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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지식인

LIFESTYLE

분명히 과학적인 문제인데, 과학에서 다루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만 모아 다루는 과학자가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과학사-과학철학과 석좌교수인 장하석 박사다. 이미 많은 강연과 토론, 방송에서 과학우월주의를 비판해온 그는 과학은 철저히 인간적이며 인간의 본성과 능력, 그 능력의 한계와 욕망을 반영한 학문이고, 그래서 인본주의적 입장에서 겸허히 과학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케임브리지에 거주하는 그를 서울에서 만나기 위해 약 8개월을 기다렸다.


 몇 달 전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한국은 가수를 키우고 선진국은 과학자를 키운다.” 일본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기사를 읽은 후라 그 문장이 주는 자조감은 더했다. 그러나 잠시 후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수와 과학자를 절대적 잣대로 비교할 수 있는가? 과학자가 가수보다 직업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선진국과 기초과학의 수준을 동의어로 사용해도 되는가? 혹시 우리가 과학에 맹목적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람들이 기대하는 과학의 이상적인 모습은 혹시 박제와 같은 어떤 형태는 아닐까? 이런 자문을 쏟아 내다 보니 때 아닌 질문이 튀어나왔다. “우리는 학교에서 과학을 제대로 공부한 것일까?” 몇 달 간격으로 기능을 한껏 업그레이드한 스마트폰이 출시되고, 가상현실이니 인공지능이니 하는 신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빠른 진화의 속도를 자랑하는 이때, 놀랍도록 즉흥적이고 반사적인 모바일 시대에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은 사실 진짜 과학이라기보다 ‘기술’의 다른 이름에 가깝다. 과정은 뒤로한 채 결과물에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패턴화된 이 (과학)기술은 자칫 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과학 뒤에 숨은 철학, 심리학 등 정작 가치를 두고 생각해야 할 것은 외면한 채 여전히 속도에 몰입하는 기술 발전은 자칫 과학의 존재가치가 경제적 이익 달성에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이것이 과학과 철학은 꼭 만나야 한다고 믿는 장하석 박사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다. “과학의 주목적은 기술적 응용을 통해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생각, 과학 연구가 인간의 본성과 관계없이 객관적이라는 생각, 그리고 과학 지식은 마치 신의 섭리와도 같은 진리를 표현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그걸 넘어서야 과학의 진정한 문화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탐구 경험에서 얻은 과학적 사고방식과 과학 지식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만이 사회 속 과학의 의미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물리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측정과 양자물리학의 비통일성’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치고 1995년 29세의 나이에 영국 런던 대학교 과학사-과학철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는 이후 <온도계의 철학>이라는 센세이셔널한 과학철학서로 2005년 영국과학사학회에서 뛰어난 저술가에게 주는 이반 슬레이드상(Ivan Slade Prize)을, 2006년에는 과학철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러커토시상(Lakatos Award)을 수상하며 세계적 과학철학자로 입지를 굳혔다.

 2010년부터 케임브리지 대학교 과학사-과학철학과 석좌교수로 재직중인 그가 약 1년 만에 서울을 찾은 건 신라 호텔에서 열린 ‘서울인문포럼’에서 기조연설을 맡았기 때문. 서울인문포럼은 문학과 철학, 예술 분야의 학자와 각 분야의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래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포럼으로 그는 ‘인본주의와 과학’이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그의 서울행 소식은 발 빠르게 퍼졌고, 그는 서울과 대전에서 포럼 외에 많은 강연과 미팅을 소화하며 빡빡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카이스트 개교 45주년 행사에서는 ‘과학철학과 과학 교육’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는 ‘통념을 깨는 과학자들’이라는 주제로 강의했습니다. 이것 말고도 서울대학교를 비롯해 여러 연구소에서 특강을 했어요.” 연구원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과 달리 일반 대중이 참석하는 포럼에서는 과학이라는 학문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터. 그러나 그가 지금껏 다년간 해온 연구가 바로 ‘일단 과학에서 가장 쉬운 내용을 뽑고, 그것이 나오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 아닌가. 즉 그가 펴낸 <온도계의 철학>에서 보듯 온도계와 물, 전지 등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일상의 과학에 물음표를 더하는 것이 그가 주로 하는 연구다. 특히 ‘온도계’는 그를 말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키워드. 10년간 연구를 바탕으로 쓴 <온도계의 철학>에서 그가 던진 질문은 이거다. ‘온도계가 나타내는 온도는 과연 정확한 온도인가?’ “기존 과학자들은 그건 너무 쉬운 이야기고 이미 밝혀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좀 생각이 달랐어요. 순진한 의문이랄까요. 수은과 알코올 등을 채워 온도계를 만들고 그 액체가 온도에 따라 아주 균일하게 팽창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데, 그걸 어떻게 정확하다고 믿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답을 찾기 시작했는데, 첫째 답이 나와 있는 것도 없고, 둘째 과학자들에게 물어봐도 ‘온도계 만드는 사람들이 다 알아서 잘 만들었는데 우리가 그런 걸 걱정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러더라고요.(웃음)”  주변의 이런 반응을 뒤로하고 그는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분명 온도계를 만든 과학자들이 연구를 했을 것이고, 그 과학사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해답이 보일 것이라 생각한 것. 기대처럼 이미 300년 전 유럽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150여 년 동안 논쟁을 벌이며 지금 그가 하고 있는 고민을 했던 흔적이 담긴 문서를 찾게 되었다. “이건 동시대 과학자들이 다루지 않는 문제지만 분명 중요하고 재미있는 연구가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이런 연구는 첨단적 연구를 하는 과학자 말고 저처럼 과학철학이나 과학사를 하는 사람이 연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 연구를 통해 섭씨온도, 화씨온도, 물리학자들이 사용하는 절대온도라는 개념 이전에 존재한 다양한 온도 측정 역사의 발전 과정을 되짚어 과학철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러커토시상을 수상했다.

온도계처럼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수용하는 건 세상에 정말 많다. 과학 상식에 의문을 품자면 끝도 없이 이어진다는 게 장하석 박사의 생각. 그가 온도계를 연구하면서 찾은 두 번째 주제는 바로 ‘물’이다. 그는 ‘물이 H2O라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물은 항상 100℃에서 끓는가’와 같은 의문을 품었다. 이 또한 다른 과학자들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이미 증명된 것을 뭐하러 연구하느냐는 것. 역시나 과학사를 뒤져본 그는 지금껏 추앙받고 있는 훌륭한 과학자들 또한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을 발견하곤 직접 실험에 착수하고 연구해 2012년, <물은 H2O인가?>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아무리 평범한 것도 들여다보면 새로운 흥밋거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어릴 적부터 이어온 순수과학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기초가 되는 이론만 밝혀내면 모든 걸 알 수 있다 생각했고, 기초적 이론은 100% 확실한 거라고 믿어왔지만 온도계, 물, 전지 등을 연구하다 보니 과학 지식에 우리가 진리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에서 ‘어떤 이론이 확실하다’는 건 그 이론이 경험적 검증을 거쳤다는 뜻이거든요. 관측과 실험을 통해 그 이론이 맞아떨어지면 ‘맞는 이론’이 되는 거죠. 그런 논리라면 어떤 지식이 확실하다는 결론은 결국 관측에서 나오는 건데, 관측은 실험자가 관측 기기를 믿을 때 성립되는 거죠.” 이 말은 오늘 기온이 19℃라는 건 우리가 온도계를 믿을 때 19℃라는 것이고, 그 온도계가 정확해야 확실한 지식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 온도계가 정확하다는 걸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 “우리가 보통 과학을 이야기할 때 확실한 토대를 하나 만들고 거기에 집을 짓듯이 지식을 확고히 정립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에서는 이 개념을 토대론이라고 해요. 그런데 제가 온도계에 대한 책을 쓰면서 토대론을 완전히 포기하게 됐어요. 확실한 것은 없구나. 그렇지만 확실하지 않은 것을 끌어안고 그래도 발전시켜가면서 조금씩 진보해가는 것이 과학의 본질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가 학계를 뛰어넘어 대중에게까지 인지도를 높이고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EBS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는 2014년 2월부터 5월까지 총 13회에 걸쳐 방영한 강연 프로그램이다. 거기서도 그는 철학이라는 재미난 주제로 과학에 접근하면서 그 안의 이야기를 매우 쉽게 풀어내 시청자가 과학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했다. 오죽하면 시청자 게시판에 ‘이 강의를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들었다면 나도 과학자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와 같은 내용이 다수 올라왔을까. 이런 반응에 그는 속 시원히 대답한다.“과학자가 될 사람이 아니면 어려운 과학을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과학 교육은 과학혐오증, 과학공포증만 남기죠. 그럴 거면 아예 과학을 안 배우는 게 나아요. 그래서 제가 쉬운 걸 좋아합니다. 별 재주 없는 사람도 체험해볼 수 있는 식의 과학을요. 과학의 본질이 무엇인지, 과학을 응용해 기술을 만드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야 그제야 과학이 문화로 자리 잡습니다. 주기율표 외워봤자 소용없어요. 지겹잖아요.“

 그가 과학에서도 유독 ‘본질’에 호기심을 갖게 된 건 어려서부터다. 그의 아버지는 14·15·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그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호기심이 많은 분이다. 모든 일, 어떻게 보면 쓸데없는 일에까지 호기심을 갖고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달려들었다. 예를 들면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도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지구가 어떻게 생겼을까?”라고 혼잣말을 했고, “세상이 어떻게 생겨났을까?”, “생물은?”, “인간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까?” 라는 식으로 늘 질문을 던졌다. 가족 누구에게도 대답을 강요하진 않았다. “사실 그거야말로 과학자의 기본 자세예요. 어릴 때부터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반대로 그의 어머니는 굉장한 원칙주의자였다. 장하석 박사는 과학이야말로 호기심과 원칙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분야라고 말한다. 이 두 DNA를 물려받은 그가 어려서부터 가장 좋아한 놀이는 ‘관찰’이었다. “어릴 때부터 순수과학을 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커서 뭐 될래?’ 물으면 ‘과학자요’라고 했으니까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정말 과학에 미쳐서 ‘앞으로 물리학을 하겠다’고 하니 아버지가 ‘물리학 공부를 하려면 한국에선 안 된다’ 하시더라고요.” 그는 서울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마친 후 미국 명문 고교인 노스필드 마운트 허먼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 진학해 물리학과 철학을 함께 공부했다. 그런데 물리학도를 꿈꾸던 그가 갑자기 왜 철학에 관심이 생긴 것일까? “물리학을 하러 가긴 했는데, 공부하다 보니 그것과 관련된 여러 학문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과학 안에도 철학적 문제가 산재해 있는 것이 보였죠. 그렇게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같은 맥락에 있는 심리학, 인류학, 경제학, 뭐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건 다 했습니다. 열심히 했어요, 공부는.(웃음) 열심히 한 대로 결과가 다 나오지는 않았지만요.” 스물아홉 살에 런던 대학교 교수로 임용되고 현재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강의하면서 그가 가장 힘쓰는 부분은 학생들이 독창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물리학 선생님이 있었어요. 하루는 수업 시간에 ‘문제가 잘 안 풀려요’라고 질문하니 선생님이 ‘나도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같이 풀어보자’ 하시는데, 그 상황이 아주 충격적이었어요. 정말 모두 같이 끙끙거리며 그 문제를 풀던 기억이 납니다.” 장하석 박사도 그런 교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교수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교수, 독창적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는 교수가 되려고 노력한다. 사실 놀라운 과학적 진보를 이룬 요즘 세상에서 독창적 연구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 그러나 그가 말하는 독창적 연구는 세계 역사상 아무도 하지 않은 연구가 아니라 실험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주변에서도 모르던 걸 알아내는 걸 말한다. ‘내가 모르는 걸 네가 알아내서 가르쳐주면’ 그것이 독창적인 연구인 것이다.

 


 

독창적인 연구를 하고 싶다면 유연한 사고와 경직된 사고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과학은 수학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우선 정확하고 경직된 사고가 필요합니다. 무작정 자유분방한 사고만으로는 철학은 가능 할지 모르지만 과학은 안 되죠. 토머스 쿤의 정상 과학 개념과도 통하는데, 패러다임이 만드는 틀 안에서 해야 과학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정말 필요할 때는 유연한 사고를 통해 틀 자체를 바꿔 버리는 새로운 생각이 나와야 하지만요.” 새로운 생각을 하고 싶으면 색다르게 살아야 한다. 남과 똑같이 생활하고 똑같이 사고해서는 유연성을 기를 수 없기 때문. 그래서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스마트폰도, 자가용도 없이 산다. “노트북도 가끔 지겨울 때가 있는데, 스마트폰이라뇨. 집에서 학교도 자전거로 다녀요.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고, 그러다 보면 좀 이상하고 독특한 생각도 나고 그렇죠.”

그의 형 장하준 박사도 그와 같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생각만큼 자주 보진 못하지만 타지에서 가족은 그 이상의 힘이 된다. 한 해 동안 바쁘게 강의하고 연구하다 보니 이제 벌써 연말. 그에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특별한 세리머니가 있는지 물었다. “제가 평소 늘 하는 게 있어요. 매일같이 ‘가장 중요하고 값진 일’이 무엇인지 리스트를 적는 겁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 혼자 새겨보기 위해서요. ‘내가 만난 가장 멋진 사람들’, ‘내가 나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일기식으로 적습니다. 연말에 그 노트 한 권만 들춰보면 한 해가 마무리되죠.” 그는 다 식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아이 같은 환한 표정으로 요즘 갑자기 관심이 생긴 게 있다고 고백했다. “우리 주변에 높은 나무가 있잖아요. 10m, 20m, 30m 되는 굉장히 높은 나무요. 그런데 신기하지 않아요? 그 위까지 물이 도대체 어떻게 올라갈까요? 잘 생각해보면 이거 굉장히 고민되는 문제거든요.”

“과학을 단순하게 보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왜 나라에서 과학을 양성해야 하는가?’
물어보면,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순수과학을 발전시키면 기술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달하면 공업이 발전하고 종국에는 경제가 발전한다는 일방통행적 생각. 아주 위험하죠.
과학은 문화로 이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