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그러나 깊게
국립오페라단 김학민 단장에게 오페라는 ‘모든 사람이 향유하길 바라는 이 시대의 온갖 사연’이다. ‘Easy but Profound’, 쉽지만 깊이 있는 오페라 시대의 터전을 다지기 시작한 김학민 단장을 만났다.

지난 12월 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김학민 신임 단장이 이끄는 국립오페라단의 2015년 마지막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막이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로 손꼽히는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많은 관객이 객석을 채웠다. 이번 무대는 2014년 국립오페라단이 새롭게 제작한 것을 1년 8개월 만에 신진 연출가 임형진이 재연출하고, 젊은 지휘자 이병욱이 음악적 해석을 더한 것. 막이 내려가고 언론과 관객의 호평이 쏟아졌다. “신선한 음악적 해석이 돋보인 무대”, “새로운 면모를 선보인 영원한 신화” 등 한 해를 마무리하는 국립오페라단의 피날레 무대에 박수와 격려를 보내는 목소리가 높았다.
국립오페라단 김학민 단장의 집무실 테이블 위에는 새해, 새 시즌을 위한 플랜과 연구 자료가 한아름 놓여 있었다. 그는 부임 후 오디션 제도 개설, 아티스트 데이터베이스 구축, 개런티 책정의 객관성 확보, 시즌 레퍼토리 시스템 도입, 지역 공연 활성화 등 5개 플랜을 발표했다. 제로 상태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시점에 뉴페이스 연출가와 지휘자를 기용한 <라트라비아타>는 그의 새로운 비전을 엿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또한 그는 몇 달 전 <진주조개잡이>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리허설 현장에 학생과 일반인을 초대해 ‘백스테이지 투어’와 ‘리허설 관람’을 진행했다. 오페라가 일부 문화 향유자의 호사스러운 취미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출연자만 드나들 수 있는 무대의 뒤편과 의상실, 성악가가 분장하는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고급문화라는 오페라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키고자 했습니다. ‘오페라는 어렵다’는 선입견을 지닌 사람들, 일단 흥미를 느끼면 변화가 일어날 만한 사람들, 오페라의 재미를 전파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죠. 미래세대에 투자하는 셈입니다. 이제 부임한 지 6개월 됐는데 벌써부터 성과를 기대하진 않아요. 열매를 맺기까지 6년, 어쩌면 60년이 흘러야 하겠지만 필요하다면 지금 빛나지 않더라도 그렇게 해야죠.”
행정직을 맡게 된 것은 그에게도 뜻밖의 사건이었다. 오히려 그의 과거는 연기, 연출, 음악, 무대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재학 당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같은 영시를 읽으며 가슴이 두근거린 그는 연극 동아리에서 연기에 흥미를 느꼈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보다 인기 많은 머큐시오 역을 맡았어요. 전국 순회공연을 다니며 연기 잘한다는 평도 많이 들었죠.(웃음)” 그러던 중 보게 된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는 그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대학원에 지원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학교 교재는 물론 800페이지에 달하는 영어 원서를 거의 외우다시피 해서 어렵게 들어간 작곡과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음악을 할 생각에 기대했는데 음악미학, 음악인류학, 음악심리학, 음악현상학, 철학, 음악사 등의 이론 연구만 하자니 ‘공부’만 하는 사람이 된 거예요. 밤새 논문을 쓰다 새벽에 찢어버리기도 하고, 포기하려고 교수님 방 앞을 여러 번 서성거리기도 했어요.” 그렇게 음악 이론 전문가로 거듭나며 각종 언론에 기고한 평론만 수십 건. <객석>에서 고정 칼럼을 맡아 진행한 것으로 1988년 예음평론상 음악 평론 부문 1등을 수상하는 영예도 누렸다.
34세가 되던 해에 미국 텍사스 오스틴 주립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것은 그에게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지금 용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늘 가슴속에 품고 있던 음악과 연극을 접목할 수 있는 오페라 연출 실기 공부를 하기로 한 거죠.” 그는 하루 종일 연습실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고 노래, 지휘, 연기 레슨을 받고 오페라 실기 수업에 몰두하며 행복을 느꼈다. 세계적 연출가 로버트 데시모네에게 5년 6개월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오페라 연출부터 연기, 해석, 세트 디자인, 조명 관련 수업을 혹독하게 들었다. 김 단장은 매 학기 오페라와 뮤지컬 연출을 맡아 미국 유수의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올렸다. <어린이와 마법에 걸린 사물들>, <코지 판 투테> 등의 작품평이 그 지역 신문에도 여러 차례 게재됐다. 그렇게 미국 생활 6년여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국내 초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시작으로 <마술피리>, <나비 부인> 등을 연출하며 지금까지 약 12년 동안 경희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로 재직해왔다.
오랜 시간 학업과 교육, 연출에 매진해온 그의 경력은 국립오페라단 단장직을 맡으며 발현되기 시작했다. “오페라는 모든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해요. 어렵게 만들지 말고 직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쉽지만 깊이 있는 방식으로 전달해야죠. 오페라단 밖에서 연출도 하며 객관적 입장이 되었다가 내부로 들어와 단장직을 맡으니 문제와 답이 보이더군요.”
해결책은 그의 말대로 쉽지만 심오했다. 우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립오페라단이니만큼 주요 대도시에 편향된 공연을 소도시에서도 열고, 지역 출신 아티스트를 캐스팅함으로써 지역 간 문화 예술의 수준 차를 좁혀야 한다는 것. 국내 오페라계가 발전하기 위해선 해외 유수의 오페라단과 협업하고 초청도 가능해야 한다. 그래서 일정 시즌의 공연 스케줄을 미리 발표하는 ‘시즌 레퍼토리 시스템’을 확립할 예정이다. 그뿐 아니라 외국 스태프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국내 상황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라이징 스타도 육성할 계획이다. 모두 기본적이지만 가까운 미래만 봐서는 좀처럼 발견할 수 없는 사항이다. “국립오페라단의 최근작 <진주조개잡이>는 국내 초연 작품이고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국내 프로덕션의 첫 작품입니다. 본질은 유지하면서 쉽고 단순하게 접근한 덕에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새해에도 아직 국내에 소개하지 않은 바로크 오페라, 동구권 오페라 등 새로운 레퍼토리를 통해 중·장기 공연 레퍼토리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봄에 선보일 <루살카>와 <오를란도 핀토 파초> 역시 국내 무대에서는 한 번도 소개한 적 없는 작품이죠.” 문화 향유자를 위한 오페라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오페라를 만들겠다는 그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에디터 임해경 (hklim@noblesse.com)
사진 김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