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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너처 공연과 함께

LIFESTYLE

연말이면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오는 공연이 반복되는 식상한 레퍼토리로 보이는가? 단골에는 이유가 있다. 12월 공연계의 단골 프로그램, 그 이유를 알고 나면 이맘때 으레 찾아 보는 연말 시그너처 공연에서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향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지난해 공연 장면. 올해는 크리스토프 에센바흐가 지휘봉을 잡는다.

연말, 희망의 메시지 매년 11월경 발표하는 서울시향의 다음 시즌 프로그램에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곡이 있다. 서울시향의 한 해 마지막 공연인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다. 그리고 가장 빠른 매진 기록을 세우는 것도 바로 이 공연이다. 예매에 실패하고 취소 티켓도 끝내 구하지 못한 관객은 공연 당일 라디오 생중계를 들으며 아쉬움을 달래기도 한다. 이런 인기는 매년 이 공연을 기다리고 고정적으로 보는 관객이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대규모 합창단과 성악가들이 함께 무대에 서고, 연주 시간이 약 80분에 달하는 대곡이 어떻게 연말 단골 레퍼토리가 된 걸까?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오케스트라가 매년 12월에는 합창 교향곡을 연주한다. 1824년 베토벤이 청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에서 초연한 이 곡을 송년 음악회에서 연주한 역사를 살펴보면 그 시작은 100여 년 전부터다. 1918년 12월 31일,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개월 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개최한 ‘평화와 자유의 축제’에서 연주한 곡이 합창 교향곡이었다. 송년 음악회에 이 곡이 처음 등장한 것으로 당시 밤 11시에 시작해 4악장이 시작될 무렵 새해를 맞이했고, 이후 연말에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이 점차 유행처럼 자리 잡았다. 그 이유를 4악장 ‘환희의 찬가’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가사는 베토벤이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를 삽입한 것이다. 자유와 화합, 인류애를 향한 힘찬 메시지가 담긴 내용으로 한 해 동안의 갈등을 잊고 새 출발을 위해 나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이 가슴 벅찬 마지막 악장은 1985년 유럽연합(EU)의 공식 공동 국가로 채택되기도 했다. 올해도 12월 마지막 주엔 세계 곳곳에서 합창 교향곡이 울려 퍼질 예정이다. 서울 시향은 12월 28일과 29일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의 지휘로, KBS교향악단은 12월 29일과 30일 요엘 레비의 지휘로 연주하고, 도쿄 오페라 시티 콘서트홀과 산토리홀, 프랑스 필하모니 드 파리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합창 교향곡을 감상할 수 있다. 올해는 단순한 연말 이벤트를 넘어 뜨거운 자유정신과 숭고한 박애정신을 되새기며 이 곡을 감상해보자.

매년 12월에 공연하는 국립발레단의 송년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한 장면

크리스마스의 꿈 발레 중에서는 당연히 이 작품이다. “호두를 까야 연말이죠.” 발레 애호가 사이에서 농담처럼 주고받는 말이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보지 않고 한 해를 넘기는 건 꼭 송년 파티를 혼자만 놓친 기분이랄까. 그래서 많은 관객이 올해도 역시 즐거운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발레단의 일정을 확인한다. 국립발레단이 12월 17일부터 25일까지, 유니버설발레단이 12월 16일부터 31일까지 공연하고 이원국발레단, 와이즈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도 겨울 레퍼토리로 <호두까기 인형>을 준비했다. 세계 여러 공연장도 마찬가지. 런던의 사우스뱅크와 로열오페라하우스, 뉴욕의 링컨센터, 베를린의 국립오페라극장,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이 공연이 12월의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간단하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배경이며, 주인공 소녀 클라라의 꿈속 이야기엔 아이들이 즐길 만한 장면이 많아 연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려는 관객에게 좋은 선택이기 때문.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차이콥스키와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합작해 이 공연을 초연한 것도 겨울이었다. 차이콥스키가 사망하기 1년 전, 1892년 12월 마린스키 극장 초연 당시에는 관객이 아이들이 등장하는 발레와 새로운 구성을 낯설게 받아들여 대실패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후 유리 그리고로비치, 게오르게 발란친, 루돌프 누레예프 등 많은 안무가가 자신만의 버전을 내놓으며 명실상부 ‘크리스마스 대표 발레’로 자리 잡았다. 올해도 발레 팬과 가족 관람객의 사랑을 받으며 흥행하리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종교음악을 넘어 이맘때 찾아오는 공연으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도 빼놓을 수 없다. 오라토리오가 17~18세기에 성행한 종교음악을 뜻하는 만큼 크리스마스 즈음 자주 무대에 오르는 것. 총 3부 53곡 구성으로 1부 예언과 탄생, 2부 수난과 속죄, 3부 부활과 영생이 주제이며, 2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44번째 곡이 그 유명한 ‘할렐루야’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헨델이 1743년 ‘메시아’를 런던에서 초연할 당시, 영국 국왕 조지 2세가 ‘할렐루야’ 합창이 나오는 부분에서 감격한 나머지 벌떡 일어섰다는 이야기. 이후 이 부분에서 관객이 기립하는 것이 마치 공연 매너처럼 관례로 자리 잡았다. ‘메시아’ 전곡을 연주할 경우 공연 시간은 3시간 정도. 그래서 전곡 공연보다는 대중에게 친근한 곡 위주로 발췌해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12월 19일과 20일, 구천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국립합창단은 공연 시작 시간이 저녁 8시임을 감안해 140분 정도로 구성해 공연할 계획. 소프라노 서활란, 김영미 등 이틀간 다른 성악가가 솔리스트로 서고 바로크 연주 단체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이 협연할 예정이다. 세계 주요 공연장 중에서는 런던의 로열 앨버트홀, 뉴욕 카네기홀,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에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메시아’를 공연한다. 이제 이 곡은 종교적 의미를 넘어선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한동안 침체기를 겪은 헨델이 이 곡을 통해 완전히 재기에 성공하고 자선 연주를 펼치며 가난한 사람들을 도운 배경이나, 곡에 담긴 생에 대한 찬미의 메시지를 음미해보면 종교와 무관하게 헌신과 나눔의 가치를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명한 음색의 소프라노 임선혜는 올해 마지막 날 세종문화회관 제야 음악회 무대에 오른다.

시그너처 공연의 자부심 연말 대표 레퍼토리 외에 각 공연장이나 단체에서 내세우는 시그너처 공연도 있다. 고정적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동일한 타이틀로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날에 하는 공연이다. 매년 12월 3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제야 음악회는 세종문화회관의 대표 기획 공연으로 꼽힌다. 한 해 동안 활약한 아티스트를 초대하는데 올해는 TIMF 앙상블과 최수열 지휘자, 소프라노 임선혜, 팝페라 가수 카이, 피아니스트 김태형,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등이 한 무대에 설 예정이다. 밤 10시 30분에 공연을 시작해 새해를 맞는 그 순간을 공연장에서 모두 함께 축하한다. 예술의전당에서는 같은 날 밤 9시 30분에 제야 음악회를 시작한다. 20여 년간 계속해온 예술의전당 제야 음악회는 클래식과 뮤지컬 넘버, 오페라 아리아를 넘나드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아름다운 목요일’로 매주 목요일에 실내악 공연을 펼치는 금호아트홀에도 자랑스러운 연말 시그너처 공연이 있다. 12월 셋째 주 목요일과 마지막 주 목요일에는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가 무대에 올라 시즌 공연을 펼친다. 금호문화재단이 키운 연주자들이 ‘올스타’처럼 한 자리에 모이는 것. 이들은 매해 다른 프로그램을 연주하는데 대체로 낭만주의 음악가의 곡이나 밝고 화려한 느낌의 곡을 선정하는 편이다. 올해는 12월 22일 모차르트 위주의 프로그램을, 29일에는 브람스와 프랑크의 곡을 연주한다. 홀 전체를 가득 채우는 실내악 선율이 선사하는 아늑한 느낌 덕분에 마음이 2 따스해지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올해도 각 공연장에서 연말 대표 공연들을 만날 수 있다. 단순한 연말 이벤트를 넘어 뜨거운
자유정신과 숭고한 박애정신, 헌신과 나눔의 가치 등 공연에 담긴 메시지를 되새기며 감상해보자.”

에디터 문지영(jymoon_@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