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리, 거대한 조각이 전하는 말
시몬 리는 조각가로서 ‘도자’라는 재료를 선택했다. 압도적이고 아이코닉한 리의 조각은 강렬하고 예리한 울림을 자아낸다. ‘변화와 적응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을 자처하는 시몬 리와 대화를 나눴다.

시몬 리 1967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시몬 리는 재료, 규모의 실험을 통해 조각이라는 매체의 방법론을 넓혀가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처음으로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한 시몬 리는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테이트, 뉴 뮤지엄, 해머 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2019년 하이라인 파크 중심부에 설치한 최초의 공공 미술 작품 ’Brick House‘를 공개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미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는 동시에 본전시 ’The Milk of Dreams‘에도 출품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현재 브루클린에 거주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Simone Leigh, Courtesy Matthew Marks Gallery, Photo: Shaniqwa Jarvis.
127년 베니스 비엔날레 역사상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흑인 여성 작가라는 타이틀을 품에 안으며 예술가로서 빛나는 순간을 맞이한 2022년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정말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작년부터 서베이(survey) 전시가 미국 전역을 순회 중인데, 보스턴 현대미술관(Institute of Contemporary Art, Boston)에서 시작, 워싱턴DC의 허시혼 미술관(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을 거쳐 5월부터 LA 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과 캘리포니아 아프리칸 아메리칸 박물관(California African American Museum)에서 전시합니다. 이 전시에선 지금까지 만든 작품뿐 아니라 새로운 조각 작품도 처음 선보이는데, 신작인 3점의 대형 청동 조각 ‘Bisi’, ‘Herm’, ‘Vessel’로 추상화한 여성의 형상을 표현했어요. 이 작품들은 인간의 형상과 건축적 요소를 결합해 흑인 여성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탐구하고자 하는 제 작업의 연장선에 있죠.
허시혼 미술관 전시를 실제로 볼 기회가 있었어요. 전체 흐름도 인상 깊었지만, 무엇보다 눈앞에 놓인 작품의 규모와 크기에 압도되는 듯한 느낌을 잊기 힘들었습니다.
다양한 형태와 재료로 조각을 만들며 이 매체의 한계와 가능성을 뛰어넘고자 합니다. 전통적으로 도자는 성차별적 의미를 내포한 공예품으로 경시돼온 측면이 있어요. 제 작품은 관습적 연상 작용을 깨고, 도전하는 동시에 이러한 형태가 상징하는 역사적 노동으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빛내고자 해요. 각각의 조각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기 위해 다양한 시각적 참고 자료를 연구하고 매체와 규모, 크기에 대해서도 깊이 탐구하고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역사와 사회를 참조하는 방식, 나아가 그런 자료에서 창작의 씨앗을 발견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제 작업은 아프리카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적 시대, 지리적 배경, 예술적 전통은 물론 이집트,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 유산을 비롯해 세계 각지의 시각적 참고 자료를 포함하고 있어요. 부족 이미지, 토착 건축, 민속예술 전통, 역사적 사진에 기반한 많은 이야기가 담긴 조각 작품을 만드는 셈이죠. 제 작업에 중요한 레퍼런스로 ‘엄마의 찬장(Mammy’s Cupboard)’이라는 1940년대 미시시피의 레스토랑이 있는데, 손님들이 엄마(여성) 피규어의 치마 속 공간에 들어가 식사하던 곳이에요. 또 다른 영감의 원천으로 고전 조각의 시각 어휘, 1931년 파리 식민지 만국박람회에서 다룬 식민지 역사, 그리고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Las Meninas)’도 있습니다. 저는 하나의 조각을 만들면서 이질적인 시각적 역사에 대해 생각하곤 해요.
한국 관람객들이 작가님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알아두면 좋을 아프리카 전통 혹은 고유의 미적 개념을 몇 가지 짚어주신다면요?
아프리카 문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와 전 세계 문화와 관련된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하고 한데 어우러지게 합니다. 가령 대형 청동 조각 ‘Satellite’(2022~)는 기니 해안의 바가(Baga) 부족 사람들이 만든 머리 장식 ‘드엠바(D’mba)’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이 마스크는 전통적으로 나무를 주재료로 만들고, 조상과 소통하는 데 쓰였습니다. 머리 장식은 여성의 보호와 어머니의 역할을 상징하기도 하고요. 또 다른 작품 ‘Sentinel(Mami Wata)’(2020~2021)은 물의 정령으로 아프리카 전역에서 추앙하는 ‘마미 와타’를 형상화했어요. 마미 와타는 파괴력과 창조력을 모두 지닌 존재죠. 마미 와타를 의인화한 거대한 조각품은 수호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저는 작품에 아프리카와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시각적 전통을 차용해 다양한 역사, 정체성 그리고 문화를 반영하고 기념합니다.
여성의 신체, 특히 흑인 여성의 몸을 작업의 중심에 두지만 완벽한 인체 형상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이목구비 중 눈이 없거나, 그릇처럼 보이는 두상 등 특유의 조형적 표현으로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인간 형태의 추상화를 통해 직접적이거나 전형적인 초상보다는 존재의 다양한 상태를 탐구하는 조각을 만들어요. 여성의 신체와 가정용 그릇이나 건축 요소를 결합한 것은 인정받지 못한 노동과 돌봄의 행위를 상징합니다. 저는 추상과 구상 사이를 오가면서 지적이고 정서적이며 육체적인 노동을 암시하는 물리적 요소들과 신체 표현을 결합합니다.
청동이나 돌을 활용한 조각과 도자가 만나는 지점에서 사용하는 재료도 흥미로워요. 흙과 불을 쓰는 세라믹 작업의 예측 불가능성이 지닌 매력에 대해 언급하신 적도 있죠. 라피아를 다양하게 변주하는 것도 특징적이고요. 최근에는 어떤 실험을 즐기고 있나요?
새로운 형태와 재료, 예술적 과정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어요. 최근엔 조각 작품에 독특한 표면과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소금 소성 방식을 도입했죠. 소성 공정이 한창일 때 가마에 소금을 넣으면 점토와 반응해 독특한 질감의 유약이 만들어집니다. 결과물은 종종 예측하기 어려워요. 소성 과정과 가마의 환경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오거든요. 또 근래 몇 년 동안 청동으로 작업하기 시작했는데, 개별 조각은 먼저 점토를 써서 실물 크기로 모델링한 다음 주조해요. 초반에 점토 표면에 드러나는 개인적 터치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으로 만들죠. 조각을 굽는 과정을 전 세계의 다른 장소에서 해보려는 시도도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미국 몬태나주와 컬럼비아주에서 작업했죠. 여러 곳에서 전 세계의 다양한 전통을 배우며 작품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풍부한 예술 역사를 지닌 나라인 만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 중 하나예요.
작품이 놓일 장소에 대해서도 고려하나요?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 같은 공공장소를 지나던 행인이 우연히 작품을 마주할 때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작품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관람객의 기대가 다를 것을 고려한다든지요.
관람자와 제 조각 작품 사이의 상호작용은 그들에게 시각적으로, 또 감정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하이라인 파크에 설치한 ‘Brick House’나 ‘Satellite’ 같은 기념비적 야외 작품은 공공장소에서 중요한 주제와 역사를 기념합니다. 다른 조각, 특히 흉상 형태의 조각은 좀 더 사적이고 친밀한 규모의 의미를 전달해요. 예를 들어 ‘Bisi’ 같은 최근 작품은 ‘Satellite’와 마찬가지로 조각의 밑부분에 동굴 같은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갈 수 있게 했어요. 이러한 내부 공간은 사람들을 보호하는 쉼터이자 상징적인 자궁 역할을 해요. 이렇게 개별 작품의 물리적 존재감을 통해 관람자의 신체와 상호작용하고, 관계를 맺도록 유도하는 거죠.
작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예술 여정을 되돌아볼 때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꼽아볼까요?
앞서 말했듯 제 작업과 작품은 노동, 지식, 물질문화에 대한 다층적 관점을 꾸준히 반영해왔어요. 조각 작업 전반에 걸쳐 계속 진화하고 등장하는 ‘모티브’와 ‘재료’는 점토라는 매체가 구현할 수 있는 표현 방식에 대한 오래된 애정과 연구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특히 개오지 껍데기는 제 작품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과거에 화폐로 쓰이는 등 깊은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저는 때로 수박으로 개오지 형태를 만들어 수박이라는 과일과 관련한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을 암시하기도 해요. 오랫동안 인체를 대신하는 모티브로 개오지를 채택해왔고, 라피아의 경우도 아프리카 토속 건축의 초가지붕을 연상시키는 주요 소재로 꾸준히 사용하고 있어요.
비단 개인적 성취를 넘어, 예술로써 공동체와 미래 세대를 위해 기여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까요?
작업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 장소, 문화, 역사를 연결하는 다층적 레퍼런스를 만들고자 합니다. 여러 가지 영감의 원천을 조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싶어요. 이로써 다양한 노동 형태, 즉 지적 노동부터 감정적·육체적 노동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토론할 수 있는 변화의 역사를 그려나가고 싶습니다.
글 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매슈 마크스 갤러리