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대변하는 칵테일 링
사교의 밤을 수놓은 손끝 언어.

블루 북 컬렉션 성게 팬시 인텐스 옐로 다이아몬드 링 Tiffany & Co.
1920년대 미국은 금주법을 만들어 사회적으로 억압하던 시기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면에는 사교 문화와 사치가 만연했다.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없는 시대였기에 상류층은 은밀한 스피크이지 바에서 화려한 패션과 주얼리, 그리고 칵테일을 통해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표출했다. 놀랍게도 이 시기는 하이 주얼리 시장도 호황기였다. 제약이 심한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한 심리가 오히려 다이아몬드와 컬러 스톤 같은 화려한 보석에 대한 수요를 자극한 것이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억압과 퇴폐, 화려함이 혼재했던 이 시대는 젬스톤의 크기만큼이나 과장된 꿈이 넘실거렸다. 유럽 왕실과 상류사회 역시 칵테일 링을 단순한 패션 아이템이 아닌 사회적 신분과 문화적 자율성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받아들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비롯한 왕족들은 공식 석상이나 저녁 연회에서 커다란 젬스톤이 세팅된 링을 즐겨 착용했고, 이는 하이 주얼리가 궁극적으로 지위를 시각화하는 매개체였음을 방증한다. 이처럼 칵테일 링은 억압된 시대에 저항하는 빛나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거대한 젬스톤과 과감한 실루엣은 술잔 너머로 이어지는 여성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이후 1960년대 유럽의 하이 소사이어티에서도 칵테일 링은 사교 의식이 되었고,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칵테일 링은 과거 유산을 되살리는 동시에 하이 주얼리 메종의 창의적 실험 무대가 되고 있다. 선명한 색채, 시적인 테마, 고도화된 세공 기술은 이 작은 오브제에 시대와 개인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낸다.
반클리프 아펠은 이러한 칵테일 링의 원형적 미감을 정교하게 복원했다. 최근 선보인 트레저 아일랜드 컬렉션은 문학에서 출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사파이어와 루비, 에메랄드, 다이아몬드를 조합해 숨은 보물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코프르 프레시외 링은 빈센트 반 고흐의 바다 풍경처럼 손끝에 서사와 회화를 담아낸다. 불가리는 정제된 조형미로 이 장르를 재정의한다. 불가리 카보숑 컬렉션은 1950년대의 상징인 카보숑 컷을 재현하며, 파베 다이아몬드로 감싼 유기적 곡선을 통해 순수한 골드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세르펜티 라인에서는 관능과 변신의 모티브가 결합된다. 타사키는 진주라는 동양적 정서를 모던하게 재해석한다. 리츠 파리 타사키 컬렉션의 당텔 파파라차 링은 무가열 파파라차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를 사쿠라골드™에 세팅해 고요하면서도 깊이 있는 긴장감을 연출한다. 오로라 링은 나선형 진주와 블루 톤 사파이어, 다이아몬드를 그러데이션으로 엮어 수중의 빛을 구현한 듯한 인상을 준다. 티파니는 2025 블루 북 컬렉션 ‘씨 오브 원더(Sea of Wonder)’를 통해 바다의 생명력과 조형적 환상을 병치한다. 불가사리 루비 링은 모잠비크산 루비와 로즈 컷 다이아몬드의 극적인 조화를 통해 신비로운 해양 생물의 실루엣을 재구성하며, 성게 팬시 인텐스 옐로 다이아몬드 링은 19세기 파요네 에나멜링 기법으로 성게의 가시 구조를 감각적으로 재현했다. 이 모든 디자인은 쟌 슐럼버제의 해양 아카이브를 재해석한 결과다. 프레드는 빛과 색의 파노라마를 통해 칵테일 링을 감정의 언어로 번역한다. 무슈 프레드 아이디얼 라이트 컬렉션의 블레이징 어데시티 챕터는 16.91캐럿의 스페사틴 가닛을 중심으로 핑크 루벨라이트와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아르헨티나의 햇빛을 손끝에 구현한다. 이어지는 엑설팅 조이 챕터에서는 프레드의 독자적 스톤, 오팔라주르를 통해 리듬감 있는 조형미와 변형 가능한 구조를 함께 담았다. 오늘날의 칵테일 링은 단지 복고적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여전히 동시대 여성의 손가락 위에서 존재를 선언하는 방식이자 메종이 구현하는 정체성과 감각, 기술력의 총체다. 한 손의 제스처에 불과할지라도, 그 손끝은 시대와 삶의 찬란한 단면을 담아낸다.
에디터 이주이(jyle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