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와 서커스, 경계를 허물다
잠실 한복판에 거대한 서커스 천막이 솟아올랐다. 올해 말까지 명마 50여 마리의 공연 무대가 될 이곳. 세계적 예술감독 노르망 라투렐을 건초로 뒤덮인 천막 뒤 마구간에서 만났다.
말은 예민한 동물이다. 여배우처럼 우아하게 걷다가도 인파가 몰리면 쉽게 당황하고, 모델처럼 능란한 포즈를 취하다가도 카메라 플래시만 터지면 금세 기분이 상해 돌아선다. 노르망 라투렐(Normand Latourelle)은 이제 그들을 어르고 달래는 데 도가 텄다. 그가 2003년 첫 공연을 무대에 올린 <카발리아>에는 무려 50마리의 말이 등장한다. 모두 혈기왕성한 젊은 수컷인 데다 그중 10여 마리는 특히 다루기 까다롭다는 종마(種馬)다. “지금이야 괜찮지만 처음 교육할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동작에 따라 트레이닝 기간이 2년에서 6년까지 걸렸죠.” 얼핏 봐서는 조련사인지, 공연 감독인지 모를 만큼 자연스레 말을 쓰다듬고 얼굴을 맞대는 라투렐. 그는 무려 40여 년간 공연계에 몸담은 베테랑 예술감독이자 엔터테인먼트 회사 카발리아 아이엔시(Cavalia Inc.)의 설립자다.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어느 학교에나 유독 산만한 남자아이 한두 명은 꼭 있다. 라투렐의 유년 시절이 그랬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은 듣지 않고 창밖의 새나 나무를 감상하기 일쑤였고, 그조차 끈질기게 집중하는 법이 없었다. 그에게 재미있는 일은 오직 하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여덟 살 무렵부터 집 안의 가전제품이 고장 나면 어김없이 달려들어 해체와 조립을 반복한 그는 지하실의 스피커를 직접 연결해 기분 내킬 때만 누나들 방에 음악을 틀어주던 못 말리는 꼬마였다. 열세 살 즈음엔 교내 각 동아리 친구를 모아 생애 첫 무대를 연출했다. 일종의 학예회 같은 공연이었는데, 필요한 자금은 얼음을 띄운 탄산음료를 들고 다니며 한 컵에 10센트씩 팔아 마련했고, 나무 합판에 두루마리 휴지를 펼친 뒤 미술 팀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 “한창 컬러 TV가 나오던 시절이었어요. 살던 동네가 시골이라 공연을 접할 기회는 별로 없었지만, 주로 TV를 통해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즐겨 봤죠.” 유년 시절 디즈니를 흠모하며 무수한 애니메이션을 흉내 낸라투렐은 몇 년 전 마이애미의 한 무대에 <카발리아>를 올린 뒤 잊지 못할 평을 듣게 된다. ‘만약 월트 디즈니가 살아 있다면 이런 공연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사실 노르망 라투렐 하면 따라붙는 또 다른 수식어는 ‘<태양의 서커스>의 미술감독’이다. 그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으로 엄밀히 말해 <카발리아>를 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 그는 이 전설적 아트 서커스의 공동 설립자였다. “사실 <태양의 서커스>는 퀘벡 정부의 의뢰로 캐나다 발견 4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한 행사였어요. 처음 아이디어를 낸 게 거리의 아티스트를 이용한 공연이었는 데, 퀘벡은 평소 날씨가 그리 좋지 않거든요. 무조건 실내에서 공연해야 했기 때문에 가장 싼 텐트를 찾다 보니 서커스 텐트가 눈에 띄더라고요. 결국 거리의 예술가가 서커스 텐트 안에서 선보이는 공연이니까 ‘아예 서커스를 만들어볼까’ 생각한 거죠.” 최초의 <태양의 서커스>는 이탈리아산 서커스 텐트 안에 800명 정도 수용 가능한 원형 무대를 올려 선보인 아주 작은 규모의 공연이었다. 1984년 당시 스태프는 총 70여 명, 라투렐을 포함한 3인의 공동 설립자는 그야말로 ‘일당백’으로 일해야 했다. “정말 작은 팀이라 한 사람이 한 가지 일만 전담할 수 없었죠. 제 역할이 프로덕션 쪽에 가깝긴 했지만 거의 모든 일을 동시에 진행했어요.”


<카발리아>의 공연 장면
사실 라투렐만큼 공연 안팎의 온갖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디렉터도 드물다. 그는 10대 시절 공연계에 첫발을 디딘 이후 조명이나 음향 같은 주요 팀 스태프부터 대형 장비를 옮기는 트럭 운전사까지 공연에 관한 일이라면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 결과적으로 그 모든 과정은 그가 <카발리아>를 제작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993년 한 공연에서 말 한 마리를 엑스트라로 출연시킨 적이 있어요. 당시 120명의 아티스트가 공연에 함께했는데, 말이 무대에 올라가니 관객들이 사람은 안 쳐다보고 말만 보는 거예요. 이거다 싶었죠. 구체적으로 뭔진 몰라도 다음 공연의 핵심은 말이겠구나 생각했어요.” 그것이 <카발리아>의 시작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소하고 말하고 구분도 못할 정도’였던 라투렐은 그날 이후 말이란 동물에 대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책과 비디오는 물론 직접 말을 사서 가까이 두고, 말에 관한 공연이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보러 다녔다. 그렇게 5~6년 정도 지나자 본격적으로 연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2000년경엔 말을 대거 구입해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2003년 퀘벡 주 셔위니건에서 초연한 <카발리아>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라투렐의 공연 팀은 캐나다에서 출발해 미국과 유럽, 아시아를 차례로 거쳤고, 올해 싱가포르 투어를 포함해 총 66개 도시를 순회하며 400만 관객을 불러모았다.
물론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사람이 1시간 만에 할 수 있는 걸 말은 달래고 달래야 10시간 만에 겨우 익힌다. 라투렐은 처음 공연을 준비할 때부터 동물 학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가령 말이 원치 않으면 그날의 교육은 전혀 진행할 수 없는 상황. 게다가 <카발리아>는 첫 공연까지만 탄탄히 다져놓으면 두고두고 맘 편히 재연(再演)할 수 있는 일반 무대와는 다르다. “말은 사람과 달리 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어요. 철저히 훈련시켜 무대에 올려도 공연 도중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행동이 나오곤 하죠. 그래서 더욱 신선한 공연이 되긴 했지만요.” 그의 말대로다. <태양의 서커스>가 일반 서커스와 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아트 서커스’란 개념을 창출한 시작점이라면, <카발리아>는 라투렐이 <태양의 서커스>를 통해 쌓은 경험과 지식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아트 서커스란 전체적 연출이 ‘드라마틱한 스토리’에 집중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즉 스토리텔링이 중요하죠. <태양의 서커스>는 인간을 통해, <카발리아>는 말과 인간의 교감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고요.” 결국 그의 공연을 채우는 건 말 50마리와 아티스트 46명의 현란한 곡예 기술이 아니다. 인내심을 갖고 오랜 유대관계를 통해 쌓아 올린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다.
“인생에서 정확히 알 수 있는 건 딱 두 가지예요. 나를 낳아준 어머니, 그리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뿐이죠. 전 이런 불확실한 환경 자체가 무언가를 창조하는 데 가장 좋은 토양이라고 생각해요.” 매년 해외를 순회하며 수많은 관객과 마주하지만, 여전히 그가 사는 세계는 완벽히 자유롭고 외로운 창조의 세계다. 그는 그곳에서 피터팬처럼 매일 새로운 꿈을 꾸고,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으며 자신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관객과 공유하길 원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지금 서울에 있는 이유다.
카발리아(Cavalia) 2003년 초연한 아트 서커스로 50여 마리의 명마와 40여 명의 기수, 공중곡예사, 댄서, 음악가가 오랜 트레이닝 끝에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한국 공연은 11월 12일부터 12월 28일까지 잠실종합운동장 내 화이트 빅탑에서 열린다. www.cavalia.co.kr
에디터 류현경
사진 이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