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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머무는 곳, 아오모리

LIFESTYLE

아오모리의 겨울은 길고 조용하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복잡한 도심의 문명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전기 없는 호롱불 온천과 끝없이 펼쳐진 설경, 현대미술이 공존하는 아오모리에 머무른 지난겨울 3일간의 기록.

도와다시 현대미술관이 위치한 간초사이도리 거리에 전시 중인 정경화의 ‘플라워 호스’

아오모리 공항에 다다를 때쯤 상공에서 바라본 아오모리 현은 온통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일본 동북쪽에 위치한 아오모리 현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겨울이 되면 바다에서 밀려드는 수증기 때문에 최대 5m의 폭설이 내린다. 겨울에는 거의 매일 눈보라가 몰아쳐 맑은 날은 손에 꼽힐 정도. 운 좋게도 날씨가 쾌청한 1월의 어느 날 아오모리 현 곳곳을 거닐었다.

과거를 거니는 시간 여행 1930년 겨울에 개통해 현재까지 운행하고 있는 화석연료 열차인 스토브 열차는 아오모리 현의 명물이다. 쓰가루 철도의 스토브 열차를 타기 위해 공항에서 차로 30분쯤 달려 아오모리 현 서부 지방의 쓰가루 고쇼가와라 역으로 향했다. 아오모리 현 서부 지방의 쓰가루 나카사토 역과 고쇼가와라 역 사이 12개 역을 왕복 운행하는 열차로 편도에 46분 정도 소요된다. 겨울에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라면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관광 코스 중 하나로 손꼽힌다. 물론 통근용으로도 이용한다. 들뜬 마음으로 탑승한 스토브 열차 안에는 이름에 걸맞게 객실에 석탄 난로를 설치해 훈훈한 분위기가 감돈다. 석탄 난로에 구운 오징어, 찹쌀떡 등을 주전부리로 즐기며 광활하게 펼쳐진 설원을 가로지르니 지금 이곳이 21세기 맞나 싶은 착각이 든다.
아오모리를 제대로 알려면 다치네푸타를 봐야 한다는 현청 국제관광교류추진과 히가시 나오키 과장의 안내에 따라 다치네푸타 전시관에 들렀다. 다치네푸타란 입체적 틀에 종이를 오려 붙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려 만든, 거대하고 화려한 등을 올린 축제용 수레다. 22m 높이로 지상 7층 건물 높이와 엇비슷할 정도로 거대하다. 1907년에 시작된 다치네푸타 축제는 아오모리를 대표하는 여름 축제로 전시관 3층에 위치한 제작소에서 3명의 젊은 장인이 오로지 이 축제를 위해 1년 동안 하나의 다치네푸타를 제작한다. “다치네푸타 축제가 열리는 여름에는 고요한 겨울과 달리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칩니다. 지금은 상상이 안 되실 거예요.” 히가시 나오키 과장이 귀띔한다.

1 호롱불로 어둠을 밝히는 아오니 온천의 밤 2 신화 속에 나올 법한 인물들을 과장되게 그려 넣은 초대형 다치네푸타

아직 이른 시간인 오후 4시쯤부터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해 소리 없이 어둠이 내려앉는다.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이기 전 재빨리 굽이진 산길을 지나 아오모리 공항에서 차로 약 2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한 구로이시 시의 아오니 온천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은 형광등 같은 전기 시설(온천 주방과 화장실은 예외다) 대신 오롯이 기름 램프 호롱불만으로 어둠을 밝혀 ‘램프의 온천’이라고도 불린다. 삐거덕거리는 마룻바닥을 지나 들어간 다다미방은 바닥의 찬 기운이 싸늘하게 올라오고 별다른 난방 시설도 없지만, 기름 난로에 의지해 하룻밤을 묵어야 하는 불편함이 싫지만은 않았다. 추위를 달래려고 유카타로 갈아입고 24시간 동안 운영하는 온천탕에 들어갔다. 바위로 둘러싸인 노천 혼탕을 비롯해 각기 다른 컨셉의 4개 온천탕이 있는데 에디터는 하늘을 가득 메운, 쏟아질 듯한 별을 바라보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노천탕 다키노미유를 선택했다.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니 쌓인 여독이 수증기와 함께 스르르 증발해버리는 것 같았다. 아침이 되자 그제야 아오모리 비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아오니 계곡이 눈에 들어오고 물소리와 새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고작 하루 묵었을 뿐인데 이틀은 머문 듯 긴 여운이 남는다.
이튿날 아오모리를 대표하는 설경과 전통 온천을 경험해보고 싶어 아오모리 현 중앙에 위치한 핫코다 산을 올랐다. 핫코다 산을 오르기 위해 탑승한 케이블카는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스노보더와 스키어로 만석을 이뤘다. 1500m의 낮은 산이지만 위도가 높고 적설량이 많아 설질이 부드러운 이곳은 스키 전용 슬로프가 아님에도 겨우내 스키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트레킹을 즐기러 온 사람도 드문드문 눈에 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거대한 눈 괴물, 수빙(樹氷)이 정상 곳곳에 서서 사람들을 반긴다. 수빙은 스노 몬스터라고도 불리는데, 나무 위에 내려앉은 눈이 기괴한 눈덩이로 변해 하나의 아트피스처럼 핫코다 산을 장식한다. 수빙을 가로질러 핫코다 산 정상에 오르니 아오모리의 겨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날씨가 쾌청하다 해도 산 정상의 추위는 비켜갈 수 없었다. 활화산인 핫코다 산 주변에 위치한 수많은 온천, 그중에서도 350년 전통의 산성 유황 온천인 스카유 온천을 찾아 꽁꽁 언 몸을 녹이기로 했다. 이곳을 찾았다면 350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혼탕 경험은 필수다. 에디터는 혼탕 대신 따로 마련한 여성 전용 탕을 이용했지만, 수증기가 자욱해 1m 앞도 분간하기 힘들다는 것이 혼탕 이용객의 전언이다. 산성 유황 온천이라 희뿌연 물빛에 냄새도 매캐하지만 미끈한 물의 감촉이 부드럽게 온몸을 감싼다.

1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에 전시 중인 나라 요시토모의 대표작 ‘아오모리의 개’ 2 쓰가루 스토브 열차 객실의 훈훈한 석탄 난로

예술이 숨 쉬는 아오모리 현 아오모리 현에는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 도와다시 현대미술관 등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본의 주요 미술관이 위치해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아오키 준이 설계해 이목을 집중시킨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에는 마르크 샤갈과 아오모리 출신 작가 나라 요시토모의 대표작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 내 초대형 아레코 홀에 샤갈이 발레 무대의 배경으로 쓸 목적으로 그린 작품 3점을 전시해놓았다. 도와다시 현대미술관도 빼놓을 수 없다. 도와다 시를 예술 도시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 ‘아트 도와다’의 주요 거점으로 2008년 개관한 이래 주옥같은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도와다 시의 간초사이도리 거리에 크고 작은 16개의 독립된 전시 공간을 배치했는데, 통유리창 너머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온 거리가 전시 공간처럼 느껴진다. 반가운 한국 작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었다. 정경화의 ‘플라워 호스’, 서도호의 ‘커즈 & 이펙트’ 작품은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이 밖에 세계적 작가 쿠사마 야요이가 도와다 시를 위해 만든 ‘도와다에서 영원히 사랑하고 노래하라’ 같은 설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Aomori Travel Tips
가는 방법 대한항공 직항편이 아오모리 공항의 유일한 국제선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매일 오전에 출발하며약 2시간 20분 걸린다.
쓰가루 스토브 열차 12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운행한다. 단, 12월에는 토·일요일·공휴일에만 운행하며, 12월 28일부터 매일 정상 운행한다. http://tsutetsu.com/index.html
아오니 온천 32개의 다다미방으로 구성했으며 100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아오모리 공항에서 2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www.yo.rim.or.jp/~aoni
스카유 온천 1954년 국민 온천 제1호로 지정된 아오모리 현 제일의 온천. 료칸 형태로 숙박도 가능하며, 온천만 즐길 수도 있다. www.sukayu.jp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 6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10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신아오모리 역에서 버스 네부탄호로 10분 걸린다. www.aomori-museum.jp/en
도와다시 현대미술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오픈하며 월요일은 휴무다. 라운지나 퍼블릭 액티비티 스페이스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개방한다. http://towadaartcenter.com

에디터 윤재웅
사진 이상현  취재 협조 대한항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