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창업자의 조건
미래 먹거리이자 청년 창업자들의 꿈, 스타트업의 명과 암.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도전에 나섭니다. 많이 격려해주시고 지켜봐주세요.”
지난 2014년 6월경으로 기억된다. 당시 독특한 사업 아이템으로 언론에서 꽤 주목받고 있던 스타트업 한 곳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 양재역 인근에 있는 회사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는 ‘나눔’이었다. 이는 꽤 획기적인 시도였다. 당시만 해도(지금도 비슷하지만) 대다수의 스타트업은 기술 기반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영역을 사업의 큰 틀로 삼았다. 이전 직장에서, 혹은 대학 시절부터 갈고닦은 각종 IT 기술력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모바일 게임 시장의 급격한 성장을 지켜본 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게임 개발에 매진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눔’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불우한 이웃과 소외계층에게 지원 사업을 펼치는 이 스타트업은 ‘괴짜’ 소리를 듣기에 충분했다. 일각에서는 ‘저러다 몇 년 못 가 망할 것’이라는 우려를 쏟아냈지만 당시 그 회사의 CEO A씨는 괘념치 않았다. 오히려 ‘아름다운 도전’이 결국 성공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최근 신생 벤처 관련 기사를 보던 중,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바로 3년 전에 만난 A씨였다. 처음 접촉한 회사가 아닌 모바일 큐레이션 벤처 창업자로 소개된 A씨의 얼굴에선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하지만 기자의 눈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조금 엿보였다. 3년 만에 전화기를 들어 A씨와 통화를 시도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조심스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간의 상황에 대해 물어봤다. 길게 모든 정황을 소개할 순 없지만, 몇 마디 말로 요약해 보면 이렇다. “충분한 준비를 했기에 자신감에 넘쳤습니다. 어느 누구도 해본 적 없는, 게다가 비즈니스의 목적이 이윤 창출이 아니라 사회적 나눔이라는 ‘선한 의도’라면 분명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창업이라는 거대한 도전에서 ‘분명한’이라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더군요. 아쉬움도 컸지만 약으로 삼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전성시대
스타트업 전성시대다. 지난 정부의 ‘창조 경제’ 패러다임은(개념의 모호성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창업 지원’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멀게는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창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책 마련은 시작됐다. 현 문재인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부터 공공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창업자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수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스티브 잡스(애플 창업자)나 래리 페이지(구글 창업자)가 나올 수 없는 것일까?” 이는 기자가 참가한 몇 번의 창업 관련 세미나에서 공통적으로 들을수 있었던 연사들의 발언이다. 솔직해져보자. 결국 연사들의 발표는 ‘우리도 내가 말한 것처럼 사회를 바꾸면 충분히 가능하다’라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알고 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냉정하게 말하면 현 상황에서 스티브 잡스와 래리 페이지 같은 창업자가 대한민국에서 나올 확률은 한 자릿수에 가깝다(0%라고 단언하지는 않겠다).
그들의 출현은 절묘한 타이밍과 시대적 변화가 적절히 조화를 이뤘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창업한 1970년대 후반과 1990년대 후반은 이후 시대를 뒤흔든 퍼스널 컴퓨터와 인터넷이 붐을 일으킨 시점이었다. 변화의 흐름에 적절히 올라타 혁신을 앞세운 서비스와 제품으로 시장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런 까닭에 스티브 잡스와 래리 페이지는 ‘창업자’라기보다는 ‘혁신가’라고 부르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그들이 살고 있던 곳의 환경이다. 서구권 국가는 아주 오래전부터 스타트업 창업이 활성화된 지역이다. 대학 진학을 앞둔 시점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취업’이라는 단어 대신 ‘창업’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스마트 워치 ‘닷워치’를 개발해 전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김주윤 닷(Dot) 대표는 “미국 워싱턴 소재의 대학에 진학한 후 창업 동아리의 인기가 너무 높아 깜짝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며 “스무 살 때부터 창업을 생각한 터라 나름 빠른 도전이라고 생각했는데 고등학생 신분으로 이미 창업을 해본 친구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창업 활성화를 위한 지원이 시작된 조금 독특한 배경이 있다. 단순히 창업 생태계 조성과 창업자 양성이라는 근본적 이유와는 차별화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이제껏 만난 여러 전문가들은 ‘고령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중 하나가 바로 ‘창업’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고령화 시대가 개막하면서 50대 이상 중·노년층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는 구조가 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창업’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정부가 ‘창업경진대회’ 같은 행사를 시작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창업 열풍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대학 졸업과 대기업 취업’이라는 안정된 미래의 공식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창업을 권장하는 시대가 오고 있고, 지금의 분위기도 그러하다. 예비 창업자들도 확실한 아이템과 사업적 가능성만 있다면 투자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보았듯,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도 성공을 담보하긴 어렵다. 또 창업 후 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른바 데스밸리(death valley)로 일컬어지는 창업 후 3~7년 차를 넘겨야 한다는 조바심과 압박감에 무리한 도전과 변화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 스타트업은 장기전이다. 매출은 당사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늦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그런 의미에서 당장의 수익과 매출을 강요하는 VC(벤처 캐피털)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중고 거래 모바일 플랫폼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헬로마켓의 경우, 창업 전부터 이른바 ‘서비스 안정화 3단계 전략’이라는 큰 그림을 그렸다. 당장의 매출보다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플랫폼을 온전히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특이한 점은 전략적으로 홍보·마케팅 활동도 자제했다는 것이다. 많은 스타트업은 서비스를 출시한 이후, 투자금을 기반으로 전방위적 마케팅 활동에 돌입한다. B2B가 아닌 B2C 기반의 O2O 서비스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헬로마켓은 만족할 만한 수준에 오르지 못한 서비스를 무작정 홍보했다가는 예상치 못한 낭패를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서비스 런칭 후 3년간 조용히 서비스 고도화에 집중했다. 그렇다면 이후 상황은? 서비스에 대한 자신감과 진정성을 앞세워 한류 스타 조인성을 광고 모델로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이 한류 스타를 섭외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은 모든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이미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창업자들은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로 ‘인재’를 꼽는다. 자신이 만든 회사라 해도 결코 독단적으로 모든걸 결정할 순 없다. 임지훈 카카오 대표는 과거 필자와의 만남에서 스타트업을 ‘개성 강한 전문가들이 꿈 하나만 믿고 모인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물론 창업자의 리더십이 존중받아야 회사가 설정한 꿈과 목표를 모든 구성원이 좇을 수 있다.
이제껏 만난 몇몇 예비 창업자는 자신의 아이템에 대한 과도한 믿음과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른바 ‘독불장군’형인 그들은 단 1%의 실패 가능성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좋아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한 가지 맹점이 있었다. 스타트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창업자 스스로 ‘왜 도전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명확히 찾아야 한다. 이들에겐 그런 게 없었다. 성공을 확신했기에 다른 생각은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최근 확인한 이들의 근황은 아쉽게도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물론 이러한 독불장군형 창업자가 무조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주변에 직언할 수 있는 동료나 직원이 있다면 이를 견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더구나 모든 스타트업은 ‘수직적 조직’을 추구하는 대기업과 달리 ‘수평적 조직 문화’를 강조한다. 조직의 규모와 의사 결정 체계 역시 대기업에 비해 매우 작고 짧다. 회사와 창업자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기본적 환경을 갖춘 만큼 이러한 인재의 유무는 스타트업의 성장 가능성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타트업과 창업 생태계 활성화는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그리고 창업은 철저한 준비가 필수다.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훌륭한 동료를 구하고, 장기적 플랜을 세워 접근한다면 성공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철저한 준비하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수많은 창업자가 등장하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그들이 대한민국의 ‘혁신가’로 발돋움하길 바란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글 김병준(포춘코리아 기자) 사진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