치를 보여주는 동시에 작품의 안전장치가 되기 때문이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1’을 1억3500만 달러에 사들인 에스티 로더의 오너 로널드 로더.
끈기 있는 자가 대작을 차지한다
시장에서 구매 행동을 노출하면서 작품의 가격 형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매우 조심스럽게 구매하는 컬렉터도 있다. 이런 거래는 작품 구매가 완전히 마무리된 후 공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작이거나 구매 대기 수요가 많은 경우, 외부에 작품 판매를 절대 노출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화장품업계의 거물, 에스티 로더의 오너 로널드 로더(Ronald Lauder)다. 뉴욕 현대미술관 글렌 로리(Glenn Lowry) 관장이 “로널드 로더는 미술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그는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내내 미술품을 사 모은다”고 말했을 정도로 로더의 미술품 소장에 대한 열정과 집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006년 로널드 로더는 자신이 설립한 노이에 갤러리(Neue Galerie)에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1’을 걸기 위해 1억3500만 달러의 거금을 썼다. 로더는 10대 시절, 오스트리아 빈에서 클림트의 ‘키스’와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1’을 처음 접했고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 빈을 방문할 때마다 작품을 보러 가곤 했다. 1986년부터 1987년까지 오스트리아 주재 미국 대사로 빈에 머무른 로더는 1938년 나치 정권이 강탈해간 클림트의 작품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들었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1’을 비롯한 클림트의 작품 4점은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오스트리아 국립 미술관에 넘겨진 상태였다. 1998년 유언장을 포함한 문서를 찾아내면서 초상화의 모델인 아델레의 조카 알트만 부인은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8년간 법정 싸움을 벌이게 됐다. 결국 2006년 1월 오스트리아 중재 법원은 알트만 부인의 손을 들어줬고 5점 모두 유언장에 기록된 상속자에게 돌아갔다. 소송을 하는 동안 많은 미술관과 문화재단, 컬렉터가 작품을 구매하고자 접촉을 시도했지만, 알트만 부인은 이들의 제안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로더에게만 특별한 애정을 보였다. 그 이유는 기나긴 소송 과정에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녀를 도왔기 때문이다.
2006년 7월 노이에 갤러리에서 ‘구스타프 클림트-페르디앙과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컬렉션에서 온 5점’이라는 타이틀로 전시가 열렸고, 전시가 끝난 후 ‘아델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1’은 갤러리 주인인 로더의 품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작품 4점도 2006년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 1억9000만 달러에 달하는 높은 가격에 거래돼 크리스티 경매사에 큰 이익을 안겨줬다. 법정 싸움을 이어가는 동안 지속적으로 도움을 준 로더는 결국 원하던 작품을 손에 넣었다. 로더는 ‘일생일대의 매입’이라고 말할 정도로 크게 감격했고 알트먼 여사 역시 “너그러운 성품의 로더가 숙모의 초상화를 소유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술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소장하려면 단지 돈만 있어서는 안 된다. 오랜 시간 정성을 쏟아 소장자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가족 같은 신뢰와 믿음을 쌓지 않으면 대가들의 걸작이 미술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 대작을 끌어내는 컬렉터의 집념은 작품을 소유하고픈 욕구가 얼마나 큰지 짐작케 한다.
앤디 워홀의 ‘서른 개가 한 개보다 낫다’는 미국의 사업가 피터 브랜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현대미술 작가에게 과감히 투자하자
미국의 사업가이자 언론 재벌 피터 브랜트(Peter Brant)는 18세 때부터 미술품을 수집했다. 초창기부터 앤디 워홀의 작품과 영화 제작 사업에 관심을 두었고, 당대 최고의 작가들과 친분을 유지하면서 그들의 작품을 구매했다. 이런 컬렉션 방향에는 아트 딜러 브루노 비쇼프버거의 조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인상주의 명작을 컬렉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 해도 너무 비싸다. 명작은 이미 미술관과 빅 컬렉션에 있다.” 그의 자문으로 수집 방향을 현대 화가로 잡은 브랜트가 처음 구매한 작품은 프란츠 클라인의 회화 작품. 그는 앤디 워홀, 로이 릭턴스타인, 줄리언 슈나벨, 제프 쿤스, 리처드 프린스 등 실험성 짙은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사들였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앤디 워홀의 ‘서른 개가 한 개보다 낫다(Thirty Are Better than One)’(1963년)로, 30개의 모나리자 얼굴을 찍어낸 작품이다. 그는 틈나는 대로 예술 관련 서적과 미술 잡지를 읽으며 작가들의 철학을 심도 있게 파고들어 자신만의 컬렉팅 노하우를 확립했다. 전시를 통해 작품을 사들이거나 작가를 후원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구매하는데, 스스로 확신하는 작가에 대해서는 시장이 불안정하다고 할지라도 결코 중간에 포기하는 일이 없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부유세 부과 항목에서 미술품을 제외시켰다. 미술품은 개인이 완전히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유산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보관하는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라는 컬렉터들의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컬렉팅에 정답은 없다. 그렇지만 기억해야 할 한 가지. 개인의 만족과 경제적 이익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문화유산인 미술 자산을 보존하는 막중한 책임도 따른다는 사실이다.
에디터 심민아
글 이호숙(아트 컬렉팅 어드바이저 & 효성그룹 아트사업부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