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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닿은 가을

LIFESTYLE

신기할 정도로 입추 다음 날부터 바람의 온도가 달라졌다. 이제는 눈으로 가을 풍경을 담을 차례다.

 

시간을 내서 걷는 것은 고사하고 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창밖 대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나뭇잎 색이 어떻게 변하는지, 하늘의 높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눈치채기 힘들다. 무심하고 바쁜 우리와 상관없이 자연은 정직하게 시간의 변화를 드러낸다. 기세등등하던 햇빛도 점점 약해지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진 공기에 곧 익숙해진다. 짧아서 유독 아쉬운 계절, 가을의 시간을 좀 더 늘리고 풍성하게 채워줄 책이 있다. <지리산 빗점골의 가을>은 30년 동안 국어 교사로 일해온 백남오가 <지리산 황금능선의 봄>에 이어 두 번째로 펴낸 지리산 이야기다. 그의 글 속에 드러난 지리산은 겉은 거칠고 무뚝뚝하지만 속은 세심하고 매력의 끝을 알 수 없는 남자 같다. 발이 아프도록 치열하게 지리산을 걷고 온몸으로 겪어봤기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쯤이면 색깔 고운 여름 꽃들의 무리 속에서 하얀 구절초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연보라색 쑥부쟁이와 붉은빛 감도는 산오이풀이 능선을 수놓는다. 보랏빛 용담과 투구꽃이 맑은 얼굴을 내밀고, 노란 고들빼기꽃도 덩달아 웃는다. 이 가을꽃이 필 무렵이면 산꾼들은 설렘으로 몸을 뒤척이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마음은 이미 어느 높은 산정을 서성거리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몇 줄만 읽어도 실제로 한 번도 보지 못한 꽃들을 상상하며 지리산의 가을이 기대되는데, 잠을 설치며 설레는 것이 어찌 산꾼뿐일까.
가을이 싫다는 이는 보기 드물다. 가을이 이토록 사랑받는 데는 하루 중 언제든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멀리 지리산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서울 꽃길 단풍길>을 읽으면 가까이에 이렇게 눈 즐겁고 걷기 좋은 길이 있었나 새삼 느낄 수 있다. 런던 유학 시절 드넓은 공원에서 마음껏 휴식하고 산책한 기억을 잊지 못해 저자는 서울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공원앓이’에 시달린다. 결국 아름다운 길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하고 이를 ‘재활 과정’이라 부른다. 태릉 화랑로, 남산 북측 순환로, 창덕궁 후원과 올림픽공원 위례성 길 등 책 속에 등장한 단풍으로 곱게 물든 산책로를 따라 느긋하게 한번 걸어보고 싶다. 각 장소별로 가는 방법과 추천 시기, 산책하며 돌아보기 좋은 주변 미술관이나 갤러리, 오래된 명소까지 친절하게 소개해 그대로 따라 걸으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재활에 동참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풍경 사진 레시피 69>는 여행지에서 근사한 사진 한 장 남기는 것이 중요한 SNS 시대 독자의 욕구를 잘 읽어낸 책이다. 봄 . 여름 . 가을 . 겨울 계절별로 가장 아름다운 관광지를 소개하고, 각 장소의 특징에 따라 풍경 사진 잘 찍는 노하우를 상세한 일러스트까지 곁들여 알려준다. 제주 아끈다랑쉬오름, 부산 장산, 홍천 은행나무 숲, 장성 백양사 등 가을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곳에서 방에 걸고 싶은 사진 한 장을 남겨보자. 어디서든 스마트폰부터 꺼내 들어 정작 마음에 남는 풍경은 없다지만, 이제는 비슷비슷한 여행 사진이 아니라 좀 더 사적인 추억이 담긴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문득 미소 지으며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사진 말이다.

에디터고현경
사진 한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