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빚는 조형
삶 가장 가까이에 머무는 예술, 공예. 도구이자 조형물로 일상에 스며드는 공예는 인간의 손과 시간이 빚어낸 깊은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 이 오래된 예술의 가치를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누군가는 손으로 만들고 기록한다. 흙, 섬유, 금속 등 서로 다른 재료를 탐구하며 자신만의 미감을 구축해가는 동시대 공예 작가 3인을 소개한다.

갤러리 토마스 파크에서 열린 박지원 작가 개인전 〈Organically〉 전경.
박지원
박지원의 작업은 도예와 조각, 자연과 신체, 기능과 추상 등 이원적 개념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흙이라는 재료가 지닌 반응성을 탐구하며 자연의 힘에 의해 빚어진 듯한 유기적 형태를 만들어낸다. 최근에는 형태가 서서히 펼쳐지는 작업이 눈에 띈다. 갈라진 틈새에 자리한 꽃잎처럼 얇고 섬세한 결은 당장이라도 흩날릴 듯하면서도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다. 이는 닫혀 있던 존재가 마침내 피어나는 순간을 포착한 듯하다. 나무 그루터기나 몸통이 연상되는 시리즈는 스툴로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형태가 열리는 순간 기능은 사라지고, 조각과 그릇 사이를 오가는 순수한 조형물로 변모한다. 기능과 비기능, 닫힘과 열림이 맞물리며 하나의 유기적 서사가 완성된다.

조민열, ’Hidden Nature Series‘, 2021.
조민열
데님의 천 조각을 쌓고 깎아내며 잔, 화병, 항아리 등 일상의 친근한 오브제를 만드는 작가 조민열. 부드러운 천으로 단단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 그는 천 조각을 아교로 겹겹이 붙여 일정한 두께를 만든 뒤 구부려 이어 붙이거나, 잘게 자른 조각을 겹쳐 띠를 만든 후 이를 감아 올리는 등의 기법을 적용한다. 완성된 표면은 그라인더로 갈아 섬유의 직조 무늬에 대리석 같은 마블링 효과를 드러내는데, 이는 나무를 깎기 전 속을 알 수 없듯이 의도와 우연이 겹쳐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을 보여준다. 최근 작업에서는 작은 천 조각이 쌓이고 얽히며 하나의 서사를 형성한다. 수집한 천의 층마다 스며든 흔적과 얼룩이 시간의 흐름을 담고, 그것이 겹쳐지며 새로운 기억과 풍경이 된다. 데님을 탈색하고 덧붙여 재단하는 반복 과정은 우연과 필연이 만나 화면에 깊이를 더하고, 조각이 모여 유기적 흐름을 이룬다. 이를 통해 평범한 재료가 서로 연결되고 변주되는 방식을 탐구하는 한편, 익숙한 재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다.
천우선
금속 작가 천우선은 한국 전통 도자기에서 영감받아 그릇과 항아리 형태를 금속과 옻칠로 재해석한다. 그는 원하는 형태를 작은 단위로 나눠 차근차근 조합하는 독자적 작업 방식을 고안했으며, 철사를 정교하게 용접해 작품을 완성한다. 이 과정은 공중에 선을 그려나가는 입체적 드로잉과도 같다. 금속 와이어가 하나의 선을 이루고, 그 선이 서로 엮이며 면을 만들어 결국 하나의 완전한 형태가 된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은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자연스럽게 흐르며 시선이 머무는 방향마다 다른 표정과 리듬을 드러낸다. 유려하게 이어지는 선과 면은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고, 관람자가 다양한 시점에서 작품과 교감할 수 있는 역동적 경험을 선사한다.
에디터 조인정(ijcho@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