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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납장 혁신

LIFESTYLE

아주 예술적이거나 혹은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거나 뭐든 확실히 해내는 요즘 수납장에 대해.

모로소와 디젤 크리에이티브 디자인팀의 합작품인 토털 플라이트 케이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마룻바닥 한가운데 앉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의 물건을 관찰하곤 했다. 더듬이처럼 안테나가 올라온 TV, 손가락으로 다이얼을 돌리는 전화 기, 옻칠 장식을 한 낮은 다리의 화장대 같은 것. 그중에서 가장 시선이 오래 머문 건 섬세하게 조각한 자개장이었다. 우아한 학, 화려한 꽃 모양을 수놓은 자개장이 어린 눈에도 아름답게 보였다.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빛을 받으면 별처럼 빛나는 모습. 반짝반짝 윤이 나는데도 할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자개장을 닦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에게 자개장은 단순한 가구 그 이상의 의미였다.
수납장은 기본적으로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책은 책장에, 옷은 옷장에, 소품은 장식장에 넣으면 손쉽게 정리 정돈할 수 있다. 물론 감각적인 디자인 덕분에 인테리 어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런 수납장의 용도가 더 다양해지고 있다. 고급스러운 소재와 유니크한 디자인을 강조해 아트 피스 같은 형태이며, 퍼즐처럼 조합할 수 있 는 모듈 시스템을 적용해 기본적 기능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오묘한 빛깔을 뽐내는 크레덴차

포트 스탠더드가 동석으로 제작한 3단 서랍장

수족관을 모티브로 만든 아쿠아리오

먼저 가장 돋보이는 건 소재의 다양성을 추구하며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가구를 만드는 움직임이다. 투명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유리는 이를 실현해주는 일등공신이다. 20 세기 초 모던 디자인 바람이 불며 유리를 가구에 접목하기 시작한 이래 강화유리와 세공 기술 등이 발달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6년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 서도 유리의 화려함을 뽐낸 수납 가구가 포착되었다. 파트리시아 우르키 올라와 페데리코 페페의 합작으로 탄생한 스파지오 폰타치오의 크레덴차(Credenza) 시리즈. 독일 쾰른 대성당의 창문을 본떠 디자인한 사이드보드로 가구보다 아트 피스에 가까운 모습이다. 알록달록한 유리에 빛이 반사되면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오묘한 빛깔을 내며 공간 을 멋스럽게 만든다. 브라질 출신의 듀오 디자이너 캄파나 형제는 유리와 원목을 조합한 아쿠아리오(Aquario)를 선보였다. 한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서로 다른 소재를 믹스하 는 걸 즐긴다. 이번에는 특히 무게감이 다른 소재를 사용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가벼운 유리와 묵직한 원목을 접목했다”라고 밝힌 것처럼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물방울 모양의 그린, 블루 컬러의 유리 창문을 더해 마치 작은 수족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유리와 나무의 서로 다른 무게감과 질감의 차이가 독특한 무드를 풍긴다 . 묵직한 돌을 가지고 실험적인 수납장을 만든 브랜드도 있다. 뉴욕의 신진 컨템퍼러리 디자인 스튜디오 포트 스탠더드가 그 주인공. 장식품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하는, 비누처 럼 부드러운 동석(soapstone)을 이용해 3단 서랍장을 만들었다. 동석 특유의 텍스처가 살아 있는 거대한 조각상 같은 형태라 확실히 존재감이 남다르다.

가죽 지갑을 여닫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에르메스 라 메종의 코프레 어 비주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가 전개하는 리빙 컬렉션에서는 자신의 주특기라 할 수 있는 다채로운 패브릭 소재를 접목하는 데 탁월하다. 그 선봉에 에르메스 라 메종이 있다. 가죽 지 갑을 여닫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코프레 어 몽트에(Coffret a Montres)와 코프레 어 비주(Coffret a Bijoux) 두 제품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각각 시계와 주얼리 수 납장으로 소개했는데, 내부에 퍼즐처럼 쌓아 올린 여러 개의 상자가 서랍장의 기능을 대신해 드레싱 룸이나 침실에 두고 작은 소품을 보관하기 좋다. 화장대처럼 앉아서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한점도 독특하다. 특히 몇 가지 부속품은 분리해 휴대용 패키지로 사용할 수도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다. 보테가 베네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토마스 마이 어가 고안한 새로운 홈 컬렉션을 발표했다. 그중 브랜드의 장인정신을 반영한 스웨이드 또는 가죽으로 커버링한 6단 서랍장이 눈길을 끈다. 전면에는 6개의 리본 모양의 브론즈 손잡이를, 측면에는 보테가 베네타를 대표하는 인트레차토 패턴을 새겨 특별함을 부여했다. 가죽을 이용해 최고급 가구를 트렌디하게 생산하는 박스터와 수작업으로 하이 퀄리 티의 가죽을 제작하는 폴트로나 프라우도 가죽 수납장을 출시했다. 박스터의 방돔(Vendome)은 여행 가방처럼 양쪽 문을 열 수 있는 디자인. 왼쪽에는 옷을 걸 수 있는 행어, 오 른쪽에는 다양한 사이즈의 나무 서랍이 있어 소품이나 주얼리를 수납하기 좋다. 침실이나 드레싱 룸에 두면 수납뿐 아니라 하나의 장식품처럼 기품이 있다. 폴트로나 프라우는 상판과 바닥을 제외한 전체를 통가죽으로 감싼 피델리오 노테(Fidelio Notte) 서랍장을 출시했는데,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디자인에 촘촘한 박음질을 더해 포인트를 주었다. 이러 한 수납장은 가죽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감성을 앞세워 공간을 차분하고 품격 있게 만들어준다.

수납력과 공간 활용도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포로의 보아세리

반대로 차갑고 투박한 철제 캐비닛은 실내에 두어도 잘 어울릴 만큼 스타일리시하게 변신했다. 모로소가 디젤 크리에이티브 디자인팀과 협업으로 완성한 토털 플라이트 케이스 는 비행용 케이스를 모티브로 디자인해 금속 소재지만 고급스럽고 세련된 느낌.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파올라 나보네가 박스터와 협업한 인더스트리엘레(Industrielle)도 있다. 깔끔한 화이트 컬러에 현무암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디자인이라 철제 캐비닛으로 느껴지지 않고 어디에 두어도 멋스럽다.
물론 기능적이며 아름답기까지 한 수납장에 마음이 동하지만, 집 사이즈나 데드 스페이스를 고려해 월 스토리지를 골라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단순히 벽을 채우 는 게 아니라 원하는 크기로 확장하는 모듈형 시스템이 강세다. 시스템화한 모듈 가구를 전문으로 하는 브랜드 몰 테니앤씨에서는 북셸브 앤 멀티미디어 505를 새로이 선보였 다. 선반을 자유자재로 옮겨 원하는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제품으로 책과 TV 등을 효율적으로 수납할 수 있다. 선반마다 조명을 장착해 거실 전체에 은은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이외에 문이나 서랍, 선반 등을 분리하고 재조합해 옷장, 파티션, 수납장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 가능한 포로의 보아 세리 등 수납력과 공간 활용도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모듈 수 납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수납만 잘해도 인테리어의 반은 성공한 것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물건을 수납하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면서 집 안을 아름답게 꾸미는 주체가 된 요즘의 수납장.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다채로운 변주가 가능하니 앞으로 수납장의 무한한 활약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파올라 나보네와 박스터가 협업한 인더스트리엘레

전면에는 리본 모양 브론즈 손잡이를, 측면에는 인트레차토 패턴을 더한 보테가 베네타 6단 서랍장

“요즘 수납장은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면서 집 안을 아름답게 꾸미는 주체가 된다.”

에디터 | 문지영 (jym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