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사진가, 주명덕의 아틀리에
1966년에 첫 전시회를 연 이후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그대로 우리나라 사진의 역사가 되었고, 주명덕 아틀리에에는 그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전히 셔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그의 작업실에서 보낸 1박2일.
포털사이트에 주명덕이라는 세 글자를 입력하면 ‘주명덕아뜨리에’라 이름 붙인 그의 작업실 주소와 함께 가는 길까지 친절히 안내해준다. 경북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110. 안동 시내에서 차를 타고 50분쯤 더 달려가야 한다. 아침 7시와 저녁 7시, 하루에 버스가 단 두 차례만 다니는 인적이 드문 곳에 우리나라 1세대 사진가, 기록사진의 거장이라 불리는 주명덕의 개인 공간이 있다. 약 3년 전부터 그가 서울과 안동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는 곳이다.
주명덕은 1966년에 취미 삼아 찍기 시작한 사진을 모아서 연 <홀트씨 고아원> 전시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직업 사진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 전시에 걸린 작품을 모아 1969년 발간한 사진집 <섞여진 이름들>은 개인이 하나의 주제를 담아 펴낸 첫 사진집이라는 점에서, 그 당시에는 전례가 없던 일이라 사진 역사에도 특별한 기록으로 남았다. 그 후 <월간중앙>에 입사해 한국 고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이 담긴 다큐멘터리 사진을 촬영하며 그만의 사진 세계를 만들어왔다. 기사 기획부터 편집, 사진집 출판에 이르기까지 사진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지금까지 그가 다뤄보지 않은 영역은 없다.
주명덕의 사진으로 대중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것은 우리나라의 산과 대지, 오래된 건축물, 변해가는 도시의 모습을 촬영한 작품일 것이다. 1980년대에 시작한 Landscape 시리즈 ‘잃어버린 풍경’부터 2011년 대림미술관에서 개인전
폐교를 리모델링하고 2층으로 증축한 주명덕 아틀리에는 여느 시골 초등학교처럼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사진가 한 사람이 쓰기에는 넓디넓은 곳이다. 사진 찍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공간이다. 2개의 암실과 넓은 작업실 겸 부엌 그리고 그의 역사를 간직한 서고가 있으며, 전시 공간도 따로 갖추었다. 후배나 지인들이 찾아와 머물다 갈 수 있도록 2층에는 침실과 샤워실도 마련했다. 지인들은 우스갯소리로 그를 안동 성주라 부르기도 한다. 재학생이 몇 명 되지 않았을 초등학교의 작은 운동장에는 그물 없는 축구 골대만 양 가장자리에 서 있다. 그 주변으로 제멋대로 길게 자라 운동장을 가득 채운 풀이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 뒤쪽에서 아틀리에를 감싸고 있는 지형으로 아직 겨울의 냉기가 남아 있었지만 마음은 느긋하고 여유로워졌다. “여기서 비가 오는 날에는 창밖으로 떨어지는 비를 보면서 크리스마스캐럴을 들어. 의외로 참 잘 어울리면서 기분 좋아지지.” 비와 크리스마스캐럴이라니, 예상외의 조합을 즐길 줄 아는 그의 멋스러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눈발이 약하게 날리던 밤, 어김없이 크리스마스캐럴을 연주하는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지며 주명덕의 이야기는 시작됐다.
1 여전한 감각을 보여주는 그의 샛노란 휴대폰 케이스와 디지털카메라
2 폐교를 리모델링한 주명덕의 아틀리에
3 벽장을 가득 채운 LP와 아트 북 컬렉션
공식적인 작업실은 안동이지만 그에게는 2개의 작업실이 더 있다. 하나는 오랜 시간 머물러온 서울 종로구 신교동의 집이고, 나머지 한 곳은 올해부터 촬영을 시작할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한창 마무리 공사 중이다. “안동에는 한 달에 한 열흘 정도 머무르지. 작업이 있을 때는 더 자주 내려가고. 신교동은 제자나 지인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평소 주로 있는 곳이야.”
그의 아틀리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LP판이다. 주인이 같으니 당연히 닮았겠지만 벽장을 가득 채운 LP판과 음향에 귀 어두운 사람이 봐도 한눈에 예사 물건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오디오 시스템이 신교동과 안동 아틀리에의 공통점이다. 안동에서 하룻밤 보내는 동안 그는 아침저녁으로 손수 음반을 골라 노래를 틀어주었다. 존 윌리엄스의 기타 연주에 클레오 레인이 노래한 팝부터 장중한 오케스트라, 가곡 등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음악이 빈 공간을 채워주고 좋지. 암실에서 작업할 때도 FM 라디오를 틀어놓곤 해.” 가로로 긴 2층 건물 전체를 울릴 정도로 볼륨을 높여도 항의할 이가 없으니 마음껏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주명덕의 작업실에서 의외라면 의외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을 하나 발견했다. 역시나 신교동에서도 본 것이다. 웬만한 전문 서점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방대한 해외 사진작가의 사진집을 포함한 아트 북 컬렉션. 타셴과 하체 칸츠에서 오래전에 펴낸 책은 물론 최근에 출간한 랑방·디올·YSL 등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의 히스토리 북, 마놀로 블라닉 슈즈 일러스트 북까지 있다.
“요즘 유행은 무엇인지, 젊은 포토그래퍼는 어떤 감각으로 사진을 찍는지, 내 감각보다 나은지 아닌지 꾸준히 봐야지. 당연한 거 아니야?” 기대 이상의 아트 북 컬렉션을 보면서 놀라워하자 그가 핀잔을 주듯 말했다. 빌럼 데 쿠닝, 사이 톰블리, 데이비드 호크니와 세잔, 피카소까지 다양한 미술가의 화집을 보면서 그가 사진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사진을 잘하고 싶다면 반드시 현대미술의 흐름을 공부해야 해. 사진의 등장으로 현대미술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예전 초상화처럼 기록의 역할을 하던 회화의 자리를 차지한 사진이 요즘 오히려 파인 아트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야지.” 곁에서 열심히 촬영하고 있는 막내아들뻘인 포토그래퍼에게 그가 건넨 말이다. 그림, 문학, 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관심사를 깊이 있게 향유해온 선배 사진작가로서 하는 말이었다.
1 1991년에 창간한 (I-Magazine)
2 그의 손길이 닿은 카메라들이 들어 있는 캐비닛
3 하나씩 사연을 담고 있는 주명덕의 도장
“대중문화 예술이 서로 장르를 나누고 카테고리를 만드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야. 젊은 때일수록 분야에 상관없이 여러 사람을 만나고 교류해야 해. 시간이 지나 함께 작업할 수도 있고 본인의 세계도 확장할 수 있지.” 예전부터 전시회를 열어도 같은 사진 계통에 있는 이들에게 예의상 돌리는 초청장은 한 번도 보낸 적이 없다. 80%를 사진이 아닌 다른 예술 장르에 속해 있는 이들에게 보냈고, 나머지 20%는 그가 진심으로 꼭 보러 왔으면 해서 직접 전화해 부른 선후배 사진가였다. 한 사진학과 교수가 왜 사진학과 교수나 평론가 같은 사진 계통 사람을 초청하지 않느냐고 볼멘소리를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약 빵집 주인이라고 한다면 나는 다른 빵집 주인 먹으라고 빵을 굽는 것이 아니다. 당신도 나도 같은 빵집 주인이다. 나는 내 빵을 좋아하는 손님을 위해 만든다. 당신은 와주면 좋지만 안 와도 그만이다. 예의상 서로 돌아가며 참석하는 전시회를 하려는 게 아니다.” 사람과의 교류를 좋아하고 사진 찍는 선후배를 끔찍이 여기지만 허례허식은 거부하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건물 1층 안쪽에 자리 잡은 암실은 그가 아틀리에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예전에 사진기자로 일할 때 지방 출장이 잡히면 다 같이 남산의 하얏트 호텔에서 조식 뷔페를 먹고 출발했어. 좋은 음식 먹고 기분 좋게 일하자는 생각이었지. 그때마다 사람들한테 꼭 화장실에 가보라고 했어. 그 당시 내 소원은 하얏트 호텔 화장실만 한 암실을 갖는 거였거든.” 지금의 암실도 하얏트 화장실보다 크진 않지만 그에게는 부족함이 없다. 암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지만 주명덕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작업실이다. 붉은 불빛 아래 인화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상상해보았다.
프린트와 필름을 보관해놓은 2층 서고에 들어섰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1991년에 옴니디자인 이종환 대표랑
1 음악을 빼놓고 주명덕의 일상을 말할 수 없다.
2 작업실 한편에 벽난로에서 직접 고구마를 구워주었다.
3 성철 스님은 오직 주명덕의 카메라만 허락했다.
4 예전에는 전시회 초대장을 직접 쓰고 그리며 만들었다.
한 분야에 오래 몸담은 어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이야기를 소중히 여길 때 실수하기 쉬운 것이 하나 있다. 흥미로운 옛이야기,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들려주기에 그들을 지금 우리와 함께 호흡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업에서 물러난 이라고 단정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현업에서 물러나 쉬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마음만큼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 올해 일흔넷, 전업 사진작가 주명덕은 여전히 날 선 감각을 보여주며 현장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다. 내년까지 그가 우리에게 보여줄 작품이 줄 지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구본창, 배병우 등 후배 사진작가와 함께 작업한 <한국의 고건축(가제)> 사진집 10권을 펴낼 계획이다. 그는 그중 3권 정도의 분량을 맡아 합천 해인사와 경주 양동마을을 촬영했다. 보물로 지정된 한옥이 5채나 있는 양동마을의 멋스러움을 어떻게 담아냈을지 기대된다. 송도국제도시와 함께 변화하고 있는 인천의 모습을 찾아내 기록할 계획도 있다. 내년쯤 ‘Rose’ 시리즈를 이어 그가 선보이고 싶은 개인 작업도 꾸준히 작업 중이다. “젊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뭐가 있겠어. 오히려 부럽지. 요새는 정보도 많고 사진 관련 장비도 더 좋아졌지. 소크라테스 시절부터 젊은 애들이 문제라고 하지만 지금 가장 잘하고 있는 건 젊은이들이지. 우리는 사진이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해온 세대야. 살아온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사진을 하는 후배들도 다른 기준을 가질 수밖에 없어. 그것도 이해해.”
아틀리에에서 1박2일 머무는 동안 그는 아침이면 직접 모카포트에 커피를 끓여주고 저녁에는 다기를 꺼내 따뜻한 차를 내주었다. 장작을 떼는 벽난로에서 고구마를 구워주기도 했다. 그는 커피면 커피, 전통차면 전통차, 모든 걸 제대로 누리며 산다. 취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명덕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스며 나오는 것이다. 아틀리에를 구경하겠다고 따라나섰는데 그에게 멋이 무엇인지 배우고 왔다. 아름답다, 멋스럽다 생각한 것에 대한 정의가 달라진 시간이었다. 같은 분야에 몸담은 후배들의 환경이 부럽다 말할 정도로 투철한 직업의식, 굳이 가르치려 들지 않아도 일흔넷에 이르기까지 살아온 일상이 멋이 되고 배움을 줄 수 있는 주명덕이기에 넓은 건물에 혼자 서 있어도 허전함을 느낄 수 없었나 보다.
에디터 고현경
사진 김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