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열전
소재를 디자인한다. 독창적인 소재 가공법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지금 디자이너들은 소재 개발과 한판 승부 중이다.
결국은 소재다. 아무리 근사한 디자인이라 할지라도 여기에 어우러지는 소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끝내 디스플레이 행어에 걸어둔 채 쳐다만 볼 뿐이다. 반면, 독특한 소재로 완성한 의상과 소품을 발견하면 절로 호기심이 생겨 찬찬히 살펴보게 되지 않는가. 특히 요즘같이 각양각색의 디자이너 컬렉션 룩의 주요 모티브가 되기도 하는 독창적 소재 가공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으면 그 기발한 아이디어와 날 선 감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히 소재 전쟁이라 해도 좋을 만큼 다채로운 신소재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요즘, 2013년을 한 달여 남겨두고 올 하반기에 마주한 컬렉션 가운데 소재 부문에서 이목을 모은 ‘최우수 소재상’ 후보를 꼽아봤다. 특별함으로 무장한 ‘스페셜 피스’의 매력, 좀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자.
From Balenciaga
대리석에서 영감을 받았다. 컬렉션 전체에 응용한 마블링한 듯한 표면 효과가 드라마틱하면서 도회적이고, 기품이 느껴지면서 예술적이다. 열정 충만한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은 대리석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블랙과 화이트, 짙은 녹색의 컬러 팔레트를 사용했고, 가죽 자수(작은 가죽 조각을 말아 튜브 모양으로 만들어 마블 패턴으로 엠브로이더리)와 도트 자수(실을 구 형태가 되도록 동그랗게 만든 후 자수 처리), 벨벳 자수(오간자 위에 니들 포인트 테크닉을 이용해 마블 패턴을 그린 다음 섬유를 깎아내 플로킹 효과로 마무리) 그리고 기퓌르(벨벳을 레이저 커팅해 번아웃시킨 후 불필요한 벨벳을 제거하고, 이때 생긴 틈새에 레이스를 덧대거나 벌어진 벨벳의 끝 부분을 그물 효과로 마감) 등 소재마다 마블링 효과를 내기 위해 고심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From Prada
디자인뿐 아니라 제품의 소재를 정하고 개발하는 데에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기로 유명한 미우치아 프라다. 그녀가 2013년 F/W 컬렉션을 통해 선보인 비밀 병기는 바로 ‘펠티드 트위드’다. 단연 거친 느낌이 살아 있는 독특한 표면이 시선을 붙잡는다. 기존의 트위드 소재보다 광택 없이 매트하고 빈티지한 감각이 도드라지는데, 프라다의 오랜 노하우와 리서치 그리고 정교한 기술이 한데 어우러져 탄생한 ‘프라다 버전 뉴 트위드’라 할 수 있다. 공정 과정 역시 세심하다. 트위드의 경사와 위사를 먼저 느슨하게 짠 후 폭 220cm, 길이 130cm로 자른다. 잘라낸 트위드를 폴로니(folloni)라는 첨단 기술을 결합한 기계에 넣어 비눗물에 적시고 짜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소재를 좀 더 촘촘하게 만들기 위한 것. 이어서 높은 열과 강한 힘을 가해 트위드를 매트하게 만든다. 그다음 트위드를 말리는 작업이 이어지는데, 이때 원통형 기계를 통과시켜 건조시킨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장인들이 일일이 나선형 칼로 트위드를 깔끔하게 자르는 작업을 한 후, 스팀 다림질을 거쳐야 드디어 펠티드 트위드 소재가 완성된다. ‘우아함의 정수’를 주제로 자유로운 스타일링과 강렬한 컨셉을 선보인 이번 시즌 컬렉션에서 절대적 힘을 발휘한 신소재, 펠티드 트위드. 그야말로 혁신적이면서 현대적이다.
From Gucci
치명적이고 도발적인 여성미를 지녔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구찌가 지향하는 ‘구찌 여성’이다. 금속처럼 차가우면서 섹시하고, 팜파탈적 매력을 지닌 구찌 우먼. 이번 시즌 구찌는 이런 구찌의 여성상을 구현하기 위해 독특한 소재를 선보였다. 이름하여 옴브레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옴브레 피에 드 폴 시네(Ombre Prince of Wales & Ombre Pied de Poule Chine). 여기서 시네란 무늬의 윤곽이 먹줄같이 색이 번진 것처럼 보이면서 우아한 멋을 내는 소재인데, 같은 색이나 대조되는 색으로 염색한 실을 사용해 평직이나 수자직, 이지직으로 짜내는 위빙 기법으로 자연스럽게 셰이딩한 것이 특징이다. 빳빳하고 두꺼운 오간자 실과 가볍고 얇을 뿐 아니라 보다 유연한 실을 함께 직조해 만든 것으로,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실을 교차시킨 결과가 마치 프린트인 듯 착각하게 하는 셰이딩 효과를 만들어낸 점이 이색적이다.
From Dior
먼저 디올의 2013~2014년 크루즈 컬렉션을 살펴보면, 오트 쿠튀르 터치를 가미한 소재가 단연 눈에 띈다. 장인이 직접 기계로 실을 짜서 제작하는 것은 물론, 작업 과정에서 오픈홀로 패턴을 뜬 오픈워크 패브릭으로 연출한 레이스는 디자인부터 패브릭으로 완성해 레이스 한 조각을 탄생시키는 데 무려 1년 이상의 작업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니, 최상의 소재 개발을 위해 쏟는 그 정성과 노력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플 따름이다. 현대적 색감으로 표현한 라프 시몬스식 퍼도 지나칠 수 없다. 가벼운 무게와 미끄러질 듯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벨벳 촉감이 매력적인 이 퍼는 최상급 밍크 퍼에 메탈릭 피니싱을 더해 완성한 것으로 세련된 퍼 연출의 정석을 제시하는 듯하다.
From Fendi
기발한 창의력에 정교한 테크닉까지 겸비했다. 퍼를 헤어 스타일링하듯 트리밍 작업으로 마무리하는 ‘퍼 트리밍’ 기법을 제시하기도 한, 독창적 소재 가공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펜디를 빠뜨릴 수 없다. 하나하나 자른 가죽을 이용해 프린지 장식을 표현하기도 하고, 오로지 가죽만으로 니트처럼 짜서 카무플라주 패턴을 표현한 룩을 보라. 펜디의 소재에 대한 자부심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님을 실감하게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는 레벨 중급에 불과하다. 튈과 울, 종이를 이용해 하나의 패브릭처럼 표현한 후 새의 깃털 효과를 낸 점퍼를 마주한 순간,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점퍼의 소매와 밑단에 밍크 밴드를 믹스, 고급스러움을 더해 하이엔드 터치를 놓치지 않은 디테일까지! 달리 ‘진정한 고수’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From Burberry Prorsum
러버 러버(rubber lover)! 이제 버버리의 최고경영자인 CEO 타이틀까지 거머쥔 버버리의 젊은 피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올 가을과 겨울 컬렉션에서 꽂힌(!) 소재는 바로 러버다. 전체적으로 고무를 사용해 만든 러버 트렌치코트는 물론, 은근히 이너웨어가 비쳐 신개념의 레이어링 효과를 낼 수 있는 러버 스커트와 톱 등은 말 그대로 신선했다. 재질의 특성상 고무는 몸에 맞게 실루엣을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버버리 프로섬 컬렉션을 제작하는 이탈리아 장인들의 숙련된 재단 기술 덕분에 부드러운 코튼은 물론 실크와 견주어도 손색 없는, 오히려 희소성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러버 아웃핏이 탄생한 것이다.
From Chanel
싱가포르 뎀시 힐에서 공개한 샤넬의 2013~2014년 크루즈 컬렉션. 1913년 도빌에서의 마드모아젤 샤넬 시절과 식민지 시대 스타일을 믹스해 과거로 시간 여행을 유도한 이번 컬렉션에서도 라거펠트가 소재에 공을 들인 흔적은 역력했다. 르마리에 공방의 정성이 깃든 까멜리아로 장식한 톱, 르사주 공방의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블랙 튈 블레이저와 PVC & 글라스 튜브, 플라워 형태의 시퀸, 스트라스를 함께 손자수 처리해 아르데코 패턴으로 연출한 톱, 배리 니트웨어 공방의 탁월한 노하우로 완성한 이카트(ikat, 패턴이 있는 텍스타일을 위한 염색 기법) 패턴의 니트 등…. 그 가운데 에디터가 고른 베스트 소재 아이템은 실리콘으로 코팅해 모던하게 풀어낸 부드러운 크림빛 칼레 레이스 톱과 쇼츠, 이와 함께 매치한 비스코스 베이지 카디건, 마지막으로 래커칠한 짚으로 만든 라피아 트위드 소재의 블랙 더블브레스트 드레스다.
From Louis Vuitton
시퀸과 레이스, 벨벳과 깃털 그리고 밍크 퍼와 황새 깃털…. 루이 비통이 야심차게 선보인 이번 시즌 컬렉션의 중심 소재 리스트다. 먼저 시퀸을 살펴보자. 각기 다른 사이즈의 시퀸을 울이나 모헤어에 직접 장식하고 각 시퀸의 사이즈와 컬러에 변화를 줘 그러데이션 효과를 냈는데, 그 결과 우아함과 신비로움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 의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고대의 레이스 제조 기법을 그대로 적용해 만든 레이스는 또 어떤가. 같은 패턴의 레이스를 앞뒤로 덧대 안팎으로 동일한 레이스 패턴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바느질 역시 레이스 모양에 따라 작업해 피니싱 라인을 찾아볼 수 없도록 세심하게 신경 쓴 점이 남다르다. 또한 전통 기법은 ‘벨벳 면도칼 작업’이라 부르는 소재 가공 과정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기법은 두 겹의 실크를 덧댄 두꺼운 실크 소재에만 사용 가능하다고. 1850년대에 개발한 이 기술은 면도칼로 실크의 윗부분을 커팅하는 동시에 그곳에 벨벳 실을 엮어 작업해 원하는 형태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정교한 테크닉을 요하기 때문에 숙련된 장인만이 작업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컬러가 다른 밍크를 패치워크해 하나의 밍크처럼 보이게 한다거나 최상의 깃털을 염색해 하나하나 손으로 커팅한 뒤 도안에 맞춰 붙이고, 일반 깃털보다 훨씬 얇고 약해 세심한 공정 과정을 필요로 하는 황새 깃털을 사용하는 등… 장인정신이 뒷받침되지 않고선 해내기 힘든 섬세한 작업 과정을 거쳐 탄생한 소재로 완성한 루이 비통의 2013년 F/W 컬렉션. 가히 탄성을 자아낼 만하다.
에디터 유은정 (ejyoo@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