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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를 사수하라

ARTNOW

사우스런던에 위치한 애니시 커푸어의 스튜디오 전경 / ⓒ Caseyfierro Architects, Jim Stephenson

애니시 커푸어의 워크숍 룸 내부 공간. 최대 9m까지 층고를 높였다. / ⓒ Caseyfierro Architects, Jim Stephenson

그들의 런던 스튜디오
런던의 부동산 가격이 나날이 치솟으면서 예술가의 작업 공간 역시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3월 영국의 조각가 앤서니 곰리는 런던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스튜디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와 팀을 이루고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런던 시 문화부, 건축 그룹 PLP Architecture, 이스트런던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런칭한 세컨드 홈(Second Home), 아웃셋 컨템퍼러리 아트 펀드(Outset Contemporary Art Fund) 등이 앤서니 곰리와 함께 ‘스튜디오메이커스(Studiomakers)’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곰리는 이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의 재능이나 창작 의지를 뒷받침해줄 저렴하고 안정적인 작업 공간이다”라며 스튜디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북쪽의 천사(Angel of the North)’(1998년) 등 이미 공공 예술로 이름을 알린 앤서니 곰리는 지금껏 작품의 영구 설치 문제에 대한 찬반 논쟁을 수차례 겪어왔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당 기관을 설득하고 비영리단체를 설립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 그가 이번 프로젝트처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 해결책을 찾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런던의 주거 비용이 무서운 속도로 오르면서 작가들을 위한 공간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곰리처럼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작가의 움직임은 많은 미디어와 기관의 주목을 받으며 이슈에 더욱 힘을 싣는다. 스튜디오메이커스는 앞으로 일부 예술가에게 한정돼 있던 문제를 공론화하며 해결책을 찾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스튜디오 메이커스’의 리더 앤서니 곰리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트레이시 에민의 런던 스튜디오

런던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 중인 설치미술가 트레이시 에민

같은 시기 영국이 사랑하는 또 다른 아티스트 애니시 커푸어의 스튜디오는 5년에 걸친 리뉴얼 공사를 마치고 문을 열었다. 케이시피에로 아키텍츠(Caseyfierro Architects)에 의해 재탄생한 이곳은 사우스런던에 위치한 기존 작업 공간을 스튜디오와 워크숍 룸, 갤러리로 분리해 개조했다. ‘보여주고, 실험하고, 저장하고, 작업하는 공간’이라는 실리적 개념의 디자인이 전문가와 대중에게서 “매우 아름답고 견고하다”는 호평을 끌어냈다. 과거에 우유 공장이던 건물의 내·외벽은 기존의 벽돌을 그대로 남기고 여러 가지 건축자재를 패치워크처럼 자연스럽게 이어 붙여 완성했다. 건물의 층을 없애고 최대 9m까지 층고를 높인 내부 공간에는 작품을 걸어 작업할 수 있는 거대한 지지대도 설치했다. 이번 레노베이션으로 20년 동안 사용한 작업 공간에 새로운 변화를 불어넣은 것. 앞으로 이 스튜디오에서 어떤 신작이 완성될지 주목된다.
반면 트레이시 에민은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스튜디오와 주거 공간을 합친 형태로 완성한 새로운 작업실 디자인이 런던 심의회에서 거절당한 것이다. 이 작업실은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 레노베이션을 비롯해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한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설계했다. 런던 심의회는 베이지색 벽돌로 모던하게 마감한 디자인이 주변의 예스러운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허가하지 않았다. 트레이시 에민의 스튜디오가 위치한 이스트런던의 스피털필즈(Spitalfields)는 17세기 프랑스 개신교 망명자들이 건설한 유서 깊은 지역이다. 길버트 앤 조지(Gilbert and George)와 화이트채플 갤러리(Whitechapel Gallery)도 이 근처에 자리한다. 트레이시 에민은 5층 건물의 맨 위층에 둥근 창을 내고 1층에는 거대한 쇼윈도를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의 의견은 달랐다. 모두 25건의 항의 편지가 날아왔고 그 누구도 이 디자인에 찬성하지 않았다. 사실 트레이시 에민이 원한 디자인은 그녀가 그동안 이 지역을 지키기 위해 주장해온 것과는 상반된다. 구도심인 이스트런던은 1960년대부터 점점 상업화되고 도시 형태가 바뀌면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녀는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에게 어필해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의 분위기와 동떨어진 스튜디오 디자인을 제안해 주민에게 거센 항의를 받은 것이다. 뉴욕과 런던을 비롯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온 그녀가 50세 생일을 맞아 안식처로 삼고자 한 런던의 새 스튜디오. 앞으로 이곳이 어떤 디자인으로 완성될지 그녀의 명성만큼이나 주목받고 있다.

에디터 임해경 (hklim@noblesse.com)
양혜숙(기호리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