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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만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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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는 지금 가장 뜨거운 도시다. 바다와 음식이 있는 그곳에 다녀왔다. 시트로엥 DS3와 함께였다.

양양군 일대에는 아담한 프라이빗 해변이 꽤 존재한다. 사진 뒤로 철조망이 보이는 건 오랫동안 군사 지역으로 분류돼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보석 같은 해변은 최근에야 일반에게 조금씩 개방되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서프스타’도 일정 시간 동안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다.

과거의 속초는 무장간첩이 잠수정으로 침투했다는 얘기가 들릴 때나 언론에 오르내리는 도시였다. 하지만 최근의 속초는 전혀 다른 의미로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트렌디한 서퍼들이 속초 인근의 해변으로 몰려들었고, 비슷한 시기에 근사한 펜션도 하나둘 해안가를 따라 들어서기 시작했다. 닌텐도의 ‘포켓몬 고’가 오직 속초 인근에서만 작동한다는 소식은 타는 불에 기름이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속초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고 트렌디한 도시가 됐다. 시트로엥 DS3를 타고 속초로 향하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작고 세련된 프랑스 차의 타깃은 일상에서 작은 재미를 찾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무난하고 편한 세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차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 차는 예쁘긴 하지만 크기가 작고, 연비는 좋지만 스펀지처럼 편한 차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차에 흥미를 느낀다면 당신은 아마 본능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속초라는 도시 역시 당신을 즐겁게 해줄 요소가 많을 것이다.
과거에 서울에서 속초까지 가려면 5시간이 넘게 걸렸다. 대관령과 한계령, 미시령 같은 고원이 운전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특히 속초로 가는 최단 코스인 미시령은 난코스로 악명 높은 구간이었다. 하지만 10년 전 미시령 터널이 개통되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지금은 속초까지 3시간 정도면 진입이 가능하다.

양양 죽도 해변 일대는 기대 이상으로 번화하다. 젊음과 낭만이 넘실거린다.

이도면옥의 냉면과 수육. 냉면보다 오히려 수육이 인상적이다.

속초에서 남쪽으로 30분 거리에 양양군이 있다. 한국의 서핑 스폿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곳이다. 특히 죽도 해변 일대는 파도가 꽤 높아 서핑 마니아의 성지로 불린다. 죽도 해변가의 거리 풍경은 작은 군 단위 도시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화려하게 꾸민 청년들과 트렌디한 음악, 현대적 인테리어로 단장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거리를 밝히고 있다. 물론 이 거리를 점령한 건 토착민이 아니라 서울에서 몰려든 외지인이다. 이 해변에 최근 작은 레스토랑을 연 남자는 이태원에서 오랫동안 편집숍을 운영하다 어제부터 영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버리고 이 먼 곳까지 온 이유? 그는 재미있게 살고 싶었다고, 도시에 속박당하는 느낌이 싫어 양양으로 왔다고 했다. 이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이다. 아마 ‘한국적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이 찾은 해방의 공간이 이 동해안, 그리고 서핑이라는 레포츠일지도 모른다.
외지인이 많아서인지 양양에서 수입차를 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BMW나 아우디 같은 인기 브랜드 외에도 한국에 정식 수입되지 않은 쉐보레의 픽업트럭이나 구형 캐딜락 같은 차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하긴 뻔한 세단을 구입할 사람이라면 굳이 이 먼 곳에서 새로운 삶을 꿈꿀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북적이는 곳에서도 DS3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몸과 얼굴을 구릿빛으로 그을린 남녀 서퍼들이 다가와 차를 이곳저곳 관찰했다. “귀엽다. 무슨 차야, 이게?” 하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DS3의 디자인 존재감은 확실히 칭찬해줄 만한 지점이다. 독일 차가 기능적인 면을 위해 불필요한 디자인을 쳐낸다면, 프랑스 차는 작은 디테일에 집착한다. DS3는 외관과 실내 모두 엔지니어보다 디자이너의 입김이 더 많이 작용한 것이 느껴지는 차다. 예컨대 실내에는 컵 홀더가 없지만 조수석 아래 글러브 박스를 움푹 집어넣어 레그룸을 상당히 넓게 만들었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크지만 차 전체로 보면 꽤나 근사한 비율이다. 그래서 다소 의아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장난감 상자처럼 군데군데 재미있는 요소가 넘쳐난다. 양양을 지나 속초로 향하는 데는 30분 정도 걸린다. 7번 국도를 타고 달리는 길에서 보는 풍경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7번 국도는 ‘가장 아름다운 길’ 유의 리스트에 늘 빠지지 않는 도로다. 한국에서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펼치는 소설가 윤대녕 역시 산문집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에서 7번 국도를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예찬한 바 있다. 이 길을 달리면서 DS3는 고속도로보다 국도가 더 어울리는 차라고 느꼈다. 1.6리터 엔진은 99마력, 25.9kg·m의 토크를 낸다. 수치는 대단치 않지만 실제로 체감하는 성능은 꽤 훌륭하다. 치고 나가야 할 때는 엔진이 즉각 반응하고, 노면 상태가 썩 좋지 않은 국도를 달릴 때에도 잘 조율된 서스펜션이 충격을 막아준다. 애초에 이 차는 폭이 좁고 굴곡이 심한 유럽의 도로를 상정해 만든 차다. 한국의 국도와 썩 어울리는 차인 것이다.
7번 국도를 따라 들어간 속초 시내는 ‘포켓몬 고’ 열풍이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오직 속초에서만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이 게임을 위해 수많은 유저가 이곳으로 왔고, 상점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 별도의 플래카드까지 걸어뒀다. 피서객에 게이머까지 가세한 속초는 꽤나 번잡했다. 관광객의 대규모 유입이 가장 반가운 건 음식점이다. 속초에는 전통적으로 유명한 맛집이 꽤 있다. 봉포머구리집, 단천식당 같은 곳은 이미 꽤나 검색창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곳이다. 이들과 함께 최근 각광받는 곳이 이조면옥이다. 이곳에선 평양냉면이 아니라 함흥냉면만 파는데, 속초는 함경도 쪽에서 내려온 실향민이 많아 함흥식 냉면 문화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곳의 냉면에는 독특하게 명태무침이 들어간다. 돼지 수육에도 명태무침을 함께 낸다. 전통적으로 함흥냉면은 가자미회를 올리지만 남쪽에서는 가자미가 덜 잡히다 보니 명태로 대체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명태무침은 단맛이 강해 서울에서 먹는 함흥냉면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아야진 해변에 있는 ‘까사 델 아야’의 전경. 작고 한산한 해변과 멋진 빌라가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실내도 꽤나 놀랍다.

시트로엥 DS3는 어떤 의미에서건 가장 흥미로운 차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차는 작고 귀엽지만,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재미를 많이 숨겨두었다.

차를 북으로 돌려 20분 정도 가면 아야진해수욕장이 나온다. 아야진은 작고 한적한 해변이지만 최근 한 숙박 시설 때문에 꽤 유명해졌다. ‘까사 델 아야’라는 부티크 빌라다. 오픈한 지 3년. 별도의 홍보 없이 시작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점점 방문객이 늘어나더니, 이제는 이곳에 묵기 위해 속초를 방문하는 사람이 생겼을 정도다. 이곳의 홍영민 대표는 외국계 광고대행사에서 오랫동안 광고 기획 일을 했다. 언젠가 강원도 바닷가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실현한 것이 바로 까사 델 아야다. “이런 외진 곳에 멋있는 숙박 시설이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봤어요. 그 의외성이 너무 좋더라고요.” 이곳에는 단 6개의 객실만 존재한다.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말이다. 속초에 간다면 꼭 한번 들러보길 권한다.
지금 속초를 비롯한 동해안 일대는 땅값이 들썩이고 있다. 교통 호재가 많아서다. 우선 서울과 춘천, 양양을 잇는 동서고속도로 ‘동홍천-양양’ 구간 공사가 한창이다. 내년 봄쯤 개통될 이 구간은 수도권과 동해안을 최단거리로 연결한다. 2024년에는 KTX 춘천-속초 구간이 완공된다. 이 철도가 완공되면 서울에서 속초까지 75분 만에 닿을 수 있다. 험준한 지형에 가로막혀 발전에서 소외돼 있던 강원도와 동해안 일대는 분명히 더 재미있는 지역이 될 것이다. 속초의 10년 후가 문득 궁금해졌다.

에디터 | 이기원 (lkw@noblesse.com)
사진 | 김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