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니커즈 커스텀의 신세계
취미가 스니커즈를 커스텀하는 직업으로 이어진 벨럼의 수장 최효근
스니커즈 문화에서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이 주류가 되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란 생각이 든다.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처럼 오직 자신을 위해 만든 신발을 신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트렌드를 좇고자 하는 군중심리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오리지널리티, 즉 브랜드 고유의 철학과 디자인을 품은 완성품 자체를 존중하겠다는 생각 역시 스니커즈 문화에서 결코 무시될 수 없다. 이러한 선입견을 지닌 에디터가 마포구 신수동의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한 커스터마이징 브랜드 벨럼의 쇼룸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디렉터 최효근을 만나 그의 패기, 슈즈 제작 노하우, 더 나아가 그와 팀원들이 사람들과 향유하고픈 스니커즈 문화를 접했다. 이야기를 나눈 후 내가 지니고 있던 생각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제작 여건상 소수의 사람만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이 멋진 신발을 주류와 비주류의 범주로 나누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음을 깨달았다.

벨럼은 어떤 브랜드인가. 커스터마이징 스니커즈를 선보이는 브랜드다. 스니커즈를 커스텀한다고 하면 보통 기성 제품에 페인팅을 하거나 패치를 붙이는 작업을 떠올리는데, 우리는 원래 있던 갑피(구두의 겉가죽)를 뜯어내고 아예 새로운 갑피를 얹는 정통 제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그래서 커스터마이징이라 불리지만, 정확히는 수제 스니커즈 제작을 한다고 말하고 싶다.
브랜드를 런칭하게 된 계기는. 스니커즈를 좋아한데다 커스터마이징에까지 흥미가 생겨 처음엔 취미로 접근했다. 벨럼을 런칭하기 전 가죽 재킷 브랜드의 디렉터로 일했고, 가죽공예를 하며 여가를 보낸 덕에 소재와 패턴에 친숙했다. 그런데 제화 방식의 커스터마이징은 취미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전문 기술은 물론 제작에 필요한 다양한 장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국내에, 더 넓게는 아시아 지역에 제화 방식으로 커스터마이징하는 브랜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본격적으로 팀을 꾸리게 됐다. 지난해 3월에 런칭했으니 아직은 시작 단계다.
이 분야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가 있나.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나이가 들면서 커스텀메이드의 매력에 자연스레 빠져든 것 같다. 온전히 내 취향과 기호에 맞춰 소재, 색상을 고르고 디자인을 변경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
취미와 일은 별개라 생각한다. 슈즈 제작을 위한 전문적 노하우를 터득해야 했을 텐데. 동의한다. 우리가 하는 제화식 커스터마이징은 신발 제조 지식이 절대적이다. 라스트와 패턴 개발 등 보통의 슈즈 제작과 비슷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성 제품을 해체하고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발을 새로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르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제화식 커스터마이징 분야의 전문가가 없었다. 그래서 나와 팀원들은 시행착오를 거쳐 독자적 방법을 찾았다. 슈즈 제작을 전문적으로 배운 팀원들이 큰 힘이 됐다. 완성도는 자신 있다.

한 켤레의 신발을 제작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오리지널 신발에서 아웃솔을 분리한 뒤 재단, 밑작업, 봉제, 라스팅, 건조 등 많은 단계를 거친다. 모든 상황이 완벽할 때 그리고 하나의 제품만 제작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5일에서 7일 정도 걸린다. 과정 하나하나가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고, 또 재료 수급 등 변수가 있어 주문 후 고객이 손에 넣기까지는 5주가 걸리기도 한다.
첫 결과물이 궁금하다. 나이키의 에어 조던 1 하이 시카고 모델. 마이클 조던이 공식 경기에 처음으로 신고 나온 ‘시카고’ 레드 컬러의 에어 조던이다. 첫 작품인 만큼 의미가 깊다.
현재 어떤 모델을 커스터마이징하고 있나. 주로 다루는 모델 역시 에어 조던 1 모델이다.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모델이기에 인기가 많기도 하지만, 신발에 사용하는 패턴이 다양해 변화를 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의뢰하는 입장에서도 재미있는 슈즈다.
원재료가 되는 에어 조던 1 모델은 구하기 어려운 걸로 알고 있다. 그것이 문제다. 그래서 해외 스니커즈 사이트를 뒤지거나 수소문하는 일도 중요한 일과다.

그간 만든 스니커즈 중 애착이 가는 모델도 있을 것 같다. 가수 장우혁에게 만들어준 신발로, 직접 만나서 그의 바람을 대폭 투영한 결과물이다. 어릴 적 우상이던 사람의 신발을 직접 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고 값진 경험이었다. 하나 더 있다. 국내에서 유일한 스니커즈 컨벤션 ‘스니커 하우스’를 개최하는 스택하우스(Stackhouse)와 협업한 모델로 악어가죽과 파이톤, 소가죽의 조화가 일품인 모델이다.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 캔버스로 만든 슈즈도 있더라. 리사이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브랜드의 빈티지 백 캔버스를 활용해 제작했다. 오래돼 사용하지 않는 제품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라 더욱 뜻깊었다.
제품을 둘러보니 파이톤 소재가 눈에 띈다. 오리지널 모델에 사용하지 않는 가죽을 커스텀 제작에 썼을 때 전혀 다른 느낌의 제품이 탄생한다. 그리고 파이톤 소재 특유의 고급스러움이 있다. 그렇다고 이그조틱 레더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소재를 선택할 때 가죽의 질을 최우선으로 한다.
국내의 커스터마이징 슈즈 문화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벨럼을 운영하며 아쉬운 순간이 종종 있다. 우리나라엔 여전히 커스터마이징 스니커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오리지널 제품으로 제작해도 ‘브랜드에서 정식으로 발매한 제품이 아니면 가품이다’라는 생각 말이다. 나 또한 오리지널 모델을 아끼고 존중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하는 일을 다양한 문화의 일부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미국의 경우, 아무래도 시장 자체가 크다 보니 커스텀 브랜드는 기업이나 유명 스포츠 선수, 아티스트와 협업해 결과물을 쏟아낸다. 널리 퍼지고 정착한 커스텀 문화가 부러울 때가 많다.
향후 계획은. 우리가 보유한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수제 스니커즈 제작 교육 프로그램 ‘스니커 아카데미’를 준비하고 있다. 3월부터 시작할 예정으로 신발 제작에 문외한이라도 수강할 수 있다. 또 하나의 계획은 커스텀 브랜드에 그치지 않고 여러 오리지널 상품을 선보이려 한다. 재킷, 백, 액세서리 등 가죽을 사용한 제품이 그것이다.
에디터 이현상(ryan.lee@noblesse.com)
사진 정석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