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 것들은 가라
순한 위스키, 순한 소주, 순한 맥주 혹은 순한 담배. 모든 것을 순하게 만들려하는 이 시대는 얼마나 따분하고 무료한가. 독주 한잔의 고독과 낭만을 기억하고 있는 당신을 위해.

1. BACARDI 151 – 75.5%
흔히 독주라고 하면 바카디 151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만큼 이 술은 독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술이다. 알코올 도수는 무려 75%. 대중적으로 알려진 술 중에선 최고 수준이다. 과거 바텐더들이 흔히 ‘불쇼’를 보여줄 때 가장 많이 쓰던 술이기도 하다. 위스키가 아닌 럼이라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단독으로 마시기보다는 칵테일의 베이스로 쓰는 것이 낫다. 썩 맛있진 않아서다. 당신이 청년이라면 객기로 도전해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스트레이트는 말리고 싶다.
2. WILD TURKEY 101 – 50.5%
‘가격 대비 성능 최고’로 꼽히는 버번위스키. 하지만 원산지는 터키가 아니라 미국이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정식 발매 전인 1940년경, 원액 샘플을 야생 칠면조(wild turkey) 파티에 가져갔다가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발매 시점이 미국 대중문화의 전성기와 맞닿아 있어 영화나 소설 등에 단골로 등장하기도 한다. 마초 스타일 캐릭터들이 그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와일드 터키와 말보로를 애용하곤 했다. 독주 입문용으로 추천할 만하다.
3. THE GLENLIVET NADURRA – 55.7%
메이저 주류업체는 도수가 높은 위스키를 만드는 경우가 드물다. 그 드문 경우에 속하는 것이 더 글렌리벳 나두라다. 숙성된 원액 그대로 오크통에서 바로 병입하는데, 별도의 희석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도수가 높다. 숙성 기간은 최소 16년. 도수는 높지만 원액을 좋은 환경에서 숙성시켰기에 오히려 쓴맛보다는 달콤한 맛이 강하다. 해외의 여러 위스키 크리틱 사이트에서도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4. OCTOMORE 6.3 – 64%
옥토모어를 생산하는 브뤼클라딕 증류소의 책임자인 짐 매큐언은 인터뷰에서 이 위스키를 우사인 볼트에 빗댔다. 강하고 아름답다는 이유에서. 실제로 이 위스키는 알코올 함량 64%로 매우 독하지만, 독주에서 맛보기 힘든 과일과 꽃 향을 숨기고 있다. 위스키의 맛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피트 수치가 다른 위스키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아 소위 ‘스모키’한 맛이 강하다. 아주 천천히 증류해 피트 수치를 대폭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고독할 때, 혹은 고독하고 싶을 때 가장 어울리는 술이다.
5. GLENFARCLAS 105 – 60%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카치위스키를 만드는 증류소는 거의 대형 주류업체에 속해 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거대 그룹에 편입되길 거부한 채 가문에서 자체 운영하는 증류소가 몇 있다. 글렌파클라스 증류소가 그중 하나다. 글렌파클라스 105의 알코올 함량은 60%. 너무 겁낼 건 없다. 생각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과 향이 올라온다. 철의 여인으로 알려진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즐긴 위스키로도 유명하다.
6. CHARTREUSE GREEN – 55%
‘리큐어의 왕’으로 불리는 이 리큐어는 1605년 프랑스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만들었다. 수도원 근처 냇가에 자라는 130여 가지 약초와 허브를 알코올에 넣고 증류시킨 뒤 오크통에서 숙성시켜 만드는데 자세한 조제법은 단 2명의 책임자만 알고 있을 뿐, 아직도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 리큐어 자체가 술에 당분을 따로 첨가해 만드는 것인 만큼 달콤한 맛이 강하고 색깔도 연한 녹색이기 때문에 자칫 만취하기 쉬운 술이기도 하다.
에디터 이기원 (lkw@noblesse.com)
사진 박원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