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절제된 패션의 힘
조용한 럭셔리, 스텔스 웰스로 불리는 ‘올드 머니 룩’ 트렌드에 대하여.
올가을 단 하나의 트렌드를 꼽으라면 단연 최상류층 스타일을 뜻하는 ‘올드 머니 룩’이다. 올드 머니 룩은 집안 대대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가문에서 자산을 상속받은 상류층 사람들의 옷장 속에 있을 법한 스타일을 말한다. 하이엔드 브랜드 로고나 명품을 상징하는 패턴 혹은 프린트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으며, 화이트·베이지·블랙 등 뉴트럴 톤이나 모노톤 컬러를 사용하고, 좋은 소재와 디자인이 특징이다. 한눈에 알아볼 수 없어 어느 브랜드 제품인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1990년대 미니멀 스타일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터.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와 재클린 케네디, 다이애나 왕세자빈처럼 로열패밀리의 고급스럽고 클래식한 룩이 좋은 예다.
올드 머니 룩이 이번 시즌 핫 트렌드로 떠오른 것은 경제 불황과도 관계가 있다. 1926년, 여성이 즐겨 입는 스커트 길이를 경제지표에 처음 대입한 경제학자 조지 테일러가 만든 ‘헴라인 지수(hemline index)’. 경기가 좋을 땐 실크 스타킹을 보여주기 위해 치마를 짧게 입고 경기가 나쁠 때는 스타킹 살 돈이 부족해 치마를 길게 입는다는 지론처럼, 올드 머니 룩도 비슷한 맥락이다. 유례없는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등 전 세계적으로 경제 침체를 겪는 지금, 좋은 소재와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으로 실용적이고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올드 머니 룩이 자연스럽게 트렌드로 급부상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대부분 하우스 브랜드는 이번 시즌 올드 머니 룩에 대응하는 컬렉션을 대거 선보였다. 먼저 보테가 베네타는 슬립 드레스를 시작으로 셔츠 드레스, 트렌치코트처럼 실용적이면서도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장인정신이 깃든 섬세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부재로 자체 디자인팀에서 쇼를 이끈 구찌 역시 재킷과 화이트 셔츠, 데님 팬츠 등 하우스의 아카이브에 충실한 베이식 룩에 컬러풀한 백과 슈즈, 액세서리를 매치해 전체 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프라다는 하우스 특유의 세심한 테일러링과 미니멀리즘을 바탕으로 우아함과 실용성 사이의 경계에 대해 다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특권 상류층의 올드 머니 룩과 라이프스타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TV 방송 부문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에미상에서 총 27개 부문에 후보를 올리며 올해 드라마 부문 최다 노미네이트된 HBO TV 시리즈 <석세션>이 바로 그 예. 미디어 재벌 가문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드라마 속 유일한 여성 캐릭터 시브 로이의 다채로운 올드 머니 스타일은 Z세대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며 오피스 우먼의 워너비 패션으로 떠올랐다.
좋은 소재와 유행을 타지 않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으로 제품 가치를 높이고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올드 머니 룩은 쉬지 않고 빠르게 돌아가는 패션 과도기에 브레이크를 걸어줄 비상책이 아닐까. 이제 우아하고 자신감 넘치는 애티튜드로 새로운 올드 머니 룩을 온전히 즐길 일만 남았다.
Celeb’s Pick! Old Money Look
미니멀한 디자인과 고급 소재, 여유로운 실루엣으로 무장한 올가을 치트키, 이번 시즌 트렌드의 주축을 이루는 올드 머니 룩 강자들의 스타일링 레퍼런스를 모았다. 패션 피플의 리얼웨이 룩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명확하게 찾아볼 것!
에디터 한지혜(hjh@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