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의 예술
인류의 가장 오랜 취미 활동인 수집. 모든 것이 풍족한 오늘날 무엇인가를 열정적으로 모으는 행위의 본질적 의미는 무엇일까? 수집을 통해 남다른 인생을 개척한 수집가 4인을 만났다. 그들은 이미 이 시대의 장인이자 예술가였다.
좋은 수집이란 무엇일까? 수집가로도 잘 알려진 일본의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수집 이야기>라는 명수필에서 ‘마음’을 이야기한다. “무언가를 심도 있게 수집한다는 것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다. 수집을 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제법 필요하다. 사람들은 물건을 가지고 수집을 생각하지만, 그 물건을 좌우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물건만 가지고도 수집을 운위할 수 없다. 그런 때문인지, 좋은 수집은 의외로 드물다.” 애초에 어떤 대상을 향한 뜨거운 ‘마음’ 없이는 수집이라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수집은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가장 본능적 행위 중 하나였다. 그런데 유독 수집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수집가 혹은 컬렉터라 부른다. 일평생 어떤 정념에 홀린 것처럼 특정 대상을 온 힘을 다해 강박적으로 모은 사람들. 그들은 금욕과 물욕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자신만의 창조적 세계를 구축했다. 세상의 만물이 쉽게 쓰이고 버려지는 시대에 그들의 병적인 수집은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숭고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장인이자 예술가라 불러야 마땅하다. 미친 듯이 수집에 빠져 어떤 경지에 이른,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주인공을 <노블레스>가 만났다. 시간을 이기고, 세속적 돈의 가치를 훌쩍 넘어 제3의 역사를 만든 이들의 반짝이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민자연사연구소 소장 이지섭
이지섭, 민자연사연구소 소장
수집의 묘미는 수집가만 아는 대상의 가치와 매력에서 출발한다. 아무리 귀한 보석이라도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돌덩이나 다름없다.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민자연사연구소를 방문한 사람은 ‘광물’의 아름다움에 원 없이 흠뻑 취할 수 있다. 이 연구소는 광물 수집가인 이지섭 소장이 30년 넘게 모은 희귀 광물과 화석 3000여 점 중 1000여 점을 선별해 전시한 곳이다. 삼성전자 부사장까지 역임한 그는 2010년 퇴임 후 이듬해 4월에 사재를 털어 496㎡(150평) 남짓한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을 방문한 전문가들은 전시 광물의 종류와 규모가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비교해도 손색없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이 소장은 1981년에 광물 수집을 시작했다. 새로 개발한 전자레인지의 품질관리를 위해 오른 뉴욕 출장길에 방문한 뉴욕자연사박물관에서 그동안 봐온 광물과는 차원이 다른 기묘한 모양과 색색의 빛깔에 마음을 온통 빼앗겼다. 주변 수집품 상점에서 60달러에 구매한 ‘쌍둥이 눈사람’ 모양의 마노(석영과 옥수 혼합)가 그의 첫 수집품이다. 월급의 절반을 쏟아붓는 그의 광물 수집을 말리던 가족도 이제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이 소장의 컬렉션 중 20%는 아내와 두 아들이 모은 것이다. 그는 수집이 ‘생활 속 양념’이라고 말한다. “호모루덴스라는 단어처럼 인간은 놀이를 통해 즐거움을 찾는 존재입니다. 수집을 하면 오감이 즐거워져요. 아름답고 나만의 상상을 더할 수 있는 대상을 모으면서 느끼는 소유의 즐거움도 상당하죠. 무엇보다 수집을 하면 ‘격물치지(格物致知)’가 절로 생깁니다.” 그렇다면 이 소장이 광물 수집을 통해 깨달은 세상의 이치는 무엇일까? 그는 광물이 지구와 우주의 역사를 담은 실체라고 설명한다. “가공하지 않은 원석이야말로 자연의 질서와 우연이 빚은 천연 예술 작품이죠. 원소 비율, 환경, 조건에 따라 수만 가지 모습을 드러내요. 광물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생명은 어디에서 왔고, 우주는 무엇이냐?’ 광물도 생명체처럼 끊임없이 진화하기에 인간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이 소장은 단 한 번도 수집한 광물을 판 적이 없다. 순수한 수집가로 남기 위해서다. 또 취향에 맞는 예쁘고 아름다운 원석만 모으지 않고, 250종의 광물 표본을 빠짐없이 수집하는 데 주력했다. 수집 광물이 한국의 기초과학 연구에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광물은 계층 불문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 요소를 지녔어요. 제가 수집한 아름다운 광물을 보면서 일반 대중과 청소년이 자연과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의 광물이 근사한 박물관에서 빛을 발할 날을 기대해본다.
울페나이트(Wulfenite)

첫 수집품인 쌍둥이 눈사람 모양의 마노 원석

축구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이재형. 연구소 겸 자택에는 축구와 관련한 수집품 4만여 점으로 가득 차 있다.

가운데 유니폼은 1968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출전한 허윤정 선수가 착용한 것이다.
이재형, 축구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수집은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행위입니다. 수집을 통해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과거를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이 빈약합니다. 특히 격변기에 새로운 길을 개척한 원로 선수에 관해 너무 무지해요. 그분들에 대한 재평가가 빨리 이뤄져야 합니다.” 축구역사문화연구소의 이재형 소장은 수집이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한국 축구에 관한 사료를 가장 많이 보유한 축구 자료 수집가다. 서울시 성북구에 있는 연구소를 겸한 집 안 곳곳에 40종류에 가까운 수집품 4만여 점이 빽빽하게 진열돼 있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기관도 보관하지 않은 귀중한 자료가 부지기수다.
훌륭한 수집가의 인생과 수집품을 따로 떼어놓고 보기 어렵듯, 그의 삶과 축구를 분리하는 일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것 같다. 축구 전문지 <베스트 일레븐>에서 에이전트 사업본부장(이사)을 맡고 있는 그는 지금도 주말마다 직접 그라운드를 누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대표로 볼을 찰 만큼 축구에 소질이 있었지만, 부모의 반대로 축구부가 없는 중학교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고. 축구 선수가 되지 못한 보상 심리였을까? 그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축구 기념품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엔 기념우표, 엽서, 마스코트 저금통, 경기 팸플릿, 입장권 등 구하기 쉬운 물품이었다. 이 소장은 1993년 지금의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며 축구계에서 점차 네트워크를 쌓아갔다. “열정만으론 한계가 있어요. 축구의 역사와 함께 최근 정보를 꾸준히 모으고 공부해야 해요. 네트워크도 훌륭한 수집에 한몫을 합니다. 좋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대인 관계도 좋아야 해요.(웃음)” 왜 그가 한국 축구계에서 ‘마당발’로 통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00년 스페인 출장 중에 방문한 FC 바르셀로나 클럽의 축구 박물관은 그의 수집 인생에 전환점을 마련했다. 100년이 지난 창단 유니폼부터 우승 트로피까지 시대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그곳에서 살아 있는 축구의 역사를 느낀 것. 귀국 후 그는 자료 수집의 방향을 ‘역사’로 맞췄다. “축구 자료 수집의 가치를 재확인했어요. 축구 마니아를 넘어 역사적 가치와 이야기를 지닌 자료를 모아야겠다 싶었죠. 특히 한국 축구 자료 수집에 매진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수집 인생의 분수령이 됐다. 그의 수집품으로 한 은행의 전시장에서 열린 <역대 한국 국가 대표팀 사료 전시>는 인산인해를 이뤘고, 축구를 향한 열정이 세상에 알려지자 이에 감동한 독지가와 축구 원로 선수의 기증이 줄을 이었다. 그 덕분에 그의 수집 리스트에서 한국 축구의 역사적 자료가 더욱 풍성해졌다. 또한 4년마다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마련한 후원금은 고스란히 수집에 재투자했고, 그렇게 모은 수집품으로 한국 축구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종합축구문화센터를 준비 중이다. 그가 마지막에 덧붙인 말이 귓가에 맴돈다. “월드컵 4강까지 오른 나라에 제대로 된 축구 박물관 하나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죠!”
딩카족의 드레스
ⓒ 세계장신구박물관

19세기에 에티오피아에서 제작한 은으로 만든 대형 십자가
ⓒ 세계장신구박물관

세계장신구박물관 관장 이강원
이강원, 세계장신구박물관 관장
오랫동안 수집에 매진한 이들은 수집품이 방대해지면, 언젠가 그것을 모아 전시하는 박물관 건립을 막연하게 꿈꾼다. 그것은 수집이 그랬듯 수집가가 다다를 운명의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의 힘으로 그 꿈을 실현하기란 지난한 수집 과정만큼이나 쉽지 않다. 서울시 종로구 화동에 있는 세계장신구박물관의 이강원 관장은 30여 년 동안 오지를 돌며 목숨을 내놓고 모은 장신구 3000점으로 2004년 박물관을 설립했다. “사람들은 장신구를 액세서리로만 생각해요. 장신구에는 회화와 조각, 건축 등 인류가 창조한 모든 예술이 응축돼 있죠. 장신구는 인류학적 보고입니다. 착용한 사람의 이야기와 체온, 영혼이 담겨 있어요.” 서울대학교 건축과 김승회 교수가 설계한 아담한 박물관 건물은 장신구 수집에 평생을 바친 그녀 자신에게 선물한 커다란 보석함과도 같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며 기자를 꿈꾼 이 관장은 외교관인 남편 김승용씨와 함께 1971년 브라질을 시작으로 2002년 아르헨티나까지 세계 각지로 생활 터전을 옮기는 ‘유목민’ 인생을 살았다. 장신구라는 신세계를 처음 맞닥뜨린 건 1978년. 내전으로 시청 주변에까지 시체 더미가 쌓여 있던 에티오피아에서였다. 총소리가 끊이지 않는 생지옥 속에서 서른 살의 젊은 동양인 여성은 겁도 없이 마르카토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물건을 파는 한 여인의 아름다운 은 목걸이에 마음을 온통 빼앗겼다. “운명의 반전 같았어요. 아직도 그 순간이 잊히지 않아요.” 그녀의 말대로 ‘(수집)병’에 감염된 것이다.
이때부터 이 관장은 남편의 직업을 ‘멍석’ 삼아 60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하면서 목걸이, 팔찌, 코걸이, 귀고리, 십자가, 반지, 가면 등 세상의 모든 장신구를 억척스럽게 모았다. 더 값진 물품을 얻기 위해 현지 언어를 밤새워 공부했으며, 어렵게 얻은 장신구가 스스로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날 만큼 깊은 감동을 느꼈다. 남편이 퇴직한 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가 박물관을 설립했을 때, 세상은 다시 한 번 놀랐다. 누구도 그녀가 이 정도로 방대하고 빼어난 장신구를 수집했는지 몰랐기 때문. “가면을 쓰고 살았죠. 수집은 저를 받쳐주는 등뼈 같은 것이었어요. 외교관 부인으로 살면서 한 치의 빈틈도 없도록 최선을 다했죠. 장신구 수집에 매진하려고 다른 모든 일에 더욱 엄격했어요. 그렇게 수집은 제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도와준 지지대였습니다.” 남편과 딸도 학예사 시험에 합격해 이제는 가족이 함께 박물관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
시인이자 수필가이기도 한 그녀는 사립 미술관 운영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언젠가 박물관을 열길 꿈꾸는 이 땅의 수집가가 부딪힐 현실의 높은 벽과 절망감이 그녀의 글 곳곳에 녹아 있다. “이 장신구를 만든 사람들은 세월을 뛰어넘어, 시간을 저당 잡힌 이들이죠. 이 작품을 만들고 말겠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겁니다. 그런 장인정신이 우리 시대에도 남아 있을까요?” 이 원장은 그렇게 장신구에서 누군가의 인생과 시간을 들여다본다. 어쩌면 이 장신구들은 그녀를 비추는 거울일지 모른다.
토이키노 관장 손원경. 그는 자신의 장난감 수집품을 직접 촬영하고 재편집한 사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손원경, 토이키노 대표
광적인 수집가의 고충 중 하나는 일상생활과의 간극이다. 한국의 장난감 수집가 1세대인 손원경 대표도 그랬다. 40세에 결혼하기 전까지 “장난감하고만 살았다”고 말할 정도로 장난감 수집이라는 블랙홀에 빠졌다. 중학교 2학년 시절 남대문시장에서 가필드, 미키 마우스, 스누피 등 작은 만화 캐릭터 인형을 사기 시작해 30년 넘게 40만여 점을 수집했다. 할아버지인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이 고서와 고가구, 서예, 전통 회화 작품을 공들여 수집하던 모습도 어린 그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성인이 되고 사진 스튜디오 겸 광고 회사를 운영하며 장난감 수집을 이어갔지만, 당시만 해도 다 큰 어른이 장난감을 모은다고 입 밖에 내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장난감이 그저 어린 시절의 소모품이 아니라 시대를 담은 문화라는 철학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2006년 삼청동에 장난감 박물관 토이키노를 설립했다.
토이키노에는 그가 모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장난감과 캐릭터 피겨 등을 선별해 전시했다. 좀처럼 한자리에서 볼 수 없는 진기한 풍경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 삼청동이 데이트와 관광 명소로 급성장하면서 박물관에도 발길이 이어졌다. 수집에 대한 열정이 참신한 사업 아이디어를 만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2007년에는 파주시 헤이리마을에 장난감 박물관을 확장 개관했다. 이 밖에도 그는 예술의전당, 신세계백화점, 잠실 롯데월드, 현대백화점 등에서 35차례에 걸쳐 장난감 전시를 개최하며 대중과 긴밀하게 호흡해왔다. 장난감을 가장 멋진 방식으로 대중에게 선보이는 일도 큰 기쁨이기 때문이다. 과욕이라는 판단에 20만 점 정도의 수집품을 정리하기도 했다. 2015년 봄, 서울 정동 경향아트힐 2층으로 자리를 옮겨 토이키노를 재개관했고, 장난감의 종류와 역사를 정리한 저서 <더 토이북>도 출간했다. 책에 실린 사진 역시 그의 작품이다. “수집을 하려면 예술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다짐했어요. 서도호 작가 역시 수집가의 편집증을 예술로 끌어온 사례고, 렘브란트나 마르셀 뒤샹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집품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은 그의 사진 작품은 2010년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 <기억의 풍경>을 통해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의 키덜트 문화를 이끈 그는 장난감 수집이 향후 더욱 보편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오늘날 소비는 왕성한 생산 활동입니다. 수집도 소비와 직접 연결되죠. 소비품을 만드는 기업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장난감도 마찬가지예요. 그동안 한국은 너무 이슈몰이에만 치중했어요. 그 덕분에 장난감 수집이 일반화됐지만 앞으로가 문제죠. 일본만 해도 캐릭터의 라이선스를 함부로 남발하지 않아요. 지나치게 경제적 가치를 따지거나 흥미 위주로 접근하면 문화적 토양이 비옥해질 수 없죠. 다른 나라의 좋은 사례를 참고하고 서로 교류해야 합니다.” 한 단계 높은 컬렉션과 창조적 아이디어를 결합한 프로젝트를 선보일 것이라는 그의 포부가 뜨겁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사진 정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