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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OW

1932년 처음 선보인 이래 미국을 대표하는 비엔날레로 자리매김한 휘트니 비엔날레가 ‘실제보다 나은 것’을 주제로 8월 11일까지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다.

Demian DinéYazhi, We Must Stop Imaging Apocalypse /Genocide + We Must Imagine Liberation, 2024. Photograph: Nora Gomez-Strauss.

AI가 우리 삶에 깊이 침투하면서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이 민주주의 선거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 이 시기, 휘트니 비엔날레는 ‘진짜/실제’에 대한 갈망을 정확히 표현한 주제를 내걸고 그 어느 때보다 시기적절하게 개막했다. 1991년 발표한 U2의 노래에서 따온 ‘실제보다 나은 것(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을 주제로 열린 제81회 휘트니 비엔날레에는 총 71인의 예술가가 참여했다. 작가들이 말하는 ‘실제(real thing)’는 진정성과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더 가깝다. 작가들의 영상 작품이 특히 풍성한데,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한 명상적 작품이 많아 관람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휘트니 미술관의 맨 위 6층 전시장,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자홍색 빛으로 가득한 방이 있다. 푹신하고 편안한 침구에 누워 다이앤 세버린 응우옌(Diane Severin Nguyen)의 67분짜리 영상 작품 ‘In Her Time(Iris’s Version)’(2023~2024)을 볼 수 있는데, 1937년 잔혹한 난징 대학살에 관한 영화의 배역을 맡아 리허설하는 여배우 아이리스를 묘사한 작품으로, 허구와 현실을 융합해 역사가 순환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바로 옆 전시실에 전시한 하모니 해먼드(Harmony Hammond)의 신작은 빨간색과 흰색 사각 패턴 중앙의 피 묻은 면 조각으로 여성에 대한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폭력을 암시한다.
이번 휘트니 비엔날레는 여성 예술가들이 처음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던 1960~1970년대의 긴장감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종류의 신체 예술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당시 목표는 예술가의 신체가 작품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지금 그 팔과 다리, 성기는 완전히 해체되어 건축물의 형태와 직물 등을 닮은 일상의 사물로, 일종의 신체 없는 신체 예술로 존재하게 되었다.
홀리 헌던(Holly Herndon)과 맷 드라이허스트(Mat Dryhurst)가 생성형 AI를 이용해 만든 프린트 작품 ‘xhairymutantx’(2024)도 큰 관심을 받았다. AI의 데이터 학습에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주어진 프롬프트와 상관없이 작가 모습(보디슈트를 입은 빨간 머리의 백인 여성)의 기묘한 버전만 생성하도록 훈련된 텍스트-이미지 AI 모델이다.
가장 넓은 전시 공간인 5층은 어느 쪽으로 이동하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관람객이 소리의 경험과 느낌을 기억할 수 있도록 각 작품마다 조명을 섬세히 조절했다. 자동으로 연주되는 피아노 설치 작품인 니키타 게일(Nikita Gale)의 ‘Tempo Rubato(Stolen Time)’(2023~2024)에서 피아노는 어떤 음도 내지 않도록 조작되어 있다. 들리는 것이라곤 건반이 서로 부딪치며 반복적으로 딸깍거리는 소리뿐. 작품은 관람객의 시선을 거부하며, 예술가들이 자신을 억압하려는 구조에 참여하길 꺼리는 현상을 반영한다.

P. Staff, Afferent Nerves and A Travers Le Mal, 2023. Photograph: Filip Wolak.

Lotus L. Kang, In Cascades, 2023. Photograph: Filip Wolak.

성소수자인 퀴어(queer)의 신체가 권력 시스템에 의해 정의되고, 반응하고, 회피하는 방식은 이번 휘트니 비엔날레의 가장 자명한 주제일 것이다. 실제로 미술관 각 층은 트랜스아티스트의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5층 입구에 자리한 투르말린(Tourmaline)의 ‘Pollinator’(2022)는 트랜스젠더 인권운동가 마샤 존슨(Marsha P. Johnson)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영상 작품이다. 꽃 사진 벽화로 둘러싸인 전시실에서 작가는 자신을 꽃이자 수분 매개체로 표현한다. 또 샤론 헤이스(Sharon Hayes)의 아름다운 다큐멘터리 ‘Ricerche: four’(2024)는 세 그룹의 LGBTQ 노인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노년기에서 삶과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성찰한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캐나다인 로터스 강(Lotus L. Kang)은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매력적인 작품 중 하나로 눈길을 끈다. 화학물질로 고정 처리하지 않은 길고 넓은 노출 필름으로 구성한 설치 작품 ‘In Cascades’(2023)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빛에 노출되고 현상되어 예상치 못한 색상과 패턴을 만들어내는데, 100년 후에는 아마도 하얗게 변할 것이다.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에디 루돌포 아파리시오(Eddie Rodolfo Aparicio)의 ‘Paloma Blanca Deja Volar / White Dove Let Us Fly’(2024)도 온도와 빛에 따라 변하는 보석 호박을 큰 창가 근처에 세워두었다. 빛이 작품에 계속 닿으면 호박 속 문서들이 열에 의해 조금씩 움직일 것이다. 이는 라틴아메리카 이주 노동자들의 삶과 경험을 반영하며, 그들의 기억과 트라우마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보여준다. 개인의 정체성과 경험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변화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단연 데미안 디네야지(Demian DinéYazhi)의 작품일 것이다. 미술관 5층 끝에 자리한 텍스트 기반 네온 작품 ‘We Must Stop Imagining Apocalypse / Genocide + We Must Imagine Liberation’(2024)은 나바호족 예술가이자 시인, 활동가인 작가가 원주민 저항운동에서 영감을 얻은 것. 올해 비엔날레는 더 젊어졌고, 지리적으로 더 다양하며 여성 중심적이고, 국제적 대표성을 띤다. 총 71인의 참여 아티스트 중 거의 절반이 미국 이외의 지역 출신이거나 미국 밖에 거주하며, LGBTQ 작가의 비율과 흑인, 여성 작가의 수도 지난 비엔날레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 그렇게 휘트니 비엔날레는 아름답고 독특한 목소리로 세상에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는 예술가들과 교감하는 자리로 여전히 그 상징성과 존재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Holly Herndon & Mat Dryhurst, xhairymutantx Embedding Study 1, 2024. Photograph: Audrey Wang.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전영(아이언벨벳 대표)
사진 휘트니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