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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넘어 울리는 공명

CULTURE

7년 만에 내한 리사이틀로 한국을 찾은 독일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 쇼트.

“음악은 과거 언어로 미래를 말하는 예술이다.”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 쇼트(Daniel Muller-Schott)의 음악사는 일정 부분 이 문장 하나로 축약할 수 있다. 그는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음악계에서 전통과 혁신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대 클래식의 흐름을 새롭게 써온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여섯 살에 처음 첼로를 접한 다니엘은 아네조피 무터와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정교한 구조 분석과 깊은 감정 표현을 갈고닦았다. 현재 그는 뮤지션들 사이에 ‘음악가들의 음악가’로 불린다. 섬세하면서도 불타오르는 듯한 그의 자유로운 연주를 접하면 균형 잡힌 해석 속 기술과 감성이 완벽하게 맞닿은 지점을 보는 듯한 경험할 수 있다. 세계적 위상을 자랑하는 황금 디아파종상과 오푸스 클래식상을 거머쥔 그의 디스코그래피가 시대와 함께 성장한 음악가의 궤적으로도 읽히는 이유다.
10월, 예술의전당에서 이뤄진 7년 만의 내한 리사이틀은 그간 다니엘 뮐러 쇼트의 음악 여정을 응축한 자리다. 베토벤, 브람스, 베베른, 슈만으로 이어지는 이번 프로그램은 고전에서 낭만, 그리고 20세기로 연결되는 독일 음악사의 흐름을 하나의 서사로 엮었다. 베토벤의 형식미, 브람스의 교향악적 사고, 베베른의 긴장감, 슈만의 시적 서정이 대조를 이루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첼로라는 음악적 매개를 통해 다층적 깊이의 감정을 표현한다. 피아니스트 조재혁과 처음 호흡을 맞추는 이번 무대는 단순한 레퍼토리의 나열이 아니라 음악의 시간성과 감정의 진화를 탐구하는, 이른바 ‘사유의 리사이틀’처럼 기획한 점이 돋보인다.
다니엘 뮐러 쇼트의 음악은 언제나 질문에서 출발한다. 전통을 어떻게 오늘의 언어로 다시 말할 것인가, 그리고 감정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그는 음악을 단순한 표현이 아닌, 존재를 탐구하는 행위로 본다. “모든 음악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그의 신념처럼, 다니엘 뮐러 쇼트는 매 순간 무대 위에서 다시 태어나며 과거 언어로 오늘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2018년 이후 7년 만에 개최하는 내한 리사이틀입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베토벤에서 슈만에 이르는 독일 음악사의 궤적을 아우릅니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청중이 경험하길 바라는 음악적 여정은 어떤 것인가요? 이번 프로그램은 단순히 여러 작곡가의 곡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 음악사의 흐름을 하나의 서사처럼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베토벤과 브람스가 자리하죠. 베토벤은 피아노와 첼로가 동등하게 소통하는 새로운 소나타 형식을 만들어내며 당시로서는 혁신적 발명을 이루었고, 브람스의 F장조 소나타는 교향곡적 색채를 소나타 구조 안에 녹여내 보다 풍부한 음악적 세계를 보여줍니다. 베베른의 작품은 12음 기법을 기반으로 짧지만 강렬하게 응축된 표현을 담아, 두 걸작 사이에서 대비적 경험을 제공하고요. 마지막으로 슈만의 경우 시적 감각과 문학적 뉘앙스를 결합해 음악적 대조와 조화를 이룹니다. 이 네 명의 작곡가를 한데 엮어 청중이 음악사의 혁신과 전통, 그리고 감정의 진화를 체험하며 깊이 있는 여정을 즐기도록 구성했습니다.
특히 베토벤 첼로 소나타 3번과 브람스 소나타 2번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힙니다. 두 작품을 해석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두 작품은 모두 그 시대의 음악적 발전을 반영한 걸작입니다. 특히 두 곡을 감상할 때는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함께 봐야 합니다. 베토벤이 활동하던 1807년 무렵은 나폴레옹 전쟁과 프랑스 혁명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던 시대였죠. 그는 음악 속에서 ‘영원한 자유’를 표현하고자 한 듯합니다. 반면에 브람스가 살던 19세기 말은 훨씬 평화롭고 안정된 시기였고, 그는 ‘자유롭지만 고독하고, 고독하지만 자유롭다’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자유를 표현했죠. 이런 차이를 연주에 적극 녹여내려 했습니다.
프로그램의 한 축을 이루는 베베른의 음악은 짧지만 폭발적 긴장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선택한 배경과 그것이 전체 무대에서 지니는 의미를 들려주신다면요? 베베른의 작품은 짧지만 강렬하게 응축된 표현과 독창적 구조로, 브람스 소나타로 향하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단 2분 남짓한 연주 속에서도 모든 요소가 치밀하게 구성되어 청중은 현미경으로 음악을 들여다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화려하고 풍성한 베토벤과 브람스의 곡 사이에서 베베른은 대비적 경험을 제공하며, 소리의 최소 단위 속에서도 감정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이로써 청중은 음악의 섬세한 층위와 구조적 긴장을 체감하며, 전체 프로그램의 다이내믹과 감정적 흐름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첼로 레퍼토리의 확장을 위해 현대 작곡가와의 협업, 새로운 작품 발굴에 힘써왔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당신의 음악 세계를 어떻게 확장했는지 듣고 싶습니다. 사실 첼로 레퍼토리는 생각보다 훨씬 넓습니다. 로스트로포비치에게 헌정된 협주곡만 해도 70곡에 달하죠. 다만 대부분 오늘날 자주 연주되지 않는 점이 아쉽습니다. 저는 엘가, 슈만, 브람스, 드보르자크 등 위대한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고 현대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큰 기쁨을 느낍니다. 또 볼크만, 라프, 하차투리안처럼 낭만주의 시대의 숨은 보석을 발굴하는 일도 즐기고, 현대 작곡가들과의 협업 역시 제게 큰 영감을 주죠. 특히 미국의 작곡가 안드레 프레빈과의 작업은 음악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주었습니다. 새로운 작품을 연주하는 일은 도전이지만 관객은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며, 이는 연주자와 청중 모두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음악은 살아 있는 과정이기에 매 순간 새롭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브베 스프링 클래식 페스티벌’을 공동 창립하며 바흐 음악과 무용을 결합하는 등 실험적 시도를 이어왔습니다. 이러한 확장은 첼리스트로서 당신을 어떻게 변화시키나요? 제게 예술적 실험이란 장르의 연결 고리를 탐구하는 과정입니다. 스위스에서 개최하는 브베이 스프링 클래식 페스티벌에서는 화가, 연주자 등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하고, 젊은 세대가 제 또래 동료와 함께 실내악을 연주하는 무대를 마련합니다. 모든 예술은 인간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저도 가끔 그림을 그리고, 책 읽기를 좋아하며, 현대미술이나 인상주의 작품을 보러 전시를 즐겨 찾습니다. 다양한 예술을 경험할수록 시야가 넓어지고, 더 깊이 성장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오랜 시간 함께해온 1727년산 마테오 고프릴러의 첼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악적 동반자와도 같습니다. 이 악기와의 관계가 연주자로서 당신의 정체성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듯합니다. 역사상 최고 제작자 중 한 명인 고프릴러가 만든 이 환상적 악기와 20여 년을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악기는 단순한 연주 도구를 넘어 삶과 음악을 함께 호흡하는 나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근래 많은 첼리스트가 베네치아 악기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볼 때 고프릴러 제품의 탁월함은 여전히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닙니다. 어린 시절 악기를 선택할 때 누구에게나 특정한 ‘목소리’와 운명적으로 연결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인데, 제게는 늘 첼로였습니다. 활을 현 위에 올리는 순간, 온전히 감정을 조각해낼 수 있는 특별한 세계가 열리기 때문이죠. 첼로는 바이올린보다 훨씬 육체적이며, 깊고 어두운 음색 덕분에 음악 속 감정을 더욱 풍부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연주자는 자신의 내면을 악기와 완벽하게 결합해 청중에게 보다 진솔한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양한 아티스트와 실내악 무대를 꾸려온 경험이 솔로 연주자로서 당신에게 어떤 균형과 통찰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음악의 다양한 무대가 배우의 연기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작곡가가 요구하는 특정 역할을 맡아 그것을 최대한 충실히 표현하려고 하죠. 제 훌륭한 동료인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가 언젠가 “자신의 역할은 작곡가가 만들어낸 표현과 분위기를 다시 세워가는 것(rebuilding)”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나 실내악을 할 때, 모두 다른 음악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두 경우 모두 내가 언제 ‘주연’을 맡아야 하고, 또 언제 뒷받침하는 ‘조연’이 되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죠. 저는 이런 다양한 음악적 역할을 탐구하는 과정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당신의 연주를 두고 ‘두려움 없는 테크닉’이라는 평이 잇따릅니다. 연주자로서 기술과 감성의 조화를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연주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집중력’과 ‘내적 고요함’입니다. 새로운 곡을 준비할 때 저는 최대한 모든 신경을 집중해 악기와 음악 세계에 몰입하려고 노력합니다. 공연 중에는 긴장과 감정의 격류가 찾아오지만, 이러한 극단적 상태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죠. 강렬한 표현과 내적 평온은 서로를 보완하며, 깊은 고요 속에서 하는 연주는 감정을 한층 강렬하고 선명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집에서도, 여행 중에도 명상과 루틴을 통해 내면의 균형을 유지하려 합니다.
연주뿐 아니라 음반 해설, 프로그램 노트 집필에도 직접 참여하십니다. 글쓰기라는 과정, 나아가 타 장르의 예술이 연주자의 시각을 어떻게 확장해주는지 듣고 싶습니다. 저는 음악을 포함한 모든 예술이 각기 고유한 영감의 원천을 지닌다고 믿습니다. 글쓰기나 해설, 그림 그리기 같은 표현 방식은 제 해석을 명확히 하고, 음악적 시야를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10대 시절부터 시각예술, 건축,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고, 이러한 경험은 음악을 바라보는 저만의 관점과 해석을 형성하는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직접 창작하거나 타 장르를 탐구하면서 얻은 통찰은 첼로 연주에 깊이와 풍부함을 더하며, 음악적 표현의 폭을 넓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지금까지 연주해온 작품 중 특히 마음이 가는 곡 혹은 앞으로 탐구해보고 싶은 레퍼토리가 있다면요? 드보르자크 협주곡, 하이든, 슈만, 베토벤,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협주곡을 꼽겠습니다. 바흐, 브람스, 차이콥스키의 작품에도 애정이 깊고요. 앞으로 바버와 미야스콥스키 협주곡에 도전할 계획인데, 로스트로포비치 선생님이 강력하게 추천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투어와 새로운 음반 발매 등 앞으로의 음악적 계획 역시 궁금합니다. 올해 10월 아시아 투어를 시작으로 호주에서 시드니 심포니와 차이콥스키 협주곡, 뉴질랜드에서 바흐 무반주 모음곡과 엘가 협주곡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연말에는 카네기홀에서 브람스를 기념하는 아이작 스턴 추모 콘서트에 참여하고, 막심 벤게로프, 빌데 프랑, 앤서니 맥길, 제임스 에네스, 예핌 브론프먼 등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하는 무대도 구상 중이에요. 2026년에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재녹음할 예정이고요. 2000년 ‘바흐의 해’에 진행한 첫 녹음을 되돌아보며, 삶과 음악의 새로운 해답을 모색하고자 하는 시도죠.

 

에디터 이호준(hojun@noblesse.com)
사진 우베 아렌스(Uwe Ar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