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비소리
숨비소리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 바다로 올라와 크게 내뿜는 해녀의 숨소리다. 부산 바다에 울려 퍼진 숨비소리를 따라간 부산 해녀 이야기.

제주 해녀, 부산 해녀가 되기까지
부산 해녀를 논할 때 제주 해녀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해녀의 존재는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조선시대 문서에는 ‘잠녀’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기도 했는데, 당시 잠녀는 얕은 물에 서식하는 미역과 우뭇가사리 등의 해조류를 주로 채취하는 여성을 뜻했다. 전복 채취는 포작이라 불리는 남성들이 맡아 조선 조정에 진상했다. 조정의 과도한 전복 진상 요구를 견디지 못한 포작들이 하나둘 섬을 떠나면서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잠녀들은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해녀들은 19세기 말 전문 장비를 갖춘 일본 어업인의 등장으로 생업을 위협받자 일을 찾기 위해 일정 기간 타지로 나가 생업을 이어갔는데 이러한 해녀를 출가 해녀라고 불렀다. 부산·경남 지역에 있던 기존 해녀들과 부산에 정착한 제주 해녀들, 그리고 출가 해녀에게 물질을 전수받는 여성이 늘어나며 부산에도 해녀 문화가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현재 해녀는 행정법상 ‘나잠어업인’에 속한다. 부산의 나잠어업인은 약 900명으로 그중 560여 명이 기장에 거주한다. 예부터 기장에는 우뭇가사리가 많이 자랐다. 일제강점기 당시 우뭇가사리는 미역의 1000배를 웃도는 가격으로 매우 귀한 식자재였기 때문에 많은 출가 해녀가 기장에 머물렀다고 전한다. 우뭇가사리는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했는데 이를 포함한 수확물 판매는 대형 수산 시장이 자리한 영도에서 이뤄졌다. 기장과 영도에 해녀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1 오륙도 해녀들이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 해녀들은 해녀 공동체를 바탕으로 어업 활동을 한다.
2 수확물을 채취한 해녀가 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
부산 해녀의 오늘 그리고 내일
제주 해녀 출신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 까닭에 부산과 제주의 해녀 문화는 거의 유사한 편이다. 공동체 생활을 하며 실력에 따라 하군, 중군, 상군으로 나눠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는데 상군 해녀의 경우 20m까지 잠수가 가능하고 물속에서 최대 2분까지 버틸 수 있다. 봄에는 돌미역, 여름철에는 해삼이나 성게, 전복, 겨울에는 말똥 성게 등을 주로 채취한다. 채취한 수확물은 수협에 판매하기도 한다. 부산 해녀 문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수확물을 직접 판매하는 경로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 해녀촌이라 불리는 포장마차촌은 해녀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파는 곳으로 영도, 기장, 오륙도 등 해변가를 중심으로 분포해 있다. 기장군과 영도 일대, 오륙도 선착장 등 해녀들이 활동하는 곳에 관광객의 발걸음이 이어지며 자연스레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오륙도 선착장이나 기장 연화리에 가면 오전에 물질을 끝내고 돌아와 수확물을 손질해 음식을 만드는 해녀들을 볼수 있다. 고단한 하루는 아내와 어머니라는 이름 아래 매일 반복되고 있지만 대다수가 10년 이상 이곳에서 묵묵히 일하며 삶의 무게를 견뎌왔다.
제주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전국의 해녀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곳곳에서 해녀에 관한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제주의 해녀 콘텐츠는 해녀 교육에 치중한 것이 특징이다. 해녀의 수가 감소하고 있고 대다수가 60대 이상이기 때문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만큼이나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부산 해녀의 경우 해녀촌으로 인해 자칫 해녀에 대한 첫인상이 상업적으로 비칠 수 있어 올바른 문화를 전하는 것 또한 중요해 보인다. 지난 10년간 한일 해녀 문화를 연구해온 동의대학교 한일해녀연구소 유형숙 소장이 생각하는 바도 이와 같다. 해녀 문화 체험 기회를 마련하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해녀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선다면 자연스럽게 전통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는 것. “모두들 해녀의 전통을 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해녀 특유의 보수적 문화로 인해 신입 해녀를 육성하는 것은 아직까지 먼 이야기예요. 하지만 해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이러한 작은 노력을 해녀들이 인식하기 시작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젊은 부산 해녀들을 만나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녀가 해녀 문화 체험에 실제 해녀를 강사로 초대하는 이유 역시 딱딱한 이론으로 해녀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해녀를 직접 느껴야 해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녀를 실제로 보고 알아가며 느낀 것은 해녀의 역사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거친 바닷속에서 삶을 건져 올리는 자맥질을 하루하루 이어온 그들, 부산 해녀에게 들을 이야기가 아주 많이 남은 것 같다.
참고문헌
김영돈, 한국의 해녀, (민속원)
안미정, 해항도시의 이주자 : 부산시 해녀 커뮤니티의 존재양상, (<역사와 경계>)
에디터 박현정(hjpark@noblesse.com)
사진 김영철 도움말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 유형숙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