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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바꾼 전시 지형도

ARTNOW

스마트폰은 어느새 전시 자체를 구성하는 담론이자 주인공이 됐다.

< From Selfie to Self-Expression >전에서 선보인 크리스토퍼 베이커(Christopher Baker)의 ‘Hello World! Or: How I Learned to Stop Listening and Love the Noise’.

지난 2015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현생 인류를 가리켜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라고 표현했다. ‘지혜가 있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사피엔스에 빗대어 스마트폰 없이 살기 어려운 사람들을 비꼰 것이다. 이는 그만큼 스마트폰이 인간의 생활 영역 곳곳에 침투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마트폰은 미술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술가들은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해 그림을 그리고 뉴미디어 작품을 만든다. 큐레이터는 실시간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전시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셀피를 찍어 SNS에 공유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최근의 스마트폰은 보조재의 역할을 넘어 미술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만들고 있으며, 이것은 전시의 형태로도 나타나고 있다.

<#셀피selfie – 나를 찍는 사람들>전에서 관람객으로 하여금 셀피를 찍도록 유도한 김가람 작가의 ‘#SELSTAR’.

셀피, 스스로 사진을 찍는 우리의 모습
셀피(selfie)는 ‘스스로’를 뜻하는 ‘self’와 ‘인물 사진’을 뜻하는 ‘portrait’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으로 자신을 찍은 사진을 의미한다. 지난 2013년 옥스퍼드 사전이 그해의 단어로 셀피를 선정했을 만큼 지금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단어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자기 자신을 찍고, 그것을 SNS에 올리는 모습은 어느새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작년 3월 31일부터 5월 30일까지, 런던의 사치 갤러리는 셀피의 역사와 현재를 탐구한 전시 < From Selfie to Self-Expression >을 열었다. 렘브란트와 반 고흐 등 과거 미술 거장의 자화상과 톰 크루즈, 버락 오마바 같은 현대 유명인의 셀피로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웠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과거 거장들이 자기애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린 자화상을 셀피의 개념으로 포함한 것이다. 또한 갤러리는 전시 개막을 앞두고 전 세계 네티즌을 대상으로 SNS에 ‘#SaatchiSelfie’란 해시태그를 달아 흥미로운 셀피를 올리는 대회를 진행했고,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정한 10명의 작품을 전시장에 함께 소개했다.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소통하고 즐기는 수단으로 기능하는 셀피의 본질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는 평.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도 셀피를 주제로 한 전시가 열렸다. 바로 작년 4월 26일부터 8월 20일까지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린 <#셀피selfie – 나를 찍는 사람들>전. 사치 갤러리의 셀피 전시와는 달리, 셀피를 그대로 전시하기보다 셀피라는 사회현상 자체를 탐구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 촬영이 제한되는 다수의 전시와 달리, 관람객이 사진을 찍도록 유도하는 인터랙티브 작품으로 꾸몄다. 예컨대 미디어 아티스트 듀오 신남전기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얼굴이 예뻐 보이는 얼짱 각도, 화사한 포토샵 보정 등 다양한 이미지의 왜곡을 체험하게 하는 ‘마인드 웨이브(Mind Wave)’를 선보였다. 이는 자신의 본래 얼굴을 최대한 숨기는 셀피의 속성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진 촬영을 금하는 일반 전시와 달리, 사진 촬영을 해야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작품으로 꾸민 이 전시는 스마트폰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스마트폰을 통해 개개인의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는지 보여줬다.

살바도르 달리의 명화를 재해석한 가상현실 작품 ‘달리의 꿈(Dreams of Dali)’.

SNS가 이끌어낸 새로운 미술 담론
당신이 SNS에 올린 셀피를 누군가 그대로 캡처해 작품에 사용한다면 어떨까? 지난 2014년 가고시안 뉴욕에서 열린 사진작가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의 개인전 < New Portraits >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책이나 광고 등에 실린 사진을 다시 찍어 작품화하는 재촬영(re-photographing) 기법으로 악명 높은 리처드 프린스는 이 전시에서 누군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멋진 사진을 캡처한 후, 사진 아래 캡션을 제거하고 새로운 코멘트를 추가해 크게 인쇄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이렇게 다시 태어난 일부 ‘작품’이 10만 달러에 판매되기도 했다. 개인적 사진이 전시장에 들어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 건 흥미로운 일이지만 이것이 정말 작품인지, 또 누구의 작품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주고받는 사진의 의미를 주목한 전시도 있다. 지난 12월에 막을 내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 Talking Pictures: Camera-Phone Conversations between Artists >전은 12명의 작가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으로만 꾸몄다. 12명의 작가가 2명씩 짝지어 반년간 사진을 주고받으며 대화한 결과물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담았다. 어떤 캡션이나 코멘트도 없어 관람객은 이들이 어떤 맥락으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SNS를 통해 이미지로 감정을 표현하는 시대, 이런 실험적 전시는 우리가 사진을 찍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만으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First Look: Artists’ VR’ 앱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제레미 쿠야르의 가상현실 작품 ‘Rebirth_Redirect’.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새로운 감상법
요즘 트렌디한 전시에는 스마트폰과 증강현실(AR) 기술을 결합한 작품이 빠지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사례는 토론토의 온타리오 미술관과 디지털 아티스트 앨릭스 메이휴(Alex Mayhew)가 협업한 ‘리블링크(ReBlink)’ 프로젝트. 이들은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의 영구 컬렉션 중 10개를 선정, 이것을 익살스럽게 바꾼 AR 작품을 만들었다. 관람객은 스마트폰에서 리블링크 앱을 다운로드한 후, 전시장에서 해당 작품을 스캔하면 메이휴가 만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반응이 좋았다는 후문.
이렇듯 스마트폰은 오래된 작품을 새롭게 감상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가상현실(VR) 기술이 조금 더 발전하면, 굳이 시간을 들여 미술관에 갈 일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2016년 1월부터 미국 세인트피터즈버그에 위치한 달리 박물관에선 ‘달리의 꿈(Dreams of Dali)’이라는 VR 작품을 전시 중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1934년 작 ‘밀레의 만종에 대한 고고학적 회상(Archeological Reminiscence of Millet’s Angelus)’을 VR 기술로 재구성한 것. 원래 이 작품은 달리 박물관에서 VR 안경을 쓰고 풀 버전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그러나 박물관은 보다 많은 사람과 이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축약 버전을 제작, 무료로 공개했다. 유튜브에 ‘Dreams of Dali’를 검색해 해당 동영상을 클릭하면, 유튜브의 VR 기능을 이용해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뉴욕의 뉴 뮤지엄은 아예 ‘First Look: Artists’ VR’이라는 온라인 미술관을 만들었다. 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앱 스토어에서 ‘First Look: Artists’ VR’ 앱을 다운받아 스마트폰에 설치하고, 원하는 작품을 선택하면 끝. 제레미 쿠야르(Jeremy Couillard), 포펜타인(Porpentine) 등 작가 6인의 VR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달리 박물관의 ‘달리의 꿈’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움직이며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물론, VR 안경을 끼면 더욱 실감나게 작품을 느낄 수 있다.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